말레이시아는 독특한 나라다. 피부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이곳에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다양성 속에 일치를 만들어 가고 있다.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사는 나라

말레이시아는 여러 민족이 모여 한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다. 시내를 다녀보면 흥미롭다. 바로 사람 구경 때문이다.

이곳은 인종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말레이계 말레이시아인들이다. 그다음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그리고 파키스탄계나 인도계도 1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밖에 여러 소수 민족들이 서로 공존하며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요한 요직이나 정치권력은 말레이계가 쥐고 있다. 이들은 좀처럼 자기민족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경제와 상권은 중국인이 쥐고 있다. 그 외에는 인도인과 파키스탄계가 험한 일을 대부분 도맡아 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 말레이인 우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 불만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지만 다양한 민족이 함께 조화를 이룬다.

시내를 걷다 보면 다양한 인종을 만날 수 있어 심심하지 않다. 이곳에서는 사람 구경도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이렇게 다민족, 다문화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아시아에서 흔히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공존하는 종교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국교로 공인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나 힌두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의 자유도 함께 인정하고 있다. 특히 하루 일과 중, 이슬람 기도 시간에는 스피카에서 흘러나오는 기도소리를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다.

이슬람 국가이다 보니 율법이 국법보다 우선한다. 무슬림인은 술과 담배 여자를 멀리한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루 5차례 정해진 기도시간을 지켜야 한다. 무슬림으로 살아간다는 자체가 하나의 고행과 수행의 길이다. 말레이시아는 수도 쿠알라룸프에 대한 나의 인상은 도심 속 정원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도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유럽풍의 건축양식과 동양적인 건축양식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한 나라

말레이시아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다. 낭만과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자연이 숨 쉬는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면 그 신비로움을 더 할 것이다.

누구든지 말레이시아에 도착하면 수만 년 전으로 돌아가거나 초현대의 시간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자연의 세계가 현재에서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사진에 관심 있는 여행자라면, 공원 같이 잘 정비 된 거리의 가로수나 울창하게 우거진 열대림, 그리고 숲으로 가득한 정글 같은 산등성이, 시원한 급류와 폭포 등지에서 마음껏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1억3천만 년 동안 아무도 손대지 않은 열대림은 수만 종의 조류와 야생동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식물군상 역시 다양하다. 고대의 처녀림은 안개로 가득한 산 정상까지 끝없이 뻗어 있어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원시림이 마치 잘생긴 처녀의 다리처럼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왜 이렇게 나무들이 잘 생겼을까.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하늘을 향해 길게 늘어진 나무들이 발걸음을 유혹한다. 순간, 여기가 에덴동산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조건은 살아있는 원시림을 체험하게 한다. 말레이시아 어느 곳을 가든 그야말로 완벽한 자연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태양과 바다, 수중 세계를 좋아하는 이는 말레이시아에서 꿈같은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작열하는 태양과 그림 같은 해변이 펼쳐져 있는 팡코르, 동양의 진주 페낭,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키나발루, 신화와 전설이 일상에 녹아 있는 랑카위 등 말레이반도 동서해안은 천혜의 보고이다.

또한 말레이시아의 아름답고 화려한 1천7개의 섬 중 38개 섬은 해양 공원으로 선포되어 있어, 이 섬들과 바다를 둘러싼 환경은 다이빙, 스노쿨링, 수영, 요트 및 보트 타기, 윈드서핑, 낚시와 수중 촬영에 이상적이다. 말레이시아를 구경하다 보면 현재라는 시간을 망각하게 된다.

자신도 시간도 걱정도 잊어버린다. 그것은 천혜의 원시림과 살아있는 자연경관 때문이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느림의 미학에 푹 빠져 있다.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삶의 여유를 맛보며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다.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의 불행은 고요한 방에서 휴식 할 줄 모르는 데서 오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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