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아침볕을 이마로 밀며 학교 가는 길. 까까머리 머슴애들과 단발머리 계집애들이 책 보자기를 돌돌 말아 걸머메거나 허리춤에 졸라맨 아이들이 쫄랑쫄랑 굴러가는 풍경은 흑백사진처럼 까마득한 추억의 저 건너편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온갖 소리, 소리들과 함께 겹쳐지는 그때 그 시절 따스한 시간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 보고자 한다.

십 리쯤은 되는 거리일까. 학교 가는 길은 신작로였는데 뿌연 흙먼지 속을 툭툭 자갈을 차면서 우리는 애향단 깃발을 앞세우고 동요를 부르며 혹은 군가(?)를 부르기도 하면서 학교에 가곤했다.

허리춤에는 노란 백철로 된 급식용 컵과 손잡이 부분에 구멍이 뚫린 미제 숟가락을 꿰어차고 등교하는 우리는 걸을 때마다 찰가당찰가당 소리를 몰고 다녔다. 길가의 조선 버드나무에는 매미울음소리가 주렁주렁 달려 교실까지 따라오곤 했다.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구포가도(九浦街道)의 합승, 삼륜차, 찝차, 트럭들은 연방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아침 따가운 볕 아래로의 우리들 등교행렬은 상급반 형의 점점 졸아든 구령 소리와 꼬맹이들의 기운이 다 소진된 복창소리는 학교운동장으로 들어가면서 서서히 스러지곤 했다.

학교에 가 닿으면 다시 새로운 소리들이 우리를 물고 다녔다. 아니 우리는 새로운 소리들을 생산해내며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강냉이가루 죽을 받아먹기 위해 급식소 앞에 줄을 선 우리들은 어김없이 차고 간 숟가락으로 노오란 백철 컵을 긁거나 두들기기도 하며, 또 아이들은 줄서기 순서를 두고 한바탕 시끄러움이 일어나고 선생님의 먼지 털이용 대나무 회초리는 빈 바케스를 탕탕 두들기며 질서를 잡는 것인데 그 정겨운 풍경들이 시끌벅적한 소리들과 함께 아직도 가슴 깊은 곳 싸아한 감동으로 살아있다.

그때 우리는 끝없이 재잘거리며 소리를 만들어 갔다. 어디 그뿐인가. 마룻바닥으로 된 복도는 한 시도 조용할 때가 없었다. 쿵탕 쿵탕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자주 나오는 아이들의 공부하는 모습처럼 그때는 공부시간도 주로 수많은 소리들로 채워지곤 했다. 소리 내어 책 읽는 소리, 동요 부르는 소리, 구구단 외우는 소리, 등 온통 소리 속에서 모든 학교생활이 잠긴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그때 그 시절의 소리, 소리들을 생각해 본다. 그 수많은 시끌벅적한 소리들 끝에는 말할 수 없이 순수하고 고운 아이들의 꿈이 달려있음을 알겠다. 때 묻지 않은 시골 아이들의 고운 마음씨와 맑은 눈빛들에는 깨끗한 희망이 붙어있었음을 알겠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가. 소리 내어 책 읽는 아이도, 골목에서 동요를 부르는 아이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게임기기 앞에서 혹은 컴퓨터 앞에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의 반들거리는 눈과 굳게 닫힌 입만 있을 뿐 어떤 소리도 내질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온 우리는 또 다른 소리들 속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학교에서 받아온 숙제도 거의 소리 내어 책 읽어오기, 구구단 외워오기, 혹은 동요 익히기 등으로 끊임없이 소리를 달고 다녔다.

어링불에 노을이 퍼지면 후리막엔 멸치 데치는 물이 끓고 어허야 어허야 후리꾼들의 그물 당기는 노랫소리가 명사십리 백사장에 흘렀는데 바닷가의 모닥불마져 꺼져가면 정겨운 고향마을에는 각종 소리들이 잦아들며 밤이 깊어갔다.

밤새워 머리맡으로 밀려오는 물결 치는 소리를 걷어내며 개 짖는 소리, 뉘 집 장닭 우는소리에 눈을 뜨는 고향마을의 하루는 소리 소리를 물고 열리고 소리를 물고 닫히는 것이었다. 그 소리들 끝에는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달려있었다.

참 많은 시간들이 휘익휘익 지났다. 내 유년시절을 온통 끌고 다닌 그 수많았던 소리 소리들이 아직도 내 눈 속에, 귀속에, 가슴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 소리들이 요즘도 종종 환청처럼 들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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