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 지 영일고 2
25일 토요일 아침, 두 번째 봉사활동을 가는 2학년 반들이 모두 입지관 앞에 모여 앉았다.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듣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자랑스러운 영일고등학교의 이름이 새겨진 봉사 유니폼을 입고 씩씩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한 소대의 정예부대를 보는 것 같아 왠지 웃기면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번에 우리 반은 정애원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이번이 정애원에 세 번째로 가는 것이라서 그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드디어 정애원이 위치한 산 아래 논길로 접어들었다.

늘 그랬듯이 논길이 너무 좁아서 불안했다. 금방이라도 버스가 논으로 빠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저 앞 쪽의 길목에 차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논일을 하다 점심을 드시며 쉬고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셨다. 버스가 지나가기 위해선 점심상을 치우고 모두가 비켜서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할아버지 한 분께서 버스 쪽을 향해 욕설을 내뱉으며 화를 내셨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당황하시며 얼른 차에서 내리셨고, 할아버지께선 마치 담임선생님을 한 대 칠 기세로 몹시 역정을 내셨다. 담임선생님께서 진땀을 흘리며 할아버지께 연신 사과를 드리고 할머니께서도 할아버지를 말리셨지만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버스기사 아저씨께서도 차에서 내리셨다. 그렇게 한참동안 실랑이하다 결국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길을 비켜주셨다.

버스기사 아저씨 말씀이 근처 논 주인들은 논 근처에 정애원이 세워지고, 가뜩이나 좁은 길에 봉사다 뭐다 해서 차가 많이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 하신단다. 그래서 정애원 봉사 초반에 근처 논 주인들이 아예 고의적으로 길을 막기도 했을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정애원에 도착했다. 맑은 공기에 가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날씨도 쨍쨍하여 봉사하기에 기분 좋은 날씨였다. 우리는 건물 앞에 쭉 줄을 서서 정애원 봉사자 분께 인사를 드리고 각자 봉사구역을 배치 받았다. 나는 2층에 배치되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많은 할머니 분들께서 계셨다. 먼저 인사를 드리고 네 사람씩 방 하나를 맡았다. 우선 깨끗이 청소를 하기 위해 걸레를 빨고 방을 닦으려는데 매일 청소를 해서 그런지 먼지도 별로 없고 내 방보다 훨씬 깨끗했다. 그래도 일단은 꼼꼼히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고 있는데 할머니들께서 우리들을 보고 미안해하시며 그냥 대충해라고 말씀하셨다. 또 우리들에게 밥은 먹었냐며 힘들진 않느냐며 계속 걱정을 해주셨다.

가슴이 정말 따뜻해졌다. 봉사를 하러 온 것이지만 내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의 말씀에 힘을 얻고 더욱더 열심히 봉사를 하기 위해 애썼다. 방바닥을 다 닦고 다시 걸레를 빨아 넌 후, 이번에는 이불을 털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온 방의 이불을 다 밖으로 가지고 나와 온 힘을 다해 이불을 털었다. 이불에서 날리는 먼지들이 햇빛에 비쳐보였다. 정말 안 털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먼지가 많았다. 빨랫줄이 있다면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리고도 싶었지만 그냥 잠시 동안이나마 햇볕을 쬐여주는 데에 만족해야만했다.

드디어 다 턴 이불을 들고 다시 방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어느 방에 어느 이불이 있었는지가 잘 생각이 안 났다. 들고 나갈 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간 탓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정확히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자원 봉사자 선생님께 여쭤보아 겨우 이불을 원래 자리에 개어놓을 수 있었다. 봉사란 이런 사소한 일에도 섬세함과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고 내 자신에 대해 반성했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할머니들께서는 식사를 하러 가시고 우리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러 밖으로 나갔다. 시원해 보이는 정자에는 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그 옆으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있었다. 어젯밤 내린 비를 머금은 것 같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정말 예쁜 풍경이었다. 여름에 클럽활동 부서에서 정애원에 캠프를 온다고 하던데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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