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차갑고 공기는 깨질 듯 투명하다. 우듬지 끝에서 쇠잔한 촛불처럼 마른 잎사귀가 흔들린다. 나는 지금 창문으로 서울의 쓸쓸한 겨울 오후를 바라보고 있다. 방 안에는 클라라 주미 강이 연주한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의 명상곡’이 흐르고, 오른손에는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원두를 갈아서 내린 커피가 들려 있다. 음악도, 커피도, 책상 위에서 빛과 향기로 타는 향초도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걸 다 잃어버린 기분에 잠겨 있다. 아라파호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불렀는데, 어째서
이제는 지나온 길들을 추억할 때다. 지난봄부터 시작한 경북 바닷길로의 긴 여행은 겨울비와 함께 끝났다. 그러나 여행은, 단 한 번 물리적 체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상이라는 마음의 발걸음을 통해 언제든 재방문과 열람이 가능한 무한재생의 세계다. 나는 겨울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봄으로 지나온 길들을 되돌아가며 그때는 미처 눈길을 주지 못했던 풍경과 사람들을 향해 다정하게 인사하고자 한다. 울진 월송정서 소음 피하다 찾은 카페기와지붕에 모던한 통유리가 매력적포항 ‘커피명가’ 야외테리스에 앉아영일만 야경 바라보던
나는 봄에 떠났다가 겨울이 되기 전에 돌아오고 싶었다. 봄과 여름 동안 경북 바닷길 537km를 부지런히 걸었다. 물길에 잠겨 걷고, 바람길에 두 발이 붕 떠 날면서, 수평선에 불을 지르는 석양과 푸르스름한 별들의 자맥질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다시 울진에서 영덕, 포항을 통과해 경주로 들어서려는 순간, 뺨에 닿는 공기가 얼음을 흉내 내고 있음을 알았다. 차가운 대기 속에서 나는 계절이 바뀌듯 나도 어딘지 달라졌음을, 소리 없지만 분명한 변화가 내 안에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아직 모르는 채,
구룡포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기분 좋은 긴장 상태가 된다. 흔히 ‘설렘’이라고 말하는 감정의 고조를 느끼기 때문이다. 겨울과 봄 사이, 늦겨울이라고 부르기엔 따뜻하고 초봄이라고 부르기엔 추운 그 짧은 한 철을 나는 ‘겨우봄’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겨우봄 구룡포는 푸른 파도와 흰 담벼락 사이로 언뜻 붉은 입술을 비추는 동백꽃의 숨바꼭질이 명랑하다. 그러다 술래인 햇살이 세게 달려들면, 동백 무리는 일제히 꽃잎을 크게 벌리고 깔깔 웃는다. 그때 비로소 골목마다 봄빛 수다가 수런거리기 시작한다.가을과 겨울 사이를 ‘가울’ 혹은 ‘겨을’이
다시 영덕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얼마 전 태풍 ‘미탁’으로 경북 동해안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고래불로 가는 길, 가을 하늘은 언제 그토록 흉포했냐는 듯 눈이 부시도록 맑았다. 햇살 속에서 소나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초록빛을 빛내고 있었다. 그러나 바다는 아직 태풍의 날카로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는 방파제에 부딪쳐 낱낱이 부서지고, 여기저기 심하게 할퀴어진 해변은 말이 없었다. 곳곳에 모래와 자갈, 쓰레기 등이 한 데 쌓여 더미를 이루고, 찢어진 천막과 간판, 쓰러진 나무와 기둥들이 바
올해 여름 더위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예년 같은 폭염이 찾아오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세상이 하도 소란스러운 탓에 장마보다 권태롭고 뙤약볕보다 고통스런 계절이었다. 연달아 북상하는 가을 태풍도 세상의 온갖 소음과 낯 뜨거운 풍경들을 다 쓸어버리진 못했다. 자꾸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이상, ‘날개’)에서부터 불어오는 열풍 때문이었다. 생활과 사람과 뉴스로부터 내가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 아직 여름의 잔열이 남아 있는 서울을 벗어
어제 천국에 다녀온 덕분에 잠을 잘 잤다. 물론 저세상이 아니라 ‘울릉천국’ 이야기다. 고백하건대, 서울에서 나는 매일 밤 불면으로 괴롭다. 무슨 죄가 그리 많은지 잘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라 도무지 잠들 수가 없다. 불면으로 죗값을 치른다 생각해도 억울하다.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도 잠은 잘 자지 않는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양을 세기 시작하면 잠은 저 멀리 달아난다. 그런데 지난밤에는 어떤 상념도, 후회도, 한스러움도, 그리움도, 미안함도 없이 스르르, 푸른 잠결에 스며들었다. 맑은 풍경이 마음을 깨끗하게 한 모양이다. 나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게 있네.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 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전설적 포크 가수 이장희, 울릉도에 터잡고현포리 산기슭 동산 가꿔 ‘울릉천국’이라 불러울릉도 개척 전 토착민들 살던 투막집들은이젠 중요한 문화재로 자리잡아 관광객 끌어세계 최고 호텔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고가의 숙박료 아깝지 않은 환상적 시설 자랑별도 달도 다 따다 주겠다는 약속, 그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다짐, 터질
파랑이 다가설수록 빨강은 수줍게 물러난다. 울릉 바다의 해질녘은 꼭 젊은 남녀의 사랑싸움 같다. 도무지 잡히지 않을 것 같던 석양의 옷자락이 파도가 뻗은 손에 붙들리는 순간, 바다와 하늘이 포옹한다. 파랑으로 빨강이 스며들 때 수평선은 보랏빛 이불을 덮고, 빨강으로 파랑이 달려들 때 낮별들은 분홍색 꽃잠이 된다. 그 황홀한 로맨스의 시간에 나는 홀로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었다.낮에 이 길을 걸을 때, 저녁 바다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일 자리를 미리 점찍어뒀다. 해안산책로 초입에 있는 포장마차 ‘용궁’에 앉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鬱陵島)로 갈거나/ (….)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風浪)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유치환의 시 ‘울릉도’다. 시인은 동쪽 먼 바다의 한 점 섬 울릉도를 애타게 불렀는데, 지난 여름 내 그리움도 청마 못지않았다. 섬이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동안 나 역시 섬으로만 향하는 마음에 가슴이 일렁였다. 하지만 섬이 뭍으로 밀려올 수 없듯 나도 섬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두 번의 태풍이 뱃길을 막
여행을 갈 때면 먼저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놓는 편이다. 계획을 세울 때부터 여행을 벌써 시작하는 아름다운 ‘들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진작 그곳에 가 내게 손짓한다. 궁금한 곳의 날씨를 검색해보는 순간, 이미 나는 여행지로 몇 걸음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지난 계절 경북 바닷길 여행은 정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다. 잠잘 곳도, 밥 먹을 곳도 정하지 않고 간 여행이었다. 구경거리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금방 찾아갈 수 있고, 잠은 아무데서나 자면 그만이다. 문제는 식도락이었다. ‘맛집’을 검색하면 되지 않
할리우드 영화에는 수영장 딸린 비버리힐즈의 대저택이 종종 등장한다. 어릴 적에 그런 영화들을 보면 몹시도 부러웠다. ‘수영장 딸린 집’은 부의 상징인 동시에 여유롭고 낭만적인 삶을 의미했다. 그래서 이사 가자고 떼를 썼다. 그때마다 남루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아버지 손에 붙들려 간 동네 ‘귀빈탕’ 냉탕에서 물장구치다가 등짝을 얻어맞거나 엄마와 함께 과천 ‘복돌이동산’ 수영장에 가는 게 고작이었다. 또래 아이들과 함께 물 반, 사람 반의 풀장에 들어가 있으면 어떤 아이들은 물속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경북
경북의 푸른 바닷길에는 낭만과 사랑, 멋과 맛이 파도친다. 봄에는 벚꽃이 봄비처럼 내리는 해안도로를 따라 도다리들이 올라오고, 여름엔 아까시 향기를 희붐한 불빛으로 뭉쳐 던지는 등대 아래 농어들이 헤엄친다. 가을엔 단풍이 밤물결마저 오색으로 물들인 근해에 볼락과 꼴뚜기들이 뛰어놀고, 겨울엔 흰 눈이 스웨터를 짜 입힌 항구마다 대게 찌는 김이 훗훗하게 피어오른다. 바다 풍경 전시하는 화랑시간이 느리게 가는 행성보들레르가 영감 포획하고이상이 문인들과 토론하는그 카페에 앉아 더 푸른 낭만을가슴 트이는 해방감을 느낀다바다를 찾는 사람들은
지난밤은 그야말로 황홀한 축제였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이 꿈결까지 금빛으로 물들인 덕분에 단잠을 잤다. 꿈속에서 나는 신라 왕자가 되어 산해진미와 가무를 즐겼다. 잠에서 깨니 머리엔 까치집이 얹어져 있고, 늘어난 셔츠 사이로 선풍기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꿈에서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허기가 졌다. 아침 메뉴를 고민하며 고요한 황리단길을 걸었다. 밤늦도록 젊은 여행자들이 맥주잔을 부딪치던 한옥 카페들은 하얀 햇살을 이불로 덮은 채 늦잠에 빠져 있었다. 황오동에 이르렀을 때,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잡아당겼다. 경주 특산품인 황
새는 보이지 않는데 새 지저귀는 소리가 났다. 졸음에 겨운 눈을 부비고 하늘을 보니 투명한 햇살만 기왓장에 부딪치고 있었다. 짹짹거리는 저 소리는 새소리일까 햇살이 부서지는 소리일까. 경주의 아침은 경쾌한 노래로 왔다. 고택에서는 놋그릇 부딪치는 소리, 밥 짓는 냄새, 빗자루로 마당 쓰는 소리, 장독대 항아리가 튕겨내는 치자꽃과 댓잎의 향기마저 모두 음악이었다. ‘감성 사진’ 찍기 좋은 황리단길에는젊은 남녀들의 발길로 생기 넘쳐나한옥서 커피 마시며 이색 여유 즐긴다천년의 낭만 녹슬지 않은 동궁과 월지황홀한 빛의 누각 보면 감탄 절로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우현 고유섭의 수필 제목이다. 모든 것은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됐다. 지난밤의 불면도, 이른 아침부터 종일 나를 달뜨게 한 황홀감도, 대뜸 두 눈에 차오르던 파도도 다 저 한 문장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양양, 강릉, 삼척, 울진이 다 보암 직한 곳일 것이로되, 이 사람이 사모하는 곳은 세상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무명(無名)인 듯한 장기(長) 남쪽, 지금 행정구역으로 치자면 경주군 양북면 용당리에 속하는 땅에서 보이는 바다, 이곳이 잊히지 못하는 바다이다. (….) 이곳은 경주 석굴암으로부터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일어났다. 덩달아 일찍 깬 주인 할머니께 염치도 없이 식혜 한 사발 얻어 마시고 민박집을 나섰다. 아직 보랏빛 이불을 덮었지만, 고기잡이배들이 출항을 준비하며 수런거리는 통에 삼정리 항구는 잠을 뒤척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어구를 덮어놓은 천막이 펄럭거리고, 배고픈 고양이들이 이따금 울어댔다. 김춘수의 ‘처용단장’을 빌리자면 “바다가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여행자와 어부가 부지런한 것은 모두 태양을 사랑해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태양을 사랑해서 이 새벽엔 푹푹 하품이 나는구나. 나는 해돋이를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을 기점으로 섬의 북쪽을 산북, 남쪽을 산남이라 부른다. 나는 산북의 활기참과 산남의 호젓함을 모두 사랑한다. 제주도에 일주일쯤 가게 되면 사흘은 제주시에서, 나머지 사흘은 서귀포시에서 보낸다. 포항에 올 때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처럼 북쪽과 남쪽이 서로 다른 두 매력을 뽐내는 여행지가 바로 포항이다. 포항은 북구와 남구로 나뉜다. 북구에 죽도시장과 영일대해수욕장이 있다면 남구엔 구룡포와 호미곶이 있다. 어제는 북구에서 보냈으니 오늘은 남구로 가야겠다. 포항에 온 여행객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초록 잎사귀 부채
‘포항’이라고 발음하면 군대에서 덮고 자던 모‘포’가 떠오르고, 어린 시절 마당 장독대에서 햇살과 잠자리와 배추흰나비를 불러 모으던 ‘항’아리가 생각나 이내 따뜻해진다. 포항은 내게 따스한 항구 도시, 매년 겨울마다 몸과 마음을 쉬러 즐겨 찾는 여행지다. 주로 겨울 바다의 진객인 볼락을 만나기 위해서인데, 12월부터 2월까지는 왕복 750㎞의 장거리 운전도 마다않고 거의 매주 드나들 정도다.겨울 포항에 오면 늘 정해진 코스대로 움직인다. 새벽에 도착해 방파제에서 낚시하다 동해가 쏘아올린 황홀한 해돋이를 감상한다. 볼락을 꽤 잡았으니
파도가 새벽잠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꿈속 세상이 아늑했다. 요란한 스마트폰 알람시계 대신 바다를 가르는 뱃고동이 압력밥솥 소리를 내며 귓가를 두드렸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서 흰쌀밥 냄새가 부풀어 오를 때, 나는 빛과 소리와 냄새로 오는 영덕의 아침을 끌어안으려 기지개를 켰다. 일곱가지 보물 가득한 칠보산 정기 품은 영해는 ‘인재의 산실’옥계계곡 차고 맑은 물은 오십천으로, 다시 강구 바다로 흘러…옛것과 새것, 한식과 양식, 바다와 내륙이 함께하는 교통오지는다채로운 매력 뽐내는 ‘동해안 관광 중심지’로 새로운 변신 중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