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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밤, 나는 밤나무 숲으로 간다 깊어지는 밤, 나는 밤나무 숲 속으로 나를 보낸다 속절없이 보낸 낮의 행방을 찾으러 함부로 처형시킨 말들이 밤송이처럼 흩어져 있는 숲 속 다람쥐가 되어 껍질만 남은 말을 줍는다 말의 가시에 무수히 손 찔리며 속없는 말을 깐다 깊어지는 밤 시인은 가만히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낮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눈 수많은 말들을 곰곰이 되새겨보는 것이다. 속절없이 보낸 낮의 행방을 찾아 함부로 함부로 내뱉은 말들이 밤송이처럼 얼마나 남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했는지, 껍질만 남은 헛헛하고 부질없는 말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6.10.31
게재일 201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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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는 동안 눈치 채지 못했다아내를 안아보면 남모를 공간이 출렁속살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 난다이를테면내 가슴을 찌르던 장밋빛이라던가햇살 꽉 찬 빛구슬이라던가먼발치에서도 환한 꽃사태라던가몸을 빠져나간바람은 이제 무엇으로 남는가무한대천 세상에서 인연 닿아살 맞대고 살다 갈 우리헤아려 보면 무엇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는데사람살이가 저 혼자 빛나는 것은 아니어서서로 몸 부비며 사는 것이어서주름진 몸 거기 뼈 마디마디에웃음과 회한과 시끄러운 강물소리 뒤범벅이다헛헛해진 생 사이로 빠져나가는바람, 바람, 바람잡아라!청춘이 시절 천연(天緣)으로 만나 살가운 세월을 함께한 아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이제는 주름진 몸에 새겨진 웃음과 회한과 시끄러운 강물소리를 꺼내보는 시인을 본다. 아내와의 한 생을 얘기하면서 시인은 더
시
등록일 2016.10.30
게재일 2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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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마른 할머니 한 분 목욕탕에 드셨다 파란과 만장이 촘촘하게 내장된 다 낡은 압축파일 같은 주름의 집 한 채 이력이나 내력의 코드로는 읽을 수 없는 한세상을 품고 안고 길러내고 남은 몸이 접힌 채 퉁퉁 붇는다 탕 안이, 끈적하다 주름집 한 채는 파란만장 했던 할머니의 몸을 비유하고 있다. 낡은 압축파일에는 그녀의 기막힌 한 생의 기록들이 내장돼 있을 것이다. 한세상을 품고 안고 길러내고 남은 몸에 주름진 그 주름이야말로 거룩한 훈장 같은 것은 아닐까. 세상의 어머니들은 대부분이 주름집 한 채로 쓸쓸히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리라.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10.27
게재일 201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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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의 전라선 상행열차는 칸마다 아직 덜 자란 어린 딸들을 태워놓고 측백나무 울타리가에서 돌아서며 눈물짓던 우리 어머니들의 슬픈 사연을 알아 산모랭이를 돌 때마다 긴 기적소리를 남겼습니다 1960년대 근대화·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회구조 현상들이 큰 변혁의 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대도시에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근로자가 필요하게 되고, 시골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게 되는 이촌(離村)현상이 심각하게 생기게 된다. 시인은 아직 덜 자란 딸아이를 서울로 떠나보내며 눈물짓는 이 땅의 어머니들을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애지중지 키운 딸아이를 싣고 산모랭이 돌아가는 기차를 보며 한없이 울었던 어머니들과 쪽방에서 잠들며 청춘을 바쳐 일한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랑스런 조국이 있는 것이리라.
시
등록일 2016.10.26
게재일 20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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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명절 쇠러 간 아무개네 빈집 지나어둑어둑한 논두렁을 걷는다울퉁불퉁 두렁길 어색한 지여전 헛발 디디는 어린것들 일으켜 세우며 촌구석 시집오는 게 아니라는 마누라 불평바라바람소리로 흘린다철지난 원두막처럼 불빛 없이 웅크린 마을걸리다 못해 들쳐 업은 막내딸년은얼마나 남았냐고 칭얼대는데나는 선뜻 대답을 못한다그래 어디까지 왔는가, 명색이들판의 장남인 나는 대처로 떠돈 십수 년 동안동구까지는 돌아왔는가넌 이담에 연애를 해도 도시 사는 놈하고 해야 한다바람소리로 흘리지 못할 투정이 뒤통수를 긁는다새겨듣지 마라, 네 뿌리가 여기란다여기가 네 뿌리란다 자기가 태어난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를 떠올리며 시인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가만히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비록 명절을 쇠러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시골생활
시
등록일 2016.10.25
게재일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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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땅은 고작 두어 평 평생 측량을 하고 경작을 해도 내가 갖고 갈 땅은 겨우 두어 평 벼이삭 출렁이는 황금벌판 나는 그 속에 선 외로운 허수아비 날아가는 새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모두가 내 것이라고 나의 땅은 고작 두어 평인데 평생을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신 노시인이 무욕의 한생을 살아온 것에 대해 돌아보고 있다. 빈들의 허수아비처럼 살다가 언젠가 하늘이 부를 때 빈손으로 훌훌히 떠나리라는 마음의 다짐도 배어있는 관조의 시다. 하물며 날아가는 새에게도 거짓말을 하며 더 가지려는 세상, 온통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 일렁이는 현실에 대한 비판도 읽을 수 있는 시다.
시
등록일 2016.10.24
게재일 201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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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골에는 마을마다 으레 꼭지라는 이름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마지막, 끝점이 되어 배 꼭다리 떨어져 나가듯 줄줄이 태어나는 딸아이가 끝나라는 서럽고 힘든 여자의 꼭지가 되라는 뜻쯤 된다 바람(願)이 이름이 되고 이름이 결실이 되어 마침내 꼭지로 여무는 것이다 꼭지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지탱한 채 떠나보내기 위해서 속으로 말라가며 이름값에 목을 매는 서러운 자리이다 딸자식 많은 집에는 꼭 꼭지라는 이름을 가진 딸아이가 있다. 시인의 말처럼 줄줄이 태어나는 딸아이가 제발 끝나라고 붙인 이름이다. 참 서럽고 힘든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바람이 이름이 되고 이름이 결실이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꼭지와 비슷한 이름으로 뿌뚜리 라는 이름도 있다. 역시 딸아이 많은 집에서 딸아
시
등록일 2016.10.23
게재일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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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실내 장식만큼 표정들은 우아했지만 부드러운 조명만큼 오가는 대화는 부드러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테이블 사이사이 칼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사이 총도 있었다 언뜻언뜻 철퇴가 보이기도 했다 누가 아군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사십도가 넘는 양주도 무서웠지만 모인 사람들의 지위도 무서웠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 속에 끼여 앉아 희죽희죽 웃고 있는 나였다 입으로는 벌꿀 같은 달콤한 이야기를 하지만 가슴 속에는 상대를 해칠 칼을 품고 있다는 한자성어 중에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이 있다. 현대사회의 한 그늘을 일컫는 적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우아한 실내장식과 마주한 사람들의 우아한 표정,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무서운 속내와 음모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자리에서
시
등록일 2016.10.20
게재일 201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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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기꺼이 돌아가리 바람 한줄기 따라 내게 남은 짧은 시간 둥글게 깨어지며 껴안으리 사방으로 세상은 둥글게 열려 있고 며칠 사이 이토록 너를 가까이 느낀 적은 없다 구름밭과 장미 넝쿨로 뒤엉킨 길 저무는 풀잎 끝에 흰 뼈의 네가 만져진다 나 기꺼이 돌아가리 바람 한줄기 따라 내게 남은 짧은 시간 저무는 이승…, 아. 둥글게 눈부시다! 저무는 풀잎 끝에 맺힌 이슬 몇 방울에서도 인생을 읽어내는 중견시인의 깊은 혜안을 본다. 밤새 풀잎에 맺혀 있다가 아침 햇살에 금방 말라버리고 지워져버리는 이슬 같은 것이 우리네 한 생이 아닌가. 시인은 세상을 둥글다고 말하면서 가파르게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라는 물음을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저 하늘이 준 만큼의 천수를 다하고 기꺼이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시
등록일 2016.10.19
게재일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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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다 적시고 내 마음도 다 적시고 말없이 흐르는 강물도 다 적시고 선하디선한 하늘의 눈마저 다 적시는 저 불길 저물녘 서쪽하늘에서부터 노을이 퍼지면 우리의 마음은 편안해진다. 내 몸과 네 마음을 다 적시고 흐르는 강물과 하늘의 눈을 다 적시는 노을은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매체가 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노을에 붉게 물드는 만상 속에서 눈빛도 가슴속도 붉게 물들이는 인간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과 자연을 자연과 자연을 인간과 인간을 함께 붉게 물들이며 화해케 하는 묘한 힘을 가진 것이 노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10.18
게재일 20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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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가 시작된 남양주 신도시아파트 공터에 구부정한 몸을 벽에 기댄 채 기다림에 지친 피아노 한 대가 서 있다 바람이 드나들 때마다 위태로운 모습, 가만히 들여다보니 다리 하나가 없다 공터는 언제고 불구의 공간이다 입주를 거부당한 저 오래된 몸에서 통증이 피어난다 언젠가는 모두가 겪어야 할 상처의 유물 우리는 버려질 때 또는 잊혀질 때 바람의 음표, 그 건반 위에 있는 대본을 읽는다 윙윙 폐허의 몸을 핥는 바람은 공터를 무대로 재생의 리허설을 준비 중이다 공터는 소외와 유기의 공간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일반적 인식에서 비켜서 있다. 입주하는 새 집에 들여놓기에 힘든 불구의 피아노, 공터에 버려져 쓸모없어 보이는 그 피아노에도 바람의 음표가 흘러나오고, 그 폐허의 몸은
시
등록일 2016.10.17
게재일 201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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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곰팡이 슬어 심지도 못하고 밭둑에다 내버렸는데 버려진 고놈들이 대를 밀어올려 연둣빛 보드란 잎을 펼치고 노랗고 순한 꽃을 보이더니 손가락보다 긴 꼬투리 조롱조롱내 달았다 주전자에 물 올려 차를 끓인다 내다 버린 것들이 돌아와 버린 자의 눈을 맑혀주는 밤 나는 얼마나 더 남루해져야 버린 것들의 맑은 눈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나로 돌아와 결명(決明)에 이를까 버린 것들,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서 밀어내버린 것들이 착하고 고운 생명으로 되살아나 아름다운 무늬와 시간으로 다가옴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다가가 말을 건네고 손을 건네고 있음을 본다. 어쩌면 우리는 채우고 높아지고 더 가지는데 가치를 두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시인은 더 나를 비워내고 낮아지고 보잘 것 없어질 때에 비로소 세상과 우주와 소통하
시
등록일 2016.10.16
게재일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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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끝난 염천 독오른 정구지와 무리가 남송리 북송리 초곡리와 곡강리 촌로의 등을 떼밉니다 재건축한 마트건물 한 귀퉁이 수입 광어와 칠포산 물가자미가 졸고 살찐 바나나와 개구리참외가 혼숙을 즐기는 21세기초 마트와 마켓에 등 떼밀려도 아직은 망둥이와 꼴뚜기 그리고 미꾸라지가 함께 놉니다 포항의 전통 재래시장 중에 제법 어울리는 장이 흥해 장이다. 각종 열매과일이 쏟아져 들어오고 국가간 FTA로 수많은 외래산 농축산물들과 공산품들이 밀려들어오는 현실에서 시인은 정구지와 물가자미 개구리참외 망둥어 꼴뚜기 미꾸라지 같은 우리 토종의 먹거리들을 뜨겁게 호명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6.10.13
게재일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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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빗는다고 빗어도 늘 부스스한 머리 곱슬머리라 그러려니 하며 살았는데 반대로 넘겼더니 가지런하다 어이가 없다 50년을 제 머리카락 성질도 모르면서 무슨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한다고 남의 머릿속만 부스스하게 헤집어놓은 건 아닌지 살며 부스스한 게 어디 머리카락뿐일까만 웃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 다시 가르마를 타봐야겠다 한 쪽 방향으로 가르마를 타 온 것을 어느 날 그 반대 방향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인식과 변화에 대한 깨달음 같은 것을 풀어내고 있다. 오랜 습관으로 길들여져 있는 일상 또는 인식에서 벗어나 또 다른 변화와 변혁을 시도해보면서 얻는 것은 단순한 행동양식의 변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고착된 인식을 바꿔보는 유연한 자세를 우리에게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6.10.12
게재일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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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꽃 피우는 나무란 없다 거역할 수 없는 윤회의 법칙처럼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순환 그래서 저 벚꽃 일생 중 오로지 4월의 미풍에만 황홀하게 전율한다 내 몸 속 수천억 개의 세포는 내 전생의 잎, 잎들 그래서 당신, 그 봄날 같은 입김에 그토록 뜨겁게 반응했던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수 천 억겁의 인연의 끈에 묶여 있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에 바탕을 둔 이 시는 거역할 수 없는 사랑의 순환 혹은 전생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벚꽃도 내 몸도, 당신도, 봄날도 모두 이러한 법칙에 의해 관계나 사랑이 진행되고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믿음에서 이 시는 시작되고 마친다.
시
등록일 2016.10.11
게재일 20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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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나흘 깊은 몸살을 앓다 며칠 참았던 담배를 사러 뒷마당에 쓰러져 있던 자전거를 겨우 일으켜 세운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데 웬 여인이 불쑥 나타나 양조 간장 한 병을 사오란다 깻잎 장아찌를 담가야 한다고 잘 있거라 처녀애들 젖가슴처럼 탱탱한 바퀴에 가뿐한 몸을 싣고 나는 재빠르게 모퉁이를 돌아선다 근데 이미 오래전에 한 사내를 소화시킨 듯한 저 여인은 누구인가 저 여인이 기억하는 혹은 잊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도무지 시가 될 것 같지 않은 평범하고 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한 모습을 시로 얽어낸 시인의 시적 입장은 어디에 집중되고 있을까. 며칠 앓았다가 일어난 시인의 일상은 그야말로 사소한 일들의 연속이다. 시인의 바람기와 외출, 결국은 그러한 욕망마저도 아
시
등록일 2016.10.10
게재일 201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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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은 허물 뒤돌아보지 않고 없는 발과 없는 날개로 사라진 푸른 뱀아 내 화사한 경전아 봄날 갈라진 숲길에 서서 허물뿐인 탈피할 수 없는 내가 너를 읽는다 흔히 뱀은 욕망의 존재로 인식된다. 또아리를 틀고 뭔가를 기다리며 욕망하는 습생이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시인은 이 시에서 다른 면을 읽어내고 있다. 허물을 벗고 어디론가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존재로 인식하면서 세상의 온갖 관계에 얽혀 있는 우리네 존재들에게 던지는 의미가 있다. 소중하게 껴안고 입었던 것들을 훌훌히 벗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뱀의 생태에서 시인은 무욕의 정신을,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정신을 우리에게 건네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10.09
게재일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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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백석공원 아침 산수유나무 열매가 붉다 밤새 울어서 눈두덩이 퉁퉁 부었을 은희 눈도 산수유나무 열매처럼 빨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은희네 상가를 다녀와 빨간 눈으로 넘기는 신문에 전남 담양군 용면 용연리 뒷산 한 무리 백로가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떠나고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 남양면 신왕리 수단이 언덕에도 한가지에 여린 빨간 산수유나무 열매 눈알들이 서천으로 떠나는 나뭇잎을 배웅하고 있을 것이다 한 생을 마감하며 떠나는 영혼을 배웅하는 무리의 마음도 눈빛도 빨간 색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산수유 열매처럼 빨간색으로 시를 칠하고 있음을 본다. 서쪽으로 떠나는 망자의 색깔은 희디흰 색은 아닐까. 아무것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한 한 생명으로 왔던 흰색의 영혼 그대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망자의 마지막을
시
등록일 2016.10.06
게재일 201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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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리 밖에서 느린 걸음으로 오는 어둠 보인다 나는 어둠 속에 웅크린다 재두루미 한 쌍 사구를 차고 올라 서녘 하늘로 사라지고 투명하고 붉은 어둠 속으로 늑대들 떼 지어 움직인다 늑대들은 사구를 가로질러 보르크스 가시나무 숲으로 몸 낮춘다 메마른 사루를 소리없이 미끄러지던 달빛 멈추어 서고 보르크스 가시나무 덤불 속으로 타오르는 늑대들 붉은 눈빛 나는 늑대의 붉은 눈빛으로 잿빛 하늘과 맞닿아 있는 침묵의 지평선을 응시한다 이글거리는 눈빛, 늑대처럼 두려움 없이 건너고 싶었던 사막이 내게 있었던 거다 재두루미 날아간 텅 빈 모래 언덕에 가득찬 어둠과 그 어둠 속 가시나무 넝쿨 속에서 웅크리며 어둠을 응시하는 늑대의 붉은 눈빛은 무엇인가. 시인은 인간의 내면 속에 웅크리고 있는 무한한 욕망을 늑대의 붉은
시
등록일 2016.10.05
게재일 201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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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세상 어딘가엔 양말 속에 촉 나간 알전구를 받쳐 넣고 수명이 다한 전구빛 살려내듯 실을 풀어내는 여자가 있지 기운 양말을 신고 구석구석 방 소제를 하시는 어머니가 있지 갈라진 발뒤꿈치에 찰칵, 들어온 불이 꺼질 줄 모르는 화장실 살갗 터진 나무도 꽃등을 켜들고 서선 올 나간 머리카락 흐린 하늘을 민다 이 시에서 나무는 어머니다. 한 생을 근검과 청빈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어머니인 것이다. 시인은 나무의 생태에서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가 나무가 되어 세상을 밝히며 밀고 나간다는 시인의 말에서 그런 헌신과 사랑의 어머니를 본다. 푸른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를 보며 어머니를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10.04
게재일 20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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