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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밥을 먹었는가 어제는 더운 밥 먹고 오늘은 어이 찬밥 신세인가 누가 밥을 못 지어 눈물밥을 먹었는가 무엇으로 밥을 모았으며 남긴 밥은 어디 두었는가 지은 밥 뉘에게 앗겼는가 아, 거리엔 긴 그림자 주려 죽은 주검 위에 배 터진 주검 널렸나니 앗지도 앗기지도 말고 가슴 활활 태워 밥을 지어 이 시는 밥에 대한 얘기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 불구의 현상에 대해 꼬집고 있는 작품이다. 부당하게 돈을 벌고, 치부하고, 남의 재화를 강탈하는 자본 사회의 부조리를 밥을 통해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부조화와 불구의 현대사회를 향한 매서운 회초리를 대는 시정신이 날카롭기 짝이 없다.
시
등록일 2017.01.23
게재일 201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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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잃은 수성팬 한 자루 책상 위에 홀로 누워 피가 마르고 있네 늘 곁에 있었기에 느끼지 못했던 당신의 부재(不在) 살면서 못다 한 말 전부 하고 가려는 듯 수많은 사연 허공에 날려보내고 있네 죽음으로 이별한 사람의 부재는 그 자리가 크고 깊게 비어 있다. 시인은 뚜껑 잃은 수성팬 한 자루가 마르고 있음을 모티브로 해서 망자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생전에 못다한 말을 허공에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늘 가까이 있어서 못다한 사랑을 가슴 치며 바람 속에 얹어놓고 있음을 본다.
시
등록일 2017.01.22
게재일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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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요술쟁이 없는 마술을 낳으셨네 우리 어머니 무엇을 낳으셨나? 껍데기도 없이 텅 비었네 우리 어머니 어떻게 아들을 부르시나? 당신의 아들을 찾을 수 없네 아들 없는 우리 어머니 어디에 계시나? 이 시는 어머니와 나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념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어머니는 한 생명의 원천이고 출발점이고 뿌리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어머니가 낳은 것은 내가 아니라 껍데기도 없이 텅 비었네 라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나지만 나의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시인의 다른 시에서도 발견되는 무아(無我)의 시정신이 오롯이 나타난 작품이다. 소유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시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시
등록일 2017.01.19
게재일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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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움직일 때마다 분비물을 흘리는 것은, 배춧잎에 붙어있는 솜털이 내겐 덤불이기 때문이다. 2 사내가 집을 나선다 저 사내는 별을 두려워하는 달팽이다 다행히 오늘은 햇살이 비춰지지 않는다 아니 이젠 비춰진다고 해도 무관할 것이다 사내에겐 꽃상추밭 같은 공원이 생겼으니까, 실직한 저 사내의 딱딱한 집 속에는 물렁물렁한 아내가 산다 건들기만 하면 젖무덤이 금세 봉긋해지는 그녀는 하루 종일 통조림용 마늘을 깐다 그런 이유로 사내의 눈이 매웠을까 사내가 눈을 훔치며 나간 골목이 축축하다 이 시에서 달팽이는 실직한 사내를 일컫는다. 달팽이가 지나간 길이 축축한 것은 일자리를 잃은 연유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종일 통조림용 마늘을 까는 아내가 있고. 마늘 냄새에 눈이 매워 눈물을 흘리는 사내가 있는 어둡고
시
등록일 2017.01.18
게재일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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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성듬성 핀 개오동, 꽃그늘마저 배 고프던 신천 굽이굽이 육이오정착촌, 일본군 80연대, 캠프 헨리에 이른 엇박자의 역사 맥 짚어온 봉덕시장 가보시라 맨땅의 거기 언 병아리 같은 자식 여럿 뜨겁게 키 워낸 상주 전통 손 유과집 어무이 사신다 돌아보면 남루하게 펄럭이는 청춘의 편린만 장터에 떠돌 뿐 정직한 손맛조차 길 건너 대형마트 그 도도한 구색 틈에 진열될 일 만무한데 시 속에 불행했던 우리의 역사가 스려 있다. 봉덕시장 유과집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굴절의 시대상을 그대로 안고 있는 가게다. 어려운 시대를 건너며 언 병아리 같은 자식 여럿 키워낸 동력은 유과집 뿐 아니라 이 땅 구석구석에 산재해 있다. 길 건너 대형마트 자본의 횡포에 떠밀리면서도 당당하게 자기를 지키며 힘겨운 세상을 건너가는
시
등록일 2017.01.17
게재일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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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앞에 속도 하나가 구겨져 있다 부딪혀 멈춰버린 순간에도 바퀴를 다해 달리며 온몸으로 트럭에 붙은 차체를 밀고 있다 찌그러진 속도를 주름으로 밀며 달리고 있다 찢어지고 뭉개진 철판을 밀며 모래알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유리창을 밀며 튕겨 나가는 타이어를 밀며 앞으로 앞으로만 달리고 있다 겹겹이 우르러진 철판을 더 우그러뜨리며 달리고 있다 아직 다 달리지 못한 속도가 쪼그라든 차체를 더 납작하게 압축시키며 달리고 있다 다 짓이겨졌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는 속도가 거의 없어진 차의 형체를 마저 지우며 달리고 있다 철판 덩어리만 남았는데도 차체가 오그라들며 쥐어짠 검붉은 즙이 뚝뚝 바닥에 떨어져 흥건하게 흐르는데도 속도는 아직 제가 멈췄는지도 모르고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 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현장을 목도한 시인
시
등록일 2017.01.16
게재일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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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의 틈 모두 막아내다가 생고무 같던 어머니의 막이 너덜해졌다. 모로 누운 저 축축한 잠이 가파르고, 아무도 막아주지 못한 생애의 저음부, 수고는 꼭 따뜻하게 되돌아오는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 숨어 기저귀 차다가 화들짝 놀란다나, 저 물컹한 자리 닿지 않았음 좋겠다 짓무른 아랫도리처럼 눈가가 불그레한 어머니, 혼자 오래 젖는다 한 생을 그저 정성과 사랑으로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고 자신의 생이 별로 없었던 늙으신 어머니 생의 저음부를 느끼며 시인은 그 거룩하고 숭엄한 시간들을 느끼고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의 삶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숨어서 기저귀를 차다가 화들짝 놀라시는 어머니, 본능적인 여성성은 눈가를 불그레하게 물들이게 하며 가만히 미소짓게 하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1.15
게재일 201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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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넘긴 달력을 떼자 파스 붙인 흔적 같다 네모반듯하니, 방금 대패질한 송판냄새처럼 깨끗하다 새까만 날짜들이 딱정벌레처럼 기어나가 땅거미처럼 먹물처럼 번진 것인디 사방 벽이 거짓말같이 더럽다 그러니 아쉽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달이 헐어놓기만 하면 금세 쌀 떨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한해가 갔다 공백만 뚜렷하다 이 하얗게 바닥난 데가 결국 무슨 문이거나 뚜껑일까 여길 열고 나가? 쾅, 닫고 드러눕는 거? 올해도 역시 한국투자증권 새 달력을 걸어 쓰윽 덮어버리는 것이다 벽에 붙어있는 해 넘긴 달력을 떼어내며 시인은 섬뜩하게 다가오는 세월을 느낀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휙휙 지나가고 후다닥 한해가 가버린 흔적들에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를 데리고 가는 시간이라는 마차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시
등록일 2017.01.12
게재일 201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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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쓸 만한 몇 송이 눈발들조차 조기 퇴직 남아도는 시간의 시장기 더듬어 희끗희끗 줄을 선다 펄펄 김이 나는 수제비 한 그릇씩 받아들고 무언가 생각난 듯 돌아보는 눈송이의 눈에 마른 등나무 넝쿨 속 빛깔 꼭 같은 참새 떼만 후두둑 날아오른다 드림교회 종소리만 펄펄 내려와 앉는다 시인이 목도한 이런 풍경은 이 땅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아직 쓸만한 몇 송이 눈은 조기퇴직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아직은 일할 만 한데도 일자리를 잃고 배회하다가 무료급식소에 줄을 서서 한 끼를 떼우는 안타까운 사회 현실을 시인은 연민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남의 얘기만은 아닌 현실이다.
시
등록일 2017.01.11
게재일 20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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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로 유명한 법성포 바닷가에 유영하는 한 쌍의 조기떼처럼 걸어오는 어린 연인들을 바라보며 시인은 새삼 삶이 가슴에 사무침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우리네 한 생이 비릿하고도 반짝이던 비늘의 시간과도 같은 한 순간들을 지나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로 유영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펼쳐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는게 다 그런거라고, 우리도 다 그리 거친 세상이라는 바다를 유영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이 젖어듦을 느끼는 아침이다. 법성포가 가까워지자, 저만치서, 한 쌍의 물고기를 닮아 있던 흔들림이 유영처럼 다가온다. 멀리서 보일 때는 어쩜 조기 머리 같기도 하던 그림자가 자그맣게 글썽였는데, 지나칠 때 보니까 그게 아니다. 돌아서 손잡고 걸어왔는지, 소녀의 볼우물 언저리엔 엷은 분홍물도 배어
시
등록일 2017.01.10
게재일 201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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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에 널브러진 돌고래를 잡고 있다. 시커먼 불감증을 난도질하고 있다 잔기침에 시달리다 스물스물 등이 가려웠다가 빈혈성 어지름을 앓다가 우울증 자폐증 소갈증에 시달리다가 바람난 코스모스 여윈 발목이다가 갑상선호르몬이 항진해 조급증에 시달리는 나목이다가 문득 토담집 툇마루에 앉아 봉선화 꽃물들이던 정겨운 햇살이. 그 햇살이 퇴색한 흑백사진을 닦고 있다, 낡은 망막을 닦고 있다 늦가을 무서리에 묻어온 환청을 닦고 있다. 꽃다운 청춘의 시간이 있었다. 서랍 속이나 오래된 사진첩 속에는 곱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길거리의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나 칙칙한 빛깔의 플라타너스 잎들이 지듯이 그 고왔던 시간들은 흘러가버리고 불감증 잔기침 빈혈성 어지럼증 우울증 자폐증 소갈증 같은 불청객이 스며들어
시
등록일 2017.01.09
게재일 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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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기준이 사라진 오직 미추만이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에 성자였던, 생을 긍정하는 가난은 선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산개되어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가난은 다만 무력할 뿐이어서 크게 울지도 못한다 가난이 힘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뭉쳐서 무기가 되고 전망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떼지어 살고 있어서 쉽게 눈에 띄던 시절 가난은 단연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가난은 저마다 무력한 개인이 되어 모래알로 흩어졌다 지하로 잠적해버렸다 눈에 띄지 않는 가난에 대하여 누가 관심과 애정을 보일 것인가 생활의 중증장애자, 구차한 천덕꾸러기 되어 몰매 맞는 가련한 왕따 가난은 이제 선하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가난이 힘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궁핍이라는 것이 꿋꿋이 견디게 해주고 다시 일어서는 의지의 원동력이 된 시절이 있었다.
시
등록일 2017.01.08
게재일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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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이었습니다 갈대 셋이 몸 엮어 서 있었습니다 둘은 넘어지기 쉬우니 셋이 기둥 버티고 서 있는 거 같았습니다 누가 그것을 눈물의 집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눈물로 벽돌 쌓은 집이 아니라고 고개 갸우뚱 하겠습니까 마치 솥(鼎)자처럼 갈대 엮인 그곳에 조그만 새의 집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뻘흙을 물고 날라 갈대잎 촘촘히 침 섞어놓은 작은 생의 집이 지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간장 종지만한 작은 흙집에 쬐그만 아기 손톱만치 쬐그만 새의 알이 놓여있는 것이었습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전신으로 서로가 서로를 버팅기면서 바람 속에서 서로가 몸 부대껴 버텨내면서 안긴힘으로 품고 있는 정말 간장 종지 만한 새집 속의 새알 한 알 그것을 어찌 빛나는 눈물방울이라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솥(鼎)자 속에 담겨진 빛나는 눈이라고
시
등록일 2017.01.05
게재일 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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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잎 떨구고 알몸으로 우뚝 선 나무들 보며 당신 생각합니다 맨몸으로 서니 저리 꿋꿋합니다 서리 내려도 춥다 하지 않고 눈덩이 짓눌러도 울음 한번 없으니 사백 년 넘게 동구 밖 지키고 선 당신은 저 당산나무입니다 언젠가 당신은 내가 뭘 한 게 있냐 말하셨지요 더러는 가슴 찍찍 쪼개 하얗게 불살라버리고 싶을 때 왜 없겠냐고도 하셨지요 오늘도 바람 앞에 버텨 선 당신 그렇게 꾹꾹 뭉쳐 옹이를 키우고 봄이 오면 새 잎 툭 틔워낼 당신 허전한 내 곳간 속에서 늘 옷을 벗고 옷을 입는 당신, 당신 동구 밖에서 마을을 지키고 선 당산나무는 어른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겨울의 북풍한설을 고스란히 맞으며 온갖 시련을 견디고 견디는 그 나무는 어른 중에도 어른이다. 마을의 모든 역사를 품고 묵묵히 세월을 건너가는 그 나
시
등록일 2017.01.04
게재일 2017-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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홑이불 같은 구름 헤치고 정월 대보름달 둥실 떠올랐다 연을 시집보내는 애들도 없고 지신(地神) 밟고 논둑 고사 지내는 어른도 없다 쥐불놀이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부럼을 깨든 단단한 이빨들은 어디서 쓰디쓴 삶을 깨물고 있는지 귀 밝은 술 나 혼자 마신다 갈 테면 다 가고 뺏을 테면 다 뺏어 봐라 그런다고 내가 물러설 줄 아느냐 혼자라도 오곡밥 아홉 그릇 먹고 나무 아홉 짐 할 테다 하늘은 맑은데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보름달 물먹었다 올해도 물풍년은 틀림없겠다 한 해의 풍성한 결실 후에 다가오는 대보름은 그야말로 연중 가장 큰 보름달 만큼이나 거득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보름달이 떴는데도 시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흥성스러운 모습들이 아니다. 각자의 쓰디쓴 삶을 살아가느라 삭막하고 각박하기 짝이 없는 명절이다.
시
등록일 2017.01.03
게재일 2017-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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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서서 마주 보고 웃었다 서로 다른 웃음이 비껴 지나갔다 악수를 피한 채 차곡차곡 눌려있던 꼬리 긴 말들 출구를 찾아 나갔다 열리지 않는 벽 자세히 보면 벽에도 푸르스럼한 자국이 있다 군데군데 금이 가 있는 이 시에서 벽은 무엇일까?.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아닐까. 마주보고 웃기도 하고 그저 누군지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타인이다. 소통도 없고 무관한 타인이지만 서로에게는 단절된 타인이지만, 우리는 수많은 벽을 대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 벽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상처가 새겨져 있고, 그들에게는 또 다른 벽인 내게도 그들이 알 수 없는 상처의 자국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1.02
게재일 20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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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육십 리 들길 돌아 단숨에 와 닿던 이십대의 나를 본다 천곡사 돌아 나가는 바람처럼 해 물리던 시절의 나를 본다 사십 해 전 전이었던가 그때 그 겨울밤에도 별빛은 하얗게 쏟아지고 바람은 무섭게 일고 있었다 시인은 쏜살 같이 지나가버리는 세월의 한 자락을 들춰 당차고 강강했던 청춘의 시간들을 꺼내보고 있다. 의욕과 열정이 넘쳐났던 아름다운 생명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 천곡사 돌아나가는 바람처럼 세월은 흘러 중년의 때를 지나 짧디 짧은 한 생의 하향곡선을 그리며 낡아가고 있는 자신을 들여다 본다. 긴 긴 겨울밤 자신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시인의 깊은 마음을 따라가 본다. 이게 인생이다.
시
등록일 2017.01.01
게재일 201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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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농원에 대하여 생각하였느니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 나의 하루와 노동은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었느니 흘러 흘러갔어라 먼 산 눈이 녹는 동안의 시간이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었느니 죽은 화분에 물을 주면서 시인은 생에 대한 깊은 성찰에 빠진다.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이라는 부분에서 끝없이 바뀌고 흘러가 변하는 다짐과 결심이지만, 죽은 화분에 물을 주듯이 의미없는 삶의 연속이 시인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아닌 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헛디디며 살아가는 우리네 한 생이 비쳐져 있는 시다.
시
등록일 2016.12.29
게재일 201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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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무신 한 켤레 나란히 벗어놓고 풍덩 뛰어들고 싶은 빠져죽어도 여한 없을 원도 한도 없을 저 하늘 장대로 쿡 찔러 본다 닿지 않는다 너무 깊고 높다 눈 새파랗게 뜬 국화 옆에서 눈이 시려서 울고 서러워서 울었다 시월 말 청명하늘을 바라보며 시인은 그 맑고 깊은 가을하늘에 풍덩 빠져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디 시인에게만 생기는 감정일까. 푸르고 깊은 상강 무렵의 가을 하늘 아래는 국화가 피어 있고 시인은 올려다보는 깊은 하늘에 눈이 시려 울고, 머리 위의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하고 살아온 힘겹고 아픈 한 생이 서러워서 울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고개 젖혀 푸르디 푸른, 깊은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싶은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6.12.28
게재일 2016-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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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닿는 곳마다 눈에 파묻혔다 크나큰 시가 씌여지길 기다리는 한 장의 흰 원고지 무슨 시를 쓰랴 바람과 해와 바다와 별과 시를 쓰리 언어 아닌 구름으로 순백의 눈이 내린 풍경 앞에서 시인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시는 그 표현에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절대 평화경은 인간의 욕망을 담아내는 시라는 도구로는 표현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구름이라는 자연물로 그 경이로운 풍경을 그려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 시인의 깊은 시안을 본다.
시
등록일 2016.12.27
게재일 201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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