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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르는 눈망울들이 에미 애비도 모르는 고아들이 담벼락 밑에 쪼르르 앉아 있다 애가 애를 배기 좋은 봄날 햇빛 한줌씩 먹은 계집아이들이 입덧을 하고 있다 한 순간에 백발이 되어버릴 철없는 엄마들이 이 겨울의 끝을 물고 봄은 올 것이다. 민들레 곱게 피어나는 봄날 시인은 앙증맞게 피어난 민들레 꽃을 보며 곱고 이뻐서 눈 시리고, 엄동을 견뎌낸 싱싱한 생명력을 느끼고 있다. 봄은 모든 꽃과 처녀애들의 가슴을 부풀게 해 철없는 엄마가 되게 한다는 표현이 재밌다. 며칠 지나면 하얀 민들레 홀씨가 날리는 할머니로 변하겠지만 시인은 담벼락 밑에 쪼르르 피어난 민들레꽃들에서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2.14
게재일 20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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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사물의 실체는, 늘 어둠 저 편에 웅크리고 있다. 파랗게 눈에 불을 켜고 족제비나 들고양이처럼 아스팔트에 묻어 있는 주검의 흔적이 때로는 머리털을 곤두서게 한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전조등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달려온 세월은 너무 길었다 달빛 어슴푸레한 시골길 가로등 몽롱한 불빛의 포도 을씨년스러운 바람소리를 뚫고 세월의 막다른 골목까지 달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평생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시를 써온 시인의 가슴이 젖어있다. 참교육 실현을 위해 애쓰며 아이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과 바르고 정의롭게 사는 길을 일러온 시인이다. 그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 세월 그러했듯이 지금도 여전히 확실하지 않은 미래가 우리 앞에
시
등록일 2017.02.13
게재일 201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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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한길에 서 있는 것은 그곳으로 가을이 한꺼번에 떠들썩하게 빠져나가고 있다고 나에게 말해 주고 있는 셈이겠습니다 그대가 역두(驛頭)에 서 있다든지 빌딩 아래로 간다든지 우체국으로 가는 것도 수사가 다르긴 하되 유사한 뜻이 되겠습니다 날마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바람과 햇빛이 반복해서 지나가고 보이지 않게 시간들이 무량으로 흘러갑니다 그대는 시간 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대에게 나는 지금 결정의 편지를 써야 합니다 결정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시간 위에 떠 있는 우리는 도무지 시간의 내용을 알 수 없으니 결정의 내용 또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는 마음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오랫동안 같은 모습과 상태로 머물러 있지 못하다. 모든
시
등록일 2017.02.12
게재일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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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회전 톱에 손을 다친 친구평소 거절을 잘 못하는 게 흠이 되어아니할 고생까지 하며 사는 터라병문안 가는 길이 걱정 한 짐이다웃고 있는 친구 눈치를 살피다가붕대로 감싼 손을 보니 내가 더 막막한 터살기 바쁜 핑계로 한동안 보질 못했는데어느 날 오죽 땅속줄기 몇 개를 구해왔다 잘려진 줄기가 뭉툭한 새끼손가락 같아함부로 약속하지 말라는 뜻이라는어떤 이의 우스개를 망으로 깔고빈항아리에 흙을 채워 심어놓았다대나무가 쑥쑥 자라듯 친구 손가락도 어느새 자라말끔하게 되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깊은 항아리 속에서 새순이 올라오는지매일 아침 코를 박는다 손을 다친 친구의 문안을 가다가 시인은 친구의 다친 육체적 아픔보다 살아오면서 다친 마음의 상처를 떠올리고 있다. 독하고 모질게 살아오지 못한 친구가 입었을 상처는
시
등록일 2017.02.09
게재일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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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이다 누구나 예상은 하고 있지만 쏘아 떨어뜨려야 할 것들은 언제나 갑자기 날아온다는 사실 목표물은 한순간도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빈 하늘을 빠르게 횡단한다 허공에 걸린 표적을 향해 총을 겨눈다 그러나 내가 쏘는 것은 마른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비행체가 아니다 그가 도착하지 않은 몇 백분의 일초 후 그곳에 도착할지 아닐지 알 수 없는 허공의 한 점 불안과 희망이 만나는 무한한 공간과 찰나의 시간이 만나는 그 곳으로 총알을 마중 보내는 것이다 허공에 날아가는 표적물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사격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클레이 사격이다. 시인은 무한한 공간과 찰나의 시간이 만나는 것을 떠올리고 있다. 불안과 희망이 만나는 무한한 공간과 찰나의 시간이 만나는 순간이야말로 희열을
시
등록일 2017.02.08
게재일 20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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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는 반드시 잔가지 다 잘라내고 몸통 하나로만 남겠다 뿌리도 한 가닥만 땅에 박고 이파리도 달랑 하나만 달고 그렇게 단정한 아침을 맞으리 가장 가벼운 몸을 이루어 수직으로 홀로 깊어지면 그 어둠 속 맑은 물줄기 소리도 들으리 남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써온 시인은 자기가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이랄까 생의 태도에 대해 다짐을 하고 있다. 온갖 세상의 명예와 잇속에 대한 욕망을 다 내려놓고 청빈하게 남은 생을 살아가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어떤 유혹이 닥쳐오더라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결의가 강하게 전해져 오는 시다.
시
등록일 2017.02.07
게재일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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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나는 쉬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한때는 자랑이었다 풀섶에서 만난 봉오리를 불러모아 피어봐, 한번 피어봐 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상처도 없이 노래를 불렀으니 이제 내가 부른 꽃들 모두 졌다 아프다,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꽁꽁 얼어붙은 내 몸의 수만 개 이파리들 누가 와서 불러도 죽다가도 살아나는 내 안의 생기가 무섭게 흔들어도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한 때 사회 변혁을 꿈꾸며 강단진 목소리로 시를 써온 시인이 좌절을 맛보고 쓴 시다. 절망의 심정으로 자기 성찰의 목소리에서 시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오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꺾이고 밟혀서 져 다시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 오거나, 새로운 힘으로 일어설 수 있다해도 꽃으로 피지 않겠다는 깊은 좌절의 심정을 토로하지만 이것은 반어
시
등록일 2017.02.06
게재일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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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바람 앞에 서다 한 닢 잎 새 흔들리는 고요 시간의 무늬 새기며 비어지며 아득해지는 것을 갈 볕 떠나야 할 것들을 어루만지다 추억처럼 쓸려오는 떨궈진 이파리들 몰려드는 저녁 머물듯 스치는 시간의 플랫폼 뭉툭해진 날개 짓 붉은 노을 삼키며 떠나가는데 바람 이는 중년의 언덕 서걱이는 심장 하늘 모퉁이에 새기며 흔들리는 세월 억새길 따라 나선다 차가운 바람 속 화석으로 쌓여진 내청춘의 시간들 하 고운 무늬들 아직 사랑해야할 시간은 남은 걸까! 늦은 가을 상강(霜降) 무렵 시인은 쏜살같이 가버리는 시간을, 그렇게 스러져간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다. 머물 듯 스치는 플랫폼에서 수없이 떠나보내고 떠나와 버린 시간들이었다. 점점 차가워져 오는 바람 앞에서 속절없이 화석으로 변해가는 시린 시간의
시
등록일 2017.02.05
게재일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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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밥상을 차리고 계신다 10년 전보다 20년은 더 젊어진 어머니는 콩나물 무치던 손으로 이제는 늙어버린 내 손을 밥상 앞으로 잡아끈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밖에서 또 놀다 온거냐? 젊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참아내며 늙은 내가 밥을 먹는다 어머닌 참,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줄 아세요? 그럴 때마다 이놈 자식이, 어머니의 싱싱한 손이 낡은 내 엉덩이를 후려친다 너는 커서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냐? 어머니, 난 이미 어머니만큼 살았고, 인생의 절반을 시인으로 살았으면 됐지, 뭐가 또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이놈이, 밥 흘리지 말랬더니, 그거 다 저승 가서 먹어야 해! 어느 날 부턴가 다 낡은 나에게 싱싱한 어머니는 죽지도
시
등록일 2017.02.02
게재일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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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 그 자리가 맞나, 시린 바람의 문 열어본다 스치는 건 수많은 빛들 와 닿는 건 성난 파도들 들리는 건 눈물의 연가 푸른 귀를 열어 저기 하늘소리 들어보라 사정 없이 한 생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멈추지 않고 전 속력으로 우리를 뚫고 지나는 것이 있다. 세월이다. 시인은 바람이 시간을 몰고, 몰려가는 것이라 믿고 있는 듯하다. 그 엄청난 속도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인간들은 바쁘기 짝이 없다. 우리들 곁에서 우주는 우주대로 별빛을 내려보내고 정법대로 운행하고, 자연은 자연대로 파도를 밀어올리며 꽃들을 피우며 낙엽들이 떨어지게 하며 순리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가. 알량한 울타리를 치고 순리를 거스르고 역행하고 있지 않는가. 시인은 우리에게 푸른 귀를 열어 하늘의 소리, 우주와
시
등록일 2017.02.01
게재일 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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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고 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기러기의 길 허공중의 길을 따라 가고 있다 낮게 안개 깔려 발목이 푹푹 빠지는 뻘 밭 해오라기 한 마리 가만 가만 물 길, 바람 길을 가지 삼아 댓잎 묵죽(墨竹)을 치고 간다 반구대엔 반구정이 없고 이미 지나온 물 길 가 기러기가 집을 버린 곳 학성 벼랑 가엔 내가 나기도 전엔 번듯한 누대가 있었다지만 그저 멋도 모르고 나는 이곳까지 왔다 촛대같은 바위 그늘을 지나 구름과 산이 잠긴 다운동 태화강의 굽은 허리를 버리고 나는 끝이 어디에 가서 닿는지 울주를 적시며 흐르는 태화강 중 상류에는 사연댐이 있고 굽굽이 수려한 풍광 속에 수 억년 전 선대사람들의 흔적이 바위 벼랑에 새겨져 있는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시인의 고향과 가까운 곳으로 여겨지는 여기는 영원의 시간이
시
등록일 2017.01.31
게재일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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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가 늦은 아침 호주머니에서 나온 병뚜껑 하나 구부린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서 반으로 접힌 알리바이를 갖고 있는 오비라거 병뚜껑 하나 어두운 호주머니 속에 갇혀 있다가 내 손가락에 잡혀 올라와선 죽은 조개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일상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일화에서 시인은 시간을 읽어내고 있다. 출근길의 호주머니 속 병뚜껑 하나에서 지난 밤의 시간에 대한 알리바이를 추적하고 있다. 출근길이라는 목적성과 유용성, 확실성이라는 시간과 개방성과 모호성, 불확실성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밤의 시간을 대비하는 재미난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1.30
게재일 201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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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밤 사흘 낮을 바람이 울었다 섣달도 그믐께 칼끝 시려 제 가슴 쥐어뜯는 저 바람 소리는 잠 못 들고 펄럭이는 뭇 어머니들의 부르짖음이나니 이 세상 어디에나 따라다니기도 하고 이승에서 저승으로도 불어가고 저승에서 이승으로도 불어오는 쉬지 않고 헤매는 어머니 그 마음의 흐느낌이니 한겨울 칼바람 속에는 잠 못들고 펄럭이는 어머니의 부르짖음이 스며있다고 말하는 시인의 말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 어디에도 따라다니는 어머니의 마음은 자신이 죽어 저승에 가 있은들 자식을 향한 동동한 심정은 변함이 없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자식 사랑과 걱정에 대한 원형질이 박혀있다. 거룩한 본능이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7.01.25
게재일 20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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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려운가 보다 엉킨 산수유들이 몸을 연신 하늘에 문대고 있다 노란 꽃망울이 톡톡 터져 물처럼 번진다 번져서 따스히 적셔지는 하늘일 수 있다면 심지만 닿아도 그을음 없이 타오르는 불꽃일 수 있다면 나는 너무 쉽게 꽃나무 곁을 지나왔다 시간이 꽃보다 늘 빨랐다 오랫동안 한 곳을 보지 않으면 그리고 그 한 곳을 깊이 내려가지 않으면 시가 꽃이 되지 못한다 가슴 안쪽에 생기는 나무가 더 많아 그 그늘이 더 깊어 묵호에서 태어나 광주로 내려간 시인은 1980년의 봄을 보았다. 봄이 와도 봄이 아니었고 꽃이 피어도 아름다운 꽃이 아니었을 것이다. 꽃의 생기와 아름다움보다 먼저 시인을 몰고가는 시간은 암담한 그늘과 상처와 아픔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가슴 안쪽에 생기는 나무는 이러한 아픔의 기억들과 치열한 시간들이
시
등록일 2017.01.24
게재일 20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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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밥을 먹었는가 어제는 더운 밥 먹고 오늘은 어이 찬밥 신세인가 누가 밥을 못 지어 눈물밥을 먹었는가 무엇으로 밥을 모았으며 남긴 밥은 어디 두었는가 지은 밥 뉘에게 앗겼는가 아, 거리엔 긴 그림자 주려 죽은 주검 위에 배 터진 주검 널렸나니 앗지도 앗기지도 말고 가슴 활활 태워 밥을 지어 이 시는 밥에 대한 얘기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 불구의 현상에 대해 꼬집고 있는 작품이다. 부당하게 돈을 벌고, 치부하고, 남의 재화를 강탈하는 자본 사회의 부조리를 밥을 통해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부조화와 불구의 현대사회를 향한 매서운 회초리를 대는 시정신이 날카롭기 짝이 없다.
시
등록일 2017.01.23
게재일 201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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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잃은 수성팬 한 자루 책상 위에 홀로 누워 피가 마르고 있네 늘 곁에 있었기에 느끼지 못했던 당신의 부재(不在) 살면서 못다 한 말 전부 하고 가려는 듯 수많은 사연 허공에 날려보내고 있네 죽음으로 이별한 사람의 부재는 그 자리가 크고 깊게 비어 있다. 시인은 뚜껑 잃은 수성팬 한 자루가 마르고 있음을 모티브로 해서 망자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생전에 못다한 말을 허공에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늘 가까이 있어서 못다한 사랑을 가슴 치며 바람 속에 얹어놓고 있음을 본다.
시
등록일 2017.01.22
게재일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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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요술쟁이 없는 마술을 낳으셨네 우리 어머니 무엇을 낳으셨나? 껍데기도 없이 텅 비었네 우리 어머니 어떻게 아들을 부르시나? 당신의 아들을 찾을 수 없네 아들 없는 우리 어머니 어디에 계시나? 이 시는 어머니와 나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념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어머니는 한 생명의 원천이고 출발점이고 뿌리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어머니가 낳은 것은 내가 아니라 껍데기도 없이 텅 비었네 라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나지만 나의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시인의 다른 시에서도 발견되는 무아(無我)의 시정신이 오롯이 나타난 작품이다. 소유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시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시
등록일 2017.01.19
게재일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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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움직일 때마다 분비물을 흘리는 것은, 배춧잎에 붙어있는 솜털이 내겐 덤불이기 때문이다. 2 사내가 집을 나선다 저 사내는 별을 두려워하는 달팽이다 다행히 오늘은 햇살이 비춰지지 않는다 아니 이젠 비춰진다고 해도 무관할 것이다 사내에겐 꽃상추밭 같은 공원이 생겼으니까, 실직한 저 사내의 딱딱한 집 속에는 물렁물렁한 아내가 산다 건들기만 하면 젖무덤이 금세 봉긋해지는 그녀는 하루 종일 통조림용 마늘을 깐다 그런 이유로 사내의 눈이 매웠을까 사내가 눈을 훔치며 나간 골목이 축축하다 이 시에서 달팽이는 실직한 사내를 일컫는다. 달팽이가 지나간 길이 축축한 것은 일자리를 잃은 연유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종일 통조림용 마늘을 까는 아내가 있고. 마늘 냄새에 눈이 매워 눈물을 흘리는 사내가 있는 어둡고
시
등록일 2017.01.18
게재일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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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성듬성 핀 개오동, 꽃그늘마저 배 고프던 신천 굽이굽이 육이오정착촌, 일본군 80연대, 캠프 헨리에 이른 엇박자의 역사 맥 짚어온 봉덕시장 가보시라 맨땅의 거기 언 병아리 같은 자식 여럿 뜨겁게 키 워낸 상주 전통 손 유과집 어무이 사신다 돌아보면 남루하게 펄럭이는 청춘의 편린만 장터에 떠돌 뿐 정직한 손맛조차 길 건너 대형마트 그 도도한 구색 틈에 진열될 일 만무한데 시 속에 불행했던 우리의 역사가 스려 있다. 봉덕시장 유과집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굴절의 시대상을 그대로 안고 있는 가게다. 어려운 시대를 건너며 언 병아리 같은 자식 여럿 키워낸 동력은 유과집 뿐 아니라 이 땅 구석구석에 산재해 있다. 길 건너 대형마트 자본의 횡포에 떠밀리면서도 당당하게 자기를 지키며 힘겨운 세상을 건너가는
시
등록일 2017.01.17
게재일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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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앞에 속도 하나가 구겨져 있다 부딪혀 멈춰버린 순간에도 바퀴를 다해 달리며 온몸으로 트럭에 붙은 차체를 밀고 있다 찌그러진 속도를 주름으로 밀며 달리고 있다 찢어지고 뭉개진 철판을 밀며 모래알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유리창을 밀며 튕겨 나가는 타이어를 밀며 앞으로 앞으로만 달리고 있다 겹겹이 우르러진 철판을 더 우그러뜨리며 달리고 있다 아직 다 달리지 못한 속도가 쪼그라든 차체를 더 납작하게 압축시키며 달리고 있다 다 짓이겨졌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는 속도가 거의 없어진 차의 형체를 마저 지우며 달리고 있다 철판 덩어리만 남았는데도 차체가 오그라들며 쥐어짠 검붉은 즙이 뚝뚝 바닥에 떨어져 흥건하게 흐르는데도 속도는 아직 제가 멈췄는지도 모르고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 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현장을 목도한 시인
시
등록일 2017.01.16
게재일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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