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2월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의 인간탐구 대기획 5부작 `아이의 사생활`은 아이를 둔 부모와 현장의 교사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동기에 대한 치밀하고도 과학적인 실험과 검증은 그동안 품어왔던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이후 방송에서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보충해 책으로도 발간했는데 비단 부모나 교사가 아니더라도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누구나 밑줄 그으면서 되새겨야 할 내용이 가득하다. 1부는 아이의 타고난 개성과 두뇌 발달, 두뇌 능력에 따른 효과적인 양육법을 소개한다. 2부는 아들과 딸이 다른 이유와 아이의 두뇌 성향을 눈여겨보는 법, 남녀의 특성에 맞는 교육법을 짚어준다. 3부는 아이의 강점지능과 약점지능 찾는 법과 강점지능을 키우는 비결을,
지금의 교육정책은 입시교육을 탈피해 학생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이, 대학과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이 바뀌고 있다. 학교 공부만 잘하는 전형적인 모범생보다 창의성과 리더십, 외국어 능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가 각광을 받는다. 입시 제도가 날로 복잡해지는 것도 새로운 기준에 부합하는 글로벌 인재를 찾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 불안해 하고 있다. 명문대를 가기 위한 성적 위주의 공부는 사교육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학교를 잠자는 교실로 만들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공부 방향을 잡아주고 글로벌 역량을 키워줄 멘토가 필요하다. 성적 위주의 공부만 한 학생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6학년 국어 3단원은 토의 수업 시간이다. 모둠별로 토의 주제를 정하고 각자 역할을 나눠 맡았다. 일주일쯤 시간을 주니 대개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와서 발표를 하는데 어느 모둠의 토의 주제가 `친구들이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일까?`였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요즘 아이들이 존경하는 인물은 위인전과 스타 사이에 존재한다. 뽑힌 위인으로는 세종대왕, 유관순, 장영실, 안중근, 이순신이 있었다. 현존하는 스타로는 축구선수 메시, 수영선수 박태환, 개그맨 유재석, 스케이터 김연아 등이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에 `없다!`가 뽑힌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존경하는 사람 없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존경(尊敬)이란 우러러 받들다는 뜻이다. 삶의 모델로 삼아 우러러 받들 사람이 한 사람쯤 없다면 그
지난 16일,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세상을 등졌다. 미처 피우지 못한 아름다운 꽃봉오리가 처참하게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소식을 접하고 할 말을 잃었다.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이 땅에 부모와 교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가슴을 칠 것이다.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대중매체를 탓해야 할까, 성적과 외모지상주의, 물신주의를 탓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지난 몇 달간 관련 부처에서 내놓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지린내 나는 대책을 탓해야 할까. 정말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경쟁과 배제, 권위와 억압의 논리로 교육현장을 황폐화한 정부 관료들이 사퇴하면 이런 가슴 치는 일이 좀 줄어 드려나 어쩌려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제 2조 제1호를 보면
강신주의 책을 몽땅 구해 읽었다.`철학, 삶을 만나다`부터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까지 지난 몇 달간 열독(熱讀)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대학 시절, 철학 개론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칸트가 어쩌고 저쩌고, 니체가 어쩌고 저쩌고…. 노 교수의 강의는 그야말로 시곗바늘에 쇳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듯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고문과 같은 시간을 견디기 위해 시집이나 소설을 뒤적거렸다. 몇몇은 강의실을 빠져나가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 대리출석도 빈번했다. 그렇게 나의 첫 철학수업은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각인이란 참으로 무섭다. 이후 철학을 보는 내 시선이 힐난에 가까워진 것이다. 삶과 유리된 쓸데없는 없는 학문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오죽했으랴. 그때 노 교수는 미처 몰랐거나 잊어버렸던
저 지난 수요일, 2012학년도 학부모 교육 설명회가 달전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작년과는 다르게 저녁 시간을 이용해 학급별로 학부모와 상담을 했다.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를 위한 배려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많은 어머니가 찾아주셨다. 예나 지나 자녀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차례에 `우리 아이를 위한 독토글 습관 기르기`라는 주제로 학부모에게 강연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독토글`이란 `독서, 토론, 글쓰기`의 줄임말이다. 요즘 교육의 세 가지 화두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공부의 시작과 끝이 `독토글`에 다 있다. 어릴 때부터 `독토글` 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재산을 많이 남겨주기보다 `독토글` 습관 몇 가지 심어주는 게 더 값진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모다. 평범한 자녀를 천재로 키워 낸 칼 비테는 3살을 전후로 아이의 성품과 능력이 대부분 형성된다고 믿었다. 교육심리학에서도 아이의 3살 전후를 매우 중요한 시기로 여긴다. 그렇다고 칼 비테가 무분별한 조기교육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아이의 발달시기에 맞는 적기교육과 가정교육을 중요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의 생각하는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 글쓰기 능력은 학교나 학원에서가 아니라 가정에서 거의 결정된다. 아이의 장래는 가정교육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며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셨다. 그럴
아는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독서의 해`다. 지난 9일 서울역에서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양성우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의 대대적인 선포식이 있었다.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선포하고 생활 속 독서의 정착을 위해 국가 차원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게 행사의 요지다. 독서의 해 추진위원장은 문용린 서울대 교수가, 홍보대사는 이외수 작가가 맡았다. 독서의 해 캐치프레이즈는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이며 `하루 20분씩 1년에 책 12권 읽기`, `책 선물하기 운동`, `주5일 수업제와 연계한 도서관, 서점 가기` 등 다채로운 독서운동이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 독서의 해에 맞춰 한국교육방송 EBS가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EBS FM은 평일
얼마 전 포항에 외국인 학교 건립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발표됐다. 지난달 포스코에서 출연키로한 학교부지가 남구 지곡동 효자아트홀 인근 부지로 최종 결정됨에 따라 포항외국인학교 설립이 본격 추진된 것이다. 결론부터 밝히면 지자체가 너도나도 외국인학교건립에 나서는 모양이 썩 반갑지만 않다. 포항시 관계자는 첨단 과학 인프라 구축과 외국자본의 투자유치 기반조성으로 외국기업 유치는 물론 지역의 우수한 첨단과학 R&D 인프라와 연계한 국제연구소 등 해외인재 영입과 정주여건 확충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들 자자체가 지역 글로벌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기대 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외국인 학교와 국제학교 설립은 투자규모와 예상학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大勢)다. 대세다 못해 넘친다. 2009년 Mnet 슈퍼스타 K 1을 시작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텔레비전만 틀면 최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피 말리는 경쟁이 펼쳐진다. 거액의 상금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향해 부나비처럼 몰려드는 참가자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부지기수다. 그런데 문제는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뛰어난 실력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니더라도 눈에 띄는 사연이 없다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끝까지 살아남기가 어렵다. 심지어 대학의 입학사정관들도 지원 학생의 스토리텔링을 원한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했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들려주기를 원한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시절이 하 수상하긴 수상한 모양이다. 아이들 글기지개 몇 편을 이곳에 소개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았다. 그중엔 무슨 출판사라는 곳도 있었는데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의 생각과 고민을 책으로 엮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때가 때 인만큼 정체불명의 `초딩`과 소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중·고등학생에 비해 초등학생은 어른의 막연한 환상, 이를테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잘 웃고 잘 놀고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오해와 확신의 울타리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매우 놀랄 것이다. 특히, 우리는 열세 살이라는 나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 중·고등학생이 겪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오늘날에는 열세 살을 전후해서 맞고 있다. 급격한 심리적 육체적
하루 5분, 글 쓰는 시간을 꾸준히 가져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이 `아침 5분 글쓰기`다. 매일 아침 교실에 앉아 어제 있었던 일 중에 보았던 것, 들었던 것, 의문을 품었거나 억울했던 것, 기분이 좋거나 나빴던 것 중 한 가지를 손바닥만 한 수첩에 쓰게 했다. 그걸 뭐라고 칭할까 궁리하다가 `글+기지개`를 떠올렸다. 매일 아침 글로 기지개를 켠다, 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아무튼 달전초등학교 6학년 3반 학생들과 그렇게 시작한 글기지개가 드디어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 동안 학생들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 글기지개 중 몇 편을 독자에게 소개할까 한다. `내가 엄마한테 “Mother, I want a water, please”라고 했다. 엄마는 “뭐라카노?”라고 했다. 내가 다시 “엄마, 물을
예술은 아름답다. 예술은 멋있다. 예술은 특이하다. 또 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에 대한 논의가 예술가뿐만 아니라 미학자나 철학자들을 통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어찌 보면 대중들에게 예술이란 아주 간단한 것이다. 즉 예술은 보기 좋고, 훌륭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그들은 흔히 예술적이라고 말한다. 예술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또는 경제활동으로서의 예술 행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일는지도 모른다. 만약 경제적 보상책으로 예술을 수단으로 삼고 있다면 그것은 순수하지 못한 것을 받아들여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을 일반적인 사회적 생산물과는 다른 어떤 고상한 것, 초월적인 것, 예술 이외의 어떠한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은 순수한 그 자체로의 미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에서는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일이 수업시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되는데, 과거 어느 강사가 한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단어를 외우게 하고 확인하는 방식이 영어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제일 쉬운 방식이에요. 그런 경우, 대단한 실력이 없어도 쉽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암기한 단어는 곧 잊게 될 뿐 아니라 책을 읽다가 그렇게 외운 단어를 마주쳐도 언젠가 보았었다는 기억만 희미하게 날 뿐 그 의미가 감각적으로 즉시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별로 쓸모없는 지식을 익힌 것이 될 수 있다. 영어 단어를 전화번호나 역사적 사실을 외우듯이 하면 하루에 100~200개씩도 암기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그 단어들의 사용방법이나 이미지가 익혀지지
“당신이 아무리 큰 부자일지라도 그래서 금은보화가 넘쳐날지라도 결코 나보다 부자가 될 수는 없어요. 내겐 책 읽어 주는 어머니가 있으니까요” 스트릭랜드 길리언의 `책 읽어 주는 어머니`에 나오는 구절이다. 책 읽어 주는 어머니를 가졌다는 건 아이에게 정말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흑인 학자이며 하버드에서 강의하고 있는 로날드 페르구손은 `학교 내에서 볼 수 있는 인종 간의 성취도의 차이`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페르구손은 연구 결과를 이렇게 정리했다. “진짜 문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진 부모 역할의 차이에 있다.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실력의 차이를 만드는 근본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페르구손에 따르면, 흑인 가정에서는 전통적으로 학업을 교사의 몫으로 보는 반면, 백
만날 때마다 요긴한 정보를 주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모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올해 복직을 앞둔 미혼의 친구다. 대학 시절부터 총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했고 나름의 신념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벗이다. 지난해에는 `나꼼수`를, 올해는 `강신주`를 소개받았는데 그로 인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다. `나꼼수`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우리 시대의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숱한 구설에 올랐지만 `나꼼수`는 인터넷과 SNS 정치의 서막을 연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의 영향력을 결코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젊은 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따금 낯 뜨거운 욕설과 막말로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지만 그들은 전혀 쫄지(?) 않는 눈치다. 하긴 `나꼼수`의 태
최근 대한민국은 영재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과학영재, 수학영재, 영어영재 등의 예를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조기 교육이 집중되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여러 거창한 이유가 있겠지만 더 현실적인 이유는 명문대학과 취직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함일 것이다. “자동차 바퀴(타이어)와 공,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이 뭘까?” 보통 아이들은 “둘 다 동그란 모양이에요” 또는 “굴러가요” 라고 대답하기 마련이고 물론 정답이다. 그런데, 많은 책을 읽으면서 학습한 아이는 금방 여기에 몇 마디 더 붙인다. “또 둘 다 공기가 들어가 있어서 물 위에 놓으면 뜨잖아요. 그리고 둘 다 고무로 만들어요.” 언어적으로 우수한 아이들이 많지만 앞서 언급한 아이의 경우는 언어 추론 능력과 외국어 습득 능력이 특
올해로 교직 10년 차에 접어든다. 초임 발령을 받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그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깨달았다. 수많은 사고와 시행착오가 있었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청하, 구룡포, 죽장, 상옥, 달전 등을 거치면서 만난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부모님도 몇몇 떠오른다. 학교에 있으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아이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고, 부모를 보면 아이의 장래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주 화요일마다 SBS에서 방영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은 `내 아이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비롯됐나?`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늘 부모에게 있었다. 곱씹어보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사 중에는 자식 농사가
설 연휴 때 모처럼 혼자 지낼 시간을 가졌다. 물론 설날 당일은 가족과 함께 고향을 다녀왔지만, 이틀 동안은 온전히 혼자였다. 비워둔 시골집으로 들어가 밀린 청소를 하고, 연탄보일러를 피우고, 마당을 정리하느라 한나절을 분주하게 보냈다. 진공청소기를 돌리다보니 장판 위를 굴러다니는 먼지 덩어리가 만만치 않았다. 먼지라는 것이 사람이 살 때보다 비어 있을 때 더 생기는 것이 신기했다. 일주일을 비워두었을 뿐인데, 사람이 자취를 감추니 먼지도 외로워서 서로 엉겨 붙어 켜켜이 쌓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일은 연탄재를 수레에 실어내 산길의 움푹 파인 곳에 깨뜨려 메우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산 위에서 땅거미가 내려와 주위는 금방 어두컴컴해졌다. 빈 수레를 끌고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이름 모
요즘 들어 불쑥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이 시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이다. 아마 이 시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 같다.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상징을 시적 이미지로 노래한 것이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보편적인 진리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당연한 순환의 논리인데, 모두가 잊고 살아갈 뿐이다. 그러다가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개인적인 일로 고통을 당하게 되면 비로소 `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의 당연한 진리를 돌이키게 된다.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에 `님의 침묵`이 생각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