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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의 뒤를 따라서 15분쯤 갔을까 어설픈 실루엣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등 너머 비몽사몽에 느껴지는 내가 살았던 적이 없는 나의 집, 나의 냄새가 절어든 안방에는 나를 기다려 수절하는 내 그림자가 있었다 추억 밖의, 지워진, 잊혀진 무의미가, 그리움 밖의 사건 속 주인공이 되어 폭우와 폭풍과 땡볕의 여름 에너지를 충전 받아가며 나를 기다린 모양, 많이 탈색되어 있었다 내 그늘을 덧입으려고 페이지를 넘겼는데, 넘겨도 넘겨도 같은 페이지였다, 진땀을 흘리며 가까스로 찾아 첫줄부터 읽는 사이, 내 그림자는 벌써 떠나가버렸고, 그의 실루엣만 가뭇이 뒤따르고 있었다.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리는데 든 적도 없는 잠이 눈꺼풀을 비비며 하품하고 있었다 시인은 수면제를 복용하고 얼핏 잠이 들 뻔 했던 순간의 감각과 기억
시
등록일 2017.04.23
게재일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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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저물고 새들도 둥지에 든다 서늘한 바람의 옷자락 그 감촉에 몸 맡기며 숲길 돌아들면 땅거미 안으면서 어깨 추스르는 나무들 가지와 가지들 사이로 별이 뜬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지난날들이 불현듯 그의 마지막 말들이 뜬다 차마 잊지 못하고 있는 말들은 저토록 별이 되어 빛을 뿌린다 하나 둘, 그리고 여럿 그 별들이 숲에 내린다. 가슴에 스며든다 우리는 이제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음을 다른 세상에서 더러는 그리워할 뿐임을 말해주는 건지,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이내 다시 멀어진다 여태 애태우던 말들도, 이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제각각 허공에 빈 메아리로 떠돌고 있는지…. 마음마저 더 어두워지고, 집도 점점 멀어지는, 낯선 저녁 숲길 노을이 번지는 저물녘 숲길에서 멀어져간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며 쓸쓸히 호명하고
시
등록일 2017.04.20
게재일 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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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골 앙상한 개가 부푼 달을 보며 짖어대는 것이 어쩌면 헐벗은 사람들의 서러운 원망 같아 숙연해진다 달이 빵으로 보였는지 누렇게 단 꿀을 입힌 달이 별안간 뜯고 싶어진다 저물녘, 훤한 달빛 아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줄줄이 서서 푸석푸석 부푼 빵을 배급받고 있다 시인의 눈은 그리 특별한 것을 찾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머물러 곰곰히 생각해보고 시적 언어와 정서로 한 채 언어의 집을 짓는 것이다. 시인의 눈에 비친 실직자들이 무료급식을 위해 줄줄이 서서 빵을 배급받고 있는 쓸쓸한 모습들을, 그 가난한 대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7.04.19
게재일 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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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날아간 흔적은 없다 새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새를 날려 보내고 하늘은 멍청해진다 누가 보았다고 하는가 새발톱에 맺힌 피 새를 날려 보낸 하늘에는 발자국도 어떤 흔적도 남겨져 있지 않다. 새를 날려 보낸 하늘을 멍청해진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무슨 뜻일까. 최선을 다해 하늘로 비상(飛翔) 하는 새나, 새를 날려 보내는 하늘에게는 그 어떤 미련이나 아쉬움도 원망도 없다. 그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물질들의 역할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억지와 인위(人爲)가 배재된 자연스러운 자연의 이치를 가만히 들려주고 있는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7.04.18
게재일 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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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거리 지나 계단 아래 사람들 밀양 부산 조치원 서울역 노숙을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잠이 든 저렇게 많은 사람들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쓸리는 나뭇잎들 햇살이 먼지를 먼지가 햇살을 부둥켜안 듯 소주병과 박스와 신문지 이렇게 많은 비천한 몸뚱이들 이미자의 노래던가 물큰 배부른 여인네의 양말 밖으로 비치던 노래 저렇게 많은 누에들 타고 떠나지도 못할 거면서 막차 앞에서 막차를 기다리며 지하도 계단 아래 폐박스나 신문지를 깔고 눕는 노숙자들을 바라보며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느끼고 있다. 고향으로 떠나는 막차는 부르릉 거리고 있는데 그 차를 타고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시대가 양산해 내는 이러한 모습들에 대한 시인의 고발을 읽으면서 씁쓸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시
등록일 2017.04.17
게재일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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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화면 바그다드에는 탱크와 사막의 누런 흙먼지와 밤이면 충격과 공포의 크루즈 미사일 지옥의 불기둥이 치솟지만 꿈속인 듯 거리를 걸으며 주머니 속 동전 만지작거리며 나는 무력하다 (….) 이명처럼 시내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고 봄의 한낮 가위눌린 꿈처럼 나는 무력하다 천지에 봄이 와서 움츠렸던 목숨들이 기지개를 펴고 되살아나는 때에 세계의 화약고 바그다드에는 끔찍한 살육의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념과 종교적 신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이러한 전쟁은 신이 부여한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고 참살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운 생명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들에 대한 비애와 공포가 밀려와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인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있다.
시
등록일 2017.04.16
게재일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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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장맛비, 시퍼런 초록 골짜기를흘러나오는 오래된 옛집나보다 먼저 죽어간 이들의 저녁을 위하여슬며시 문고리를 열어둔다저물녘 강둑에 스며든 적막감이 한기로다가와 스멀스멀경전 속 숨은 비밀이 되어방안 가득 똬리를 튼다주술에 걸린 듯 박태기나무 팝콘 같은 꽃잎들후두둑 떨어져 어둠의 두터운 안부를빗길 위에 떠내려 보낸다 검은 물기둥 궁전이 있는 사북, 뭉텅뭉텅 킬링필드의 목 잘린 해골처럼 쌓여서 산맥을 이루는 폐석탄 잔해들 굳은 능선의 부르튼 틈새마다엔 붉디붉은 물결의 시간이 깊은 주름으로 흐르다, 꽉 다문 막장 문 입구에서 녹슨 눈물의 뿌리로 환생하기도 한다 막장으로 가는 마지막 길 숨이 긴 여름햇살, 제 몸 서랍 속 비늘 모두 털어내어 바다로 가는 길을 열고 있다 적막감과 차가움이 낡은 폐광에 고여 있는 사북
시
등록일 2017.04.13
게재일 20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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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 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 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이 땅 어느 소읍에든 있을 법한 풍경 한 장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미가 녹아 있고 사람의 정겨움이 스며있는 시
시
등록일 2017.04.12
게재일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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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나 여자나 한때 천사였기에 날갯죽지에 아직도 깃털이 솟는다만 새는 외려 훨훨 날기 때문에 겨드랑이에 솜털뿐인 거여 여자들이 겨드랑이 깃털을 다듬는 것은 사내들보다 더 천사에 가깝기 때문이지 여자는 죽을 때까지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단다 아파트든지 백화점이든지 높은 층수만 보면 날아오르려는 아내를 나무라지 말거라 죽지는 꺾였지만 이 어미도 칠순 천사다 참 재밌는 시 한 편을 본다. 이정록 시인의 많은 시들에 어머니와의 대화 혹은 어머니에 대한 재미난 서사가 나타나 있다. `여자는 죽을 때까지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는 한 줄의 시에는 세상의 여자들, 아니 인간의 욕망이 잘 표현되어 있다. 칠순 노모인 어머니 자신도 평생을 상승욕구를 품고 사는 여인 중의 하나라는 의중을 `이 어미도 칠순 천사다`라는 시의 끝
시
등록일 2017.04.11
게재일 201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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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서 보이지 않던 것 들어서 보입니다 여문 쌀알 같은 잘 익은 말 한 톨 허공은 등불을 켜고 울음은 길을 열어 뿌리가 곧추서는 숲 새소리가 눈부십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말의 빛이 빛나는 공간 꽃빛보다 고운 것은 말빛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움보다 말로 전해지는 아름다움이 더 빛나고 깊다는 시인의 인식에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말로 들어서 그 뜻과 의미가 더 깊게 전해져오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복음인 것이다. 시인은 시로 빚어낸 언어를 꽃빛보다 더 고운 말빛이라고 칭하고 있다. 말빛이 거느린 환한 그늘이 깊고 넓기 때문이다.
시
등록일 2017.04.10
게재일 201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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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의 구애 끝에 사랑을 얻은 수컷사마귀가 물어뜯긴 생식기를 움켜잡고 비릿하게 우는 밤 외양간에는 수컷의 그것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만삭의 소가 어둠의 모가지를 쥐어틀며 몸을 푸는 밤입니다 자궁을 열고 세상 밖으로 던지는 첫 화두 음 메, 아비 없는 후레자식의 울음입니다 방아깨비가 달 속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밤 마당가 알곡이 두둥실 떠다니는 환한 밤입니다 시인은 조금씩 다른 네 개의 풍경을 제시하며 살아온 자신의 한 생을 가만히 관조하고 있음을 본다. 수컷 사마귀가 비릿하게 우는 밤이랄까, 인공 수정된 만삭의 소가 몸을 푸는 밤이랄까, 이런 밤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삶이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다. 어쩌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어떤 힘에 의해 운명 지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시인은 하고 있
시
등록일 2017.04.09
게재일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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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헤어질 때가 되었다 어둠과 어둠 속으로만 떠돌던 나를 그래도 절뚝거리며 따라와주어서 고맙다 나 대신 차에 치여 다리를 다친 일과 나 대신 군홧발에 짓이겨진 일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다 가정법원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너 혼자 울면서 재판 받게 한 일 또한 미안하지만 이제 등에 진 짐은 다 버리고 신발도 지갑마저도 다 던져버리고 가볍게 길을 떠나라 그동안 너는 밥값도 내지 않고 내 밥을 먹었으나 이제 와서 내가 밥값은 받아서 무엇하겠니 굳이 눈물 흘릴 필요는 없다 뒤돌아서서 손 흔들지 말고 가라 인간이 사는 곳보다 새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어린 나뭇가지에서 어린 나뭇가지로 날아다니는 한 마리 새의 그림자가 돼라 한 마리 새의 그림자가 돼라 시인은 시에서 자신의 그림자에게 말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시
등록일 2017.04.06
게재일 2017-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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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을의 겨울이 지나고 돌아오지 않는 이름을 부르는 종달새가 온종일 하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몰려와 있던 구름은 몸을 풀기에 아직 무겁지 않았다 가난한 마을에 풀이 돋고 잎이 나고 보슬비가 뿌려주지 않았다면 저들은 무엇으로 한세상을 이루었으랴 녹색의 배경이라는 시의 제목에 스민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보면 참 깊고 그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겨울을 견디고 피어오르는 연두, 초록의 새순들은 그들의 질긴 목숨을 담금질할 수 있도록 차가운 얼음바람과 폭설이 있었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그런 혹한의 추위를 견디지 못했다면 저리 눈부신 초록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시련과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 인생사가 어디 있을까. 우리의 오늘은 우리가 극복한 그런 시련과 힘든 시간들을
시
등록일 2017.04.05
게재일 201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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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물푸레나무빛이 스며든 물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란 뜻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나무다. 어린가지의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보면 파란 물이 우러난다. 물푸레나무는 우리
시
등록일 2017.04.04
게재일 2017-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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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손을 놓았어 흩어지는 너와의 추억 먼지처럼 떠돌다 사라진다 손바닥에 아직 남은 체온 가슴을 누르는 푸른 지문들 은빛 점선으로 다가오는 나비떼 숨을 쉴 수가 없어 풀어지지 않는 견고한 매듭 결코 부서지지 않는 거겠지 천년이 지나 우주를 떠돈다 해도 풀리지 않는 결속 바람따라 누웠고 이슬따라 떠나도 푸르게 눈 뜨고 소매를 잡는 너 수천 번 내 얼굴을 만지며 조금씩 수척해져가고 있어 저 붉은 바람 속 풍장은 자연으로 망자를 돌려보내는 장례풍습의 하나다. 시인은 누군가와 결별의 시간을 가지면서 잠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할 것을 간절히 빌고 또 빌고 있음을 본다. 그가 망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바람에 얹어 훌훌히 보내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수천 번 얼굴을 만지며 그를 붙잡아두고
시
등록일 2017.04.03
게재일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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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에서 일렁이는 불길이 얼굴을 적셨으니 타고 남은 재를 흙바구니에 담아 공중에 흩뿌려놓았으니 수만개의 별빛이 하늘과 호흡하는 너의 폐부 속으로 스며들었으니 숨을 내뱉어라 올라가서 올라가서 이제 바람에 뒤척이는 꽃밭이 되어라 아궁이의 타오르던 불길이 재로 스러지듯이, 태양을 마주하며 아름답게 꽃 피우던 한낮의 꽃밭이 날 저물면 어둠 속 별이 빛나는 하늘과 호흡하는 자연의 이치를 들여다보며 시인은 우리네 한 생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화려하고 다이나믹했던 청춘의 시간들이 지나면 가만히 하늘과 소통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며, 겸허히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3.30
게재일 20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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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그 눈빛이 열매 맺은 햇살소리로 그리 염려해주니 또한 좋구만 하도나 사려 깊어서 건너오는 말 눈빛이 따사로와 기뻤구만 올봄엔 꽃 소식도 이렇게 빨리 들을 줄이야 말씀 하나하나가 마음에 꽃가지 벋듯 먼 산 솔빛이 햇살 받아 머릿결 빗은 말씀이군만 이리 정겨운 말이 있어 이렇게 가슴 더운 말이 있어 이 봄은 꽃가지 꺾어들 듯 헹가래치고 싶구만 봄을 맞이하는 시인의 기쁨을 담담히 풀어내는 작품이다. 북풍한설의 차가운 엄동을 견딘 자연도, 사람도 봄을 맞이하는 기쁨은 한없이 크다. 갖가지 봄꽃들이 피어나는 봄 천지에는 어떤 예감과 희열로 넘쳐나고 가슴마다 정겨운 말들이 솟아나 누구든 꽃가지 꺾어들고 헹가래치고 싶지 않겠는가. 희망 큰 봄이 오고 있다.
시
등록일 2017.03.29
게재일 201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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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 내린다 어둠 위에 누우며 마지막 실루엣 하나까지도 속으로 흘러오는 문이 열리고 텅 빈 사각지대로 날아다니기 시작 하면서 날아간 나비들은 또 다른 나비의 나비로 날기 시작하면서 늪에 빠진 나비들 젖은 날개들 물 젖은 시간의 끈들을 뜯어내며 건너던 다리를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벗어 내렸다 흰 눈 날리어 가던 날 겨울 숲으로 날아간 나비들 젖은 죽지 말리며 비릿한 몸 냄새 뜯어내며 하얗게 눈 내리는 저녁 하늘다리 건너 수 천 수만의 작은 오로라 불빛들로 천막 실루엣 친친 두르며 가만가만 돌아오고 있었다 하얗게 날리는 눈발을 나비로 형상화한 아주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본다. 수천 수만 송이의 내리는 눈은 나비가 되어, 수 천 수만의 작은 오로라 불빛들로 귀환하는 환상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
시
등록일 2017.03.28
게재일 201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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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물고기 잡으러 가던 고양이 를 친 트럭은 놀라서 엉덩이를 약간 씰룩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북으로 질주한다 숲으로 가던 토끼는 찻바퀴가 몸 위 를 지나갈 때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공기가 되어가고 있다 흰구름이 토끼 모양을 만들었다 짐승들의 장례식이 이렇게 바뀌었구 나 긴 차량행렬이 곧 조문행렬이었다 시체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도 소 용없다 자동차가 질주할 때마다 태어나는 바람이 고양이와 토끼와 개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며칠이고 자유로를 뒹굴면서 살점을 하나하나 내던지는 고양이 아닌 고양이 개 아닌 개 토끼 아닌 토끼인 채로 하 루하루 하루하루 석양만이 얼굴을 붉히며 운다 자유로를 달려 출근하는 시인에게 거의 매일 반복되어 목도되는 `로드킬`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강가로 물고
시
등록일 2017.03.27
게재일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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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가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다 돋아나고 있다, 가슴에서도 피어나고 있다 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한번도 채우지 못한 목마름의 샘을 자작나무가 틔우고 있다 자작나무가 나를 보고 있다 내가 자작나무를 보고 있다 자작나무가 자작나무를 낳고 있다 구겨져서 납작하게 눌린 나무가 잎사귀에 피어서 주름들이 지워지고 있다 내가 자작나무의 무릎 위에 앉아 있 다 이 시는 가슴 아픈 서사가 바탕이 되어 있다. 죽은 형의 어린 아이를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자작나무는 순정한 어린 조카를 지칭한다. 이제는 그 아이가 제법 커서 시인의 무릎 위에 앉아 있고 시인은 그 아이에게서 안식과 생명의 힘을 느끼고 있다. 자작나무의 어린 잎사귀가 피고 주름이 지워지는 것처럼 이 아이의
시
등록일 2017.03.26
게재일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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