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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날 오후 벚나무 꽃그늘 돗자리 위에서 모로 누워 자는 아내의 눈주름을 본다 햇볕도 그늘을 만들고 꽃나무도 그늘을 거느리는 걸 보면 아내에게도 그늘이 많았을 것이다 꽃나무 가지에 앉았던 바람이 깃을 치자 눈주름 위에 음표로 내려앉는 꽃잎 몇 장 저녁이 와서 노을 한 폭 개어다 덮어주는데 낡은 몸에서 오래된 풍금소리가 터져나온다 이른 봄날 꽃나무 아래 잠든 아내의 눈주름을 보고 시인은 힘들고 어려운 생을 살아온 그녀의 시간들을 느끼고 있음을 본다. 별과 나무도 그늘을 만들지만 아내의 눈주름은 그녀가 건넌 가난과 시련을 견딘 훈장과도 같은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한 생을 살며 서서히 낡아가는 그녀에게서 오래된 풍금소리가 난다는 것은 그녀의 성숙되고 깊은 생의 향기 같은 것이라고
시
등록일 2017.06.20
게재일 20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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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 같았던 것들이 밀리고 밀리면 동쪽 변방의 호숫가 어느 오래된 나무 지나가는 물새가 잠시 해를 가리는 동안 새 혓바닥만한 버들잎이 한 몸 떨어진다 한순간 숨을 멈추는 오전이었다 천지간에 해일처럼 살다가 막 지워진 파문에 꽂혀 끝없이 죽음을 타전하는 작은 잎 투명한 경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 호수에 그늘을 드리운 버드나무들의 반짝이는 오늘은 얼마나 평화스러운가 잠시 흔들린 수초들의 그림자가 다시 꼿꼿해지고 수면은 명경지수(明鏡止水)로 봄날이 가는데 흐린 물바닥에선 지붕이 날아가고 전신주가 뿌리째 뽑히고 더 깊은 물 속에선 거대한 별똥이 휙 제가 지나온 길을 손가락질하며 사라졌다 강릉 경포호수의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을 보여주면서 호수의 표면 뿐만 아니라 호수 속의 세계에 대한 깊은 사념을 그려
시
등록일 2017.06.19
게재일 201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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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누군가를 담고 살아가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기에 젊은 날엔 그대로 하여 마음 아픈 것도 사랑의 아픔으로만 알았습니다 이제 그대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냅니다 멀리 흘러가는 강물에 아득히 부는 바람에 잘 가라 사랑아, 내 마음속의 그대를 놓아 보냅니다 불혹, 마음에 빈자리 하나 만들어놓고서야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놓고 기다리는 일이어서 그 빈자리로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어서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야 나도 알게 되었나 봅니다 흔히 사랑의 본성은 소유고 독점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비우고 보내는 것이라 한다. 불혹의 나이에 들면서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고 있는
시
등록일 2017.06.18
게재일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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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한 장의 필름으로 분리되어 판독기에 걸려 있다 검고 희멀건 채색에 담긴 앙상한 늑골들의 빗살 구조 그 중심부로 휘어져 내린 척추 골반은 육중한 내 육신을 힘겹게 지탱하며 예까지 왔다 한 번도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이 나이까지 용케 버티어 왔다 문득 낯선 사람이 불을 끈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내 몸은 감춰지고 젊은 사나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최후의 심판을 준비한다 나약해진 내 의식은 두려움에 졸아들고 생명이란 것이, 육체란 것이 내 의지로부터 이렇게 쉽사리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걸까? 그의 논고가 신(神)처럼 무서워진다 혹시나 뻥 뚫린 허파, 퉁퉁 부은 간덩이가 안막을 덮어 오는데 창백한 벽면을 타인처럼 바라본다 그곳엔 선고를 기다리는 내 뼈들이 기도처럼 걸려 있다 건강검진을 받고 그 결
시
등록일 2017.06.15
게재일 201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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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기쁨의 바다 설렘의 바다 그리움의 바다 슬픔의 바다 바다, 집중하는 바다 바다를 잊은 바다 유정한 바다 걱정의 바다 격정을 잠재우는 바다 바다, 사랑하는 가슴에 닿는 바다 천 갈래 만 갈래 심사에 닿는 바다 바다. 내가 보는 바다 그도 보는 바다 바다를 통해 그를 보는 바다 그를 통해 바다를 보는 바다 바다, 베란다의 주인이 커피를 마시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리움 사람을 그리는 바다 커피를 마시거나 그리거나 그리운 사람을 그리는 베란다의 주인을 그리는 바다 바다를 여러 경우로 호명하면서 점점 심화시켜 나가는 반복과 점층의 시작법이 새롭다. 기쁨과 설렘과 그리움과 슬픔이라는 마음의 빛깔을 나열하면서 시인의 인식은 우리의 감정을 다양하고 더 깊게 확장시켜나감을 본다. 그리움의 대상이 어느 틈에 하나가 되
시
등록일 2017.06.14
게재일 201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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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안 돼, 나는 그 거리를 받아들일 수 없어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몸부림친다 동백꽃에서 패랭이꽃까지 가로수에서 산마루까지 집 현관문에서 작업장까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는 내 몸속의 아득한 거리 교도소의 사이렌 소리처럼 떠오를 때마다 나는 기침을 그치지 못한다 세상이 수월히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거절과 배제의 쓰라린 아픔을 견디는 것에서 시인은 더 나아가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해 기침을 한다. 기침을 하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가치와 의미를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주변이라고 여기고 있는 거리에 불을 붙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인식에 깊이 동의하고 싶다. 자기 자신이 세상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라는
시
등록일 2017.06.13
게재일 201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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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바다를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파도 또한 정면으로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나는야 고래잡이 선장 갈매기 나르고 술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이 곳에서 어찌하면 독주(毒酒)를 작살을 먼 바다를 이길까 하다가 그리하여 비틀거리는 내 걸음을 게의 옆걸음으로 슬쩍 바꿔보는 것이다 오 게가 간다 집게발을 높이 올리고 거품을 날리며 눈을 내놨다 감추었다 하면서 옆걸음으로 바다를 비껴서 이 시에 나오는 고래잡이 선장은 H 멜빌의 `백경`에 등장하는 에이햅 선장과는 다르다. 독주와 작살과 바다를 이기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용감한 선장이 아니다. 시인은 그런 상황에서 자기를 빼내어 갯벌을 산책하는 산책자로 변신하며 유쾌한 방랑자가 됨을 볼 수 있다. 게의 옆걸음으로 집게발을 올리고 바다를 비껴서는 모습에서
시
등록일 2017.06.12
게재일 2017-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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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하늘 위로 올라간다. 나는 지금 천국엘 간다. 어릴 때 동네 할머니들은 꽃상여를 타고 갔는데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다 하늘이 가까운 아파트 17층 ( 중략) 가끔 하늘에 달을 쏘아 올린다 몸뚱이 한쪽이 베여 걸리는 달 누군가의 영혼을 싣고 비행기가 더 깊은 하늘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버튼을 그곳까지 눌러보지만 엘리베이터는 미루나무보다 조금 높은 곳, 17층까지만 나를 올려다 놓는다 시간의 컨베이어가 돌고 있다 포장을 끝낸 과자 봉지처럼 어느 지점에서 나는 그렇게 툭 떨어질 것이다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음을 택하는 청소년의 상황과 그의 심리를 떠올리게 하는 시다. 어쩌다 이런 가파르고 아픈 선택을 했을까.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한 그의 생각 속에는 밤하늘 가득 쏟아지는 별빛도
시
등록일 2017.06.11
게재일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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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물결에 흠이라도 날까 어루만지듯 곱게도 물을 떠서 낯을 씻는다 물낯이 아버지의 낯을 그대로 닮는다 얼굴 세 번 닦고 오른손으로 앞뒷목을 두 번 쓸어내는 아버지, 그 세수법을 나는 안다 사소한 일상의 일들을 모티브로 삼아 쓴 이 시에서 우리는 시인의 따스하고 긍정적인 생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할아버지 적부터 아버지, 자신에게 이어지는 사소한 몸짓인 세수법을 소개하면서 가계에 이어지는 지울 수 없는 유전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가만히 미소 지어 보는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7.06.08
게재일 201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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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묘한 얼음꽃이 천 도의 불길을 견디고 피어난 진정 화염의 피조물인가 날카로운 슬픔이 살짝만 부딪혀도 쉽게 부서지는 것을 보면 누군가 그 속에 사랑의 절정을 새기려 했음도 금방 알겠다 불과 얼음이라는 상반된 물질들의 지난한 결합으로 탄생하는 것이 유리다. 자신의 속성과 전모를 다 포기해야 이를 수 있는 법열(法悅)의 경지라면 지나친 말일까. 그만큼 힘겹고 어려운 결정체라는 뜻이다. 집착에 사로잡혀 자신을 벗어버리고, 던져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에 유리라는 결정체 얘기로 회초리를 대는 시인 정신을 본다. 비움과 희생, 배려의 정신으로 소유와 집착에 갇혀있는 우리를 비우고 버릴 수 있어야 눈부신 유리같은 새로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시
등록일 2017.06.07
게재일 201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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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 이 동네의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프도록 아문 길이었다 (----)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비탈길을 힘겹게 밟고 올라가던 느린 발소리와 끙, 하던 안간힘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그만 길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시 속에 나오는 조성오 할아버지는 동네의 `길`이었다. 동네 노인들에게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 주며 그들을 여러 가지 일들로 이어주는 길이었다. 평생 남들을 위한 배려와 섬김의 정신으로 아름다운 삶의 자국을 남기고
시
등록일 2017.06.06
게재일 201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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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그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끝까지 들어가 길어 올린 꽃송이 붉은 저 입술 바라만 보고 있다가 홀로 홀로 조용히 떨어뜨린 꽃잎들 고요히 떨어뜨린 꽃잎들 다가가 옷깃이라도 스치며 와르르 쏟아지는 시인의 많은 시에서 발견되는 것은 가려진 것들, 나약한 것들, 소외되어 빛을 받지 못한 것들에 대한 세심한 접근과 말 걸기 혹은 섬세한 기록이다. 기록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본질과 아름다운 생명력을 집어내어 정갈한 언어의 옷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짙붉게 우리 곁으로 왔다가 쓸쓸히 떨어져 떠나는 동백꽃, 그 곱고 아쉬운 여정을 본다.
시
등록일 2017.06.04
게재일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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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이 피어 있었다 강둑 위에도 들판에도 산벼랑에도 안개처럼 자욱이 피어 있었다 형산 갔다 오던 길 검문소 바리케이드 밑 아스팔트를 가리고 솟아나던 힘꽃 나는 놀라지 않았다 우리들 가장 가까이 피어 우리들 가장 머리 보이던 꽃 마침내 가슴마다 불을 질러 저 땅 끝까지 달려나갈 우리 모두 스스로 피어나는 들꽃이므로 들꽃처럼 살다간 시인 김정구의 세상을 바라보는 깊은 눈빛과 마음결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말솜씨는 그리 매끄럽지 못하고 외모도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가슴은 뜨겁고 그의 필치는 섬세하고 유려했다. 그의 순박한 인간미와 섬세한 감성, 무서운 정직성의 바탕 위에 쓰인 이 시는 어떤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고 꼿꼿이 되살아나는 강한 들꽃의 생명력과 의지를, 그렇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의 강단진
시
등록일 2017.06.01
게재일 20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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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도 투자한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먼 안녕과 종족의 번성을 고려하여 충분한 나뭇잎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일부는 바람이 와서 먼저 따버리고 일부는 벌레가 와서 갉아 먹을 것을 고려한 확률까지 적용한다 이래저래 용하게 햇빛과 잘 융합하여 최소한의 생계에 필요한 나뭇잎이 100개라면 그는 몇 배를 더 달기 위해 잠을 줄이고 동분서주 사방으로 가지를 친다 날마다 햇빛이 잘 드는 쪽으로 몸을 틀며 꽃을 갈무리하고 열매를 건사한다 착한 자본의 순환이다 나무의 투자법과 사람의 투자법을 생각하게 하는 시인의 현실인식에 깊이가 느껴진다. 나무의 투자법은 자연 그대로다. 결코 무리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투자는 어떠한가. 때로는 불법을 자행하고, 심지어 남의 것을 빼앗아서 부
시
등록일 2017.05.31
게재일 20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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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지는 섬진강 따라 쌍계사 십 리 벚꽃 길 가지마다 층층 그 꽃그늘 아래 퍼질고 앉아 펑 펑 울고 싶은 봄날 옥색 저고리 다려 입고 꽃놀이 한번 가고 싶다던 당신, 어디 있나요 경남 하동군 지리산 자락의 화개장터에서부터 시작되어 위쪽 쌍계사까지 펼쳐지는 십 리 벚꽃길이 있다. 시인은 이 벚꽃 터널을 걸으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 살아생전 옥색 저고리 곱게 다려 입고 봄꽃놀이 한 번 가시고 싶어 하시던 어머니, 어쩌랴. 이미 이 땅에서 뵐 수 없는 가슴 아픈 마음을 그리고 있다. 쓸쓸히 지는 꽃잎으로 떨어져 가신 어머니가 그립고, 가슴 아픈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7.05.30
게재일 2017-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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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로 이웃해 산다고 갓 찧은 햅쌀 문간에 두고 간 앞집 아지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찹쌀떡 제일 맛있는 고놈 한 골목 산다고 들고 온 정곡 아지매 익은 된장, 따끈한 팥죽 막 담근 김치 한 보시기 평상에 고이 놓고 간 지환이 할매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 골목 은행나무는 빛나는 것들만 바닥에 깔아 여기가 세상의 중심인 양 표시를 한다 시골에서 시를 쓰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인의 순박하고 따스한 심성이 잘 나타난 시다. 세상의 중심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집중된 도시, 삭막하고 인간미가 없는 서울이나 대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없이 살아도 이 시에 나오는 아지매 할매들처럼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고자하는 따스한 마음, 그 순수하고 정겨운 마음들이 오순도순 모여사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 아닐까. 잔잔한
시
등록일 2017.05.29
게재일 20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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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주검처럼 너풀대는 곳 서 있기만 해도 반평생 용접공의 불똥 빵꾸 난 몸 구멍마다 고름처럼 피리 소리가 새어나오는 곳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목매달아 죽은 시신의 얼굴이 편안했던 곳 죽은 자와 산 자가 연대하는 목숨의 바닥이자 고공인 크레인에서 인간의 궁극을 운다 인간의 궁극은 무얼까. 죽음과 그 죽음을 바라보며 눈시울과 가슴 적시는 슬픔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고공 크레인에서 투쟁하다 죽은 노동자 김진숙을 제재로 쓴 이 시에는 소외되고 열악한 생의 조건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연민이 녹아 있다. 이 땅의 민초들, 노동자, 농민, 이주노동자들의 힘겨운 삶과 질긴 생명력과 애환을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7.05.28
게재일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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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나 아이들 가슴에 집 지어 살고자 하였으되 어떤 집을 지어왔는지 알 수 없다 그로부터 10년, 20년이 지난 지금 어느 날 낙엽이 그리운 창 너머 세상 어디에서 폭닥한 목도리 같은 것에 쌍여 날아온 꽃엽서 한 장 뒤따라 걸려온 전화에서, 어린 딸아이 울음에 섞여 함께 울먹이는 아득하게 그리운, 그리운 목소리 같은 것 세상을 바꾸겠노라고, 아이들을 이 땅에 바로 세우겠노라고 뛰어다니던 젊은 날의 나를 닮은 너희들의 참 아름다운 웃음과 힘찬 목소리 같은 것들이 때때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하지만 알 수 없다 아직은, 너희를 온전히 떠나기 전에는 내가 정말 너희 가슴에 어떤 집을 지어왔는지 그 집, 세월보다 먼저 희미하게 스러져 지금은 모습조차 알아볼 수 없는 낡은 집은 아닌지 교육현장에서 참다운 인간
시
등록일 2017.05.25
게재일 201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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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 속에 나는 덜 익은 꿀처럼 담겨 있다 문이 열리면 후후룩 흘러내릴 것처럼 이 방 옆에 또 다른 방들이 붙어 있다는 게 마음 놓인다 켜켜이 쌓인 육각(六角)의 방들을 고통이 들락거리며 매만지고 간다 시인이 말하는 육각의 방은 무엇일까. 시의 모티브가 되는 육각의 방은 벌집이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 공간을 벌집에 비유하고 있다. 벌들이 종일 날아다니며 꽃물을 찍어와 쌓아두는 벌집의 꿀은 시인의 내면에 고이고 고인 고통이다. 우리의 한 생이 쌓고 가두어 둔 달콤한 꿀과 같은 소유들이 결국은 고통의 집적물이라는데 깊이 공감이 가는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7.05.24
게재일 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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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면 나무와 사람들이 다를 바 없고 풀과 내가 다를 바 없네 내 외로울 때 풀들은 내 손등을 비비고 사람들이 노여워할 때 나무는 삶의 무게와 빛깔을 일러 주네 내가 사람들에 섞이지 않고 풀이나 나무가 되었으면 풀과 나무와 사람을 포근히도 안은 산 그의 언어를 나는 아무래도 다 읽지 못하네 필자의 고등학교 은사이기도 한 시인의 겸허하고 청빈한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시다. 우주 만상의 하나로서 한 생을 살아 가는데는 나무나 풀이나 사람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늘이 준 천수를 누리며 서로가 섞여서 자연스레 살아가는 것이다. 산에 오르며 시인은 더 가지려고 아옹다옹하는 우리네 인생을 햇살 받고 비바람 눈보라를 견디며 살아가는 나무나 풀에 견주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꽃 피고 새 잎을 내
시
등록일 2017.05.23
게재일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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