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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면 나무와 사람들이 다를 바 없고 풀과 내가 다를 바 없네 내 외로울 때 풀들은 내 손등을 비비고 사람들이 노여워할 때 나무는 삶의 무게와 빛깔을 일러 주네 내가 사람들에 섞이지 않고 풀이나 나무가 되었으면 풀과 나무와 사람을 포근히도 안은 산 그의 언어를 나는 아무래도 다 읽지 못하네 필자의 고등학교 은사이기도 한 시인의 겸허하고 청빈한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시다. 우주 만상의 하나로서 한 생을 살아 가는데는 나무나 풀이나 사람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늘이 준 천수를 누리며 서로가 섞여서 자연스레 살아가는 것이다. 산에 오르며 시인은 더 가지려고 아옹다옹하는 우리네 인생을 햇살 받고 비바람 눈보라를 견디며 살아가는 나무나 풀에 견주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꽃 피고 새 잎을 내
시
등록일 2017.05.23
게재일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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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결국 피할 수 없는 싸움인가 막걸리에다 수북이 씹히는 콩 꿈도 꾸지 못했던 한약재 이건 내 즐거운 식단이 아니다 나는 이제 풀을 기대할 수 없나 분수에 맞지 않게 배불리 먹고 소화시킨 건 근육 같은 전의(戰意) 세상이 받아주면 싸움도 죄가 되지 않는 곳으로 뿔을 단단히 세우고 뚜벅뚜벅 걷는다 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온전해지는 세상 지고 나면 길고 긴 밤이 온다 무너뜨리는 상대도 알고 보면 내일 또는 먼 훗날의 내가 아닌가 청도로 가는 길목마다 수북이 돋아난 적개심 무엇을 위하여 싸워야 하나 소싸움으로 유명한 청도로 가면서 소싸움을 빌려 인간의 삶을 말하고 있다. 싸움판에 나선 소야말로 오직 승리만을 위해 단련
시
등록일 2017.05.22
게재일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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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자는 너무 커서 앉기에 너무 커서 의자에 앉는 사람을 파묻어 버리거나 제 위에 앉는 사람을 자기 위(胃)로 먹어버린다 시방도 어떤 이가 좋아라, 해롱대며 깜냥 안 맞는 자리에 겁 없이 올라가서 세상에! 가엾게끔 목 내놓고 앉았네 세상의 풍조를 비판하는 세태 풍자시다. 너무 큰 의자는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를 일컫는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아 으스대고 있는가. 그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굽실거리고 아첨하는 데 취해서 제 목을 노리고 다가오는 올가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시인의 현실인식을 직접적으로 펴 보인 시다.
시
등록일 2017.05.21
게재일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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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비에 도시가 박살났다 유리창 속에 물구나무선 도시 그림퍼즐처럼 박살난 도시 위로 어지럽게 피던 물꽃들 자취 없이 지자 금세 새 유리창을 갈아 끼우는 강물 강물 속으로 천천히 기차가 지나간다 가로등은 물고기들의 밤길을 위해 물 속에도 등을 켜고 다시, 붉은 네온 띠의 다리 위에선 유리창 깨지는 소동에 놀라 물꽃 속으로 흩어졌던 사람들, 물고기들 집중호우 때문에 비에 잠긴 도시의 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시인은 비에 잠긴 도시를 깨어져 박살난 유리도시로, 비에 젖은 사람들을 물고기들로 표현하고 있다. 깨어진 유리창을 갈아 끼우고 도시는 금방 복원되고 새로이 축조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휴머니즘이 사라져가는 세상을 향한 아쉽고 안타까운 심정이 시 전체에 깔려있다.
시
등록일 2017.05.18
게재일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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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의 부지런한 나무들이, 풀들이 돌들이, 집들이, 길들이 제각각의 글자를 쓰고 있다 어느새 방대한 책이 되어버린 봄길 아마도 맹인들만이 무사히 이 봄을 건널 수 있으리 함부로 아름답다 그러지 말게! 온갖 사물들도 이제 공부하고 있으니 봄이 온 자연에는 생동하고 움트는 소리와 연두색 새순들의 빛깔이 어우러지는 한 권의 책이라는 시인의 설정이 재밌다. 자연이 내뿜는 순연한 생명력은 제각각의 글자를 쓰고 있는 것이리라. 봄길을 걸으면 이러한 풍경들에 경이로운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게 되는 환희에 빠져들게 된다. 시인은 자연물들이 제각각 공부하고 책을 저술하는 것을 즐기며 봄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5.17
게재일 201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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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날개를 다는 것만은 아니더군요 눈부시게,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지는 해 아래로 걸어가는 출렁이는 당신의 어깨에 지워진 사랑의 무게가 내 어깨에 어둠으로 얹혀옵니다 사랑이 날개를 다는 것만은 아니더군요 사랑은 사랑은 때로 무거운 바윗덩이를 짊어지는 것이더이다 사랑은 밝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시인은 사랑하는 일들의 힘겨움과 고난을 말하고 있다. 사랑은 눈부시고 날개를 다는 것만은 아니고 붉은 노을을 밀어내며 다가오는 어둠이기도 하고 무거운 바윗덩이를 짊어지는 것이라는 시인의 고백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어둠 속을 무거운 바윗덩이를 짊어지고 꿋꿋이 걸어가는 것이 참다운 사랑이 아닐까.
시
등록일 2017.05.16
게재일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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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빗줄기가 정원에서 자라고 있다 걸어두었던 가지마다 촉촉이 젖어 반짝이며 꽃이 되었다 지난봄에 흩날리던 벚꽃이 비가 되어 내리리라 생각했을 때 구르다가 스스로 깨치고 꽃 냄새를 피웠다 빗속의 빗줄기 팽팽히 당겨지면 이 긴장감, 나의 목숨에 생기가 도는 움츠렸던 겨울의 답답함 속으로 내리는 봄비는 많은 것을 열어준다. 생명과 희망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다. 시인의 목숨에 생기가 돌게 하고 열리는 삼라만상과 소통하며 환희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이다. 촉촉히 젖어 반짝이며 꽃이 되게 하고 봄꽃세상, 희망세상을 열어젖히는 것이 봄비다. 시인의 눈도 마음도 영혼도 어떤 예감으로 일어서는 봄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음을 본다.
시
등록일 2017.05.15
게재일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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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집에는 늙은 개 한 마리가 낡은 마당을 어슬렁거릴 뿐 후박나무 그림자가 길어져도 문 여닫는 소리가 없다 바람이 혼자 산다 바람처럼 드나드는 그녀는 발소리도 말소리도 없다 바람을 먹고 사는 바람꽃이 찾아오는 날은 그녀를 떠나 있던 물 긷는 소리도 오고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온다 헌 집은 소리들, 미세한 소리들로 차고 기운다 후박나무 그림자가 더욱 길어지고 그녀는 후박나무 아래서 바람을 더듬는다 바람의 여린 뼈가 만져진다 그녀는 주름투성이의 입술을 문다 후박나무 잎새들이 검게 변한다 헌 집이 조금씩 산기슭으로 옮겨간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그녀의 새집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후박나무 그림자는 안다 시간이 조용히 다녀간 헌 집 늙은 개 한 마리 봄볕에 졸고 바람꽃 찾아와도 물 긷는 소리 들리지 않는다혼자 사
시
등록일 2017.05.14
게재일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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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성리의 밤하늘엔 별이 쏟아진다. 저마다 전설을 간직한 별들이 망성리에선 지천으로 깔려 있다. 여름밤 강가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면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별들을 망성리 하늘에선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밤마다 강물에 뛰어드는 별, 길게 불붙은 세상의 유성들은 망성리에서 몸을 푼다. 누구나 가슴에 별을 품고 있듯이 망성리의 별은 모두 사람 하나씩 품고 있다. 자신의 별을 보고 싶은 사람은 망성리에서 이름 없는 별들 중에 유난히 가슴 파고드는 별 하나 만나게 된다. 별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별을 품어 망성리의 밤은 기다림의 밤이다. 경남 울주에 있는 망성리라는 곳은 유난히 별을 많이 볼 수 있는 깨끗한 대기의 공간이다. 탈속의 공간이고 천상의 공간이다. 낭만과 신비의 공간이다. 인간 중심의 공간이 아니라 자연의 공
시
등록일 2017.05.11
게재일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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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를 보다 진실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요즘 들어 진실이란 말이 진실로 좋다 정이 든다는 말이 좋은 것처럼 좋다 진실을 안다는 말보다 진실하게 산다는 말이 좋고 절망해봐야 진실한 삶을 안다는 말이 산에 든다는 말이 좋은 것처럼 좋다 나무그늘에 든 것처럼 좋다 진실이라는 말이 좋다는 것을 유사한 의미의 다른 말을 물고 강조하는 재미난 작품이다. 진실이 좋다는 것을 전제해놓고 진실과 연관된 여러 경우를 동원하여 긴밀하게 결합시키며 재차 강조하면서 진실의 의미에 대해 깊이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5.10
게재일 2017-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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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다가 집안에 우거진 잡목들을 캐냈다 잡나무를 마당에 던져 말리다가 버드나무 껍질 벗겨 코뚜레 만들었다 매끈매끈 벗겨진 버드나무 가지 안쪽으로 힘주어 밀면, 둥글게 휘어졌다 칡덩굴과 구리줄 칭칭 감아 코뚜레 모양을 둥글둥글 잡았다 노간주나무 코뚜레도 물푸레나무 코뚜레도 아닌 버드나무 코뚜레를 세 개나 만들어 일터 사무실 입구에 걸어두었다 그러고는 까마득히 잊었으나 첫 번째 만든 코뚜레에 걸려든 서울처녀한테 장가를 들고 두 번째 만든 코뚜레에 걸려든 강변 빈집을 거저 얻었다 그리고 마지막 코뚜레에 스스로 걸려든 내가, 고분고분 얌전해져 있었다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코뚜레를 만드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전원적인 분위기의 시다. 그러나 시인의 인식은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코뚜레는 구
시
등록일 2017.05.09
게재일 20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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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남녀의 애달픈 사랑인가 붉게 타오르는 빛이 보이지도 않고 페로몬 향이 나는 사랑의 냄새도 없는 것이 몸과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사랑하는 이의 속을 활활 태워버리고는 천년이 지나 발견된 미라에도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을 지독한 사랑의 흔적 같은 방사능 무한한 에너지를 준다고 믿고 있는 원자력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하는 작품이다.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온다. 아주 광범위하고 오랜 시간 동안 모든 생명체들을 무력화시키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 방사능은 시인의 말처럼 마치 지독한 사랑의 흔적 같은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는 시인의 연작시 `방사능 시대`는 갈수록 원자력발전 의존율을 높여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시
등록일 2017.05.08
게재일 201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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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오라! 손짓한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풀과 꽃을 향해 기쁨으로 전 속력을 다해 질주했는데 느닷없이 앞을 가로막고 선 보이지 않는 유리창 유리창에 반사된 허상의 유혹에 목숨을 잃어버린 새 죽은 새 위로 유리창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날아가는 또 한 마리의 새 저 새가 날아가는 곳은 어디일까? 달리던 환한 길 앞에서 갑자기 나는 더듬대고 머뭇거린다유리창에 반사된 허상의 유혹에 부딪혀 목숨을 잃은 새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실은 인간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얼마나 자주,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허상의 세계에 유혹되고 함몰되어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시인이 말하는 `한 길`이 바로 우리가 설정한 허상의 길이다. 그래도 무모함과 그 무모함이 가져올 엄청난 비극 앞에서 멈추고 머뭇거
시
등록일 2017.05.07
게재일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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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육신은 부처 환락의 거리는 법당 고통의 신음은 경전 이 마음 떠나서 어디서 구할까 이 길을 떠나서 어디서 구할까 아아, 이 피고름 물컹한 고깃덩이, 이 육신을 떠나서 어디서 무엇을 구할까 이 치욕과 분노와 욕망을 떠나서 내 고통 나의 슬픔 떠나서 무엇을 구할까 평생을 노동현장에서 치열한 투쟁의 삶을 살아가면서 시를 써온 시인의 솔직한 고백이 나타난 시다. 행복과 미래를 열망하며 길을 떠나는 자는 치욕과 분노와 욕망의 현재에 밀착해 지나온 현재들을 계속 돌아보며 반성과 새로운 모색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채찍질하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5.03
게재일 2017-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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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니라고 기죽지 마라 눅눅한 습지를 지탱해온 그늘과 불임의 시간들 뭉쳐 촘촘히도 피었구나 너를 다녀간 세상의 모든 음지가 다 독이 되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 저 불온한 사람의 손길이지 이어지는 혐의들 그리운 체온 감지하며 늑골 아래서 저토록 푸르게 꽃이 될 수 있으니 내 스러져 썩은 후에도 다시 이녁의 한 줌 허리에 깐깐한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습지에 번지는 곰팡이를 시인의 눈은 그냥 간과하지 않는다. 비록 음습한 곳에 번지는 세균덩어리지만 그 속에도 생명이 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워올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의 주변에도 이러한 인생들이 있다. 비록 주목받지 못하고 그늘 속에 살아가지만 최
시
등록일 2017.05.01
게재일 201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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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산수유 꽃물 든 산을 지방천방 들뛰며 혼령을 깨워 사향노루 목을 따서 피를 마시고 꿈틀꿈틀 휘돌아 뭉쳐진 산이 벗어도 벗어도 몸을 감아와 양지에서 맥쩍게 술을 마시고 노루를 베고 누운 산 너머 하늘 헤헤롱 아지랑이 흥건한 자색 구름 진달래 산수유 꽃물 든 꿈에 노루는 자꾸 울며 숨을 달래고 봄이 무럭이 번진 산의 풍경을 시인은 우리의 몸에 비유해서 시를 풀어가고 있다. 산은 진달래 같은 화사한 봄꽃뿐만 아니라, 노란 빛의 산수유꽃을 피우고 노루의 피를 마시며 계절의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본다. 이맘때쯤의 봄 산은 꽃물에 젖고 진한 생명의 수액에 젖는 것이다. 시인은 그런 봄산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다.
시
등록일 2017.04.30
게재일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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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피어난 꽃이었기에 그리도 마음 쓰셨던 어머니 붙잡고 기는 갈망 속에서 이 길을 선하였을 때 이미 그 강은 어머니의 눈물이었습니다 세월속에 작아지는 그 모습 푸른 하늘에 한 그루의 나무에 북두칠성에 새겨 보지만 그날의 봄은 가로등처럼 멀어만 집니다 어머니 가시고 다시 맞는 봄은 시인에게 엄청난 그리움의 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머니와의 수많은 추억이 되살아나는 봄날 시인은 이승과 저승의 건널 수 없는 강, 그 아득한 거리를 느끼고 있다. 꽃은 피고 따스한 생명의 계절이 왔지만 영원히 볼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시다.
시
등록일 2017.04.27
게재일 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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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바위 위에 엎어져 낮잠 들었던 숙이 이모 입이 대숲 쪽으로 돌아갔다 몸 절반에 딱딱한 돌이 치고 들어 일생 그 무게를 끌고 다닌다 가랑이에 바람 들어 떠나버린 사랑 기다려 빈 사랑채 품고 건너는 반평생 낡은 몸 한쪽 아직도 피가 돌지 않는 이모 깜박이지 못하는 한쪽 눈으로 바라보는 절반의 세상 기울어진 가을 저녁 근처 백화점에서 나는 평평한 바위를 보았다 온몸에 맥반석 기운이 스며들어 피를 돌리고 몸에 안정감과 평화를 주며 잡스러운 기운들 막아준다는 꽃돌 침대를 숙이 이모가 버린 세상의 한 쪽을 뒤집어 쓴 그 희한한 바위 덩어리를 보았다 필자의 외가가 있는 구룡포에 가면 박바위라는 곳이 있다. 말목장성으로 가는 길에 있는 바위벼랑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 얽힌 가족사와 함께 필자의 일상이 섞여 있는 시다.
시
등록일 2017.04.26
게재일 2017-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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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왠지 꽃속으로 빨려들 것만 같다 아니, 빨려들어가고 싶다 붉고 부드러운 원형의 문을 지나 하이얀 빛으로 자리 잡은 수술과 암술의 세상에 꽃가루 한 점이 되어 자리를 잡고 싶다 가던 발 멈추고 나팔꽃을 가만히 바라다보고 있으면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산들산들 나팔꽃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그러면 불현 듯 지금의 나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꽃 속으로 쑤욱 빨려들어가 그만 나팔꽃이 되고만 싶다 나팔꽃에 매혹되어 꽃과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꽃가루 한 점이 되고 싶은 소멸의 충동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멸과 함께 또 다른 공존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높은 시안을 발견할 수 있다. 사소함과 통하는 가벼움과 미미함이라 할지라도 소통을 통한 공존을 염원하는 깊은
시
등록일 2017.04.25
게재일 201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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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동네 썩 들어서면 첫째 집에는 큰아들은 백령도 가서 고기 잡고 작은 아들은 사람 때려 징역에 들락날락 더 썩을 속도 없는 유씨네가 막걸리 판다 둘째 집에는 고등고시한다는 큰아들 뒷바라지에 속아 한 살림 말아올리고 애들은 다 초등학교만 끄을러 객지로 떠나보낸 문씨네 늙은 내외가 점방을 한다 셋째 집은 마누라 바람나서 내뺀 지 삼 년째인 홀아비네 칼판집 아직 앳된 맏딸이 제 남편 데리고 들어와서 술도 팔고 고기도 판다 넷째 집에는 일곱 동생 제금 내주랴 자식들 학비 대랴 등골이 빠져 키조차 작달막한 박대목네 내외가 면서기 지서 순경 하숙 쳐서 산다 다섯째 집에는 서른 전에 혼자된 동네 누님 하나가 애들 둘 바라보며 가게를 하고 여섯째 집은 데모쟁이 대학생 아들놈 덕에 십년은 땡겨 파싹 늙은
시
등록일 2017.04.24
게재일 20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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