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린 날 흐린 우산을 쓰고 흐린 케이크 가게를 찾는다 온통 흐린 크림으로 온통 흐린 꽃으로 무지 흐린 향으로 맛을 낸 우울 케이크를 혀로 핥아먹는다 가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이 조심조심 스며든다 우울이 우물우물해진다 말랑해진 우울과 팔짱을 낀다 우울의 겨드랑이를 만지며 우울과 입맞춤을 하며 우울과 이마를 맞대며 우울히 웃는다 와 사이에 서서 달콤달콤 이야기를 나누고 와 을 주머니에 넣고 명랑명랑 다시 거리로 나선다 시인은 우울이라는 심리현상을 거부하거나 그것 때문에 주저앉고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우울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길을 찾는다. 시인은 그 길을 우울과 함께 하고 그 우울을 삶의 한 조건이거나 여건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어울리면서 삶의 변주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비단 우울뿐만 아닐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7.10
게재일 2017-07-11
댓글 0
-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져 물이 차오르는 밀물이 드는 조그마한 포구에서 시인은 인생을 느낀다. 포구에 정박한 두 배를 바라보며 시인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를 위로해주고 함께해주는 느낌을 받는다. 거센 물결이 이는 바다같은 우리네 힘겨운 인생길에서 서로의 상처를 위무해주는 아름다운 동행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7.09
게재일 2017-07-10
댓글 0
-
걷다가 사라지고 싶은 길을 따라 하늘 저편을 올려다보면 너무 투명해서 눈부신 바람이 깃털처럼 나부끼며 둥글어지는 것이 보인다 거기 앉아 있는 새는 햇살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햇살이 새 속에서 숨 쉬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지랑이처럼 아슬아슬하게 비껴 사라지는 저것들은? 너무 깨끗해 미칠 것 같은 하늘 끝에 잠자리 날개 같은 슬픔이 걸려 있다 푸르른 하늘이 너무 투명해서 풍덩 빠지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있다. 시인은 투명한 하늘을 보고 세상을 끝내도 좋으리 만큼 감탄하며 아름다운 슬픔에 빠진다. 그 아름다움은 오래 존재하지 않음에 슬퍼지고, 그 슬픔을 느끼는 우리네 인생도 오래 존재하지 못함을 느끼고 또 슬퍼지는 것이다. 투명한 슬픔은 어쩌면 황홀한 허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
등록일 2017.07.06
게재일 2017-07-07
댓글 0
-
낮아지는 수면 연못 큰방 벤치에서 바삭거리는 잠자리 날개를 집어 들었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자세로 한참 동안 절하던 잠자리였지 그동안 나는 나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지 그걸 잊고 살았지 잠자리 날개가 움찔할 때마다 내 몸으로 떨림이 증폭되어 펴졌지 이제는 오지 않아도 될 애인을 기다렸지 오래전에 요절한 추억을 기다렸지 먼지들이 더러운 물에 끌려가는 여름 한낮 그늘이었지 시의 처음에 나오는 수면은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매체다. 시인은 낮아지는 수면을 바라보면서 무심히 이어졌던 자신의 시간들을 바라보며 깊이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있음을 본다. 잠자리 날개의 움찔거림도 마찬가지,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계기를 제공하는 사물이다. 사느라고 바쁘고 무심했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자신에게로 돌아가 보는 진지한 시간
시
등록일 2017.07.05
게재일 2017-07-06
댓글 0
-
수 십 년 모래와 싸워 삽십 센티 자란 풀덤불 하나 귀입니다 덤불을 안고 끝없이 가야하는 모래톱도 바늘집 뒤지며 살아가는 전갈도 사막여우도 귀, 귀입니다 그래서 수만 년 전 얘기가 잘 들립니다 수만 년 후 목소리도 잘 들립니다 모래는 쪼개짐을 반복해 모래로 남고 그 모래들이 펼쳐져서 사막이 되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무한의 시간을 청각의 파동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본다. 소멸과 생성의 과정은 자연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무수한 사물과 자연의 세계가 이러한 과정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7.04
게재일 2017-07-05
댓글 0
-
술 안주로 먹으려고 사온 조개를 수돗물에 담그자 그것들 일제히 입을 다문다 몸 밖은 죽음 제 안의 어둠을 파먹으며 이승의 삶을 잠시 버티는, 그 불에 닿자 퍽 소리를 내며 다 놓아 버리는 온몸을 환히 열어 보이는 악착같이 잡고 있던 것이 생(生)이라는 암흑이었구나 조개를 구우며 시인은 새로운 깨달음 곧 사물의 존재론적 의미를 인식하는 생각에 이르고 있다. 조개는 다가오는 죽음에 저항하기 위해 입을 다문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암흑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빛이 아니라 또 다른 암흑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들 삶과 죽음의 이면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7.07.03
게재일 2017-07-04
댓글 0
-
이젠 그만 잊을 때가 되었다 싶은데 아예 병이 되었다 별 되었다 멀리서 미미하게 반짝거리는 청람빛 저물녘 거리 손바닥만한 창에 종이꽃 오려붙인 찻집 그 창문으로 얼비치는 깊고 검은 눈빛 내 눈과 마주치면서 얼른 고개 돌리던 가무잡잡한 소녀 긴 목덜미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반짝거려서 큰일이다 짧은 일정 속 만불사 관람뿐이었는데 절 바깥만 보고 왔으니 단단히 장체에 붙들린 셈이다 두고 온 중요한 물건이나 있는 것처럼 언젠가 다시 가야 할 곳처럼 문득문득 지도 펼쳐놓기 일쑤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지구 저편이 아니라 만 명 넘게 부처가 사는 별이다 티벳 여행 중 장체의 어느 골목길에서 시인은 영원의 시간을 느끼고, 그의 영혼을 붙잡는 어떤 마력 같은 것을 시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만불사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지만
시
등록일 2017.07.02
게재일 2017-07-03
댓글 0
-
시소에 앉아 건너편에 앉은 잠자리와 힘을 겨룬다 조금씩 다가갈수록 무거워지는 잠자리의 몸통 시소가 잠자리 쪽으로 기운다 대롱대롱 매달린 두 발을 흔들며 온몸을 뻗어 손가락을 내미는데 번쩍, 수많은 겹눈이 나에게 광선을 쏘아댔다 강철 잠자리의 비록 자연 속의 미물일지라도 나름의 무게가 있다. 존재의 무게는 소중하고 엄격하다. 어찌 잠자리의 무게를 무게라고 칭할 수 있으랴만, 분명히 그의 생명을 담아내는 그릇에는 무게가 있다. 시인은 존재의 가치 혹은 소중함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 세상 삼라만상이 자기만의 존재 가치 혹은 정중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소홀히 여기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을 품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7.06.29
게재일 2017-06-30
댓글 0
-
열 아홉에 집 떠난 소라게 한 마리 어젯밤 부엉이처럼 울었다 나이 쉰이 차도록 집 밖에서 떠돌다 문득 돌아오던 밤 그 소라게 따라 아버지의 고동을 벗어나려 나는 일만 번 쯤 문턱 드나들었다 그게 내 집인 줄 모르고 내 품에서 소라게 몇 마리 꿈틀거리는 줄 모르고 내 옆구리에 집게손이 자라면서 아버지는 가슴을 뚫어 유리창을 달았다 내게 처음으로 가을을 보여 준 것이다 그 가을이 마흔 번째 지나도록 나는 아버지의 고동 속으로 단풍잎만한 가을조차 물어들이지 못했다 오늘 아침 아버지의 고동에선 썩은 살 냄새가 풍긴다 내가 무사하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아니라 내 품속의 소라게가 무사하다는 뜻이다 소라게에게 소라는 생명의 요람이요 삶의 근거이기도 하다. 시인이 말하는 소라게는 자신을 포함한 자식이고 소라는 그들을
시
등록일 2017.06.28
게재일 2017-06-29
댓글 0
-
아리아나 호텔 뒷골목에는 밤만 되면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 이화장, 목련장, 동백장…. 사철 시들 일도 없고 봄여름 구별 없이 여기서는 일년 내내 염문처럼 만발한 꽃이 핍니다 (중략) 그 휘황한 헛꽃에 속아보고 싶은 그런 허공의 꽃들은 다들, 어둠 속에서 향기보다 지독한 불빛을 풍기나 봅니다 그래선지 밤만 되면 내 몸은 어디론가 불려가고 싶고 이화장, 목련장, 동백장…. 그 흐드러진 불빛 따라 나방처럼 퍼드득 날아들고 싶어집니다 밤마다 형형색색의 불을 밝히는 여관촌의 풍경을 보고 인간의 본능적 에로티시즘의 욕망을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는 시다.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는 여관들의 풍경은 이제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 화려한 불빛들 속에 내재된 현실적 도덕적 원칙을 벗어나 쾌락원
시
등록일 2017.06.27
게재일 2017-06-28
댓글 0
-
보이지 않는 것은 역시 보이지 않는다 밤은 깊다 살아도 알아도 서투른 곳 이 밤의 마지막 등불 끄고 침대로 간다 잠을 자려고 잠이 들면 보일까 보이지 않는 것은 한 때 지역의 포스텍에서 강의를 하셨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철학자이며 시인이었던 선생이 얼마 전 타계하셨다. 이 시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와 만나기란 얼마나 힘든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절실하고 끊임없는 욕망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이승을 떠날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궁구의 시간들을 보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모두의 운명적인 의문이고 숙제가 아닐까.
시
등록일 2017.06.26
게재일 2017-06-27
댓글 0
-
그녀를 실은 바람은 파도를 놓기 시작한다 파도가 해시시 곤두박질치는 동안 그녀가 오므려 발부터 씻는다 불길하게 따라왔을 발목이 붉다 맨손으로 제안에 것 샅샅이 문지르는 일, 뜨물이 된 물은 서해로 흘러 쌓였을 때 이승은 화창하고 경쾌해야 했다 그녀가 다 씻김으로 흔적은 절정 중이어서 하얗게 여문 소금을 모으는 한 남자가 있다 뜨겁고 매끄러운 살을 혀로 감탄하는 어느 염부의 뻘밭 같은 생애가 드디어 달처럼 올라 서해 염전이 있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여인을 짠 바닷바람이 스치고 있다. 시인의 시선은 소금을 모으는 염전 염부의 힘겨운 노동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바닷물이 햇빛과 뜨겁게 만나 끝내 여문 소금에 이르는 그 절정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있음을 본다. 그 절정의 순간 하얀 결정체에 이른 소금을 보며 뻘
시
등록일 2017.06.25
게재일 2017-06-26
댓글 0
-
강원산업 봉강공장 사내들 기름때 절어 광택 없는 낡아도 빛나는 안전화 고흐의 낡은 구두는 수십 억 나가는데 청춘을 자식을 남겨둔 부모 가슴 다독이며 시뻘건 쇳물 타넘는 그들의 워커가 빛나던 그 시대 봉강공장 노동자들의 안전화를 모티브로 그들의 빛나는 노동의 가치 혹은 묵묵히 한 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정신을 그려내는 시다. 고흐의 구두는 빛나는 예술적 가치를 품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볼품없는 안전화는 재해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고 그들 청춘의 진액이 녹아있고 자식과 부모의 생계와 함께하는 빛나는 거룩한 구두가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7.06.22
게재일 2017-06-23
댓글 0
-
그녀는 수평선을 허리에 두르고 마치 사실인 듯 피처럼 붉은 물을 뚝뚝 흘리며 온몸에 전구 같은 심장을 수없이 달고 박동 소리로 말한다 마치 기계처럼, 쇳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냉정한 여자인 듯 처럼에게 끝까지 다가가려는 처럼처럼 그러나 처럼이 되지 못하는 처럼처럼 같은에 한 발 물러선 같은 것은 그래도 같은이 되지 못하는 같은 같은 인 듯은 인 듯에 붙어서 인 듯한 듯 어쩌면 인 듯인 듯이 아니 듯 처럼도 아닌 것처럼 같은도 아닌 것 같은 인 듯도 아닌 듯인 듯 그녀는 수평선을 허리에 두르고 붉은 물을 뚝뚝 흘린다 온몸에 반짝이는 심장을 달고 심장박동으로 말한다 냉정하게 인간이 아무리 애쓴다 해도 의도하는 대로 될 수 없고 넘을 수 없는 어떤 한계를 지적하는 시인정신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같은,
시
등록일 2017.06.21
게재일 2017-06-22
댓글 0
-
이른 봄날 오후 벚나무 꽃그늘 돗자리 위에서 모로 누워 자는 아내의 눈주름을 본다 햇볕도 그늘을 만들고 꽃나무도 그늘을 거느리는 걸 보면 아내에게도 그늘이 많았을 것이다 꽃나무 가지에 앉았던 바람이 깃을 치자 눈주름 위에 음표로 내려앉는 꽃잎 몇 장 저녁이 와서 노을 한 폭 개어다 덮어주는데 낡은 몸에서 오래된 풍금소리가 터져나온다 이른 봄날 꽃나무 아래 잠든 아내의 눈주름을 보고 시인은 힘들고 어려운 생을 살아온 그녀의 시간들을 느끼고 있음을 본다. 별과 나무도 그늘을 만들지만 아내의 눈주름은 그녀가 건넌 가난과 시련을 견딘 훈장과도 같은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한 생을 살며 서서히 낡아가는 그녀에게서 오래된 풍금소리가 난다는 것은 그녀의 성숙되고 깊은 생의 향기 같은 것이라고
시
등록일 2017.06.20
게재일 2017-06-21
댓글 0
-
산맥 같았던 것들이 밀리고 밀리면 동쪽 변방의 호숫가 어느 오래된 나무 지나가는 물새가 잠시 해를 가리는 동안 새 혓바닥만한 버들잎이 한 몸 떨어진다 한순간 숨을 멈추는 오전이었다 천지간에 해일처럼 살다가 막 지워진 파문에 꽂혀 끝없이 죽음을 타전하는 작은 잎 투명한 경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 호수에 그늘을 드리운 버드나무들의 반짝이는 오늘은 얼마나 평화스러운가 잠시 흔들린 수초들의 그림자가 다시 꼿꼿해지고 수면은 명경지수(明鏡止水)로 봄날이 가는데 흐린 물바닥에선 지붕이 날아가고 전신주가 뿌리째 뽑히고 더 깊은 물 속에선 거대한 별똥이 휙 제가 지나온 길을 손가락질하며 사라졌다 강릉 경포호수의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을 보여주면서 호수의 표면 뿐만 아니라 호수 속의 세계에 대한 깊은 사념을 그려
시
등록일 2017.06.19
게재일 2017-06-20
댓글 0
-
마음속에 누군가를 담고 살아가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기에 젊은 날엔 그대로 하여 마음 아픈 것도 사랑의 아픔으로만 알았습니다 이제 그대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냅니다 멀리 흘러가는 강물에 아득히 부는 바람에 잘 가라 사랑아, 내 마음속의 그대를 놓아 보냅니다 불혹, 마음에 빈자리 하나 만들어놓고서야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놓고 기다리는 일이어서 그 빈자리로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어서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야 나도 알게 되었나 봅니다 흔히 사랑의 본성은 소유고 독점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비우고 보내는 것이라 한다. 불혹의 나이에 들면서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고 있는
시
등록일 2017.06.18
게재일 2017-06-19
댓글 0
-
내 몸이 한 장의 필름으로 분리되어 판독기에 걸려 있다 검고 희멀건 채색에 담긴 앙상한 늑골들의 빗살 구조 그 중심부로 휘어져 내린 척추 골반은 육중한 내 육신을 힘겹게 지탱하며 예까지 왔다 한 번도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이 나이까지 용케 버티어 왔다 문득 낯선 사람이 불을 끈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내 몸은 감춰지고 젊은 사나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최후의 심판을 준비한다 나약해진 내 의식은 두려움에 졸아들고 생명이란 것이, 육체란 것이 내 의지로부터 이렇게 쉽사리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걸까? 그의 논고가 신(神)처럼 무서워진다 혹시나 뻥 뚫린 허파, 퉁퉁 부은 간덩이가 안막을 덮어 오는데 창백한 벽면을 타인처럼 바라본다 그곳엔 선고를 기다리는 내 뼈들이 기도처럼 걸려 있다 건강검진을 받고 그 결
시
등록일 2017.06.15
게재일 2017-06-16
댓글 0
-
바다, 기쁨의 바다 설렘의 바다 그리움의 바다 슬픔의 바다 바다, 집중하는 바다 바다를 잊은 바다 유정한 바다 걱정의 바다 격정을 잠재우는 바다 바다, 사랑하는 가슴에 닿는 바다 천 갈래 만 갈래 심사에 닿는 바다 바다. 내가 보는 바다 그도 보는 바다 바다를 통해 그를 보는 바다 그를 통해 바다를 보는 바다 바다, 베란다의 주인이 커피를 마시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리움 사람을 그리는 바다 커피를 마시거나 그리거나 그리운 사람을 그리는 베란다의 주인을 그리는 바다 바다를 여러 경우로 호명하면서 점점 심화시켜 나가는 반복과 점층의 시작법이 새롭다. 기쁨과 설렘과 그리움과 슬픔이라는 마음의 빛깔을 나열하면서 시인의 인식은 우리의 감정을 다양하고 더 깊게 확장시켜나감을 본다. 그리움의 대상이 어느 틈에 하나가 되
시
등록일 2017.06.14
게재일 2017-06-15
댓글 0
-
너는 안 돼, 나는 그 거리를 받아들일 수 없어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몸부림친다 동백꽃에서 패랭이꽃까지 가로수에서 산마루까지 집 현관문에서 작업장까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는 내 몸속의 아득한 거리 교도소의 사이렌 소리처럼 떠오를 때마다 나는 기침을 그치지 못한다 세상이 수월히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거절과 배제의 쓰라린 아픔을 견디는 것에서 시인은 더 나아가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해 기침을 한다. 기침을 하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가치와 의미를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주변이라고 여기고 있는 거리에 불을 붙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인식에 깊이 동의하고 싶다. 자기 자신이 세상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라는
시
등록일 2017.06.13
게재일 2017-06-1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