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부모와 먼저 만나고 형제 자매를 접한다. 소꿉친구를 만나 놀다가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고 직장에서도 동료를 만난다. 인간은 가족, 이웃, 사회 공동체, 국가 공동체와 관계를 확대하면서 생활하는데 이를 생활원리 확대의 원리라고 부른다. 인간의 삶은 태어나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러한 삶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나아가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종교적으로 초월적인 절대자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인간의 삶도 결국 타인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다. 이 모든 관계에는
칼 포퍼의 제자인 조지 소로스가 오늘날 21세기 열린사회의 적으로 중국의 최고 지도자 시진핑을 지적하여 화제를 낳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그는 한국을 방문하여 투자처를 찾은 적이 있다. 그는 몇 해 전 한반도의 남북이 화해하고 ‘사실상의 통일’로 간다면 1인당 국민 소득이 8만 불이 넘어 세계 2위가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한반도에 평화가 오면 전 재산을 한반도에 투자할 용의가 있음도 밝혔다. 지난달 그는 또 다시 골프장 사외이사 자격으로 지난달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는 최근 중국의 시진핑을 열린사회의 새로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여러 해 동안 학기 시작 초 대학생들에게 ‘나는 누구입니까’라는 제목의 한 장짜리 리포트를 부여한바 있다. 정답이 없는 자유로운 숙제인데도 학생들은 쓰기가 힘들다고 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자신의 성장과정, 가족 관계, 현재의 입장만을 열거하고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술하는 데는 부족했다. 종교를 가진 일부 학생들이 자신의 절대자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신 있게 써 내려가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상당수의 학생들이 자신의 현재의 삶에 만족치 못하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
세계적인 관심사 하노이 북미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세기의 담판은 빅딜도 스몰딜도 아닌 노딜(no deal)로 끝나고 만 것이다. 김정은은 그의 부친 김정일과 달리 언론 노출을 기피하기 보단 즐겨하는 편이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회담에 이은 이번 하노이에서의 그의 노출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조부 김일성의 인민복과 같은 옷을 입고 베트남의 하노이를 방문했다. 그는 중국을 종단하여 하노이까지의 당 간부와 수행단을 이끌고 66시간, 2박3일을 열차로 이동하는 장정(長程)이었다. 하노이 북미 회담은 실패로 끝났
대구는 3·1운동 당시 서울 부산 원산을 잇는 교통의 중심도시이며 상업 거점 도시이기도 하다. 오늘의 대구의 달성공원, 두류공원, 망우공원, 앞산공원에는 허위, 이상룡, 이상화, 우재룡, 이상설 등 항일 독립지사들의 기념비와 공적비가 즐비하다. 팔공산은 한말 산남의진의 본거지이며 앞산 안일사는 조선국권 회복단이 창립된 곳이다. 대구의 도심 곳곳에서는 항일 지사들의 생가, 집터, 유적 등이 있다. 대구 계성학교의 아담스관은 독립선언문을 등사한 곳이고 서문시장은 만세 운동의 시발점이다. 대구의 제일교회와 남산교회는 만세운동의 산실이며
세계의 이목이 베트남의 하노이로 쏠리고 있다.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합의문이 발표될 것인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획기적인 합의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북미 간에는 완전한 비핵화, 대북 제재 해제, 종전선언과 평화 협정 체결이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은 북미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주변 국가의 이해관계도 걸려 있는 문제이다. 주변 4강은 겉으로는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표방하지만 내심으로는 자국의 실익을 우선하려고 한다. 이 점이 우리의 4강 외교가 극복해야할 과제이다.미국의 입장
제3당은 대의정치에서 의석수에서 제3위를 차지하는 정당을 말한다. 현재 국회의원 29석인 바른미래당은 제3당이다. 바른미래당은 1년 전 국민의 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하여 2018년 2월 13일 창설된 정당이다. 이들은 진보를 내세운 집권당 더불어민주당과 보수를 앞세운 자유한국당의 양당구도에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앞세워 제3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은 지난해 지방 선거에서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한 명도 내지 못하고 겨우 10% 미만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당내의 심각한 노선 갈등을 겪으면서 창당 1주년 기념식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정치 행태는 매우 특이하다. 트럼프의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정치는 상식을 뛰어 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에는 정치는(政治)는 정야(正也)라는 공자의 ‘정의 정치’도, 현대적 ‘권위의 배분’이라는 정치도 찾아볼 수 없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협상의 정치만이 보일 뿐이다. 그는 러시아 섹스 스캔들 등 여러 혐의로 곧 탄핵될 것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실리의 정치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민 유입 방지를 위한 멕시코 국경선의 봉쇄, 자기와 뜻이 맞지 않는 관료의 전격 해임, 연방정부의 업
상해 임정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다녀왔다. 상하이의 초대 임정 청사, 윤봉길의사기념관을 거쳐 항저우, 자싱, 전장, 난징의 임시 정부 유적지도 돌아보았다. 지난해 충칭 임시 정부방문에 이어 두 번째 학술 탐방 행사의 일환이다. 독립운동 정신 계승사업회가 마련한 이번 학술대회에는 중국의 저명한 학자들도 참여하였다. 중국에서 활동한 조선인들의 항일 투쟁을 재조명하기 위함이다. 석원화 교수는 상해 복단대학의 명예교수이며 코리아연구센터의 주임이다. 그는 조선인들의 중국에서의 항일 운동을 3개 분파로 나누어 그 활동을 소상히 소개하였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1919년 3월 1일 일제 강점 하에서 서울에서는 33인이 독립을 선언하고, 대구에서도 3월 8일 서문시장 부근에서 만세 운동을 시작했다. 이어 전국 방방곡곡의 만세운동은 연 참여인원이 100만 명을 넘었다. 대한광복회는 3·1 운동 발발 4년 전인 1915년 8월 대구 달성공원에서 항일운동 조직으로 창설됐다. 일전에 찾아간 대구 달성공원에는 이곳에서 대한 광복회가 창설되었다는 표지판 하나 없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의 광복을 위해 대구에서 창설된 이 단체를 아는 사람도 별로
2017년 진보를 표방하는 촛불집회가 적폐 청산을 내세워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보수를 지지하는 태극기 집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했으나 대세는 역부족이었다. 아직도 촛불과 태극기의 행렬은 간간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화력은 약하다. 지난번 시위 과정에서 충돌할 위험도 있었지만 묘하게도 피하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양측 모두 진보와 보수를 앞세워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현상을 흔히들 정치적 ‘이념 갈등’이라 하지만 이러한 갈등을 이용하려는 정치 세력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우정치(衆愚政治)는 참 진보도 보수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 스타일이 달라졌다. 탁자에 기대어 불안한 모습으로 신년사를 읽던 작년의 모습과는 완전히 파격적이다. 그는 자주 입던 인민복을 벗어던지고 말쑥한 정장 양복 차림으로 만연체 연설을 이어갔다. 노동당 중앙위 건물 3층 집무실 소파에 앉아 50여분간 신년사를 발표하였다. 그는 원고와 프롬프터를 번갈아 보면서 과거의 가쁜 숨을 내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변모는 대중 기피증이 심했던 그의 선친 김정일과는 완전히 달라진 장면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 방북 시 평양 군중들 앞에서 카퍼레이드도 하고 대중 연설까
지난 26일 북한 개성 판문점역에서 남북 철도 연결 기공식이 열렸다. 남측에서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북쪽에서 리선권 조평통위원장, 김윤혁 철도성 부상이 참석했다. 남북이 분단되고 철길마저 끊어진지 어언 70여 년. 남북의 철길은 언제쯤 이어질 것인가. 눈 덮인 북녘 산하를 거쳐 만주를 지나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고 싶은 철마의 꿈은 이뤄질 것인가. 판문점역에 등장한 평양과 서울을 향하는 이정표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조국의 분단으로 섬나라가 되어 버린 우리도 대륙 횡단의 꿈은 실현될 것인가.남북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체제는 위기에 처한 당 개혁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출범했다. 홍준표 당 대표는 대선 패배에 이은 지방선거 참패로 물러났다. 제 1야당인 한국당의 지지율은 계속 폭락했고, 친박과 비박의 당내갈등은 계속됐다. 박근혜 정부 시 총리후보에서 낙마한 김병준 교수는 전격적으로 한국당의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그러나 그의 당 개혁을 위한 조치는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치기도 했다. 며칠 전 한국당은 나경원 의원을 당의 원내 대표로 선출했다. 한국당은 이제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이는 김병준·나경원 투 톱 체제로 운영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의 쌍두마차가 헝클어진 당을 위기에서 구할 것인가. 아니면 양자의 갈등으로 당은 다시 내홍을 겪을 것인가.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출발시부터 당내 친박이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벌써 1년 5개월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탄생한 정부이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로 얼룩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의로운 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광화문의 촛불 혁명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의 희망을 부풀게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는 대단히 컸으나 차츰 실망으로 변하고 있다. 집권 초반 70∼80%를 넘나들던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지난주 40%후반으로 추락했다. 아직 대통령의 지지도가 레임덕(Lame Duck)은 아니지만 40%의 지지율은 정부의 국정 주도권을 잡기 어렵게 할 수 있다. 문 정부가 국정 쇄신을 방기하면 지지도는 급락할 수밖에 없다. 문 정부의 지지율 급락의 근원은 결국 경제
세상 만물 중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세계 각국의 사회주의 체제도 변화하고 있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는 체제 변화 과정에서 붕괴되고 말았다. 동독도 1990년 서독으로 통합됐다. 소연방은 해체되고 러시아만 홀로 남았다. 푸틴의 러시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도 모택동 이후 지도자를 여러명 교체하면서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에 접목됐다. 공산 베트남도 ‘도이 모이’를 통해 그들 경제의 앞날을 밝게 해주고 있다. 중미의 쿠바도 미국과 수교하고 대외 개방의 폭을 넓히고 있다. 북한도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 척도는 이데올로기, 정치체제, 경제 정책이라는 변수를 통해 측정한다. 이 척도를 북한의 개혁 개방과정에 적용해 보자.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
남북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의 남북관계는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철원 비무장지대 내에서 남북의 장교가 전술도로를 연결하기 위해 어울려 악수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6·25 전쟁 시 전투가 치열했던 화살머리 고지 일대에서 유해를 찾기 위함이다.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 때 손을 맞잡은 남북 지도자의 모습과는 다른 장면이다. 개성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설돼 남북의 회합이 성사됐다. 이미 비무장지대 내에서는 최전방 초소가 철수됐다. 남북 간에는 휴전 선언에 버금가는 적대적 긴장관계가 해소되고 있다. 북미 관계에 비해 남북관계는 순풍에 돛을 단듯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이를 보는 시각은 불행하게도 양분돼 있다.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에서는 이러한 사태의 진전을 매우 불안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의 출범은 보수당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게 하였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인 김병준 위원장의 비대위원장 등장은 계파 갈등을 덮기 위한 방편적인 선택이지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김 비대위원장이 과연 자유한국당의 개혁에 성공을 거둘 것인가. 현재로서는 성공이라는 기대보다는 부정적인 회의론이 강한 편이다. 지난번 김병준 위원장의 전격적인 전원책 변호사의 특위위원장 임명은 상당한 기대를 모으게 하였다. 그러나 지난주 비대위가 단행한 전 위원장의 갑작스런 해임 통보는 보수정당의 개혁의 입지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전 변호사의 사퇴는 외형적으로 전당대회의 개최 시기 문제의 갈등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김병준과 전원책의 당 개혁
북한 붕괴론이 한동안 회자된 적이 있다. 1980년 후반 소련과 동구 공산정권의 붕괴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다. 미국의 일부 정책 전문가, 주한 미군사령관, 북한 전문가들도 북한의 3대 세습체제는 권력의 자체의 분열로 붕괴될 것이며, 그것은 시간문제라는 주장까지 제기하였다. 여기에는 냉전체제하에서 서방 자유 민주 국가의 승리라는 여망이 담긴 것이며 대북 전략적 차원의 프로파간다 성격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북한 세습 체제는 과연 붕괴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변화를 모색할 것인가. 북한 붕괴론의 허와 실을 철저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북한체제가 그리 쉽게 붕괴되지 않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북한의 수령·당·군·국가가 결합된 특유의 북한식 억압기제는 체제 붕괴를 막
이응노(1904-1989) 화백은 충청도 홍성 출신이다. 서울과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하다 파리로 유학해 그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화가이다. 그는 6·25 전쟁 중 헤어진 아들을 동베를린에서 만난 후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프랑스 정부의 탄원이 없었더라면 상당기간 옥살이를 더 했을 것이다. 그는 1983년 프랑스에 귀화했으며, 1987년에는 북한의 초대를 받아 평양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의 회고전이 1989년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개최되었으나 당시 정부의 입국금지로 그의 입국은 좌절됐다. 이 전시회 첫 날 그는 파리 작업실에서 심장 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세계적인 예술가로 성장한 그였지만 분단과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극복치 못하고 파리에서 세상을 하직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