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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지 직접 겪고 나서야 공감하기 쉽다. 커피를 즐겨 마셔도 속 쓰리지 않고, 불면에 시달리지 않던 호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언니는 커피를 마실 때면 지나치게 신중했다. 하루에 두 잔 정도 마셨다면 아무리 입맛에 당겨도 더 이상 마시질 않았다. 면도날로 오려내듯 속이 따끔거리는 데다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젊은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마셔도 속이 쓰리기는커녕 잠만 잘 잤다. 언니가 별나다고 치부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요즘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커피를 마시면 속이 콕콕 쑤시고 불면의 밤도 각오해야 한다. 이 오묘하고 불쾌한 경험이 잦아진 뒤에야 언니가 헛말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당사자가 겪어 보기 전에는 완전하게 공감하기 힘든 것이다.
칼럼
등록일 2012.09.18
게재일 201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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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야 진실에 가깝다. 따뜻하고, 다감하고, 온화한 거리엔 희망이 넘쳐나긴 한다. 하지만 그 희망은 대책 없기 일쑤고 진실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좋은 생각 가득한 월간 잡지를 읽는다고 세상이 좋은 것으로 넘실대는 게 아닌 것과 같다. 삶의 실체는 언제나 도덕적, 미적 판단을 유보한 뒷골목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낭만성이나 연민의 눈길을 앞세우지 않은 채 그곳에 발 디뎌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쉽게 생의 뒷골목을 들여다 보려하지 않는다. 구차하고 불편부당한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대면서까지 제 영혼을 구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파랑새를 찾는 틸틸과 미틸처럼 희망이란 아득한 꿈을 찾아 나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게 더 나은 삶이라고 은연중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럼
등록일 2012.09.17
게재일 201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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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록의 동물이다. 욕망하고 기원하는 것을 마음에만 새기면 누가 알아 줄 것인가? 맘과 맘으로만 신을 만날 수 있었다면, 인류사를 통틀어 그토록 많은 신을 위한 제단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간절한 약자로서 신 앞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존재였다. 신에게 보낼 그 소망의 말들을 새기는 게 선사시대 사람들의 최대 고충 중 하나였다. 문자가 없던 그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 흔적 남기기가 바위에 뭔가를 새기거나 그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영원에 호소하고 싶었던 그들은 그렇게 암각화를 우리 곁에 남겼다. 볕 좋은 날이었다. 지인들의 안내로 칠포리 곤륜산 기슭 암각화를 보러 갔다. 바위에 새긴 마음의 소리를 대하는 첫 느낌은 `너무 먼 당신`이었다. 울산 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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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2.09.16
게재일 201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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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이 화제다.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쾌거 못지않게, 수상식 때 입은 옷과 신었던 신발까지 관심을 받는다. 대충 틀어 올린 은빛 머리칼과 소박한 듯 허름한 갈색톤 개량한복은 무척 잘 어울렸다. 사진 기자들이 찍어 올린 낡고 구겨진 신발에 이르러서는 정말이지 `김기덕답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제 참석용으로 급히 산 그 한복은 이백만 원이 훨씬 넘는데다, 구겨 신은 운동화 역시 스페인 산 유명브랜드로 삼십 만원이 넘는단다. 일견 남루해 뵈는 그의 패션 감각을 동정했던 사람들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전 패션이야말로 김기덕을 더욱 김기덕답게 표현했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제는 다가오고 옷은 적당히 입어야겠고, 아무데
칼럼
등록일 2012.09.13
게재일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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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썰미가 없어서 곤란할 때가 많다. 한 마디로 오해 받기 쉽고, 그 때문에 자책하기 일쑤다. 우선 주부로서 보자면, 냉장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겨자 소스나 케첩이 든 칸을 찾아내지 못하고, 캔맥주가 남아 있는지 없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매번 나는 헤매고 금세 다른 식구들은 잘도 알아낸다. 딱 보면 아는데 왜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간단다. 사람 보는 눈썰미라고 예외일 리 없다.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 한, 몇 번 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수십 번 봤더라도 환경이 달라지면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주 본 동네 병원 의사도 가운을 벗으면 알아보지 못한다. 오늘도 그랬다. 독서클럽 한 회원이 오래 전에도 나와 같이 독서 모임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사실
칼럼
등록일 2012.09.12
게재일 201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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