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미국 일로 떠들썩하다. 김기종이라는 이가 주한 미국대사 리퍼트 씨를 크게 다치게 했다는 것이다. 공중파 방송은 물론이고, 종편 채널들도 며칠씩 이 사건을 크게 다루고 있다. 김기종 씨는 미국의 군사훈련을 중지하라고 외쳤다고 하는데, 과연 이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런데 이는 곧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말해 미국은 제국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를 제국으로 보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그렇다. 중국이 제국이고, 또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인 것은 자명하지 않을까? 또 러시아도? 그러나 이 나라의 현실에 비판적인 이들 중에는 미국은 반통일 세력, 제국, 나아가 제국주의 국가라고 보면서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해서는 그렇
KTX가 처음 생겼을 때 참 좋았다. 대전까지 불과 한 시간, 멋진 주행 시간이었다. 마음이 한가롭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훌쩍 갔다 금방 올라올 수 있는 그 단축이 좋았다. 그후 시간이 많이 흘렀다. 2004년 4월 1일에 경부선을 개통했다 하니, 벌써 10년도 더 지났다. 익숙해졌다. 일상이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도, 생각도 변했다. 요즘 몇 년 동안은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를 타고 대전에 간다. 부모님을 만나러, 친구를 만나러, 옛 동네를 찾으러, 생각할 여유 찾아, 시간 나면 느린 기차 타고 대전에 간다. 참 그 두 시간이 좋다. 서울역에서 천원 짜리 원두커피를 사서 천천히 기차를 찾아 오른다. 무엇보다 이 느린 기차들은 좌석공간이 넓다. 기차삯이 싼 데도 자리가 넓다보니 덤을
졸업식 시즌이다. 낮에 어딘가를 가는데 때아니게 차가 하도 막혀 이상하다 했더니 바로 졸업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졸업식이기도 하다. 두 시에 학교 전체 행사가 있고 네 시에 학과에서 따로 행사가 있어 참석하기로 했던 것을 바로 전날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학교라고 들어와 열심히들 보내다 가지만 필자에게 우리 학생들처럼 안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도 없다. 다른 지역이나 학교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필자 세대나 그밖의 다른 세대와 비교하여 그렇다는 말이다. 정규직! 요즘 학생들은 우리 학교나 다른 학교나 오로지 이 단어밖에는 머리 속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사회가 그만큼 문이 좁기 때문이고, 이 좁은 문을
지난 5일 대구에 갔다. 경북대학교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있었고, 거기서 필자는 작가 이상과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관련성을 이야기 했다.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상, 그러나 그의 명성은 그의 사후에도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혹자는 그를 가리켜 천재작가라고 한다. 하늘이 낸 사람이라 그렇게 잘 썼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가 뿌려놓은 이야기들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는 기생 금홍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비롯하여 숱한 일화들을 남겨 놓았고, 더구나 폐결핵으로 이르게 세상을 떠남으로써 하늘은 재주 많은 이를 시샘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마도 그의 명성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치부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일주일을 이렇게 잘게 쪼개 쓸 수 있다면 어떤 좋은 일도 이루어 낼 수 있겠다. 창작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명색이 지도교수가 되어 먼저 난징, 항조우, 상하이 여정을 달렸다. 중국에서의 며칠은 힘겨운 나날이었다. 중국에는 중국만의 표준이 있었다. 카드도 비자니 마스터니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드물었다. 오로지 유니온 페이라는 중국제 카드만 통용되었다. 기차표를 살 때도, 음식점에 갈 때도 오로지 자국 것만을 주장하는 대국다움에 처음부터 기가 질린 여행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정녕 무서운 국가다. 여행가방이 바퀴가 빠질 지경으로 달려 항조우의 기차역으로 갔을 때 우리는 그 방대한 크기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우주 항공모함이 바로 거기에 정박해 있었다. 외관은
`춘향전`은 18세기의 국문 고전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최근에는`심청전`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20년 전만 해도 `춘향전` 주해서나 연구서를 꽤 탐독할 정도였다. 또 임방울 같은 20세기 초엽의 판소리꾼이 부르는 `쑥대머리` 같은 것도 아주 좋아해서 신나라 레코드에선가 내던 복각판 씨디도 즐겨 사곤 했다. 이 `춘향전`은 사랑을 주제로 삼은 대작일 뿐만 아니라 사회변동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 문제작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김태준은 이 `춘향전`에서 근대를 향한 조선사회의 이행을 보았다. 그가 쓴`조선소설사`에서`춘향전`은 아주 높은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요소 가운데 하나는 어사가 된 이도령이 변학도를 징치하는 대목이다. 변학도는 조선시대의 탐관오리를 대표하
전북 김제에 있는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에 다녀왔다.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은 김제평야를 무대로 삼은 대하소설 `아리랑`을 기념하는, 개인 문학관으로서는 대단한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1층, 2층에 설비된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나는 조정래라는 작가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순 원고지로만 쓴 `아리랑` 원고가 자신의 키보다도 훨씬 높이 쌓여 있었고, 그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취재한 기록들, 스케치들, 수첩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놀라운 것은 그가 직접 그린 스케치들인데, 여기에는 그의 창작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의 무대들을 직접 발로 뛰어 다니며 그 다닌 경로들, 특정한 공간의 지형들을 고등학교 때 화가가 되고자 했
예전에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나쁜 손님을 가리켜 진상이라는 말을 썼다. 아마 지금도 흔히들 쓰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안 왔으면 싶은 사람, 돈 벌어야 하니 받기는 받지만 안 받아도 좋겠다 싶은 사람을 진상이라 한다. 어원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발음이며 그 말을 밖으로 낼 때 표정이 어찌나 생생한지, 이 진상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정말로 진상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금방 나간 손님을 가리켜 진상이라고`뒷다마를 까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내가 그런 험담의 주인공은 결코 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진상이라는 말에는 돈 있는 사람들을 향한 반감 같은 일종의 사회심리가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돈 없는 사람은 진상이 되기도 어렵다. 진상이 되려면 가장 멋없이, 유치하고도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시계가 다섯 시 삼십칠 분에서 삼십팔 분으로 넘어가고 있다. 한 해 마지막 날을 앞두고 연구실을 이틀째 정리했다. 어지럽게 흩어놓은 책들을 아쉬운 대로 책장들에 되돌려놓고 책상위에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은 책이며 복사물들도 웬만큼 정리해서 치워놓았다. 한 해 내내 연구실에 사람을 들일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이제 겨우 한두 사람은 들어와 앉을 수 있게 됐다. 마음은 오전부터 광화문에 가 있다. 오늘부터 몹시 추워진다고들 하는데, 무슨 문화행사를 한다고 했다. 세월호에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들이 주최한다고, 팟캐스트 방송에서들 와달라고 몇번씩이나 호소를 한 것이다. 네 시 넘어서 인적 드문 학교 캠퍼스를 총총히 걸어나왔다. 나무들도 전부 헐벗었다. 시내도 차량이 많지
사람이 시시각각 다른 사람이 돼가는 것을 보면,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일지언정 아기자기, 재미스럽다는 쓴웃음이 지어진다.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다. 오늘 한낮에 모처럼 종로에 나가 탑골공원을 거닐었다. 옛날에는 파고다 공원이라 했고 노인분들이 한가득 앉아 계셨는데, 오늘은 보니 어린 학생들이 무슨 모임인가를 하러 잔뜩 모여 들어 있다. 날씨가 푹해지니 좋군. 나는 한 학기도 마치고 처음 맞은 50대의 한해도 저물어간다는 호젓한 심정으로 이상재 선생 동상이 서 있는 공원안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3호선 종로3가역이 있는 거리를 거닌다.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에는 행상들이 많다. 호떡집, 오뎅집, 간이김밥집, 양말 행상에, 장난감 행상. 없는 가게들이 없다. 남루한 행상들의 거리를 걷는데 그
작가들이 모여 이제 갓 신인으로 등단한 사람을 축하해 주는 자리에 나갔다. 요즘은 작가들도 신경들이 여간 예민하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책이 안 팔리는 고민이 깊기는 깊은 모양이다. 한 여성 작가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요즘 소설계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요점인즉슨 너도 나도 사랑 타령만 한다는 것이다. 어느 장편소설상 심사를 했는데, 후보작으로 오른 작품들이 몽땅 사랑 얘기들뿐이더라는 것이었다. 사랑이 어때서 그러느냐, 이 시대야말로 사랑이 필요한 괴로운 때가 아니더냐, 소설이란 원래 사랑 얘기가 대부분 아니더냐. 여기저기서 반박들이 제기되는 데도 이 여성작가는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그게 다 가짜라는 것이다. 말이 사랑이지 정말 자기를 바쳐 남을 위해 자기가 손해를
기차를 타고 보니 며칠 전 내린 눈이 상처 난 살갗에 연고를 발라 놓은 듯 여기저기 얇게 깔려 있다. 꼭 옛날 어렸을 적 삼월 초순 같다. 옛날에는 그때서야 비로소 눈이 녹기 시작했다. 이월까지도 땅이 꽝꽝 얼어붙어 있다 삼월에야 눈도 녹고 흙도 제법 부드러워졌다. 이 잔설들은 꼭 한국의 산야 그대로 같다. 우리 한국의 산야는 하늘에서 보면 숲도 푸른 숲만이 아니요, 군데군데 황토빛으로 얼룩져 있다. 눈이 내린 산하도 온 천지가 하얀 법은 적고 이곳저곳 흙빛이 묻어나 있다. 잔설은 누추하면서도 생생한 삶의 치부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올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가나 했는데 벌써 겨울이다. 한 번 몹시 추웠다 따뜻해졌고 또 추웠다 눈도 많이 내리고 도로 따뜻해지는 중이다. 덕분에 들과 산의 눈들은
12월인데도 견딜 만 하다고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저께는 비가 내리고 어제는 눈이 내리는 듯했고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니 서울 바닥에 눈이 조금 쌓였다. 눈이라고 해야 지금 서울에 내리는 눈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 어렸을 적 충청남도 덕산 고향에 한 번 눈이 내리면 무릎까지 눈이 쌓이곤 했다. 몇 살 안 될 때여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그때는 정말 떡덩이 같은 눈이 펑펑 쏟아지고 그 눈이 쌓여 외할아버지가 가래로 눈길을 만드는데 고생께나 하셨다. 그래도 창밖을 보니 눈이 와서 좋기는 좋다. 눈을 따라 옛날 생각이 난다. 그때 학력고사 시험을 보고 난 12월, 독서 서클 지도교사 선생님 댁에 놀러 갔다. 그때는 동아리라 하지 않고 서클이라 했다. 또 그때는 수능시험이 아니라 학력고사였다.
새벽에 문득 눈을 떠서 몇 시나 되었나 한다. 다섯 시 십 분쯤 되었다. 다섯 시에 맞춰 둔 휴대폰 알람이 벽에 걸린 외투 속에서 벌써 십 분씩이나 목이 터져라, 꼬끼요, 하고 앓는 닭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잠결에 이 소리를 무슨 자장가 듣듯이 듣다가 마침내 깨어나 새벽 세상을 마주한 것이다.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나는 통증이라는 한 마디 말을 떠올린다. 어젯밤에 끊어진 의식이 다시 이어지면서 생각의 꼬리가 머리에 와 닿았다. 과연 내 몸은 통증 투성이다. 허리와 목에 디스크는 만성이 되었고, 이제는 오른쪽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길게 뻗을 수가 없다. 두통에 만성식도염은 나로 하여금 불쾌감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몸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다. 어떻게든 일어나 움
졸업 30주년 동창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세월이 흘렀으니 어떻게든 만나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맞다. 벌써 그렇게나 됐나? 한 사람 당 얼마씩 내서 준비를 하자는데 좀 많다 싶기는 해도 30년만의 일이다. 그 정도는 부담해야 할 것도 같다. 그러마, 가마, 했다. 그러고도 회비도 내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늦더라도 내기는 내고 참석도 해야겠는데, 마음이 흔쾌하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떤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만나지 않은 친구들을 동창이라고 어색하게 마주 앉게 되는 것, 그러면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는, 오래된 인연을 새로 돌아보는 데 따르는 부담감 말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언젠가부터 동창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축에 들어간 사람들이 자
국제한국학대회가 지난 주에 하와이대학에서 열렸다. 나는 그 대회의 한 패널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고 발표논문을 준비해 건너갔다. 현재 하와이대학의 한국학센터 소장인 이상협 교수와 김영희 교수가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11월의 하와이는 아름다웠다. 하와이 주의 주도는 호놀룰루, 하와이 여러 섬중에 가장 번화한 오아후 섬에 있다. 대회 개막식과 리셉션이 저녁에 열리는 관계로 우리 패널은 아마도 제주도보다 작을 오아후 섬을 해안도로를 따라 둘러보기로 했다. 다이아몬드 헤드는 바닷가에 돌출해 있고, 생긴 모양이 같은 분화구인 성산 일출봉을 꼭 빼닮았다. 아름다운 만 하나우마 베이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나는 작년 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낭독회를 들으러 가서 이 해변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남극에 공화국을 세우기로 하고 글을 써낸 지 며칠 지나서다. 서울 경복궁옆에 있는 시장 골목에서 어느 일간신문 기자분을 만났다. 내가 남극에 나라 세우는 허황된 얘기를 자랑 삼아 꺼내들자 이 분께서, 이건 농담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남극도 북극도 아닌 제3극이라는 게 있단다. 맙소사. 제3극이라니. 내가 허공에 뜬 얘길 하니 이분도 나를 놀리시려는 건가? 하지만 아니란다. 이건 정말 세상에 정말로 존재하는 곳에 관한 얘기란다. 그분은 당신이 그 제3극을 횡단했다는 분을 인터뷰한 기사를 인터넷에서 찾아내서 내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 기사에는 정말로 이런 문장이 나와 있다. “무인구(無人區)라는 말을 들어봤을까. 티베트 장북고원(藏北高原) 해발 5천m 지점에 있다. 인류 문명의 모든 기기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도 빠르게 나아질 것 같은 징후는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북극공화국 창설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러나 북극에도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뜻이 있는데 어찌 길이 없으랴만 북극에 나라 세우기는 남극에서보다 몇 배는 더 힘들 것이 뻔하다. 마치 북한에서 사는 게 이 남쪽 나라에서보다 몇 배는 더 힘든 것과 마찬가지. 하지만 어려움이 어느 정도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상대적 크기에는 무관심해진다. 일단 쇠가 쇳물이 되고나면 1천600도면 어떻고 2천도면 어떠랴. 어차피 데어 죽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또 춥기로 말한다면 영하 50도나 80도나 별다를 리 없다. 이 남쪽 나라가 북한같이 끔찍한 세상은 되지않기를 바라야겠다. 북극에 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 거기에 땅
이 세상은 원색을 좋아한다. 빨강이냐 파랑이냐, 흰 빛이냐 검정 빛이냐. 무엇이냐 하고, 상대방에게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옛날에는 코발트블루 빛을 사랑했었노라고. 그랬다. 어려서부터 왜 그렇게 코발트블루 빚이 좋았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바다 빛깔, 코발트블루 빛이 좋다. 그러나 얼마 전에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회색빛이야말로 가장 투명한 빛깔이라는 사실. 회색은 투명하다. 흰빛보다 검은 빛보다 투명하다. 오로지 회색 빛깔만이 진실을 투명하게 비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흰빛은 세상을 흰빛으로 칠한다. 검정빛은 세상을 검정빛으로 칠한다. 진실은 빛깔들을 혼합한 곳에 있는데, 원색적인 색깔을 덧씌워놓고 순수한 빛깔이라 한다. 그러나 그 가린 빛깔 밑에 다른 빛깔들이 숨어 있음을 눌려 있
서울 서초동 국립도서관에서 근대문학 자료수집에 관한 회의를 마치고 우리는 성북동의 화봉 책박물관으로 갔다. 그곳에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문학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승구라는 분은 평생 우리의 문학유산을 수집, 정리, 보존해온 분으로, 그 분의 개인 박물관에 우리 문학의 귀중한 자산들이 포갑에 쌓인 채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몇 년 전인가 관훈동인가에 있던 화봉문고를 찾아가 서정주의 화사집을 만난 적이 있었고, 그때 우리 선배들이 책을 얼마나 멋드러지게 만들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성북동, 이태준 고가 쪽으로 올라가는 어느 언저리에 그곳은 새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막상 찾아가니 건물 전체는 외부 리모델링 공사중, 마음이 심난하다. 그러나 그 책들의 주인은 우리를 반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