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빵 한 조각에서 출발한다. 가지치기 노동자였던 그에게 빵은 가족의 생계를 연명하기 위한 목숨이었다. 추운 겨울 일거리를 찾지 못해 힘없어 돌아오는 길, 빵집에서 갓 구운 빵 냄새는 그를 기다리는 배고픈 조카들과 오버랩되었다. 그는 빵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혀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빵 한 조각 때문에 젊은 청년 장발장은 삶에서 19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다. 여러 번의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그는 마흔넷에 출소한다. 그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그에게 빵은 신(神)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세월에 따라
봄기운이 완연한 내연산 수목원을 걷는다.싱그러운 나뭇가지들이 연초록 바람을 일으키며 눈인사를 건넨다. 나뭇잎 속에 담겨 있는 바람의 지문을 열심히 정독하는데, 묘목을 심느라 애썼던 어릴 적 추억이 찰랑거리는 바람결에 실려 온다.초등학교 오 학년 때였다. 집 가까이 신축 학교가 들어섰기에 친구들과 그곳으로 등교했다. 전에 다녔던 학교까지는 강둑을 걸어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늘 뭉쳐 있던 다리를 만지며, 앞으로 다리 고생은 줄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리 대신에 손 고생이 시작되었다. 새로 지은 학교 운동장에는 돌이 많았다. 매
내 휴대 전화는 조용한 편이다. 문자가 올 곳도 별로 없고 애타게 찾는 사람도 없어 찬밥 신세일 때가 많다. 어디 던져놓고 몇 시간 내버려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요 며칠 내 신경이 온통 휴대 전화에 꽂혔다. 지난주에 채용 면접을 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늘 그렇듯 기다리는 것은 더디 오는 법이다. 본체만체 했던 전화기를 몸 가까이에 두고 혹 놓친 전화가 있나 싶어 수시로 확인한다. 벨소리를 못 들을까 볼륨도 높여 두고 화장실에도 들고 간다. 어쩌면 연인과 약속한 찻집에서 문이 열릴 때마다 설렘 가득한 눈빛을 보내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마하트마 간디가 했던 말을 시작으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수필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은 법정스님이 향년 77세로 입적하신지 12년이 되었다. 넘치는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세상의 욕망에 맑고 향기로운 스님의 정신을 느껴보고 싶다.밝은 성격의 단짝 친구가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두운 시절, 사회의 등불로 혜성처럼 나타난 법정 스님이었다. 그의 ‘무소유’와
해녀의 움직임에 바다가 출렁인다. 혼자서 물질하는 헛무레 작업이다. 테왁을 옆구리에 끼고 푸르스름한 바다를 건져 올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바다의 속살을 더듬으며 들어간다. 일정을 정해 여럿이서 물질하는 대조문이 아닌데도, 몸이 아픈데도, 한가로이 쉴 수 없는 것이 해녀다. 자식들의 허기를 채우고 잘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테왁과 한 몸이 되어 해산물을 잡아 올리는 것이리라.해수면은 이정표도 없고 노선도 그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해녀는 자신만의 바닷길을 만들며 아득하고 깊은 물속으로 나아간다. 해녀의 바닷길은 자신이 오롯이 개척
봄이 솟아나는 들이 술렁인다. 겨우내 꽉 껴안았던 서로의 손을 놓은 흙 위로 남실바람이 서너 번 쓸어주고 봄비가 다독이니 흙이 포시시 깨어난다. 성급한 두더지 고속도로를 냈는지 발밑이 폭신하다. 덩달아 잠자던 것들이 숨을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밭둑에 푸른 빛이 일렁인다. 검불 사이로 여린 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양지 바른 곳에는 봄 글자에 색을 입힌 잎들이 보인다. 냉이와 민들레, 광대나물, 봄까치꽃이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곧 꽃 소식을 전할 낌새다. 이에 질세라 쑥은 일정한 거처도 없이 여기저기 발을 걸친 채
봄은 노란빛을 뿌리며 온다. 겨우내 메말랐던 땅속을 뚫고 산수유가 노란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하자 담장 울타리에도 노란 개나리가 ‘나도 여기 있어요’라며 손을 흔든다. 또 한 개의 노랑은 생강나무 꽃이다. 산수유가 익숙하다 보니 숲에서 만난 생강나무를 보고도 산수유일 것이라 짐작하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생강나무는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이들에게 섭섭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산수유는 열매를 약으로 쓰기 위해서 중국에서 들여온 나무다. 그래서 대부분 집 근처
기억의 정원에서 그리운 추억들을 불러내 이름표를 붙여 주고 싶었다. 희미해져 가던 실루엣이 뚜렷한 흔적으로 남았다. 때로는 바람결에 실려 다니는 말들을 내 마음에 빼곡하게 걸어 놓고 날마다 행간을 놓칠세라 열심히 읽었다. 아담한 수필이란 집을 짓기 위해서다.몇 년 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공연장에서 신명나는 사물놀이를 구경했다. 김덕수 명인이 태평소를 불며 등장하자 관객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복을 몰고 가는 길놀이로 시작된 공연은, 사물놀이패의 꽹과리, 징, 장고, 북의 화려한 연주와 조화로움으로 어깨춤을 유발하더니 농악을 기본
마을은 공동체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여 유기체적 조직을 이루고 삶을 공유 또는 정서적 유대를 이루어 나가는 곳이다.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인 공급을 위해 노력하고 손을 번성시킨다. 그리고 골목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정으로 맺어준다. 각각의 역할이 어우러지면 마을은 살아서 움직인다.날이 좋아 나선 길이 신화마을에 닿았다. 마을은 고요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할머니 세 분을 보았다. 여기저기 고개를 디밀었다. 분홍담 너머로 들여다본 집은 벽이 무너지고 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했다. 그런 집이 여럿이었다. 낮은 처마여서 햇빛이
툭, 겨울을 뚫고 매화가 가지에 꽃잎을 열었다. 제주도부터 꽃소식을 들고 달려오는 봄바람의 발걸음 소리가 분분하다. 꽃소식에 점심시간에 황성공원을 걷다가 칼바람에 겉옷을 목까지 당겨 잰걸음으로 돌아왔다. 겨울 끝이라고 방심한 탓이다. 입춘이라고 봄에 들어서려다 문지방에서 넘어질 뻔했다. 겨울은 조금 더 기다리라고 아직 방을 뺄 생각이 없다.나는 매화를 좋아한다. 유유상종이라고 얼마 전 매화만 그리는 친구의 전시회에 갔었다. 매화 가지가 작은 종지에 꽃물이라도 떨어뜨릴 듯이 어사화처럼 둥글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바탕색이 파랑일
같은 길인데 다른 길 같다. 몇 년 전 여름에 찾았을 때랑 사뭇 달라 보인다. 계절이 다르니 그럴 만도 하겠지. 그때는 지나쳤던 저수지 앞에 멈춰 선다. 파리한 물결이 매섭게 맞이한다. 물결 안은 바람이 주머니 속까지 들어와 헤집고 설친다. 오늘은 무언가가 마음을 헤집을 듯하다.영지사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당시 이름은 웅정암이었다.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선조 36년에 다시 중창하면서 영지사로 개명했다. 영조 50년에 중수가 이루어졌고, 1992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대웅전은 경상북도 유
“소못 소랑햄수다.”제주도 동백나무 수목원인 카멜리아힐에서 장식용 족자에 쓰인 문구를 본다. 정말 사랑합니다, 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란다. 나는 곧장 동백나무 꽃말을 떠올려본다.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역시 필연성 높은 소품이군! 수목원 관리자가 숨겨 놓은 퀴즈문제를 나 혼자 맞힌 것처럼 값싼 자기도취에 빠져 나무 사이를 걷는 내내 뿌듯해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꽃향기를 따라 친구의 애틋했던 첫사랑이 떠올라 내 마음이 어지럽다.친구는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들뜨는 대학 새내기, 사랑이 시작되
찬바람이 불어도 할 일은 지천이고 하고야 마는 성질에 새벽은 늘 분주하다. 알람이 어김없이 머리맡에서 시끄럽게 들려오면 죽은 듯이 누웠던 나무토막 같은 몸이 습관으로 일어난다. 아! 살아있구나.언제부터일까, 살아있음이 감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천명을 깨닫는 시간이 되고서야 철이 좀 드는 모양이다. 날마다 일으켜 세우는 몸이 나무처럼 느껴진 것은 오빠의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류머티즘으로 고통받던 오빠는 “내 몸은 나무 같다. 죽어가고 있는 나무처럼.” 허망한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고 오빠는 기다릴 시간도 없다는
울진 매화리에 갔다. 만화 원작을 그린 벽화가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골목길을 걷다 보니 추억이 돋는 그림이 많다. 만화가 이현세가 직접 그렸다는 벽화 앞에서 천천히 읽으며 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 만화를 고등학생 때 읽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만 기억날 뿐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으면서 엄지는 왜 오혜성보다 마동탁을 더 좋아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나를 위해 야구 경기에서 져달라는 엄지의 부탁 앞에서 기가 막혔다. 혜성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되어 가슴이 쩌정 울렸다. 그때도 지금도 엄지의 마음을 헤아리기
골짜기를 돌아든다. 산이 산을 겹쳐 안았다. 활엽수가 침엽수를 안고 침엽수가 등성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았다. 안고 안긴 풍경을 안고 안동 봉황사로 들어선다. 봉과 황이 조화를 이룬 봉황이 살고 있으려나. 용마루 위로 한 쌍의 봉황이 날아오를 것만 같다. 봉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13년에 창건되었다. 누가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 관음전, 만월대, 범종각, 만세루, 천왕문 등 여러 전각과 딸린 암자까지 갖춘 규모가 꽤 큰 사찰이었다. 하지만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 극락전, 남덕루, 요사채, 산신각이 있
아르떼뮤지엄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만났다. 명화를 담은 빛의 정원에서는 르네상스부터 상징주의까지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만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 모네, 피카소, 클림트 등의 작품들이 벽면 가득 펼쳐질 때마다 내 몸의 세포 인자들은 감동으로 소용돌이쳤다.설렘의 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사진을 찍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이 천장까지 펼쳐질 때에는 사이프러스나무 옆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다. 여행의 흔적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았다.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보았다. 고흐의 그림들을 살펴보는데
오전 내내 시끄러웠다. 아래층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망치를 치고 두드리는 뭇소리까지 들려왔다. 공사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현장을 보러 갔다. 유리 슬라이딩 문 안에서는 벽면의 타일을 깨고 이젠 쓸모없어진 장식물을 부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닥엔 자재가 뒹굴고 꽉 닫힌 공간으로는 먼지가 빠져나가지 못해 뿌옇게 고여 있었다.안쪽을 들여다보자 나이든 늙수그레한 인부 한 사람과 러시아계의 노동자 두 사람이 제대로 마스크도 하지 않고 등산용 스카프로 대충 입을 가린 채 먼지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입구에 작업을 지시하는 사장님을 잠시
겨울 밤하늘은 시푸르다. 파랑물을 잔뜩 머금은 무명처럼 시린 차가움으로 깊이를 더한다.툭 건드리면 물방울이 아니라 은가루가 좌르르 쏟아질 것만 같다. 피터 팬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날아가는 웬디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자꾸 하늘을 더듬는다. 그럴 때면 내 머리에 숨어있던 기억들이 말랑말랑 파랗게 살아난다.달이 나를 따라다닌 적이 있다. 친구 선이집을 찾아가는 길이나 배꼽마당에 숨바꼭질 할 때, 뒷간에 볼일 보러 갈 때면 나를 따라왔다. 떡하니 나서서 내가 너를 지켜준다는 자랑이 아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은근하게 동무해준다. 든든하게
바람비가 세차게 내리는 겨울 아침이다. 길거리는 무채색으로 덮이고, 바람은 거센 파도처럼 휘몰아쳐 건물 사이를 돌아다닌다. 문득 임인년 새해, 라는 낱말을 떠올리자 호미곶에 가고 싶었다.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고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호랑이 꼬리는 국운상승과 국태민안을 상징한다고 하니, 좋은 기운을 받고 싶어 작정하고 호미곶으로 향한다.내가 마치 바람인 양 해맞이광장을 구석구석 돌아다닌다. 그러다 상생의 손을 마주보며 희망을 가슴 가득 채우고 난 뒤, 기념품 가게에 들른다. 그 곳에서 반가운 난로를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서경주역을 지나 경주역(慶州驛)에 닿을 때까지 강을 건너고 너른 들을 지나쳤다. 강물에 기차여행의 행복감이 투영돼 물결도 덩달아 함께 달렸다. 철로 옆에서 달리는 소리를 오래도록 듣고 섰던 금장대도 경주역사가 사라진다 하니 무겁게 가라앉은 모습이다. 버선코처럼 하늘을 향해 날 듯이 뻗은 경주역의 기와지붕이 한겨울 추위에 더 파리해 보인다.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천정에 한옥의 문살 같은 등을 달아 밝혀놓았다. 한쪽 벽에는 석굴암 속에 부처님 사진이 오가는 이들의 안녕을 빌어 주며 앉았다. 드나드는 기차가 적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