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여론은 생물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절감하는 요즘이다.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생물의 가장 큰 특징은 예측불허”라는 말이 마치 만고불변의 진리같이 느껴진다. 이 진리는 특히 인간에게 와서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앞날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이것은 여론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최순실 국정농단 때문에 모든 것이 가려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야당 전 대표의 UN북한인권선언 기권 대북결재”가 그리고 그 전에는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이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그런데 이제 두 사건은 모두 묻히고 말았다. 정말 예측불허다. 인간사 모든 일이 예측불허 일지라도 필자는 딱 한 가지만은 예측불허가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입시다. 시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은 노부부가 아픔을 딛고 교회에 출석해서 하나님께 거액의 감사험금을 드렸습니다. 헌금봉투에는 이런 감사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좋은 아들을 20년간 우리 곁에 두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영혼을 받아 주심을 감사합니다.”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자기 생의 분신과도 같은 자식을 전쟁터에서 잃고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가라고 의문을 갖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감사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좋은 아들을 20년간 우리 곁에 두셨음을 감사합니다.” 생때 같은 자식을 갑작스레 떠나보낸 사실에 초점을 두는 대신에 20년간 가졌던 아름다운 만남에 집중합니다. “아들의 영혼을 받아 주심을 감사합니다.” 죽어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에 초점을 두는 대신에 그 아들이 지금 하나님의
대한민국이 큰 혼란에 빠져 있다. 하찮은 강남 아줌마가 나라를 거덜냈다. 일국의 대통령이 장막 뒤에 숨어있는 비선실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민의 상처 난 자존심을 어찌할 것인가. 차리리 “모두 내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 밝히고 당당하게 물러나는 것이 분노한 국민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을 듯싶다. 어쩌다 나라 꼴을 이 지경까지 망쳐놓았는지 그저 한숨만 나온다. 영화 `간신`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폭군 연산군이 죽음을 앞둔 희대의 간신 임숭재에게 일갈(一喝)한다. “왕이 잘못을 행하려 할 때, 신하는 목숨을 걸고 간언해야 하는가. 아니면 제 목숨을 애석히 여겨 순종해야 하는가. 군주의 뜻에 영합하여 그 뒤의 해로움을 생각지도 않으니 너는 간신이고, 또한 아
미국 영화 `더록`은 `후버 파일`을 둘러싼 이야기다. 후버는 무려 48년간이나 FBI 국장을 했다. 1972년 심장마비로 숨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 것은 역대 대통령들의 약점을 다 쥐고 있었기 때문. 어느 대통령도 그를 해임하지 못했고 심지어 케네디가 의문의 암살을 당한 후 자리를 승계한 존슨 대통령은 70세인 그를 `종신 FBI국장`에 임명했다. `더록`의 마지막 대사가 “누가 케네디를 죽였는지 알어?”였다. `후버 파일`에는 당시 유명 인사들의 치명적 약점들이 다 들어 있다는 소문이 났었고 모든 정보기관들이 그 필름을 찾으려고 혈안이 됐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고 영화의 소재나 될 뿐이다. 다만 “약점 없는 대통령은 없다”는 것만 밝혀졌다. 현 FBI 제임스 코미 국장은 미 대선을 11일 남겨둔 시점에
백만 촛불이 타올랐다. 사는 곳, 나이, 하는 일이 각각 백만 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한 이름으로 모였다.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던 국민대통합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세종로를 흐르는 촛불은 용광로 쇳물 같았다. 함성은 뜨겁고 이성은 냉정했다. 집회는 내내 질서와 평화를 유지했으며, 폭력이나 비양심이 드물게 삐져나오려 할 때마다 자체 정화되었다. 사람들은 일그러진 국가 면전에다 국민의 위엄과 품격을 보여주었다. 시위라기보다는 축제에 가까웠다. MC의 진행과 가수 공연, 시민들의 자유 발언은 선동이나 호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위트 넘치는 해학과 풍자, 자기반성 등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무척 세련된 것이었다. 정치인을 비롯해 사회 저명인사들도 있었지만, 내빈 소개 같은 의전 따위 끼어들 수 없었다.
11월 12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우리의 화두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었다. 모두가 분노에 찬 일성으로 박근혜의 퇴진을 외치고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을 비난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대통령 중심제의 한계적 상황, 특히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제의 폐해일 것이다. 대통령의 통치가 시스템이 아니라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과 청와대 일부 비서진에 의해 이뤄지는 한계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결국 국가의 시스템이 대통령이고 그 대통령의 오판은 결국 시스템의 오류로 나타나 이러한 심각한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현재 정치권, 특히 국회와 정당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가 무력한 상태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모두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만을 이야기할 뿐 그 누구도 미래를 말하는 사람이나 세력이 없다. 문제는 드
중국 고대 왕조시대의 가장 무서운 정치적 형벌은 멸족(滅族)이었다. 반역죄를 범한 자의 `부모·형제·처자` 또는 `친가·외가·처가` 3족(三族)은 물론 `부계 4친족`, `모계 3친족`, `처가 2친족` 등 9족이 참혹한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다. 때로는 10족이라 해서 죄인의 스승이나 문하생까지 몽땅 역도(逆徒)로 묶어 죽였으니 멸족이란 가히 `씨를 말리는 공포의 형벌` 그 자체였다. 우리의 고려·조선 역사에도 `친가·외가·처가` 3족을 극형에 처하거나 참수했다는 기록은 꽤 남아 있다. 멸족을 대신해 내린 형벌이 폐족형(廢族刑)이다. 목숨만은 살려주고, 후손이 대대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한 형벌이다. `폐족`이란 말은 지난 2007년 당시 전 노무현 대통령의 책사였던 안희정 씨가 친노(親노무현) 세
조선조 정조대왕의 문체반정(文體反正)때문에 연암 박지원 등이 시도했던`문장혁명`이 좌절됐다. “고문체로 된 글 몇 편을 써오면, 벼슬을 내리겠다” 정조가 연암에게 한 이 말이 문체반정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서얼 출신들 중심의 글꾼 모임인 `백탑파`는 종래의 `고문체`에 신물이 났다. 운율을 맞춰야 하고 고상한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그런 글로는 사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때 중국에서 소설(小說)이 들어왔다. 백탑파들은 쾌재를 올렸다. “바로 이런 문장이다!” `운문`에서 `산문`으로의 문체혁명이 그렇게 태동했지만 정조는 “품격 없는 글이 인성을 해친다” 했다. 트럼프 후보의 당선은 지식인·오피니언 리더들이 전혀 예상 못한 결과였다. 그의 말은 품위도 없고, 고상하지도 않고, 멋대가리도
대한민국이 온통 불신과 분열의 덫에서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아니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블랙홀로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집권세력은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해관계로 점점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송두리째 흔들어 대고 있다. 대한민국이 1945년 자유 독립국가로 거듭 태어난 후 국내·외적인 위기는 수차례 있었지만, 현재 우리 국민들이 처해 있는 모습은 분노와 울분에서 오는 정신적 박탈감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0년 역사 속에서 900여 차례의 외침을 극복하며, 당당히 일어선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족이다. 정치와 경제, 문화까지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이번 사태 역시 합리적이고 현명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
지난 주 수요일 제45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 선거가 있었다. 그 결과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과반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여, 오는 12월 19일(현지 시간)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에서 대통령으로 공식 선출된다. 이미 전 세계는 트럼프를 차기 대통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시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세계의 경제, 정치, 안보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언론이나 주위의 친구들 반응이나 모두 트럼프의 당선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라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올 초부터 미국 친구들로부터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 언론이나 미국 언론의 예측과는 달랐다. 이런 발언들은 미국 언론에서 발표했던 지지율 조사와는 많이 차이가 나서 설마
미국의 `대선 전`은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의 여론 조사와 언론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한국 언론에도 대부분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의 평가와 예측을 뒤엎고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으로 무난히 당선되었다. 미국의 기득권 정치에서 아웃사이더의 승리이고 하층민의 반란 때문이란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신고립주의라는 정책의 기조는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의 대 한반도 정책은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다소의 변화 가능성은 있다. 그의 대선기간의 발언을 중심으로 당면한 대북 정책의 이슈를 진단해 본다. 우선 주한미군의 방위비 인상 문제이다. 트럼프는 유세 중 `안보 무임승차`를 반대하면서 독일, 일본, 한국은 미군 주둔비용을
인류가 최초로 만든 조각상이 `비너스상`이다. 출산과 양육이라는 `생산의 대지`요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여신의 존재감을 한결 드높였다. 제우스신이 최고신이지만 아내 헤라에게 꼼짝 못하는 공처가 신으로 그려진다. 신전 대부분은 여신에게 바쳐졌다. 인도에도 수많은 신들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여신이고, 가장 인기 높은 신도 여신이다. 이렇게 평화시대에는 여신들이 존중됐으나, 전쟁시대를 지나면서 남신이 우위에 오른다. 야훼, 제우스, 토르, 인드라, 마르두크 등이 신계(神界)를 지배하는데 젊은 태양신 마르두크가 늙은 여신 티아마트를 굴복시킨 이야기가 상징적이다. 모계사회에서 바야흐로 부계사회로 이행된 것이다. 이슬람 사회는 물론이고,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아르헨티나 등도 여성이 학대받는
트럼프의 당선은 모두에게 의외였을 것이다. 트럼프 자신도 놀랐을 것이다. 그 만큼 현재의 경제상황에 불만을 갖고 있던 미국인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은 미국 고용상태가 좋다고 선전했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고, 그럴수록 배신감이 커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10월 미국의 시간당 임금상승률은 2.8%로 2009년 이래 최고 수준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미국 노동자의 82%를 차지하는 생산직, 일반직 근로자 임금 상승률은 2.4%였고, 그것도 최저임금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에서 온 부분이 컸다. 여기서 물가상승률(Core CPI) 2.2%를 빼면 실제 임금상승은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머지 18% 상위 관리직의 임금 상승률은 4.7%였고, 이로 인해 위화감이 커졌다. 저성장의 고통
트럼프가 이겼다. 국제 정치 전문가 이춘근 박사를 비롯한 자유주의 진영의 인사들은 오래전부터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했다. 하지만, 국내 종편과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트럼프의 승리를 눈꼽 만큼도 예상치 못했다. 힐러리로 시작해서 클린턴으로 끝나는 기사만 썼다. 오히려 트럼프는 미치광이로 힐난했다. 완전 오보였다. 한국 언론의 현주소다. 이미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는 이러한 국내 언론의 상황을 모니터링 했으리라. 어처구니 없고 참담하다. 한국 언론의 나비 효과가 도쿄에까지 미쳤던 것일까? 일본의 극우 아베 총리도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될 것이라 오판하고, 얼마 전 방미 때 트럼프를 만나지도 않았다. 아베는 지금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게임은 끝났고 승자는 결정되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인류의 역사는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지배하는 역사였다. 의식주를 위해 땀 흘려 수고하는 것은 언제나 약자의 몫이었지만 그 대가는 대부분 강자들의 차지였다. 이 땅위에 세워진 찬란한 인류 문명의 유산이란 것 치고 강자의 위세와 영화와 안락을 위해 약자들의 눈물과 피땀과 희생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그것이 인류가 구가해 마지않는 문명의 본질이고 인간 세상의 실상이다. 인간사회도 일견해서는 약육강식하는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지만, 동물들은 생존에 적당한 양 이상은 결코 탐하는 법이 없는데 비해 인간의 욕망은 블랙홀처럼 밑도 끝도 없다는 점에서 천양지차다. 말하자면 탐욕이 있고 없음에 인간과 동물이 구분지어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문명이란 결국 탐욕의 산물에 지나지
학생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시작할 때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각오로 써야 하는지를 말해주기 위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정작 나는 그렇게 못 쓰지만, 학생들이 나 대신으로라도 이런 글을 써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 이야기는 우주의 어둠으로부터 시작한다. 우주에는 숱한 별들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은하가 존재하며, 또 태양과 같은 행성이 은하 속에 더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주엔 태양과 같이 빛을 뿜어내는 별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 빛들에 의해 밤도 낮처럼 환해야 한다. 그런데 왜 밤하늘은 어두운 것일까? 이 문제는 1820년대에 활동했던 독일인 물리학자 올버스 혹은 올베르스(Heinrich Wilhelm Olbers)에 의해 제기되었다
논어를 흔히 천하제일의 책이라 하고 “최상지극우주제일(最上至極宇宙第一)의 책”이라고 한다. 읽을수록 알듯하면서도 좀체 가늠할 수 없는 그 깊이를 가지고 있다. 여름에 읽는 논어와 겨울에 읽는 논어의 깊이가 다르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일까. 맹자는 여름에 읽으면 속이 시원해지고 논어는 겨울에 읽으면 따뜻해지고 대학과 중용은 아침에 읽으면 맑아진다고 하니 참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공자께서도 학문에 대한 즐거움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즐거움도 근심도 잊어 자신이 늙어감을 모른다”라고. 즐거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살면서 가식없이 기쁘고 슬플 때도 있겠지만 기쁨, 슬픔, 근심, 희망도 모두가 작위에 의한 마음의 조작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이른 새벽이 편치않다. 사람의 생이란 기쁨이 한 말이며 슬픔과 근
지난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구국 천제 기도회`가 열렸다. 주최자는 안소정 하늘빛명상연구원장이었고 `고유문` 낭독자는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지명자였다. 박 내정자는 일찍 안소정 원장의 `빛명상` 강의를 듣고 감동받아 제자가 됐고 명상록 `사랑은 위함이다`에서 자신의 영적 체험을 소개했다. “필자는 이 지구에 47회나 여러 다른 모습으로 왔었다. 바닷속에서 태어난 적도 있다”란 내용도 있고 “명상을 하는데 흰옷 입은 옛 노인이 나타나 정조의 일기장 일성록(日省錄)을 건넸다. 노인은 전봉준 장군이었다”란 글도 있다. 지금은 `무당` 혹은 `무속인`으로 바뀌었지만 옛 신정(神政)시절에는 천제(天祭)를 주관하는 제사장, 곧 왕이었다. 무당에는 각각 전공분야가 있는데 병을 잘 고치는 약사무, 미래를 미리 아는
`산은 첩첩이 쌓여있고 물은 돌고 돌아서 이제 길이 없는가 여겼더니 버드나무 그늘이 우거진데 아름답게 꽃이 피어있는 또 하나의 마을이 있더라.`(山重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산중수복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 송나라 육유의 `유산서촌(游山西村)`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두운 현실이 끝나는 길목, 혹은 힘든 상황 뒤에는 좋은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위기는 기회라 했다. 이번 기회에 나라를 한번 확 뜯어고치면 안 될까.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온 나라를 뒤흔들어놓은 이 상황에도 여야는 서로 정치공세하느라 바쁘다. 여당은 친박계와 비박계로 패가 갈려 사태수습책을 놓고 다투고 있고, 야당은 왠지 사태 수습보다는 파문의 확대재생산에 더 열심인 듯 하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논개` 1연). 수주(樹州) 변영로(1897~1961)의 절창(絶唱)이다.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의 목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투신한 논개를 떠올리며 지은 시다. 강낭콩과 양귀비의 대비(對比)도 그렇지만 푸른 물결과 붉은 마음이 어우러져 대조적인 색채와 함께 조화를 선사한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첫 번째 구절이다. 종교보다 깊은 거룩한 분노! 시인은 어떤 분노를 생각했을까?! 거룩한 분노는 어떤 형상과 내용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체계화해 일컫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이나 사단칠정(四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