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서 가장 기막힌 구절 하나 꼽으라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아닐까 한다. 중니(仲尼)처럼 도에 가까이 있던 사람이 저런 객기를 부렸다는 것은 그만큼 도를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반증일 것이다. 주(周)의 법도가 다하고 천하가 100여 개의 나라로 쪼개져 할거하던 시기에 도를 구하여 예악세상을 실현하려 했던 공구(孔丘). 그러나 어느 권력자나 제후도 그를 등용해 부국강병의 길을 꾀하지 않는다. 공자의 도는 시대와 불화하여 머나먼 과거의 신기루로 받아들여졌던 탓이다. 그는 이미 35세에 제나라 경공에게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여덟 글자로 정사(政事)의 요체를 갈무리했던 천재 아니었던가? `군왕이 군왕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비가 아비다우며, 자식이 자식다워야 비로소 국가의
유교문화를 바탕에 깔고 500여 년을 유지해온 조선조 사회에서 군자와 소인이란 말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말도 없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는 제자들에게 군자와 소인의 분류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는 `논어 자로편`에 `군자는 남과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지만, 소인은 남과 부화뇌동하기만 할 뿐 화합할 줄 모른다`고 정리하였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가르치면서 상반된 인간유형으로 군자와 소인을 대비시키고 군자의 삶을 지향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조선후기 문신 이응신(1817~1887)은 `소산문집초고` `유속을 징계한다`라는 논고에서 소인과 유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국가를 다스림에 없애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소인배와 유속이다. 이들은 임금과 굳게 결탁하고 패거리를 널리 심으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발표된 19일, 언론들은 저마다 다른 논조로 계획안에 대한 평가를 내놨다. 주로 대선 당시의 공약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나가겠다는 방향을 정리한 계획안이지만, 향후 국정의 설계도인지라 많은 관심을 모은 게 사실이다. 국정운영 계획안에서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기치로 100대 국정과제와 487개 실천과제, 4대 복합혁신과제를 제시했다. 권력기관들은 개혁에 맞닥뜨리게 됐고, 대기업과 초고소득자 등은 사회적 책임을 지게됐다. 사회 경제적 약자를 위한 국가지원은 대거 확충되고, 범정부적 사정작업은 상설화하기로 했다. 지역민 입장에서 가장 관심이 많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관련한 제안도 담겼다. 100대 국정과제를 다섯개의 국정목
조선시대 영조 왕은 붕당(朋黨)정치의 결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붕당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기에 왕위에 오른 영조로서는 탕평책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도 당쟁의 폐해를 막고자 탕평책을 쓴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는다. 정조는 국왕에 즉위한 1776년 9월 `탕평윤음`이라 불리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발표한다. “탕평이란 곧 편당(偏黨)을 버리고 상대와 나를 잊는 이름인데 위에서 본다면 균등한 한 집단의 사람들이고 다 같은 동포이다. 지금 이후로 무릇 나를 섬기는 조정 신하는 노론이나 소론 할 것 없이 모두 대도(大道)에 나오도록 하라. 오직 그 사람을 보아 어진이는 등용하고 몹쓸 사람은 버릴 것이다”라고 했다. 탕평(蕩平)이란 서경에 나오는 왕도탕탕(王道蕩蕩) 왕도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의 수입이 일반서민들의 수백 배에 달하는 것은 상품성 때문이다. 그만큼을 주고도 돈벌이가 된다는 얘기다. 당시에는 팔리지도 않았던 고흐의 그림이 이제 와서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것도 예술적 가치보다는 상업적 가치가 더 큰 이유일 것이다. 21세기를 특징짓는 글로벌시대니 정보화시대니 하는 것도 물론 상업주의의 일환이다. 도대체 상업성이 없다면 누가 앞다투어 신소재를 만들어내고 정보의 경쟁에 박차를 가하겠는가. 한 마디로 상업주의야 말로 이 시대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인 것이다. 상업주의가 갖는 속성 중 우선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경쟁의 논리`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지금, 보다 나은 상품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경쟁은 그야말로 사활을 건 전략이요
① 사진작가 김홍희는 “실제로 촬영되는 어떤 광경이란 실제로는 사진가가 보지 못하는 순간이다.”라고 썼다(`몽골방랑`중). 사진작가는 정작 보아야할 순간을 볼 수 없다. 중은 제 머리를 깎을 수 없고, “누구도 자신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볼 순 없다.”(김종태,`자가수혈`). 셔터를 누르면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작가는 정작 그 순간을 보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사진작가의 운명은 비극적이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월터가 사진작가 숀 오코넬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월터가 우여곡절 끝에 숀 오코넬을 만난 곳은 히말라야였다. 오코넬은 히말라야의 유령이라 불리는 눈표범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 씩 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월터가 그를 찾아야만 했던 이유를 말하
한국의 젊은세대는 그들의 미래에 관하여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여 부모세대보다 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다는 것이다. 한 회계법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27개국의 밀레니엄 세대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경제낙관지수가 평균 11점이었던 데 비하여 한국의 젊은이들은 겨우 1이었다고 하며 이는 27개국 가운데 20위라는 것이다. 즉, 오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그들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사뭇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해 가려면 기성세대가 행복해 지는 것이 중요한 만큼, 다음 세대 즉 청년과 청소년이 행복해야 한다. 그들의 미래를 기대 가운데 준비하며 꿈과 희망을 그려갈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미래가 있는 공동체`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이른바 `디터우족(低頭族)`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목숨까지 잃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전 스마트폰을 하다 육교를 내려오던 여성이 발을 헛디뎌 숨진 사고가 있었다. 한 여성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육교를 내려오다가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계단에 머리를 부딪친 뒤 육교 밑까지 떨어졌다. 이 여성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또 다른 10대 청소년은 스마트폰을 보며 공원을 산책하다가 호수가 있는지도 모르고 물에 빠졌다. 인적이 드문 밤 시간대여서 주변의 도움도 받지못해 갓 중학교를 졸업한 이 남학생은 결국 물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보행자는 물론 운전자까지 스마트폰을 보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찬미 예수님. 루카 복음16,19-31.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에 관한 비유를 들려줍니다. 이 비유에서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고 전합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는 비싸고 좋은 옷도 주저하지 않는, 호화로운 식탁을 차리며 자신만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자신 이외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그래서 자기 집 문간에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누운 채 굶고 있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를 돌볼 생각은 전혀 없는 부자입니다. 반면에 복음에 나오는 이 가난한 사람은 세상의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아서 하느님만이 그를 기억하고 걱정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부자와는 다르게 이 사람은 이름이 전해집니다. `엘레아자로`라는 이름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고리원전 1호기가 공식 폐쇄됐고, 지난 14일에는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공사도 한수원 이사회가 3개월간 일시중단 결정을 했다고 한다. 전기요금 인상, 전력수급의 안전성 등 국민적 걱정이 많지만 선거공약이라는 이유로 강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원전 건설을 연기한 후폭풍은 차차기 정부에 몰아닥쳤다. 바로 2011년 일어난 대규모 블랙아웃 사태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차기 혹은 차차기 정권에서 뒷감당을 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내세우는 대체 에너지란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정부는 독일의 경우를 전가 보도로 내세우지만 선진각국이 원전폐기
“타자는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다. 혼자서 알몸으로 있다가 누가 지켜보면 부끄러워 옷을 입는다. 혼자 노래 부르며 춤추다가도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면 중단한다. 길에서 넘어졌을 때 아무도 없으면 엉덩이를 붙잡고 실컷 아파하지만 보는 사람이 있으면 `쪽팔려서` 얼른 일어난다. 내 행위의 자유를 앗아가므로, 타인의 시선은 감옥이고 지옥이다. 타자의 시선들로 이뤄진 `감시`의 사회를 미셸 푸코는 `파놉티콘`(원형감옥)이라고 했다. 어디에나 보는 눈들이 있다. 시선을 수단으로 과시와 감시, 증명과 확인, 관음과 노출이 이뤄진다. 굳이 시선이라는 작용이 아니더라도 타자는 그 존재 자체로 지옥이다. 나에게 고통을 줄 때 특히 그렇다. 타인의 체온, 냄새, 분비물, 소음, 신체접촉으로 가득한 출
시민들의 소중한 재산을 노리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경찰 및 관계기관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지만, 그 수법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초기의 보이스피싱 범죄수법은 주로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한 후, 피해금을 대포계좌로 이체받아 인출책이 현금을 빼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포통장을 구하기 어려워진데다 단속이 강화되자 피해자를 직접 만나 수사기관이나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 돈을 건네받아 달아나는 `대면편취형 보이스피싱` 범죄가 성행하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쉽게 당할 수 있을까`, `나와는 절대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보이스피싱범들은 잘 짜여진 각본과 뛰어난 언변으로 피해자를 당황하게 하고, 교묘하게 위조된
20대 국회의 여성의원 수는 51명이다. 300명 전체의석 중 17.0%를 차지한다. 2대 국회에 처음으로 2명의 여성의원이 입성한 이래 20대 국회는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아직은 국제의원연맹 회원국의 여성의원 비율인 22.7%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여성에게 불리한 공천과 선거문화에도 불구하고 지역구에 26명의 여성의원이 선출되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오브리언은 “여성의 리더십 스타일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필요를 채워주는” 특징이 있다고 하였다. 여성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통해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주길 기대하는 이유다. 그러나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한 여성의원은 이러한 믿음을 배반하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회의원은 4년간 위임된 권력이다. 그렇
요즘 지역언론에서 지방정부란 말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아니고 지방정부여서 그 의미가 사뭇 중요하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 대칭되는 개념이다. 중앙과 지방이 동등한 입장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발전을 이끌고 갈 축으로서 동등하다는 것으로 앞으로 지방의 역할이 커짐을 예고한다. 문재인 정부의 큰 화두 중 하나가 지방분권이다. 대통령도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 분권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방분권을 간절히 희망했던 지방으로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가울 뿐이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지방분권형 제도가 확실히 뿌리를 내리길 기대하고 있다. 지방정부란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 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방정부의 개칭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핵심 덕목 중 하나로 이야기되는 것이 `상생(相生)`과 `배려(配慮)`다. 서로 함께 하고 상대를 위해 자신을 조금은 낮출 수 있는 것이 당연함에도 어느 때부터 상생과 배려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상생을 이야기하면서 뒤로는 칼을 꽂는 게 예사로운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를 모방하는 사례들이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으니 후배들에게 부끄럽다. 배려를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돌아올 수지타산만을 머리 속으로 계산하고 있는 세태가 안타깝다. 참으로 약삭빠른 세상이다. 그래도 이 땅이 살만한 세상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어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한다. 최근 경산버스㈜ 고객서비스센터에 젊은 기사를 칭찬하는 글이 올라왔다. 고객서비
한국이 경제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으나, 행복지수는 OECD 국가들 중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경제적 `성공`이 반드시 행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알버트 슈바이처가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고,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고 말했듯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삶의 질은 물론,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성공`을 촉진시키는 촉매역할도 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을 통해 포스텍 박태준 미래전략연구소가 2016년에 발간한 `행복지도 (Happy Map)를 만들었어요`라는 책자를 인용해 우리 자신을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관점에서 숙고해 보았다. 36인의 외국인 기고가들은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 왜 행복지수는 뒤처져 있는가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첫째,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행복할 시
끝없는 이슈 싸움이다. 지금 이 나라 모습은 마치 어느 정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영화 속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특히 영화의 대사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데자뷔를 보는 듯 하는 대표적인 대화는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이다. 어떤 일이 일단락되는가 싶으면 어느새 새로운 이슈가 대기 중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이슈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현 정부가 하는 일이 뭔가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인사 청문회도 그렇고, 추경도 그렇고 그동안 답답했던 속을 뻥 뚫어줄 뭔가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답답할 뿐이다. 해결책은 없고 제보 조작, 캐비닛 문건 등 이슈만 쏟아지고 있다. 이 사회는, 또 이 나라 정치는 이슈를 찾기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한다. 단,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야 하지 않겠나. 사람은 늙을수록 통증을 달고 산다. 특히 노인들은 면역체계가 약해져서 암에 걸리기 쉬운데 암 투병에는 상당한 고통이 수반된다. 암 투병을 하셨던 친구 아버님께 문병간 적이 있었는데 어금니가 다 부러지셨다고 했다.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으셨던 것이다. 암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인가? 정신적인 우울증도 문제다. 지금 노령화되고 있는 세대는 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경제의 고성장을 일궈낸 분들이다. 즉 일 중독에 빠져 살던 사람들이다. 이제 은퇴를 하고 난 후 그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다. 특히 세계경제가 저성장에 시달리고, 부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가운데 우울증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달래
문재인 정부가 시간당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까지 올리겠다는 대통령공약에 맞춰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다. 2016년 시간당 6천30원에서 2017년은 7.3% 상승한 6천470원이었고, 2018년 최저임금은 16.4% 인상한 7천53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제도는 국가가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수준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1인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최저임금은 노사공익대표 각 9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매년 인상안을 의결해 정부에 제출하면 고용노동부장관이 8월5일까지 결정해 고시한다. 사용자는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 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최저임금액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수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
최근 지상파나 케이블 TV 채널의 오락프로그램을 통해서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생활이 소개되고 높은 시청률을 얻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주로 즐기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계기로 “욜로 문화”라는 용어가 언론 매체를 통해서 대중화되고 있다. 욜로 문화를 어떻게 봐야만 하는 걸까? 욜로(YOLO)는 “당신은 오직 한 번만 산다”(You Only Live Once)에서 해당 영어 단어의 앞글자만 딴 것이다. 오직 한 번만 사는 인생이니까, 지금을 즐기면서 살자는 메시지가 이 안에 담겨 있다. 현재 욜로 문화는 20, 30대가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오늘에 집중하려는 태도가 이 문화에 반영되어 있다. 미디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