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봉준호 감독 첫 영화는‘괴물’이었다. 아니었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살인의 추억‘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향숙이 이뻤다.”가 재밌기는 했지만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가 썩 명료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마더’는 어땠던가? 지인들 중에는 주인공의 연기 때문에 너무나 몰입했다는 의견들이 있었지만, 나는 왜? 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모성애의 덫을 그린다고 보면 되지만 이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정곡을 찌른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지나친’ 그로테스크 때문일까?‘괴물’에서는 한강에 괴물을 살게 하는 원인
‘기생충’은 이 영화에서 누구냐?송강호 분 기택의 가족 기우는 명문대 다니는 친구 소개로 아마도 평창동일 부잣집 여고생 영어과외 교사로 들어간다.평창동 사람들은 이 영화 안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느긋하게 보기에는 꽤나 불편한 영화라고나 할까. 나도 옛날에 그 동네 과외 아르바이트 하는 친구 얘기를 들었는데, 집안에 에스켤레이터가 있다던가. 수영장 같은 건 말해봐야 빈축이나 살 것이고, 워낙 흔한 얘기여서 말이다.이 기택 가족은 한 마디로 말해 ‘악’하기 그지없다. 대학 졸업장 위조해서 과외 교사로 들어가 놓고 모자라 자기
1562년에 나서 1611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 구마모토의 다이묘(大名)다. 우리한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함께 조선을 침공해 들어온 적장으로 악명이 더 높다.원래 도요토미의 먼 친척이라 하며 그가 일본의 패권을 쥘 때 전공을 세우면서 유명해졌다 한다. 그건 일본에서 일이고 한국에 와서는 조선 사람 살상하는 일로 큰일을 했다. 듣자하니 얼마나 공을 세웠나 하는 것은 사람 목을 얼마나 벴나 하는 것, 머리를 베어 보내려면 부피가 크니 귀를 잘라 소금에 절여 숫자를 셀 때까지 잘 보관되록
2018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한다. 프리 솔로 선수라고 해야 하나? 알렉스 호놀드는 드디어 요세미티 공원 암벽한 엘 캐피탄에 도전하기로 한다. 914미터 높이, 해발로 치면 2300미터의 화강암 암벽 덩어리 엘 캐피탄. 여기 어떤 등산 장비도 없이 오로지 맨손과 맨팔로, 등산화만 신은 채 오르고자 하는 것이다.어째서 이렇게 프리 솔로라는 말이 붙었는지 모르지만 어감부터 이런 류의 등반에 딱 어울리는 어휘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 어느 등반가가 등반 속에서, 산 속에서 얻는 고독을 흰 고독이라 하여 세속의 외로움 검은 고독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감독상을 탔다 하니, 한동안 잃어버렸던 영화열이 되살아나는 것같다.뭐, 좋은 것 없나? 옛날 옛적에 홍콩 느와르를 좋아했고, 조금 더 돼서는 전쟁영화, 그중에서도 베트남 전쟁 영화 광이었다, 이창동, 박찬욱으로 와 끝이었다. 웬만한 영화는 십 분, 이십 분을 끌어가기 어렵다. 지친 사람의 인내력을 말이다. 얼마 전에는 괜찮다 해서‘극한직업’이라는 걸 봤다가 나는 벌써 완전 가버렸구나 했다.좋은 걸 좋게 볼 수 없게 됐단 말인가? 그래도 얼마 전에는 ‘프리 솔로’라는 것을 꽤나 진지하게 지켜
‘자연 부여 유스호스텔’이라는 곳은 부여에서 대천 쪽으로 가는 반교리에 있었다.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쬐끔만 더 가면 바로 대천이라고 했다. 유스호스텔은 1999년에 폐교된 반교 초등학교 자리에 세운 것이었다. 우리 3조는 한밤에 건물을 빠져나와 축구장에서 서로 공을 차넘기는 놀이를 했다. 잔디가 두텁게 깔린 축구장은 아침에 조기축구 시합이라고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하지만 아침이 되자 우리는 모두 늦게 일어났고, 아름답게 단장한 유스호스텔을 아쉽게 떠났다. 다음 행선지는 공주, 우리는 우금치로 갔다 공산성을 보고 풀꽃문학관
수원이라면 서울에서는 한 시간 거리다. 두어 주 전에 수원 화성 근처에 갔을 때다. 문학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좋은 봄날에 화성 성곽 둘레길을 걸어 보자 한 것이다. 과연 아름다운 화성이었다. 정조가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거처하려 했다는데, 그럴 만큼 웅장하고도 수려한 성이라 할 수 있었다.봄날도 화창하고 인연 있는 사람들끼리 모처럼 만나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았다. 나중에는 시낭송도 했는데, 그 전에 우리 몇 사람은 먼저 자리 잡고 앉아 막걸리라도 두어 대접 마시자 했다.막걸리 사러 슈퍼에는 누가 가나? 하면 응당 나이
세상살이의 신기함.나이가 들수록 어려운 것도 이 신기한 세상살이의 하나일 것이다.하루하루 그렇게 자꾸 반복을 했으니 쉬워질 만도 하건만, 이 세상살이라는 것은 도무지 쉬운 상대가 될 것 같지 않다.무엇이 이렇게 힘들 게 하는 것이냐, 하면, 무엇보다, 그 원인은 자기 잘못에 있다.세상에 완전한 사람이란 없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절대 완벽할 리 없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모자라지도, 그릇되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남들이 그런 오기를 쉽게 봐줄 리 없다. 넘어가 줄 리 없다.다음 원인은 ‘남들’의 냉담
중국에서 보면 한국은 가까우면서도 멀다. 비행기에 실려, 버스에 실려 왔다 갔다 삼박사일. 상하이에서 항조우로, 그리고 다시 소흥으로.삼일운동 백주년이라고, 삼박사일 학술대회 겸 견학을 온 것이다. 상하이와 항조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옛 건물이 남아 있고, 소흥에는 루쉰의 자취가 남아 있다 한다. 이쪽으로 건너오기 전에 임시정부 백 주년 기념 원탁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삼일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삼일혁명이요, 왜냐하면 바로 이 의거를 통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하이의 임시정부 선언 날은 1919년 4
세월은 짧고 소년은 금방 늙어진다고 한다. 서울에 바야흐로 봄이 미쳐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이 흐드러졌다. 목련은 좀더 일찍 피었다 사그러들 지경이고 산수유도 일찍 왔다 다녀갔다.올봄은 그래도 어렵게 왔다 허무하게 간다. 며칠 날씨가 좋지 않아 비 왔다 추웠다 오늘에야 활짝 갰다. 학생들에게 이번 비에는 벚꽃이 지지 않겠지만 한 번 더 비가 오면 그때는 아름다운 벚꽃도 다 져버릴 것이라 했다.그러고 보니 처음 세월호 참사 일을 소식으로 접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날 나는 관악산을 홀로 오르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은 게 계속되다 보니
신촌에 살 때는 그래도 시내 가까워 좋았다. 종로라 해도 지하철로 이십 분이나 걸릴까.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게 시간이 좀 걸리지만 교통이 그만큼 편한 데도 없다.은평 하고도 독바위역이라.북한산 자락이라 공기는 좋다지만 어디 한 번 가려면 시간을 꽤 들여야 하게 됐다.지하철 6호선이 있기는 있는데, 은평 쪽 끝이 고리 모양으로 생겨 응암역에서 역촌, 불광, 독바위, 연신내, 구산 거쳐 다시 응암역으로 나오게 된다. 이 사이에 있는 역들은 일방통행인데 특히 내가 오르내리는 독바위역은 지하철 출구가 하나밖에 없다. ‘1번 출구’가 처음이
하노이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인천 공항에 내리자마자 밀려드는 공기. 고국의 공기는 정말 정겹더군요. 코를 킁킁거리며 익숙한 바람 냄새 맡아보니 정말 이 나라로 돌아와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반가운가요? 같이 모여 살 때는 서로 으르릉거리는 게 어지간히 질리기도 했는데, 몇 일 안 봤다고 그립기까지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리고 커피. 베트남 커피 맛있다고 원두커피도 몇 봉투 사고, 베트남식 믹스커피도 사마시기는 했지만, 역시 한국식 아메리카노가 아쉬운 여행이었지요. 비행기에서 내려 귀국장으로 나오자마자 프랜차이즈 아무데나
몇 년 전에 일본 도쿄 같은 곳에 가보면 공기가 아주 멀쩡한데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처음에는 감기 걸린 사람인가 했고, 그 다음엔, 아, 일본 사람들 중에는 폐쇄적인 사람이 많아 저렇게 자기 얼굴을 안 드러내려고까지 하나, 했다.공기가 한국에 비해 결코 나쁠 수 없는 나래기에 사람들 기질 탓으로, 더 예민한 족속들이라고 오해를 한 것이다.이제 한 가지 추측을 더 보태면 일본에서는 더 일찍부터 미세먼지를 경고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아마도 나는 공기에 아주 민감한 체질을 타고 난 게 아닌가 한다. 옛날에 자
하노이의 마지막 날, 며칠째 계속되던 흐린 날씨도 가셨다. 하루는 겨울인데도 꽤나 무덥더니 다시 한국의 초가을 날씨로 돌아왔다.길가의 베트남 음식을 파는 곳에 우리가 들른 것은 밤, 아홉시 반은 되었다. 피곤은 한데, 내일 아침이면 일행들은 하롱베이로 떠나고 나는 이 나라로 돌아와야 했다. 벌써 일주일 넘게 체류하고 있어 적당히 지쳤지만 타향에서 만난 친구들을 이 좋은 밤에 그냥 외면할 수 없다.플라스틱 탁자를 가운데 놓고 서로들 둘러앉았다. 나는 그중 작디작은 의자를 골라 납작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쌀국수 국물 같은 데다 쇠
하노이 제일경은 호수들이다. 하노이는 한자로‘河內’라고 쓴단다. 두 강 사이에 끼어 있는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한다. 막상 하노이는 강보다 크고 작은 호수의 도시다. 물웅덩이가 자그마치 삼백 개나 된다나.여기 상사에서 십 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 어느 분에게 호수들이 물은 깨끗한가 물었다. 수질 관리가 어느 정도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만약 호수들이 오염되어 있다면 하노이는 물 썩은 내를 풍길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워낙 자외선이 뜨거워 물이 자연 정화되는 것 같다고도 한다.지금 여기 시간 아침 7시 반. 42층
설 날 때 만날 친구는 어떤 친구가 좋은가? 돈 많은 친구인가, 힘 있는 친구인가?옛날에는 그랬을지 모르겠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기도 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는 게 나의 체험적 진실.돈 있는 친구, 그는 왜 돈 많게 되었는지 깨닫게 해줄 만큼 돈이 굳다. 자기 돈 불리게 해 주는 친구 아니면 상대도 잘 안 해 주는 경우가 많다.힘 있는 친구, 그는 자기를 더 힘 있게 해줄 사람 찾아다니기 바쁘다. 그 힘 가져다 힘없는 사람 도와주는 데 쓰는 법이 어지간히 없다.그러니 무엇이든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끼리 친구 삼는 게 참 좋다.
태운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며칠 전에 쓰고 나니, 그런 태움 말고 다른 태움을 생각하고 싶어졌다.몇일 전에 쓴 태움이란 무엇이냐 하니, 영혼이 다 타버릴 때까지 괴롭힌다는 간호사 사회의 끔찍한 문화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게 태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 사회만 그런 게 아니요 한국 사회 전체가 태움으로 마치 불타는 집에 들어앉은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쓴 것이다.다른 태움이 있다. 어렸을 때 아이가 귀여워 못 견디겠으면 그 태움이라는 걸 해준다. 아빠가 아이를 등에 올려놓고 방안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는 태움, 아이를 어깨 위 목에
저는 친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못 뵙고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께서도 아버지 젊어서 돌아가셨다 합니다. 계모님 밑에서 자라난 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늘 외로워 보이시고 저도 그런 아버지를 닮았음을 나이가 들고서야 깨달았습니다.대신에 외갓집에는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당당히 계셨습니다. 딸만 다섯에 아들 하나, 전부 학교 선생님한테 시집 장가 보내서 가난한 외손자 외손녀들이 방학 때마다 달려들어 하나뿐인 외숙모를 어지간히 괴롭혀 드렸습니다.겨울에도 외할아버지는 늦게 일어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유튜브는 오늘 같은 세상에 참 쓸모가 많다.유튜브가 선사한 새 세상 가운데 하나가 무당들 세상이다. 무당이라면 신비롭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고 그보다 미신이라거나 천하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곳에 가도 무당 없는 곳 없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아니면 별종 세계 사람인 듯 취급하기 일쑤인 것이다. 그런데 유튜브가 이 세계를 세상 속으로 들여왔다. 어느 날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 보니 용하다는 점집 찾아가 점 보는 과정을 고스란히 유튜브에 올려 놓는‘채널’이 있더라는 말씀이다.주위에도 사주 명리를 공부한 사람들
요즘에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뒤돌아 볼 짬 없이 앞으로만 내달리고 내달리며 한 6개월 이상을 버텨온 것 같다.여섯 달이라고 했으니 생각해 보면 지난 해 6,7월 경이다. 방학이라고 했고 또 쉴 수도 있는 여유가 있었는데 그럴 계획이라고는 제대로 짜보지도 못했다.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랄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워크홀릭이라고도 하지만 중독도 아닌 시달림에 하루하루 불안과 초조로 하루하루를 살았다.일이라 해야 주로 글을 쓰는 것이고, 그것도 지난 해는 논문에 어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