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를 만들기 위해 무명 자루를 꺼냈다. 엿기름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주둥이를 꽉 조여 맸다. 따뜻한 물에 담가 조물조물 만져 보니 감촉이 좋았다. 우러나온 물이 뽀얀 젖빛이었다.나는 아기를 낳으면 모유를 먹이고 싶었다. 아기를 보듬어 안고 눈을 맞추는 엄마의 모습, 실컷 먹고 활짝 웃는 아기의 얼굴, 얼마나 행복할까 기대했다. 아기의 작은 몸짓조차 흘려버리지 않으려면 엄마와 아기가 교감해야 된다고 믿었다. 그 첫걸음이 모유를 먹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 첫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했다.
녀석의 눈이 훑고 지나갔다. 덩치가 커서 드리운 그늘도 넓다. 팔을 사방으로 펼치고 지나면 큰 나무도 쓰러지고 다 지어놓은 과실도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칼날같이 매서운 입김으로 집을 삼키고 강의 너비를 넓혀놓는다. 지나간 자리마다 새로운 길이 생기고 있던 길은 사라진다.방에서 자던 오빠도 처음엔 빗물이 방으로 들어오자 걸레로 슬슬 닦았다고 했다. 불어난 개울물이 안방으로 들어올 때도 이 정도야 뭐라고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둔 여수로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촌집의 앞뒤가 포위당
비바람이 하릴없이 들이치는 날이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국화원이 소슬히 떨고 있다. 오늘 떠나는 망자의 삶에도 비바람이 많았는지, 국화원이 슬픔을 응축한 채 웅크리고 있다.작년, 신축 아파트 담장 너머에 이층 건물이 들어섰다. 세련된 외벽에 국화꽃 한 송이와 국화원이라는 글자만 간판으로 걸려있어 몇몇 사람들은 미술관인줄 착각하지만, 이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례식장이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 한가운데에 존재와 부재의 형체가 장례를 치르는 동안 서로 껴안고 이별하는 공간이다.나는 조문객의 움직임을 가만히 응시하며 가늠해 본다. 가
곧 추석이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태풍이 지나간다. 늘 탈이 없이 지나가길 바라지만 올해는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추석맞이를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슈룹이 간절하다.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자리는 끔찍하다. 시간당 쏟아부은 폭우로 포항의 일상이 마비되었다. 뉴스 화면에서 확인하는 곳곳의 침수 지역과 하천 범람, 정전 상태 등이 놀랍고 무섭다. 이맘때면 수확 직전인 과일, 막바지 힘을 내는 벼농사와 고추 농사가 재해 앞에 속수무책 당했으리라. 떨어지고 잠기고 무너진 처참한 모습에
말이 씨가 된다. 바닥에 떨어진 말 한마디가 뿌리를 내리고 잎을 무성히 달아 꽃을 피우기도 한다. 말의 힘을 느끼며 나는 낭산(狼山)을 오른다. 도리천(忉利天)으로 가는 길에 여름 웃자란 소나무와 나무 백일홍이 길을 연다. 어디서 후드득 날아오르는 새들이 낯선 이의 방문에 저들끼리의 언어로 숙덕인다.413년 8월에 낭산에서 구름이 일어났다. 형상이 누각 같았고 향기가 가득 퍼졌다. 실성왕이 ‘지금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놀고 있다. 복 받은 땅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낭산에서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했다. 훗날 고승 명랑법
시간의 곡선을 따라 흐르던 푸른 바람 줄기가 소나무에 부딪쳐 태고적 소리를 내는 오후다. 토함산 숲, 햇살로 잘 엮은 빗살문을 열어젖힌다. 수천 년 쌓여진 바람층의 느낌표를 음미하며, 불국사 주차장을 지나 동리목월문학관을 찾아간다. 바람결에 문인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가만히 느낌표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인다.문학관은 김동리 소설가와 박목월 시인의 문학과 삶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다. 동리문학관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황토기’가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되고, ‘무녀도’의 내용이 담긴 모형들이 있다. 목
최근 장맛비가 세차게 쏟아붓던 시간대에 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를 몇 번 찾았다. 빗줄기가 더위를 식혀주듯 내 마음속 번뇌를 조금이나마 씻기 위해서였다.자비로운 표정으로 온 세상을 끌어안은 부처님 앞에서 들려오는 고매한 스님의 청아한 목탁 소리, 겸허히 빗물을 받아내는 사리탑의 경건함을 기대하며 조계사 앞에 다다랐다.그러나 사찰 일주문 앞에 펼쳐진 색다른 풍경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곳에는 고성을 지르며 종교단체를 비방하는 시위꾼들로 북적였다. 신성한 기도 시간, 지나가는 행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여유로움을 방해하는 모습으로 보여서
여름을 이고 가는 여행이다. 집을 떠나면서 잡다한 생각을 구겨 넣고 문을 잠갔다. 따라오지 못하게 빗장까지 질렀다. 태양이 조각조각 쏟아져 대지를 굽는 열기에 코끝이 후끈해도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기분 탓일 거다. 잠시 일상으로부터 비켜서는 홀가분함에 마음이 부푼다.목적지는 신안 퍼플섬이다. 가고 오는 길이 멀지만 더 늦기 전에 다녀오자는 말에 친구들이 기껍게 찬성했다.차가 출발하자마자 수다가 폭발했다. 학교 때의 친구라 서로의 친구가 겹치기도 해 이야기의 소재는 풍성했다. 때로는 서로의 수다가 허공에서 얽혀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대한간호협회에서 발간한 ‘코로나 영웅, 대한민국을 간호하다’라는 책을 읽는다.전북이 고향인 김성덕 간호사는 대구동산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의료지원을 했다.그가 집을 떠날 때 가족을 설득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세 자녀와 남편이 꼭 가야하느냐는 말에 “지금 아니면 언제 가느냐? 나는 간호사(registered nurse·RN)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고 당당하게 가족을 설득시켰다. 코로나 현장 파견을 마치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던 그녀가 촌집에서 혼자 기거했던 것도 다시 떠오른다.나는 왜 그녀처럼 모든 것을 훌훌 벗고 그 당시 코로나
어제는 아침부터 온종일 여름비가 내렸다. 거실 창문에 빗물이 고여 있는 것을 기회로 삼아 모처럼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으려고 했다. 창문을 열다가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아파트 16층은 웬만한 나무 우듬지보다 훨씬 높다. 이곳에서 만난 매미는 반가움을 넘어 뜻밖이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에 매미 날개가 젖을까봐 신경이 쓰였다. 제비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듯 다행히 빗물이 들이치는 곳이 아닌 장소에 본능적으로 몸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척 대견스러웠다.방문객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려
차가 느리게 달린다. 파도와 갈매기가 썸타듯 지분거리는 해안도로를 벗어나니 너른 내(川)가 펼쳐졌다.바다에 물들었던 눈이 파란색을 걷어 올리기 전 물소리가 젖어 들었다. 투명한 물소리가 차르르차르~찰 음악처럼 감겨들어 더없이 느긋하다.구부러진 길이 펴졌다 다시 구부러지는 동안 내가 따라왔다. 넓은 내를 꽉 채우지 못한 물길이 크고 작은 바위를 돌아서 혹은 틈을 비집고 저만의 길을 유유히 가고 있다. 깎인 바위가 둥그스름하다. 아마도 바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고즈넉이 시간을 둥글게 익혔나 보다. 15킬로미터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에서
거실에 책장 세 개가 모두 빈틈없다. 책꽂이 위도 앞쪽도 숨을 못 쉴 만큼 책으로 들어찼다. 딸아이 사진조차 구석으로 쏠렸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밀리고 구겨진다.일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거실의 모든 물건을 꺼내고 책들도 바닥에 쏟아냈다. 이젠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챙길밖에 도리가 없다. 어제도 그저께도 누군가로부터 책이 왔다. 지인이거나 낯선 사람이 쓴 수필집이 봉투째 책상에도 쌓였다. 수필잡지, 개인 수필집, 동인지, 목차를 보면 알 만한 사람들의 이름이 책의 곳곳에 박혔다. 때론 펼친 책자에 나의 이름 석 자도
수술 받았던 친정어머니의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셨다. 병원에 함께 다녀올 요량으로 신발장에서 어머니의 빛바랜 운동화를 꺼냈다. 몇 년째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한 켤레의 신발로 생활하다 보니 군데군데 실밥이 터지고 뒤축이 닳아 테석테석했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신발에 스며든 것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수술 전, 어머니의 무릎 통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약을 먹어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길을 가다보면 몇 발자국을 못가 절뚝일 때도 있었고,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가 싶으면 이내 주저앉았다. 가까운 곳에 볼일을 보러 가는데도 남들보다 시간이
습한 기운이 몰려온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에 맞게 날씨는 종잡을 수 없게 제멋대로다. 쨍쨍한 햇살에 싱그럽던 잎마저 시르죽하다 싶은데 천둥이 우르릉 울리더니 한줄기 비가 내린다. 열에 달궈진 대지를 식혀준 비 때문에 습도가 높아져 몸이 까라진다.여름은 언제나 뜨거웠다. 십 리 길을 걸어올 때면 가방의 무게에 어깨가 늘어졌다. 정수리에 내리꽂는 빛살에 얼굴이 익어가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은 축축해서 잠시 다리쉼을 해야 했다. 그런 우리에게 그늘이 필요했고 그 그늘을 제공해준 나무는 미루나무였다.여름 하굣길을 지켜주는 미루나
이른 새벽 산책하기에 좋은 계절이 있다. 지루한 겨울을 지난 뒤, 연초록 봄이 그렇고 녹음 짙은 여름이 그렇다.오뉴월은 뜨거움을 숨긴 채 맑고 그윽한 꽃향기를 가득 품었다. 밤을 희롱하듯이 깊게 들어온 여명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여섯 시를 막 넘긴 시간은 한겨울엔 엄두도 못 낼 밝음으로 온 세상이 환하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타박타박 밖으로 나섰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올 거라며 까치가 꺅 깍 깍깍 나뭇가지에서 꽁지를 든 채 반긴다. 저도 누가 나오면 함께 길을 나서고 싶었던 모양이다. 까치 소리와 함께 내딛는 걸음이 한결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 있다. 시선을 붙잡는 예쁜 물건과 반가운 얼굴을 보거나 튀는 행동을 볼 때다. 익숙한 멜로디, 그림과 사진에는 눈은 물론 마음까지 빼앗기고 만다. 그런 일은 계획되지 않고 불시에 일어나는 현상이어서 느낌의 파동이 크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만난 사진이 그랬다.할머니가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다. 건물 이층에 자리한 작은 휴게 공간에 걸려 있는 사진이다. 밤이라 간접 조명이 있어도 사물이 어른거려 계단을 조심히 올라와 소파로 가던 나는 홀린 듯 사진 앞으로 갔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팝콘
양말을 꺼내 신으려니 구멍이 나 있었다. 아끼던 양말인데 엄지발가락이 쏙 얼굴을 내밀었다. 부끄럽기보다는 재미가 있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실과 바늘을 찾았지만 구멍이 커서 꿰매 신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버리기가 아까워 오자미라고 불렀던 콩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구멍난 곳을 촘촘하게 박음질한 뒤에, 콩을 넣고 양말목 부분에 땀의 크기가 고르도록 바느질에 신경을 썼다. 예전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내가 어렸을 때에는 놀잇감이 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가끔 구멍 난 양말을 박음질해, 그 속에 솜을 넣고 인형을 만들어 주셨다.
아침 운동을 하다 몇 명의 여성을 만났다. 손에는 집게와 종량제 봉투가 들려있었다. 밤새 지저분해진 거리를 정리하는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크고 작은 공식적인 모임에서도 쓰레기청소를 하고 정화작업을 한 후 인증 샷을 남기곤 한다.출근하면서 보니 앳된 여성 청소부가 형광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직장 앞 정류장에는 할머니 두 분이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거미줄을 제거하고 유리를 닦았다. 잠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청소를 하며 얘기를 나누곤 했다.누가 쓰레기를 거리에 함부로 버리는지. 그래서 애꿎은 노인네들 고생시키는
산에서 다람쥐를 만났다. 대부분의 다람쥐는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면 부리나케 숨거나 달아난다. 그런데 도망가지 않고 뒷다리로 서서 입을 오물거리며 나와 눈을 맞추고 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해서 땅에 앉아 지켜본다. 다람쥐는 나와의 눈싸움에서 결코 피하지 않고 볼록한 볼을 움직이며 태연하다. 마치 너는 나를 잡을 수 없다는 당당한 눈빛이다. 내가 어이가 없어 발을 쿵 굴리며 잡을 듯한 자세를 취하자 그제야 나무 사이로 사라진다.다람쥐의 간 큰 행동이 하루아침에 나오지는 않는다. 처음 낯선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앞뒤
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순천만으로 향했다. 차창 넘어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여행의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여행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 마음은 끊임없이 너울댔다.상춘객들이 많아 예정보다 한 시간쯤 더 걸려 광양에 다다랐다.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가까운 음식점으로 찾아들었다.메뉴는 그 유명한 광양불고기였다. 불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여행지에서의 들뜬 기분 때문이었을까,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고기가 살살 녹아내렸다. 색다른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멋이지만, 그 고장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