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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뚱뚱하게 자고 날씬하게 걷는다.고양이는 잘 때는 늘어지게 자지만잠에서 깨면 옆구리를 당겨 넣는다.불룩했던 데가 다시 찰싹 달라붙는다.고양이는 날씬하게 걷는다.고양이는 보따리처럼 기다리고번개처럼 뛰어오른다.고양이는 뛰어오를 때는 미끈하다.껍데기를 벗어버리는 포도알처럼….고양이에겐 기술이 있다.고양이는 삐걱대지 않는다.슬그머니 간다. (부분)위의 시를 읽고 ‘정말, 맞아!’라고 감탄했다. 필자의 집도 고양이를 키우기에, 고양이를 관찰할 기회가 많다. 고양이는 깨어 있을 땐 빈틈이 없으면서도 잠잘 땐 한 없이 느긋하고 게으르다.
시
등록일 2023.12.19
게재일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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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베다가 잃어 버린 낫을 찾았다.장마철에 한 달도 넘게 풀더미 속에 처박혀 있었는데온몸에 뻘겋게 녹이 슬었는데여전히 날이 닿기만 하면 억센 풀을 동강 냈다쇠가 좋기 때문이다좋은 쇠는 녹이 슬어도 날이 죽지 않는다단단하기만 하다고 좋은 쇠가 아니다너무 단단한 쇠는 깨지기 쉽다단단해서 날카롭게 날이 서면서도깨지지 않는 쇠라야 정말 좋은 쇠이다단단하면서도 무르고 무르고서도 단단한좋은 쇠를 만들려면펄펄 끓는 불에 달구고 차디찬 물에 식히기를수백, 수천 번 거듭해야 한다나 역시 위 시의 낫처럼 녹슬어 있을 테다. 하지만 저 낫과는 달리
시
등록일 2023.12.18
게재일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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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밥솥이 없던 내 학창 시절의 간식은 주로 누룽지 튀김이었다 밥때와 밥대 사이에 궁금한 입들 벌어지고 엄마는 밥만 하면 눌어붙은 누룽지를 말려 튀겨서 설탕을 뿌려주었다 누룽지야 더 두껍게 살을 붙여라 까만 얼굴 말고 노릇하게 예쁘게, 발 잘 듣는 동생처럼 건너오너라 나는 아직 둥지도 안 튼 누룽지 얼굴 위에 주문을 뿌려댔다어린 소녀는 엄마의 간식으로 더 파릇해지고 더 통통해지고밥때와 밥때 사이에 낀 어른은 추억의 엄마 간식 불러내 아껴 아껴서 속이 허할 때마다 꺼내 먹는다나이 좀 든 이라면 누룽지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을 테다.
시
등록일 2023.12.17
게재일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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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과 현관을 건너도 방이 나오지 않았다강철 같은 마음을 아무도 모르게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렸다- 이 금액대로 집 구하기 힘듭니다(중략)은행나무에서 조롱하듯 은행이 구린내를 흩뿌렸다여기서 엎어져도 은행의 문턱은 높다미래가 일찍 늙어간다투명 의자에 앉은 거처럼엉거주춤한 자세로부동산 문을 연다깊고 깊은 악몽 속으로내가 쏟아져 들어간다다른 많은 이들처럼, 위의 시의 화자도 집값 또는 전세값이 올라 집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부동산 문을 들어갈 때 이들은 “강철 같은 마음을” 남몰래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려야 한다. 하나 절망
시
등록일 2023.12.14
게재일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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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수백 개의 두개골로 부서진다속마음을 가늠하는 시간길 건너편에서 뛰어오는 두개골과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두개골원과 원 사이에도 집을 지을 수 있다마른 잇몸을 핥을수록 드러나는 뿌리 한 가닥 뽑아그곳에 심는다지구의 체액을 빨아먹고 하반신 대신 기둥이 자라나는 것이다살짝만 건드려도 움츠러들 때까지바닥에 뒹구는 인류에게역사상 가장 많은 두개골이 달라붙고 있다 (부분)서울에 대한 시는 많지만, 위의 시처럼 그로테스크한 서울 묘사는 보기 힘들다. “수백 개의 두개골로 부서”지는 서울 거리는 마치 저승 같다. 서울 땅 위로 솟아나는 아파트-
시
등록일 2023.12.13
게재일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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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진 속세의 거친 바람에 나 분노하여,외딴 집, 거친 바닷가의 침묵으로 빠져 들어갔네.(….)물가 닿지 못한 나날들,정처 없이 생명 구하는 뱃길에, 어느 곳으로내 영혼의 배 한 척 노 저어 향해야 하는가, 하고.저녁 파도 울적하게, 바닥 없는 가슴속 고동,그 음색, 소리 모두 불후의 조화로움으로,휘말렸다가 부서지는 해 지는 이 짧은 순간….가라앉은 해 나를, 나 또한 가라앉는 해를응시하며 외치노라, 시작도 없는 어둠, 아니면끝도 없는 빛이여, 모든 혼돈을 묻어 버려라, 라고.속세를 등지고 “바닷가의 침묵으로 빠져 들어”간 시인.
시
등록일 2023.12.12
게재일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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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같은 마음종이는 무엇으로 만드나나무와 물과 빛으로그리고잉크로물감으로피로침으로땀으로나의 뼈가 종이 같다는 말을 듣고나는 종이가 견디는말을 느꼈다종이가 접혀 말을 감추는 소리를알아챘다뼈에 살이 달라붙는 집요함을 느꼈다종이가 마음 같다는 비유는 종이는 마음의 표현인 글쓰기나 그리기가 이루어지는 판이 되어주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종이는 “잉크로/물감으로” 만들며, 나아가 “피로/침으로/땀으로”까지 만든다는 말이 이해된다. 그러면 “뼈가 종이 같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종이가 견디거나 감추어야 할 정도까지, “뼈에 살이
시
등록일 2023.12.11
게재일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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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아 있구나 늦지 않았어 너덜거리는 자루 가득 장작을 메고 오가는 밤의 노역은 불을 지키는 시간 (….) 나는 불을 지키는 자, (….) 나는 이름 없이 늙어 가는 가난한 노파 불을 살피느라 언 몸을 녹일 수 없다 꺼져 가는 불씨를 살려내고 문 밖으로 나서면 얼굴을 찢는 바람뿐 어떤 날은 별도 뜨지 않아 캄캄한 숲을 비틀거리며 걷는다 뜨겁고 차가운 것이 이생의 일인지도 잘도 자는구나 장작이 타는 소리 꿈속에서도 들리는지 재가 되어 가는 소리다 담요를 걷어차고 잠든 걸 보니 오늘도 나의 불길은 뜨거웠구나‘테를지’는 몽골의 국립공
시
등록일 2023.12.10
게재일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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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퇴화한 개미들은 더듬이로 산다보지 못해도 큰 불편 없다쉬지 않고 움직이는 더듬이쉬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개미들개미들을 생각하면 몸이 가렵다더듬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눈을 빼버릴 놈!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눈은 멀어진다오로지 돈에 눈먼 세상에서욕심으로만 빛나는 눈을 감아본다홀로 눈 떠 길을 더듬는개미 한 마리 따라간다살날이 가깝고도 멀다살아가라, 단지 뜨거운 것은 그뿐이다 (부분)“돈에 눈먼 세상에서” 밝혀 있는 눈은 “욕심으로만 빛”날 뿐이다. 그 세상에서는 돈밖에 보이지 않을 터, 하여 돈의 길과는 다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눈
시
등록일 2023.12.07
게재일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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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일터 메리야스 공장 재단기에 한 가락 해 먹고재활용 분리수거 컨베이어에 한 가락 해 먹고부품 공장 검사반에 왔다는하얀 장갑 규석 씨한 가락 없어도메리야스 재봉 일 할 수 있지만한 가락 없어도 재활용 컨베이어 분리수거 영락없지만손끝에 눈금자가 새겨지도록 손끝에 저울추가 박히도록뼈가 곧아버린 시간을살이 해어지는 시간을마음이 굳어지는 시간을흘러서 굴러서 떠밀려서 왔다는하얀 장갑 규석 씨 손가락은 세 가락 (부분)‘공장 재단기와’ ‘분리수거 컨베이어’에 손가락이 잘려 손가락이 세 가락 남은 어떤 노동자의 삶. “흘러서 굴러서 떠밀려서”
시
등록일 2023.12.06
게재일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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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에 사는 친구가 벼를 키운다며 사진을 보내왔습니다.작년에 자라지 않던 벼가 올해는 쑥쑥 자라낱알이 열렸다고 초록이 가득한 벼를 찍어 보냈습니다.(….)말갈기를 부여잡고 사막을 달리는 사람을챙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쭉정이 뽑는 사람을자라지 않은 벼와 자란 벼를 비교하며 지나간 함성을생각할 것입니다.솜털처럼 가벼운 벼들의 흔들림과흔들리지 않으려는 친구의 흔들림을원룸 작은 창문을 뚫고구름의 한쪽 귀퉁이를 자르고달아나는 상상을 해봅니다.볕이 들지 않는 원룸에서한 뼘의 벼들과 함께친구의 슬픔이 느리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부분)“사막을 달
시
등록일 2023.12.05
게재일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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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사립 쪽으로 걷는데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어제저녁에 나는 닭가슴살 한 팩을 사다가구워서 맥주 안주로 먹었는데너에게 몇 점 먹였으면그 어린 나이에 죽이 않았을 텐데밤하늘에 슈퍼문이 뜬다고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리던데그 배고픈 저녁에밤하늘의 슈퍼문이네 눈을 감겨준 거니우리는 보통 슬픈 일과 마주치고는 그 일을 그냥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시인은 그 슬픔을 잊지 않고 시로 간직한다. 위의 시가 보여주듯이. “맥주 안주로 먹”은 ‘닭가슴살’을 조금만 주어도 살 수 있었을 새끼 고양이가 죽었다. 시인은 자신이 조그만 배려
시
등록일 2023.12.04
게재일 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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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고 일학년 첫 방학 숙제 중 하나는 태극기 그리기였다자꾸만 일그러지는 원이 암만해도 속이 차질 않아끙끙대고 있는 아들놈이 보기 딱했던지공장 일을 마치고 오신 아버지 대뜸밥그릇을 들고 오시더니밥그릇 둘레 따라 원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아마도 그날 이후부터였나 보다뜨건 공깃밥과 국기를 떼어놓고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은,노동자들 분신 뉴스가 지나갈 때마다멀쩡한 밥그릇으로도 자꾸 일그러져만 가는방학 숙제를 여태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분)노동자들의 노동이 없다면 국가는 유지될 수 없다. ‘공깃밥’이 국가 기반인 국민의 삶
시
등록일 2023.12.03
게재일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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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점점 뿌리가 깊이 내리면서뿌리 깊은 나무세월의 바람에 한 치도 흔들림 없이자신을 비워갔다(중략)울림으로 가득 찬,당신의 저 뿌리 깊은 빈방에물수제비뜨듯 돌멩이를 던지자파문처럼 번져오는꽃 좋고 열매 많던 시절들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깊은 물처럼겹겹의 나이테들을 하나로 아우르며메마른 나의 꿈속에까지 고여 오는샘이 깊은 당신의 빈방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나무. 그것은 사랑하는 당신에 대한 기억 아닐까. 그 기억의 나무는 “세월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동시에, 특이하게도 자신을 비워간다. 하여 그 비워지는 나무-당신-는 “
시
등록일 2023.11.30
게재일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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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우리는 들판을 지나갔네,다 익은 곡식 이삭을 따며 갔네,우리는 싸웠네, 나와 내 아내는,오, 우리는 싸웠다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그리고 다시 눈물 흘리며 키스했다네.사랑하는 사람들이 싸우고 나서다시 눈물 흘리며 키스할 때,사랑을 더해 주는 사랑싸움은축복할 만한 것!왜냐하면 오래전에 잃은우리 아이가 누워 있는 곳에 왔을 때,거기 작은 무덤 위에서,오, 거기 작은 무덤 위에서,우리는 다시 눈물 흘리며 키스했기에.여느 부부처럼 위의 시에 등장하는 부부도 이유 모르는 싸움을 하고는 눈물로 화해하고 키스한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미
시
등록일 2023.11.29
게재일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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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에 꽃눈이 내린다사월 초이튿날,한 시절 아름다운 꽃이 지고 나면그뿐인 것을한바탕 비라도 내리는 날에청춘이 지고내 삶이 지고미칠 정도로 날이 좋았다가눈이 따가울 정도로 날이 좋았다가이렇게 좋은 날, 눈물 나도록 내 사랑하는 님이 먼 길을 떠났다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오는 날,하늘에서 벚꽃눈이 펑펑 내렸다꽃눈이 펑펑 울고 있었다떨어지는 눈처럼 지는 벚꽃은 “미칠 정도로” 화창한 봄빛과 대비되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아름다움은 한 시절이 지나갔다는 슬픔을 동반하니까. 게다가 “이렇게 좋은 날”에 “내 사랑하는 님이 먼 길
시
등록일 2023.11.28
게재일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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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지났으니시간이 훨훨 날아가겠지아침저녁으로 율량동공원에 뒹구는찬바람도 발 끝에 채이겠지어떻게 살아 낼까 베일 듯 버틴 시간도녹슨 칼끝 같아여전히 월요일의 가중치는감기기운처럼 떨어지지 않아도또 한 주일은 지나가겠지두려움은 발아래 슬쩍 눌러두고서눈인사를 해야지안녕 ‘월요일’용기 내 마주할 테니순하게 지나가거라‘처서’ 지나 가을이 오고, 시인은 이제 더위를 벗은 시간이 “훨훨 날아가”리라고 기대한다. 사실 ‘월요병’에 시달리며 밥벌이에 지친 이들에게 경쾌한 시간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애써 그러한 기대를 품고 “감기기운처럼 떨
시
등록일 2023.11.27
게재일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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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우면 멈추는 시간직립을 고집하는 시간이 있지하룻저녁에 바람이 산을 옮기고좌표를 잃어버린 낙타들은고개를 숙이며 걷는다안구에 바람이 들어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이곳에서 유일하게살아남을 것은 거짓말뿐‘당신이 있어 사막이 아름답다’는그 거짓말이 수많은 혀가 되어유성처럼 떨어지는적막한 직립의 시간사막에서 “고개를 숙이며 걷는” “좌표를 잃어버린 낙타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 아닌가.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사방은 모래뿐이요, “안구에 바람이 들어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우리들. 하나 이곳의 시간은 “누우면 멈추”기에, 직립하여 길을 계속
시
등록일 2023.11.26
게재일 20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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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물들은 대체로 쓸개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그 진술의 과학적 진위는 증명된 바 없으나미학적 가치는 기꺼이 동의하는 바불필요한 무언가 주렁주렁 달고 있다는 건미(美)보다는 추(醜)의 표시일 수 있겠거니떼어내고 버려 가벼워져야 비로소 아름다운 것없애고 비워내 자유로워야 비로소 아름다운 것시가 그렇고삶 또한 그렇다상상력은 더하는 힘이 아니라솎아내는 힘에서 제대로 꽃 피고발목과 마음에 두른 굴레 툴툴 털어낼 수 있을 때빛 향한 자유로운 영혼의 시간 향유할 수 있는 것“주렁주렁 달고 있는” 장식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그런
시
등록일 2023.11.23
게재일 202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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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풍뎅이가 날아오는 것이다 날아오는 풍뎅이는 향기를 물고 오는 것이다 저녁의 문 뒤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은 꿈결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축축한 기억에 젖어 그늘이 된 여자는 우두커니 물드는 것이다 비 그치고 이미 물든 저녁을 그는 왜 날아왔는지 보랏빛으로 물든 저녁에 어떻게 향기를 입히는지 가끔은 풍뎅이가 되어보는 것이다 풋잠 속을 유영(遊泳)하듯 라일락은 흩날리고 여자를 물고 풍뎅이가 날아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절뚝거리는 것이다이 시 속의 ‘여자’는 삶에 지쳐 있다. 우리가 그렇듯이. 그녀는 “축축한 기억에 젖어 그늘이
시
등록일 2023.11.22
게재일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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