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지난 12일부터 신라역사관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1975년 처음 문을 열었던 `고고관`의 이름을 `신라역사관`으로 바꾸고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4개의 전시실로 이뤄진 신라역사관의 전시 면적은 약 1천300㎡이며, 전시실 내 진열장의 전체 길이는 약 184m로 옛 고고관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전시품도 4천300여점으로 30%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천마총 금관과 허리띠 등의 국보가 3점이며 보물은 19점이다. 제1실은 신라의 건국과 성장을 주제로 신라 이전 경주를 중심으로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사용한 도구를 전시한다. 그리고 신라의 건국부터 고대국가를 완성하기까지의 내용을 소개한다. 특히 부산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상설전시관 개편에 따른 교체 전시품으로 사리공양석상 등 경주 금장대 출토품 3점을 지난달 29일부터 미술관 1층 불교미술I실에서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경주 서천가의 석장동 금장대에서 1980년에 수습된, 이른바 사리공양석상 1점은 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상설전과 특별전에 출품된 바 있다. 그 뒤 2011년 계림문화재연구원이 실시한 금장대 발굴조사 당시, 인물상이 새겨진 또 다른 석상 1점과 거북무늬석상 1점이 조선시대 건물터의 주춧돌 자리에서 출토됐다. 이번 경주박물관 전시에서는 2011년 금장대에서 새로 나온 석상 2점을 일반에 최초로 공개할 뿐만 아니라 기존에 알려진 경주박물관 소장품 1점을 함께 선보이는 첫 번째 자리로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인물상이 새겨진
통일신라시대 벽돌로 만든 탑인 보물 57호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五層塼塔·사진)이 전면 해체 보수 중이다. 문화재청은 안동시와 함께 조탑리 오층전탑에 대한 해체 수리에 착수해 1일 현재 꼭대기층인 5층을 해체한 단계이며, 내년 12월까지 보수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탑을 전면 해체 수리하기는 해방 이후 이 탑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탑에 대한 3차원(3D) 정밀 스캔 작업을 실시하고, 전돌(벽돌)·줄눈 등의 부재에 대해서는 성분 분석을 통해 교체할 전돌을 제작하고 이를 통해 전통방식으로 탑을 보수할 방침이다. 해체 과정 중에 전탑 몸통부에서는 탑 중심부에 세운 기둥인 찰주(刹柱)가 있던 흔적이 발견됐다. 조탑리 오층전탑은 화강암과 전돌을 혼용하여 쌓았다. 몇 기 남지 않은 우리 전탑 중에서는
경주 남산에 있는 사적 제147호 헌강왕릉과 사적 제186호 정강왕릉의 주변에 있던 각종 석재들 중 상당수가 왕릉의 호석이며, 이 가운데 일부는 갑석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고고학계에서는 이들 2기의 왕릉은 갑석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번에 갑석의 존재와 두 왕릉의 호석 원형이 밝혀짐에 따라 신라왕릉 고고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진락 위덕대 겸임교수는 최근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학술지`신라문화`에 투고한 논문을 통해 이 같이 주장하고, 경주시청등 관련기관에 유물발견사실을 신고했다. 이 교수는 연구논문을 통해 경주지역에 산재한 통일신라왕릉 중에는 봉분 외부에 화감암으로 호석을 두른 왕릉이 14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헌강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25일부터 두달간 중국 섬서성 시안시의 섬서역사박물관과 공동으로 `한국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명품전`을 개최한다. 전시품은 신라의 독창적인 황금문화를 보여주는 천마총 출토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천마총 금관을 비롯해 금제 허리띠, 금제 관식, 유리잔 등 모두 70건 327점으로서, 이 가운데에는 국보 3건과 보물 5건이 포함돼 있다. 전시는 제1부 왕관, 제2부 장식품, 제3부 병기, 제4부 마구 장식, 제5부 생활 용구로 나눠 구성돼 있는 바 다양한 사진 자료와 함께 관람객들이 신라의 문화와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번 특별전은 신라를 상징하는 금관을 비롯한 한국의 고대 문화재들이 중국 내에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 전 신석기시대에 낚시 도구를 싣고 물고기잡이에 활용한 목제 선박과 이를 젖던 도구인 노가 한꺼번에 울진군 죽변에서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삼한문화재연구원은 울진군 의뢰로 2010년 5월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일원 도시계획도로부지에 포함된 조기 신석기 유적 출토 유물을 최근 정리하고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목재 유물 중에 목제 선박 조각과 노를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중 목제 선박 조각은 현존 길이 64cm에 너비 50cm, 두께 2.3cm로, 편평한 판재 형태를 띠며 가장자리 쪽이 바깥으로 들려 올라간다. 조사단은 “분석 결과 수종은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 녹나무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발견된 목재 노는 잔존 길이 1
`경주 읍천 주상절리군`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 2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읍천 주상절리군은 마그마가 다양한 방향으로 냉각이 진행되면서 생성된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柱狀節理·현무암질 용암류와 같은 분출암이나 관입암에 발달하는 기둥 모양으로 평행한 절리)를 비롯한 수평 방향의 주상절리가 대규모로 발달돼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기존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직기둥 형태의 주상절리들과는 달리 발달 규모와 크기, 형태의 다양성 등이 뚜렷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어 지질학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는 것. 또 화산암의 냉각과정과 특성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동해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연구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와함께`포천 한탄강 주상절리 협곡과 비둘기낭 폭포`도 같이 지정된다. 한탄강 용
고령군의 주산성이 6세기 전반대 최초 대가야 석축산성으로 밝혀져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고령군은 지난해 12월 5일부터 이달 30일까지 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에 의뢰해 고령읍 지산리 산 54-1번지 일대 5천㎡(총 연장 200m, 폭 25m) 일원에서 주산성 정비복원 유적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동문화재연구원은 이번 조사에서 대가야 산성으로 알려진 주산성(사적 제61호)이 가야 지역 최초로 6세기 전반에 축성된 석축산성으로 확인했으며 24일 현장 설명회를 개최한다. 고령 주산성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문무왕 13(673)년 9월에 국원성을 비롯해 목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신라성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산(耳山)`, 지금의 주산(主山)이 고령의 주산을
등단 19년 차를 맞는 한강(42)이 첫 소설집`여수의 사랑`(문학과 지성사)을 다시 펴냈다. 그간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두 편의 소설집을 펴낸 중견 작가 한강은 이 책을 다시 내면서 이십대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사적인 경험”을 돌아보자, 되살아나는 기억이 “종내에는 숨 막히도록 생생하게 가까워오는 것을 느껴 여러 번 쉬어가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여수의 사랑`은 1995년 출간 당시 초판 해설에서 김병익이 “그녀는 왜 삶의 치욕들을 헤집어, 그들의 고통스런 운명을 잔인하게, 우리 앞에 던져주는가?”라고 말했듯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버리고 지운 기억을 되살리는 지난한 시간을 겪게 한다. 안간힘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왔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인간`이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온 아
“풍수를 과학화 하는데 기초가 될 수 있는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공학박사가 과학적으로 풍수를 해명한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됐던 이문호(59) 영남대 신소재 공학부 교수는 흔히 미신으로 여겨지는 풍수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국내 유일의 공학박사다. 그는 명당이나 혈의 구조와 형태에 대해 과학적 이론을 적용해 분석 연구하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 우리들이 풍수를 미신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오묘한 지구:풍수도 과학이다(한국학술정보(주))`를 펴냈다. 옥산 이우 선생의 딸 조모의 삶 통해 역사 속 숨겨진 여러 여성들 이야기 `10년 간의 우리 행복은`도 펴내 “우리 땅에서 풍수를 논한 지도
등단 17년차, 이제 마흔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영하(44)의 이름 앞에는 `젊은` `파격적인` `도발적인` 등과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아마도 그것은 `배반` 때문일 것이다. 그는 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수많은 독자의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늘 그런 기대를 나름의 방식으로 배반해왔다. 엄숙함이 절대적인 미덕이라 여겨지던 때에는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고 웃는 것밖에는 모르는 반항아마냥 발칙함과 날카로운 유머를 선보였고, 그러한 작가적 이미지가 굳어질 즈음에는 정색을 한 채 엄격하고 진중한 작품을 들고 나타났다. 그것은 꼭 날렵한 펜싱 선수의 검술, 그중에서도 가장 과격하며 빠르게 진행되는 사브르 선수의 검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역설적이지만, 독자는 그로부터 기꺼이 배반
신라 제46대 문성왕 17년(855) 지금의 경주 남산 창림사에 삼층석탑을 건립하면서 그 조성 내력을 적어 봉안한 발원문 실물이 발견됐다. (재)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미등)는 `한국의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사업` 과정에서 경기도 화성에 있는 용주사 효행박물관이 보관중인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를 발견했다고 28일 밝혔다. 정밀조사 결과 이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는 문성왕(재위 839~857)이 대중(大中) 3년(855)에 탑을 세우면서 납입한 금동판 형태의 발원문으로 밝혀졌다. 이 탑원기는 세로 22.4cm×가로 38.2cm의 판형에, 앞뒷면에 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과 발원 내용, 조탑(造塔)에 관여한 인물들이 기록돼 있다.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는 1824년에 석공(石工)이 경주 남산
구산선문 봉암사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경시는 문화재청이 16세기 후반의 불상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성을 띤 점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51.5㎝, 무릎 폭 36㎝로 비교적 크기가 작은 편이다. 불상 안의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좌상이 선조 19년(1586)에 나운(雲)과 법정(法正) 두 화원이 조성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얼굴은 둥글고 통통해 복스럽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어깨는 좁아 다소 왜소한 느낌이 들며 불의는 부드럽고 간결한 선으로 표현돼 있다. 이런 양식은 제주 서산사 목조보살좌상이나 경주 왕룡원 소조약사여래좌상 등 16세기에 조성된 다른 불상과 비슷하다.
속보=2009년 5월 포항 흥해읍 도로공사 현장에서 발견돼 본지가 단독 보도한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됐다. 포항시에 따르면 최근 문화재청이 신라 최고(最古) 금석문(石文)인 포항 중성리 신라비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천758호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이 비석을 보물로 지정한 근거로“신라의 정치적·경제적 문화내용을 연구ㆍ확정 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고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비 중에서 그 연대가 가장 앞선 비일 가능성이 매우 커 신라의 서예사를 연구하는 데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또 “초기적인 석비 양식으로 신라의 지명, 인명, 관직과 관등명 등이 기록돼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은 세계유산적 가치가 있는 유산들을 앞으로 충분한 연구와 자료 축적을 통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도록 하기 위한 예비목록으로, 이들 서원은 이제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됐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신청을 한 도산서원 등 조선시대의 대표적 서원 9곳으로 구성된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고 10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국가브랜드위원회와 공동으로 지난해 4월 서원 세계유산 등재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업무를 진행했으며, 한국서원연합회와 서원이 소재한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그동안 서원에 대한 자
지난 2009년 5월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에서 발견된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보물로 지정된다. 이로써 중성리 신라비는 기존에 가장 오래된 신라비로 꼽히던 국보 제264호 영일 냉수리비(503년·1983년 발견)를 제치고 가장 오래된 신라비의 자리에 올라섰다. 역사학자들은 중성리 신라비에 표기된 간지 신사(辛巳)년을 살펴본 결과 501년 또는 441년에 이 비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중성리 신라비는 지난 2009년 5월8일 `흥해읍 학성리 주민생활개선사업 도로개설 현장`에서 이곳 주민 김헌도(49)씨가 최초 발견했으며 이를 본지가 지난 2009년 5월 특종 보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제작 시기 지명 인명 관직 관등명 등 기록 사회상 언어 등 신라제도 연구 귀중한 자료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신라 비석으로 평가받는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25일 포항 흥해읍 중성리에서 2009년 발견된 중성리 신라비를 국가지정문화재 중 하나인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중성리 신라비는 기존에 가장 오래된 신라비로 꼽히던 국보 제264호 영일 냉수리비처럼 `지역에서 분쟁이 생겨 중앙에서 귀족들이 현장을 방문해 이를 해결한 후 다시 분쟁이 있을 경우 중죄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긴 포고문이다. 초기적인 석비 양식으로 최대 높이 104㎝, 최대 폭 49㎝, 두께 12~13㎝, 무게 115㎏이며, 한쪽 면에 203자의 한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신라 비석의 초기
문화재청(청장 김찬)은 경주 불국사 대웅전, 불국사 가구식 이음과 맞춤에 의해 결구하는 방식의 석축(石築) 등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불국사 대웅전은 건물 하부 초석과 가구식으로 짠 기단 등이 신라시대 김대성이 불국사를 만들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불국사 가구식 석축은 불전과 불탑 등을 배치하고자 조성한 구조물로서, 경사가 급한 지형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대웅전과 극락전 회랑 외곽에 자연석과 가구식 석축을 상·하 2단으로 조화롭게 축조하였다. 장대석재로 구획한 공간에 여러 형상의 석재를 채워 쌓은 가구식 기법과 석난간의 구성 등은 종합예술로 국·내외 유일무이한 구조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조선시대의 경주 지도 경주박물관 특집 진열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이달말까지 고고관 2층에서 `조선시대의 경주 지도` 특집진열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경주는 신라 천년역사의 본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동쪽의 서울`이란 뜻의 동경(東京)으로 불리며 전통과 자존심을 지켜왔다. 특히 조선 후기에 경주를 그린 지도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유교적 삶과 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전통과 현재를 어떻게 조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전시품은 총 4점인데 이 가운데 조선 후기(18세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회화식 군현지도집(郡縣地圖集)으로 전국 지도책인`여도(輿圖)`와 영남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한 경상도 지도책인 `영남지도(嶺南地圖)`가 출품된다. 문의 (054)740-7535. /윤
문화재청(청장 김찬)은 `안동 귀봉종택`(安東 峰宗宅) `안동 번남댁`(安東 樊南宅)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8일 밝혔다. 안동 귀봉종택(현재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5호)은 의성김씨 귀봉 김수일의 종택으로 현종 1년(1660) 최초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종가집이다. ㅁ자형으로 대문채·사랑채·안채·사당채 건물이 있다. 사당에는 안동지방 50위 불천위 가운데 한 분인 운천 김용의 위패가 봉안돼 있으며, 종택 내 보물 484호인 `운천 호종일기`가 보관돼 있다. 안동 번남댁(현재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7호)은 퇴계 이황의 둘째 손자 계열인 번암 이동순이 순조 때인 1810년경 처음 건립해, 그의 손자 좌산 이만윤이 중건한 집이다. 건립 당시 창덕궁을 모방해 지은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