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없는 인간 사회에서 유일하게 철을 지키는 것은 시간 뿐이다. 그것이 때론 부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 일 중에 하나라도 지켜지고 있는 것이 있어 다행이다. 시간에 감정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묻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완전히 비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을 그렇게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지. 철은 없고, 갑자기 힘이 생겨 무식해진 국회의원들은 또 다른 탄핵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기들 말이 곧 진리라고 믿는 막가파 국회의원들에 의해 이 나라 국회 문제 해결 공식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바로 `묻지 마 탄핵`이다. 더 이상 이 나라 국회에서 탄핵은 큰 일이 아니다. 탄핵이 일상이 되어 버린, 아무렇지도 않게 탄핵을 이야기하는 막가파 국회의원들, 그들부터
가끔씩 한파가 닥쳐와 몸을 움츠리게 하지만 우수도 지나 봄이 성큼 다가왔다. 해도 제법 높이 올라오고 서릿발 사이에서도 얼었던 풀잎이 푸른빛을 되찾고 있다. 봄을 일찍 맞는 강가의 나무들은 잎눈과 꽃눈을 틔울 준비를 하느라 조금씩 부풀고 있다. 모두들 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옛 사람은 봄을 어떻게 맞이했고 어떻게 느꼈을까. 윤선도 선생의 `고산유고` `봄의 의미에 대한 책문(對春策)`을 살펴보면 `태극(太極)이 쪼개지고 음양이 나뉜 뒤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서 네 계절이 생긴다. 해는 황도의 별자리에서 운행이 끝나고 달은 열두 달 뒤 운행이 끝나서 해와 달의 도수가 마감이 되면 한 해가 다시 시작되는데 이것을 봄이라고 한다. 봄과 관련된 날은 갑을(甲乙)이고, 봄의 임금은 태호이며, 봄의 신은 구
지난 주 대구에서는 `제5회 한국 로봇컵 오픈(RoboCup Korea Open 2017) 대회`가 열렸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그리고 우리나라부터 중국·대만 등 해외까지 연령과 국적을 불문한 로봇 마니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열띤 경쟁을 펼쳤다. 경쟁부문은 축구, 온 스테이지(댄스), 레스큐(rescue) 등 6개 부문 12개 종목이었다. 간혹 뉴스에서만 보던 로봇 대회를 현장에서 보는 기분이란 별나라가 있다면 그곳에 처음 갔을 때의 느낌일 것이다. 로봇컵이 열린 대구 엑스코 5층 컨벤션홀은 분명 필자에게는 별나라였다.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때론 두렵기도 하지만, 컨벤션 홀에서 만난 사람들은 필자에겐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황홀경의 대상이었다. 로봇을 든 참가자들에게 책상은 사치였다. 로봇
우리나라는 현재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정치·사회·경제 어느 한 곳도 안정되고 평온한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의 위기라기 보다는 전 세계 위기와도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지난 연말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대통령 탄핵사태는 민심의 분열로 이어져 `촛불시위`와 `태극기 집회`라는 새로운 국민들의 정치 참여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갈등에서 오는 좌·우파의 균열은 사회적 모순과 부정을 송두리째 뽑아내어 새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대정신을 집단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급진적 사회 변혁을 요구하는 진보세력과 경제적 성장 뒤에 숨겨진 사회적 모순을 감수하더라도 성장과 발전이 주는 안정을 도모코자 하는 보수단체들의 시위 또한 우리나라의 숨겨진 양
세상은 세월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대체로 세태의 변화는 가랑비 옷 젖듯 하여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 언제 이렇게 변했지?`하며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 법인데, 오늘날은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다큐멘터리의 오버랩 화면을 보는 듯 휙휙 변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기계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세대차를 단순한 연령의 차이가 아니라 문명의 발전에 쉽게 적응하는 스마트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로 구분하여 소위 `아재`라는 신조어 아닌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시대의 빠른 변화만큼 사회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풍속도를 만날 수 있다. 문화예술은 어떤가? 얼마전 나흘을 꼬박 집에서 보낸 적이 있다. 심한 몸살로 코밑이 보기 흉하게 헐어 밖에 나갈 처지가 못 되었던 것이다.
조선중기의 학자 윤휴(1617~1860)는 56세 되던 해 금강산 기행문인 풍악록(楓岳錄)에 한 일화를 적고 있다. 상공(尙公) 상진이 한번은 들을 지나다가 어느 늙은 농부가 쟁기를 잡고 밭갈이하는 것을 보았는데 쟁기 하나에 소 두 마리를 메워 밭 갈기를 매우 공들여 하고 있었다. 상공이 구경하다가 `농사일을 참 잘하는구려. 소 두 마리 중에 어느 소가 나은지 말할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노인이 대답이 없자 상공이 앞으로 다가가니 노인이 급히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여 말하기를 `공이 물은 두 소 중에 한 마리는 힘도 세고 재주도 있는데, 한 마리는 힘도 약하고 미련한데다 늙기까지 했습니다`했다. 상공이 `그런데 처음에는 답하지 않다가 지금에야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오`라고 하니, 노인이 말하기를, `소
AI에 이어 이번에는 구제역까지, 난세(世)는 난세다. 지금 이 나라는 재앙 수준의 혼돈에 빠져 있다. 재앙 중에서도 대재앙은 인간에 의한 재앙이 아니라 자연이 내리는 재앙이다. 재난 영화를 보면 자연은 항상 먼저 경고를 보낸다. 그 경고에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들은 대비를 한다. 그러나 둔한 인간들은 자기 잘난 맛에 자연이 아무리 경고를 보내도 그 경고를 무시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는 자연이 보내는 경고를 인지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항상 뒷북만 요란하게 울린다. 그리고 더 크게 외친다. “남 탓이오. 정부 탓이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코미디 대한민국은 자연 재앙보다 인간 재앙이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세계인들에 보여주고 있다. 신화시대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판
인(仁)이라는 한자는 사람(人)과 둘(二)이 모여서 이루어진 합성어다. 그러하기에 둘 이상의 사람관계에서 `인`이라는 개념이 출발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그 사람은 어질다` 또는 `어진 그 사람`이라고 하면 여기에는 이미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갖는 덕목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仁사상은 스스로 실천하여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만 비로소 사람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말만 앞서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말이란 아무 의미가 없고 한낱 헛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게 되어 결국 신뢰를 잃게 된다. 논어에 나오는 159명의 인물 중 공자의 수레를 몬 제자는 번지와 염유뿐이었는데 제자인 번지에게 공자가
출석번호가 60번을 넘는 것이 당연한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아침 조회를 하면 아무리 면 단위 학교라도 줄을 맞춘 학생들이 운동장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그런 학교를 콩나물시루에 비유했다. 비록 숨도 겨우 쉴 정도로 꽉 찬 교실이었지만 분명 그 때 학교에는 흥(興)이 있었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당시 학생들은 흥에 겨워 뭐든지 해냈다. 힘든 고비가 와도 넘치는 흥에 그 고비들을 넘겼다. 그리고 그 흥을 떠밀어 이 나라의 경제를 이만큼 발전시켰다. 흥(興) 안에는 가족, 친구, 꿈, 희망, 미래, 국가 등 참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라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 가족이 힘들면 다른 것이 응원 해주었다. 그래서 모두가 오뚝이가 되었다. 크게 넘어져도 두렵
고등학교 때 나는 수포자(수학포기자)였습니다. 수포자에 주석을 달지 않는 까닭은 굳이 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익숙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국포자나 영포자는 어색해도 수포자는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원과 원주율`, `원기둥 부피 구하기`에 들어가면서 내 수학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었고 차근차근 알아듣도록 가르쳐주는 선생님도 없었지요. 나머지로 방과 후에 남기는 했는데 학습지 한 장 던져주고 선생님은 `잡무`로 바빴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수학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교육에서 수학과 영어가 시험을 통한 줄 세우기의 척도다. 그 중에 핵심은 수학이다. 다른 과목은 어찌어찌하면 만회가 되는데, 수학은 그렇지 않다.
영하 35도! 누군가는 극지방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 몽골의 날씨다. 필자는 인천과 김포 공항이 눈 때문에 공항 기능을 상실했을 때 몽골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있었다. 국내 정치 상황만큼이나 좋지 못한 국내 공항 사정을 다른 나라에서 듣는 기분이란 곧 불어닥칠 초대형 태풍 소식을 듣는 것과 비슷했다. 몽골 공항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무겁고 지친 표정, 그것은 곧 정치에 지친 대한민국 국민들의 모습이었다. 필자는 5월에 있을 해외이동수업 사전 답사 차 한 주 내내 꼬박 몽골에 있었다. 3년째 1월과 5월에 몽골 사전답사를 하고 있다. 해외이동수업은 학생들에게 생태계는 물론 환경보호의 중요성과 세계화 시대에 맞는 글로벌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산자연중학교만의 특성화교과이다. 그래서 매
민족 최대명절인 설을 지내면서 분주했던 귀성길과 친지들과의 짧은 만남이 아쉬움과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이제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와 평온함을 되찾아 가고 있는 듯하다. 설 명절은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새롭게 펼쳐질 내일을 위해 서로 덕담을 나누며, 희망찬 한 해를 설계하는 날로서 연휴가 주는 편안한 휴식기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평소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던 이웃과 친지들에게 새해를 맞아 서로에게 복을 빌며 감사의 선물을 주고받는 풍경은 우리민족의 오래된 세시풍습에서 비롯된 모습들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자그마한 선물을 통해 나누는 여유로움 속에서 인간적 유대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도 이제는 서로 눈치를 보며 선물의 가치가 아닌 금액으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은 민족이라는 일체감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갖는다. 일제강점기에는 음력설을 못 쇠도록 섣달그믐 전 1주일 동안 떡 방앗간을 돌리지 못하게 했으며 설날 아침 흰옷을 입고 세배를 다니는 사람에게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했다. 설은 `서다(立)`의 의미로 풀이한다. 고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는 `처음 시작하다`를 `들어서다`로 표현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으로 `봄에 들어서다`를 입춘(立春)으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설날 몸가짐에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뜻으로 신일(愼日)이라 해서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신에게 빌어 왔다. 이렇듯 설은 미래 1년의
중국 주나라의 유학에서 다루는 여섯 가지의 기초 교양과목. 예(禮)·악()·사(射)·어(御)·서(書)·수(數)를 육예라고 한다. 여기서 예는 예용(禮容), 악은 음악, 사는 궁술, 어는 마술, 서는 서예, 수는 수학을 말한다. 이것을 터득하기 위한 경전으로는 시·서·예·악·역·춘추의 육경(六經)이 있다. 공자는 일찍이 `활쏘기를 하는 것은 군자다운 점이 있다. 과녁에서 벗어나면 자기 자신에 돌이켜서 잘못을 구한다`라고 하면서 `사`에 대해 큰 비중을 두었다. 조호익(1545~1609) 선생은 그의 `지산집`에 공자의 말을 인용해 `활을 쏘는 데 대한 설(射說)`을 적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활쏘기를 하는 것은 군자다운 점이 있다. 과녁에서 벗어나면 자기 자신에 돌이켜서 잘못을 구한다. 제아무리
무주공산! 지금 이 나라를 나타낼 수 있는 대표적인 말이다. 왜 주인이 없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지 않느냐고, 그 주인이 광장에서 오랜만에 주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런데 정말일까.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은 너무 교과서적이다. 세상이 교과서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직업에 귀천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일한만큼 대가와 대우를 받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고, 죄가 있는 사람은 그 죄가 어떤 것이든 더 큰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분명 이 말들은 교과서는 물론 모든 종교의 교리서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나라 종교는 이를 얼마나 실천할까. 용서하고, 이해·배려하며,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어떤 연구에 의하면 인성은 절반 정도가 이미 태어날 때 타고 나는 것이라 한다. 그 나머지의 반은 6세 정도까지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고, 이후 평생 동안의 교육이나 경험에 의한 인성 변화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는 원래 개를 싫어했다. 개띠로 태어났으니 개와 인연이 있을 법도 하건만 그냥 싫어한 정도가 아니라 무서워했다는 편이 더 옳을 것 같다. 개를 싫어하는 마음을 타고 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릴 때 개에 물린 기억이 있고, 대학시절에도 한 번 물린 적이 있으니 후천적 트라우마로 개를 싫어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동물사랑이 현대인의 기본적인 덕목쯤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특히 인간과 삶을 함께하는 반려동물은 극도로 핵가족화, 개인화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매우 유용한 수단
필자가 근무하는 갤러리는 유통업체에서 운영하다 보니 매년 새해가 되면 그 해를 상징하는 12간지 동물을 활용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는 병신년 붉은 원숭이의 해라 원숭이 작품전을 가진 바 있었고, 올해 역시 닭띠 해를 상징하는 조각전을 마련해 열었다. 하지만 올 해 전시회는 예년과 달리 좀처럼 사회적 이슈나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크게 얻지 못하고 있다. 아마 그것은 닭이 가지는 생물학적 의미와 역사 속에 숨겨진 이야기보다는 사상최악의 조류 인플루엔자와 최순실 국정논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빚어진 어수선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된 듯하다. 하지만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닭을 상서로운 조짐을 가진 서조(瑞鳥)로 인식 해 왔으며, 새벽을 여는 새로도 여겨 왔다. 아침이 시작되기 전 우
세상은 분명 거꾸로 가고 있다. 달력은 초 단위로 숨을 넘기는 시간을 달래고 달래어 그 무거운 2016년을 넘겼는데, 배반의 명수인 세상과 사람들은 달력을 배신하고 거꾸로 살고 있다. 시간이 가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세상 이치인데,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2017년 1월을 사는 이 나라 정치인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괴짜 돌연변이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그리고 정치! 세계가 참 우습게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팩트(Fact, 사실)보다는 자극적인 이슈에 세상 사람들은 더 흥분한다”라는 어느 배우의 예언처럼 한반도의 이슈는 세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북쪽의 이슈는 미사일과 공포정치, 남쪽의 이슈는 대통령 자리에 목숨 건 정치 모리배들의 진흙탕 싸움. 정말 한반도 어디에서도 사실이라는 것은 찾아보
지난 2001년부터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는 교수신문은 병신년의 사자성어로 순자의 왕제편에 나오는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원문을 풀이하면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교수신문은 지난달 20일부터 22일까지 전국의 교수 6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32.4%)로 군주민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고 24일 밝혔으며, 맹자에 나오는 말로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라는 뜻의 역천자망(逆天者亡)을 군주민수에 이어 두 번째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택(28.8%)했다. 2017년 정유년 구직자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
붉은 원숭이 해가 숨을 다했다. 그 마지막 숨이 너무 거칠었다. 그 거친 숨소리와 조류독감 때문에 닭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육사 시인은 지금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비록 정유년이 시작되었지만 세상에는 닭 우는 소리 대신 광장의 정치 소음만 가득할 뿐이다. 끝이 곧 시작이라고 했다. 이문재 시인은 시에서 “그래, 땅 끝까지 가거라. (중략) 척추를 곧추 세우고, 그래 갈 때는, 갈 데까지 가는 것이다. (중략) 땅 끝이 땅의 시작이다”라고 썼다. 비록 2016년 달력의 마지막 장은 뜯겼지만 새로운 시간의 시작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나라가 아직 끝을 보지 못한 뭔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