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깎이 세상에 귀찮은 것이야 많겠지만 그 중에 수위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손톱을 깎는 일이 아닐까? 세수와 양치질이 귀찮은 것의 목록에서 빠질 리 없겠지만, 매일매일 피할 수 없이 해야하므로 무뎌지기도 하고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어느새 자라 있는 손톱. 늘 새삼스럽게 귀찮은 것은 바로 손톱을 깎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 손톱깎이란 놈은 찾을 때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지 않는가. 동물들은 손이 없으므로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들은 발톱도 깎지 않는다. 깎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깎을 틈이 없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야생의 생활환경은 발톱이 자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인간, 그리고 인간이 키우는 애완동물만이 손톱과 발톱을 인위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 대사는 2015년에 등장한 한 카드회사의 광고문구였다. 그 뒤 이 대사는 수없이 많은 ‘짤방’들을 양산해내며 변질되기 시작했다. 뒹굴거리며 주말을 보내는 직장인들, 취업을 하지 못해 집에서 놀고 있는 ‘취준생’들의 속마음이 되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돌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것,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격렬하게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마음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격무에 시달렸는지를 대변한다. 또 그들이 다가올 내일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이유는 내일을 맞아야 한다는 공포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학발전이 인류 행복 증진 과학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켰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과학기술은 그 분야 특성상 인류의 행복 증진에 기여한다. 인류의 행복이 증가해왔음을 주장하는 유엔의 2012 행복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지구에서의 삶은 평균적으로 볼 때 지난 500년 동안 폭력적이고 비참한 정도가 훨씬 감소했고 수명은 훨씬 늘어났다. 자살률의 감소와 평균수명의 증가가 이런 사실에 대한 증거이다.” 이 보고서에서 행복 증가의 요인으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의 수명연장이며, 이것은 과학기술, 구체적으로 의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예컨대 과거 로마인의 평균 수명은 40세에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인의 평균수명은 70∼80세로 이는 약 190% 증
△싸움과 모방 유난히 싸움을 많이 했다. 워낙 시골학교여서 반 학생이 스무 명 남짓이었는데 그 중 남자들 열 명과는 거의 돌아가면서 싸웠다. 아이들이란 원래 영악해서 공부를 잘하거나, 키가 크거나, 터무니없이 잘 생긴 애들에겐 싸움을 걸지 않는 법이다. 나는 공부도 제일 잘 했고, 키도 컸다. 그런데도 매번 싸웠다. 외모가 문제였나? 여튼 거의 모든 싸움에서 이겼지만, 친구들은 매번 나한테 얻어맞고도 싸움을 걸어왔다. 내가 정말 못된 놈이긴 했나보다. 뻔히 맞을 걸 알고도 덤볐으니 말이다. 극구 부인하자면 평소에 나는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고, 인기투표를 해도 그렇게 뒤쳐지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역으로 너무 착해서 친구들이 만만하게 봤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싸울 때는 시끌벅적했다
2011년 개봉한 ‘북촌방향’에서 중원(김의성)은 영호(김상중)와 예전(김보경)과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원 : 내가 말예요, 내가 관상에 대해서는 진짜 아무 것도 모르거든요. 완전 엉터리예요. 근데 사람들한테 그 뭐라 그럴까, 그 양쪽 극단을 딱 집어주잖아요. 그럼 사람들이 다 넘어와요. 예를 들어서 내가 여자들한테 그러거든, ‘당신은 그 겉으로 보기엔 아주 외향적인 아주 밝은 성격 같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아주 우울하고 슬픈 그런 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바로 나예요. 어머 어머머 정말 맞다. 이런 식으로 나오거든 그러니까 극단을 짚어주면 믿게 돼 있어. 영호 : 사람이 원래 안(내면)에 극단
1. 군 입대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다치고 통합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할 수 있는 일은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거나, 책을 읽는 일이었다. 아마 그 때가 고등학교 이후 가장 많이 책을 읽었던 때인 것 같다. 석달 정도 병원에 머물면서 60권 정도의 책을 봤으니, 그 무료함이란 말할 나위 없었다. 그 때 보았던 책이 김연의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였다. 그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비슷한 유의 소설이었던 것 같았다는 느낌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것은 제목 때문이었는데 ‘자작나무’라는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자작나무…. 발음하면 할수록 주문이 걸린 듯 자꾸 발음하게 된다. 그럴싸한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삶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사치에가 핀란드에 도착하여 카모메 식당을 열고, 이곳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진 미도리, 마사코를 만나 그들과 함께 식당을 운영해 간다는 소박한 이야기다. 영화는 이들이 왜 일본을 떠났는가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것처럼 왜 하필 핀란드를 선택했는가 역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렇지만 딱 한 번 그 이유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식당을 처음 방문한 마사코가 커피를 마시며 던진 질문이 그것이다. 마사코는 식당을 휙 둘러본 후, 사치에와 미도리에게 “당신들은 여기서 어떻게 식당을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라고 묻는다. 미도리는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사치에는 멋진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반농담으
귀유광(1506∼1571)은 명나라 때 사람이다. 과거에 무려 여덟 번이나 떨어졌고 예순에 비로소 진사가 되어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전까지 사숙을 열어 시와 도를 논하였는데, 학생만도 1천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글로는 ‘선비사략’과 ‘사자정기’ 등이 있다. 과거를 회상하거나 가까웠던 사람들을 애도하는 산문을 많이 남겼는데, 그의 글들은 사실성을 바탕으로 풍부한 감정을 드러낸다. ‘항척헌지’는 귀유광이 기거했던 ‘항척헌’이라는 자신의 쪽방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쪽방의 경치,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그의 아내에 대한 추억들로 가득한데, 그 추억은 애정과 눈물들과 더불어 켜켜이 쌓여 있다. 먼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그의 예민한 감수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집에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홍길동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홍길동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양반가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벼슬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가출을 단행한다. 한 도인으로부터 도술을 배워 ‘활빈당’의 우두머리가 된다. 활빈당은 매관매직을 일삼는 관리와 양반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다. 홍길동의 이런 행태는 조선을 흔들고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왕은 홍길동을 잡으려 동분서주하지만, 그의 신출귀몰한 신통력 때문에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보다못한 신하가 홍길동에게 병조판서 벼슬을 주고, 그것을 받으러 왔을 때 잡자는 간교한 꾀를 낸다. 홍길동은 벼슬을 받는 것이 소원이긴 했지만, 정작 벼슬을 할 생각은 없었다. 서자여서 관
지난 23일 최인훈이 타계했다. 그는 1936년 회령에서 출생하여 6·25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했고, 1952년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다. 1955년에 등단한 후 이듬해 대학을 중퇴한다. 1957년 군대에서 통역장교로 복무하였으며 1963년 제대하였다. “광장”은 군생활을 하던 중인 1960년 11월에 출간에 되었다. 최인훈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을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을 겪었다. 이러한 사람의 삶은 지금 세대와는 거리가 멀다. 거리가 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그가 쓴 소설 역시 그러한데 어렵기로 정평난 작품으로는 ‘회색인’, ‘총독의 소리’, ‘화두’ 등이 있다. 최인훈의 부고를 알리는 신문은 일제히 “‘광장’ 최인훈 작가”라는 수식을 붙였다. ‘광장
△장난감과 놀이 보들레르는 언젠가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한 적이 있다. 그가 보기에 아이들은 모두 연출가며, 연기자이자 동시에 마술사다. 아이들은 단순한 무대장치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연극을 펼친다. 이를테면 집에 있는 평범한 의자가 마차가 되기도 하고, 때론 말이 되고 그런가 하면 승객이 될 수도 있다. 병정인형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는 건 그럴 수 있지만, 병정인형이 아닌 병마개, 체스 말, 공깃돌도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런 놀라움과 궁금증은 보들레르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도 수긍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놀이가 끝나면 인형을 분해해버린다. 어떤 아이는 장난감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부셔버리는 아
1. 이 말을 처음 들었었던 건 훈련소에서였다. 각개전투, 유격, 화생방 이런 힘든 훈련 앞에 조교들은 이 말을 붙이길 좋아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음험하다. 이 말은 즐기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요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 피할 수 없다니? 무얼 말인가? 군대를 말이다. 군대에 들어온 이상 군대의 명령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이 말은 반항을 쓸데 없고 쓸모 없는 것으로 규정 지어 저항의 싹을 잘라버리고 체념할 것을 종용한다. 이제 ‘까라면 까’야 한다. 이 말은, 나치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만행들,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광주민주화운동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보였던 행동마저 가능하도록 만든다.
△지대넓얕과 알쓸신잡의 공통점 ‘지대넓얕’(2014, 한빛비즈)과 ‘알쓸신잡’(2017.6, tvN). 이 둘의 공통점은? 앞에 것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줄인 말이고, 뒤에 것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다. 하나는 책이지만 다른 하나는 TV프로다. 둘의 공통점은 네 자로 된 줄임말이다,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아주 확실한 눈썰미만 가졌군요. 이런 것들이 유행하는 현상을 두고 한 비평가는 인문학적 재미가 위안을 주고, 이런 위안은 ‘쇼’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정지우, ‘인문학적 교양과 예능의 결합, ‘쇼양’의 문제’). 아하, 그렇다면 당신은 이 둘의 공통점이 인문학으로 장사를 한다는 것이군요? 세상에, 자본주의 시대에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 어디있단 말인가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괴짜였다. 그는 자신이 쓴 편지를 뉴욕의 거리에 일부러 떨어뜨리고 어떤 사람이 답장을 쓰는지를 관찰했다. 일부러 긴 줄에 새치기를 하고서는 뒷사람의 반응을 기록하기도 했다. 날씨가 맑은 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군중들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를 실험하기도 했다. 로렌 슬레이트는 이러한 밀그램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그는 영리하고, 파괴적이고, 부조리했다. 하지만 그가 사르트르나 베케트와 달랐던 점은 부조리를 측정했다는 점이다.”(‘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66면) 스탠퍼드 대학의 리 로스는 “밀그램 교수는 부조리를 병 속에 담아 저장”했다고 평가한다.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에 대한 복종실험’으로 유명하다. 이 실험은 나치 독일의 잔혹한 홀로코스트와 ‘미라이 학살 사건
△성삼재에서 화개재까지 : 마음으로 몸을 세울 수는 없다 새벽 4시,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오른다. 며칠 전부터 떠돌던 감기 기운을 약으로 눌렀지만 그 기운은 눌리지 않았다. 기침은 나지 않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땀이 흐른다. 이틀치 음식과 옷과 자질구레한 것들로 배낭은 무거웠다. 다행히 길은 어두워 일행은 내 상태를 알지 못했다. 아픈 중에도 처음 해보는 야간 산행에 들뜨고 열에 달떴다. 노고단까지 올라 이제 능선만 따라가면 그만이라는 대장님의 말에 안심했으나 산에 대한 산꾼들의 모든 말은 거짓말임에 분명했다. 길은 꼬리를 물고 산을 넘나들며 나를 혹사했다. 평소 같으면 뛰듯이 달렸을 산길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산에서 달린 적이 있던가,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했나? 마음먹은 대로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은 1996년 10월에 출판되었고 두 달 후 음란물로 지정되어 폐기처분 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199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다. 이 일련의 사태를 보며 나는 흥분했고 이 책을 어떻게든 구해서 읽었다, 아니 읽어야 했다. 무라카미 류가 변태와 일탈을 직설적으로 묘사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20년 전에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는데, 그 아류쯤에 지나지 않는 이 소설을 금서로 지정하는 이 나라에 분노했다. 어찌되었던 그는 당시 신화였고 혁명 그 자체였다. 그랬던 그는, 처음엔 전시가 거부되었다가 미술관의 중요 소장품이 된 뒤샹의 변기처럼 권좌에 올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고, 저자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혹자’라 칭하고, 그 책의 단 한 부분을 읽고 예
요즘 코미디프로가 재미가 없다. 더 말초적이고 더 자극적이다. 여전히 외모를 비하하고 여성과 남성을 비교하여 성을 차별하고 모독한다. 이런 프로를 보고 있자니 과거의 코미디 프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숨은 의미를 읽어내야만 했던 대단한 개그 프로 두 편을 소개하려 한다. △ ‘아메리카노’ : 코미디의 정치성 2011년 11월, 정규방송도 아닌 케이블TV에 한 소녀가 등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다운파카를 입고, 웃옷과 대조적으로 딱 달라붙는 원색의 붉은 바지를 입은 채, ‘할리라예’를 외치며 무대로 뛰쳐나왔다. 그녀의 등장은 코미디계의 지층을 흔들어 놓았으며, 그 흔들림은 우리의 삶으로 스몄다. 딱히 욕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간디작
로맹 가리는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외교관이다. 잘 알려진 소설로는 ‘하늘의 뿌리’(1956)와 ‘자기 앞의 생’(1975)이 있다. ‘하늘의 뿌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공쿠르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공쿠르상은 기수상자에게 다시 상을 주지 않지 않지만 로맹 가리는 ‘자기 앞의 생’으로 이 상을 한 번 더 받았다. 왜냐하면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것을 몰랐다가 그가 자살을 한 후에서야 이 사실이 밝혀져 프랑스 문학계를 두 번의 충격에 빠뜨렸다. 소설가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무언가를 쓰지 않고는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자신이 아닌 서술자로 불리는 무언가가 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로맹 가리
△깐돌이 ‘골짜기 골짜기 말은 많이 들어도 이런 골짜기는 처음이야’라는 말을 듣곤 했던 물안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어릴 때는 고양이나 강아지와 함께 살았다. 개를 메어놓긴 했지만 목줄을 풀고 달아날 때가 많았다. 다섯 살 때까지 키운 진돗개는 그렇게 달아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쥐약을 먹고 죽었다. 가장 오래 함께 지냈던 개는, 그때는 개의 종에 대해서도 몰랐는데 돌이켜 보면, 아마도 코기 계열이었던 것 같다. 이 강아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삿짐센터를 운영하시던 작은아버지가 데리고 오셨다. 어떤 집에 이사를 하러 갔는데 마당 넓은 집에 살던 주인이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이 강아지를 버리려 했다고 한다. 그 때만 해도 ‘반려동물’은커녕 ‘애완동물’이라는 개념도 없이, 개는 그냥 짐승이
△심청의 죽음 어버이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빠졌다는 심청을 떠올린다. 심청은 스스로 선택하여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다. 이런 심청의 선택은 자발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자발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시야를 확장해 보면 이러한 심청의 자발적 선택 역시 사회에서 습득되고 사회가 설득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어쩌면 당대의 사회가 자식에게 요구하는 ‘효(孝)’라는 사회적 압력이 작동했고, 이것에 굴복한 꽃다운 심청은 반강제적으로 행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인당수에 빠지는 행위, 이것이 심청의 운명이었다고 말이다. 그녀의 이름이 이를 증거한다. 심청의 이름인 한자어 ‘沈淸’에서 ‘啞은 성씨로 쓰일 때는 ‘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