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우영의 삼국지 (애니북스, 2007) 전집을 샀다. 아들녀석 수면용 도우미 책으로. 한데 웬 걸, 녀석은 시시해서 못 읽겠단다. 만화로 된 건 학교 도서관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질리도록 읽었다나. 그러더니 요즘은 이문열 버전으로 조금씩 읽기 시작한다. 이문열 삼국지는 삼 년 전 녀석이 6학년 때 샀다. 책꽂이 너무 높은데 있어서 여태껏 못 읽었다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실은 지 아무리 책 좋아하는 녀석이라도 6학년이 읽기엔 무리일 것 같아 그간 권하지 않았었다. 시시하다는 고우영 삼국지 대신 슬며시 제 방 책상 위에 가져다 놓았더니 읽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삼국지 다양한 버전의 그 어떤 것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 무지를 면하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만화 버전인 고우영 삼국지부터 야
기획ㆍ특집
등록일 2010.01.25
게재일 2010-01-26
댓글 0
-
`당신들 처마실 술을 내가 왜 사는데?` (56쪽) 조두진의 `아버지의 오토바이`(예담, 2009)에서 주인공인 아버지 엄시헌은 동료에게 저처럼 쏘아붙인다. 술자리 동석을 권하는 동료의 호의를 묵살하는 융통성 없는 소갈머리의 소유자. 엄시헌에게 밥벌이의 비루함과 숭고함은 오직 가족을 위해서란다. 가부장적 책임감은 원만한 사회성에 앞서는 변명이 될까? 이런 의문이 책장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오직 내 새끼를 위한 맹목적 부성을 이해받아야 하는 이야기. 이 소설의 명백한 존재 이유다. 엄시헌에게 밖으로 이해타산을 따질 수밖에 없는 건, 안에 있는 내 가정, 특히 자식 둘을 건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엄시헌의 부성애는 너무 가족 지향주의적이다. 버트란트 러셀이 말했다. `행복의 비결은 되도록 폭넓은 관심을
기획ㆍ특집
등록일 2010.01.18
게재일 2010-01-19
댓글 0
-
오랜만에 흡인력 있는 소설 한 편을 만났다.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 (은행나무, 2009)이다. 내 부러운 눈길은 이미 뒷면 출판 정보를 읊고 있었다. 내가 산 책이 14쇄이니 출간 날짜에 비해 잘 팔리는 편이다. 신예작가로선 날개를 단 셈이다. 읽으면서, 좀 더 압축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300여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데, 200 페이지 정도로 줄이는 게 나았을 것이다. 작가의 시선이 옹골차 한 장면에 너무 많은 사건을 담으려 하다 보니 가독성이 떨어질 수밖에. 이런 바람은 독자로서의 작은 불만일 뿐, 진실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소설적 재능이 빼어난 작가라는 것. 그 성과가 훈련의 산물이 아니라 태생적 요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절망 섞인 부러움이 인다. 구성 상
기획ㆍ특집
등록일 2010.01.11
게재일 2010-01-12
댓글 0
-
이십대 시절 나는 제법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그 때는 도서기록카드란 게 있었다. 책 뒷면, 붙여진 대출용 봉투 안에 기록지가 있었다. 빌린 이의 이름과 빌린 날짜, 반납일자 등이 기록지에 흔적으로 남았다. 누구라도 책을 빌렸다면 그 목록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어느 날 공대생 친구 녀석이 말했다. “도서 기록 카드에 니 이름 와 그리 많이 등장하노?” 반색하는 녀석이 나는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내 몸은 움찔했다. 도둑이 제 발 저렸던 것이다. 빌린 책 중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사진을 훔친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도서대여 담당자가 추적 끝에 잘려나간 작가 사진들을 돌려달라고 쫓아올까 두렵던 차에 친구녀석의 그런 발언에도 움찔했던 것이다. 책의 주요 정보를 개인적 목
기획ㆍ특집
등록일 2010.01.04
게재일 2010-01-05
댓글 0
-
특별한 연하장 두 장을 받았다. `구름`과 `386`이란 별호를 가진 두 사람이 보내온 것이다. 미리 밝히자면 그 둘은 수감자 신분이다. 최선을 다한, 각자의 친필이 녹아 있는 연하장에는 두 사람의 평소 개성이 잘 나타나 있다. 시를 쓰는 구름은 깔끔한 성격답게 흰 봉투에 매향 가득한 그림에 보랏빛 글씨로 안부를 물어오고, 그림을 잘 그리는 386의 연하장은 갈매기떼 호위하는 일출 장면인데 글씨체마저 예술 지향적이다. 검열을 통과한 그들의 편지가 내 손에 쥐어지는 순간 나는 특별히 숙연해졌다. 요 몇 년 새 연하장 같은 걸 주고받은 기억이 없다. 언제부턴가 전자우편이라는, 멋없지만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친필 연하장을 번거로운 절차쯤으로 밀어낸 탓이리라. 오랜만에 접한 아날로그식 소통 방식도 신선한데, 생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2.28
게재일 2009-12-29
댓글 0
-
고양이 한 마리로 시작한 연상놀이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면 분리수거함 옆, 자동차 밑에 숨어 있던 들고양이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곤 한다. 뚜껑이 덮여 있어 끼니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언제나 고양이는 쓰레기통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며칠 전에 본 고양이는 한쪽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다친 지 오래인지 무덤덤한 절뚝거림이 도리어 연민을 자아냈다. 서러운 듯 영민한 그 눈빛이 잔상처럼 어리어 카스테라빵을 들고 다시 내려가 봤다. 고양이는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 밤 `버려진 고양이, 다친 고양이, 길고양이 키우기` 등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비염을 앓는다는 핑계 때문에 집에 들여 키울 수는 없지만, 어릴 적 고양이와 쌓은 정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2.21
게재일 2009-12-22
댓글 0
-
김장철이다. 가사노동(어쩌면 모든 노동을!)을 버거워하는 편이지만 해마다 김장김치만은 손수 담가왔다. 내 어설픈 살림솜씨를 아는 지인들은 내손으로 김장을 했다고 하면 의외라는 눈치다. 시댁에서 가져오거나 친정 덕을 볼 거라고 생각한다. 그도 아니면 파는 김치를 애용할거라고 지레짐작한다. 그간 돼먹잖은 `가사노동에서의 해방`이라는 핑계로 제 게으름을 선전하고 다닌 때문이리라. 시댁 김치를 가져다먹기엔 양심 찾을 중년이고, 홀로이신 친정 엄마는 이웃에게 얻은 김치만으로도 차고 넘치니 딸을 위해 부러 김장할 일은 없다. 그렇다고 김치를 사먹을 만큼 생업에 바쁜 처지도 아니니 그간 좋든 싫든 김장을 해왔다. 밥상 차리기, 라는 주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김치이기 때문에 김장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2.14
게재일 2009-12-15
댓글 0
-
수능 시험을 마친 고3들, 요즘 자유 시간을 주체할 수 없다. 막바지 대입 전략으로 마음 부담은 크겠지만, 물리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많다 보니 괜한 고민들을 한다. 내 딸아이와 친구들도 그런 상황이다. 각자 운전을 배운다, 헬스클럽을 다닌다, 영어 학원을 다닌다 해도 늦은 밤까지 공부하던 때에 비하면 여유만만이다. 성정이 재바른 친구들은 벌써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도 했단다. 주로 패스트푸드점이나 삼겹살집, 치킨집에서 서빙을 한단다. 호기심이 생긴 딸아이도 물어온다. 동네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생 구한다는데…. 말끝을 흐리는 품새가 자신도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완곡한 표현일 게다. 작년에 이런 과정을 먼저 겪은 친구가 생각나 나는 속으로 웃었다. 호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던 친구딸은 사흘을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2.07
게재일 2009-12-08
댓글 0
-
사람 사이는 적당해야 오래 간다. 넘치면 오해가 잦아지고, 모자라면 우울이 깊어진다. 오해가 잦으면 피곤해지고, 우울이 깊으면 자괴감에 휩싸인다. 오해의 상처를 건너지 않고, 우울의 진저리를 맛보지 않기. 누구나 그런 관계를 꿈꾼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과잉과 고립 사이 그 `적당함`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사이는 쉽고도 어렵다. 나들이할 때 내 차에 동승하는 지인이 있다. 오늘, 차에 오르자마자 그녀는 손에 들고 온 우유 한 팩을 급하게 마셨다. 약속 시간에 늦은 터라 식사대용으로 가져 온 것 같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쁜 아침, 분주했을 그녀의 외출 준비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짠했다. 한데 그런 연민도 잠시, 나는 당황했다. 우유를 다 마신 그녀는 빈 팩을 꾹 눌러 접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1.30
게재일 2009-12-01
댓글 0
-
책에 대한 호불호는 읽는 이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별로라고 한, 어떤 책을 빌렸다가 돌려주며 지인이 말했다. 이 책을 왜 안 좋아해요? 그럼 어떤 책을 좋아해요? 당황한 나는 잠시 침묵으로 변명할 시간을 벌어야했다. 나는 이 책이 좋은데, 그럼 댁은 대체 어떤 책을 좋아하냐는, 도발과 힐난의 뉘앙스가 묻어 있는 그 질문을 곱씹으며 내 독서 취향을 점검해본다. 나는 어떤 책에 몰입하는가? 요즘 김경욱 작가의 매력에 빠져 있다. 그의 `천년의 왕국`(문학과 지성사·2007)은 아무리 봐도 혼자 읽기에 아깝다. 주관적이기만 한 `혼자 읽기에 아깝다`는 생각은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데 대한 독자로서의 안타까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박연으로 알려진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의 조선 생활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1.23
게재일 2009-11-24
댓글 0
-
한 여자 여기 있다. 붉은 벽을 배경으로, 검고 긴 어깨머리를 한 여자. 황소 눈망울을 한 여자의 시선은 오른쪽이다. 오른 뺨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길은 가늘고, 얼굴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황량하다. 짐짓 생각에 잠긴 듯한 여자, 실은 상처받았다. 그녀는 따귀 맞은 제 영혼을 그렇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여자는 배르벨 바르데츠키가 쓴 `따귀 맞은 영혼`(궁리, 2002)의 표지 인물이다. 원 그림 제목은 `생각에 잠긴 여인`이라지만 어쩌면 그녀도 제 깊은 상처 때문에 생각에 잠겼을지도 모른다. 영혼이 따귀 맞았으니 얼마나 아플까? 놀란 여자의 눈망울과 황망한 표정이 절묘하리만치 이해가 된다. 누군가 나를 거부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자존감 다친 그 부위에 생채기가 난다. 불안정, 무력감, 분노감에 이어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1.09
게재일 2009-11-10
댓글 0
-
내가 그미를 알게 된 것은 오래지 않다. 책 읽는 모임에 친구 소개로 나타난 그녀는 한마디로 멀티패셔니스트였다. 작은 두상에 어울리는 시원한 망사 두건, 눈썹에 닿을 것처럼 날아오른 인조눈썹, 옷 색깔에 맞춰 단 귀걸이, 길고 가지런하게 손질된 손톱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는 완벽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엣지있는 그녀의 멀티 패션은 예쁜 얼굴과 날렵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우리 독서팀의 독보적인 인기인이 되어버렸다. 독서 토론 후, 점심을 겸한 친목 자리에서 이어진 그녀의 패션 강좌(?)는 책 읽는 즐거움을 앞질렀다. 귀걸이는 하의 색깔에 맞춰 달아 보세요. 머플러는 매는 방법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요. 패션의 완성은 신발과 가방이니 소홀하면 안 돼요. 그녀가 하는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1.02
게재일 2009-11-03
댓글 0
-
눈꽃이란 닉네임을 가진 분이 메일을 보내왔다. 딱히 보낼 곳도, 애타게 기다리는 소식도 없는 나날이라 메일 계정을 방치하다시피 했는데, 수신확인을 기다리게 한 게 미안해 서둘러 개봉했다. 첨삭을 부탁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수필 네 편이 첨부되어 있었다. 첫 편부터 눈길을 끌었다. 몸과 마음을 열어 이웃을 품는 글쓴이의 진심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가게에 드나드는 이웃을 관찰한 일상사인데, 그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한없는 이해와 사랑이 깔려 있었다. 가게를 열자마자 분식점을 하는 옆집 친구가 커피 마시자고 건너오면, 예쁜 딸을 둔 방앗간 안주인도 합세한다. 정담이 무르익기도 전에 문지기 역할을 하는 수다쟁이 할머니가 끼어들면 본격적인 인간사 희로애락이 변주된다. 그들이 풀어놓는 음악 같은 일상사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0.26
게재일 2009-10-27
댓글 0
-
가을은 `읽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쓰는` 계절이기도 한가 보다. 이맘때면 `쓰는 것`에 관심 가진 이들의 고충을 들을 기회가 많아진다. 연중 문학 활동의 결실을 준비하는 때이기도 하고, 계절적으로도 글쓰기로 내면적 욕구를 충족하기를 요청하는 때이기도 하다. 가끔 입문자들이 글쓰기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놓을 때면, 쓴다는 것에 그럴듯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잘 쓰고 싶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 건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장통과 내면세계를 속속들이 알 수 없으므로 어쭙잖은 내 충고는 겉돌기에 지나지 않는다. 고작 한다는 얘기가 맞춤법이나, 문장 호응 관계나, 비문을 걸러 내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돌아서면 허탈하기 그지없다. 문장에 대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0.19
게재일 2009-10-20
댓글 0
-
학창 시절 동아리 멤버 중에 다독하는 후배가 있었다. 덜 읽어서 섬이었던 나는 많이 읽어서 섬이 된 그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세상과의 불화를 즐길 수 있는 배짱도, 집단에 가린 개별자의 존엄에 대한 인식도 그미의 독서관이 내게 끼친 긍정적 효과였다. 습작에 관심이 있었던 내게 그녀는 자신이 선정한 권장도서 목록을 전해주곤 했다. 졸업하고 결혼한 뒤 서로가 못 만나게 됐을 때도 한동안 그녀는 내게 책 권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주곤 했다. 그 중 한 권의 책에 유독 눈길이 간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맨워칭`(까치, 1994)이 그것이다. 책이든 뭐든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그 책이 아직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은 인간관계에 대한 섬세하고 밀도 있는 이해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인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0.12
게재일 2009-10-13
댓글 0
-
첫새벽에 시를 쓴다. 껍질 벗겨진 은사시나무의 실존에 대하여. 아니, 반성문을 쓴다. 그 나무껍질 벗긴 내 죄에 대하여. 내 죄는 부끄러움이나 자책에서 끝날 수 있지만 상대의 실존은 치명타를 입거나 고사(枯死)할 수 있음에 대하여. 어느 봄날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모 영내 은사시나무 삼십여 그루가 허리 껍질이 벗겨진 채 방치되어 있었단다. 은사시나무에서 꽃가루가 날려 식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둥치에서 사람 허리만큼 올라온 부분의 껍질을 벗겨 방치하면 나무는 고사하는 모양이었다. 꽃가루 날려야 하는 건 은사시나무의 생존방식이고, 그게 방해가 되는 것은 인간의 실존이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자연을 이용해야 하는 입장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거창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10.05
게재일 2009-10-06
댓글 0
-
오늘 하루 그대 일과는 위대하였고 거기에 파생하는 걱정은 사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그 사소함이 충분히 위대할 수 있었던 그대 일과를 망쳐버렸다. 실은 일과를 망친 것도 아니다. 망쳤다고 생각하는 건 그대가 느끼는 `사소함이란 유령` 때문이다. 대부분의 걱정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고 그것이 그대 하루를 번민하게 만들므로. 오늘 하루 얼마나 사소함이 그대 영혼을 너덜거리게 했는지를 증명해보자. 한 달에 한 번 봉사하러 가는 그대, 오늘도 상담자의 편지를 개봉한다. 기름을 먹인 듯한 반질거리는 편지지에 세로로 정갈하게 써내려간 글엔 가을을 맞는 사내의 우수가 담겨 있다. - 어김없이 가을이 왔네요. 입술은 바싹 말라가고, 책을 읽어도, 글을 써도 예전처럼 집중되지 않아요.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9.28
게재일 2009-09-29
댓글 0
-
과히 신드롬이다. 아니,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2008)는 이제 신화가 되었다. 언제나 불황이라는 출판업계의 투정을 가벼이 웃어넘기듯 백만부 판매라는 빅뉴스를 독자들에게 보너스로 주기까지 한다. 올해 포항의 원북 역시 `엄마를 부탁해`이다. 원북 행사란 전국 몇몇 공공도서관에서 시행하는 범시민 책읽기 운동의 일종이다. 시민들이 접수한 후보 도서 중 한 권을 각계에서 위촉된 원북 심사위원들이 토론으로 선정하고 도서관측은 그 책을 올해의 원북으로 선포한다. 한마디로 `책을 가까이 하는 시민`이 원북 행사의 취지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시민들이 원북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측에서는 도서대출 및 교환, 원북 작가와의 행사 그 외 공개토론회 등을 마련해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9.21
게재일 2009-09-22
댓글 0
-
독서 치료 프로그램 중에 빠지지 않는 추천 도서 중의 하나가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푸른숲, 2006)이다. 도서관 입구 책꽂이, 눈높이 맞춤하게 꽂힌 그 책이 욕심나긴 했지만 다른 책에 우선순위가 밀리곤 하였다. 분권 두 권짜리가 아무래도 부담이 됐나 보다. 긴 제목만큼이나 사랑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걸까? 그미의 다른 소설 `세월`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작가는 기본적으로 길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두 권짜리일 필요가 있을까 싶게 동어반복에 중언부언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별 불만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건 상처의 우물에서 건져 올린 단물 같은 치유의 힘 때문이다. 이 책의 본질은 상처에 관한 치유이고 곁다리는 권력에 대한 속성쯤이다. 사랑이 세상을 움직일까? 아니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9.14
게재일 2009-09-15
댓글 0
-
가끔씩 헛갈릴 때가 있다. 가족제도 안에서의 여성에 대한 내 연민의 근원이 제 게으름을 합리화하기 위한 구실 때문인지, 저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여성성에 대한 강한 자의식 때문인지. 지난 주말에 친정 엄마의 팔순모임이 있었다. 이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나는 즐거움에 앞선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행사의 행동요원(?)격에 해당하는 여성들의 불합리한 상황과 그것에 대한 내 연민 때문이다. 우리집 여성 요원들의 간략한 행태를 소개해보자. 자유분방한 큰올케가 대안 없이 뒤로 빠지는 동안, 전통적 가부장질서에 충실한 둘째올케의 가없는 효부정신이 발휘된다. 좋은 게 좋은 셋째올케와 멀리 사는 언니는 묵묵히 대세를 따른다. 전 여성행동요원의 정신적, 노동적 민주화를 꿈꾸는 나는 나름 합리적 대안을 제시한다. 집안이
기획ㆍ특집
등록일 2009.09.07
게재일 2009-09-08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