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온다. 마른 가뭄 아니련만 강우량이 미미하여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이었다. 7년 대한(大旱)에 비 아니 오는 날 없고, 7년 홍수에 해 아니 드는 날 없다는 옛말이 떠오는 날이 이어졌다. 그래, 노는 사람이야 흥겨울 터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탈까,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실로 오랜만에 풍족하게 비 내린다.지난달 중순에 큰아들과 약속한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우리 집에 모여서 일박(一泊)하기로 한 것이다. 모임 하루 전날에 나는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문학자가 바라보는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은 일 년에 단 하루 있는 어린이 ‘해방의 날’이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공부에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혹사당하고 있는지를 보다 못한 유엔이 나서서 어린이들에게 휴식과 놀이를 권고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지구촌에서 이토록 가혹하게 어린이들을 공부로 닦달하는 두 나라가 있으니, 인도와 한국이다.교육에 관한 대표 저서로 사람들은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을 꼽는다. 당연한 일이다. 1762년에 출간된 ‘에밀’은 260년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시의성과 설득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에밀’이
얼마 전 중간시험 감독을 하다가 손에 얻어걸린 작은 책자를 읽다가 생각에 잠긴다. 몇 년 전 우리 학과에서 초빙한 신임 교수의 글에 눈과 마음이 간 것이다. 그는 20년 전의 자신과 요즘 학생들을 비교하면서 아주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2020년대 대학생들이야말로 단군 이래 최고의 이력과 지적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수많은 지식과 정보에 노출되고, 체험을 통해서 예전 세대가 꿈도 꾸지 못한 것을 몸소 경험한 세대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과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시간이 흐른다. 어제가 세월호 대참사 9주기였다. 참으로 신속하다. 열일곱 열여덟 살 먹은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난 지 9년이 흘러갔다니 실감 나지 않는다. 결코 일어나서는 아니 되는 사건으로 생떼 같은 청춘 250명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자들은 희희낙락하며 절을 찾아다니며 정치 행각을 해대고 있으니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닐 수 없다.참혹한 사건이 벌어진 그 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구들방에 장작불을 넣고 있었다. 촌집으로 들어온 지 3주 남짓 시간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배운 첫 번째 노래가 민중가요 ‘꽃다지’와 동물원의 ‘거리에서’였다. 저녁 어스름 무렵이면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면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하고 시작하는 ‘거리에서’가 시나브로 입안을 맴돌았다. 처연하고 서정적이며 내장(內臟) 깊숙한 곳을 푹, 찔러오는 가사와 음조가 날마다 흔들리던 나의 내면을 후려갈겼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다.유학 나가기 전에 나는 적어도 30곡 정도의 민중가요를 알고 있었다. 쾰른에서 첫 번째 어학 과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책이란 읽을 때마다 달리 다가온다. 스무 살 무렵 읽은 소설이 나이 들어 다시 읽을라치면 전혀 새롭게 읽힌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예외가 아니다. 학부 시절 나는 ‘어린 왕자’와 ‘윤동주 평전’, 시인들의 시집을 끼고 살았다. 그야말로 ‘문청(文靑)’ 흉내를 내고 살았던 게다. 문학적 재능도 강고한 끈기도 없던 나는 시인의 길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러시아 문학 공부 대열에 들어서고 말았다.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았기로 영어판 ‘어린 왕자’를 밑줄 그어가며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전 책방에 ‘어린 왕자’를 주문해 단숨에 읽
3월 8일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의 만화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2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코로나 3년 동안 새로 만들어진 풍속도 가운데 하나가 영화관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영화 관객이 확연히 줄었다. 천만 관객 영화가 드물지 않은 영화판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비싼 입장료다. 조조할인을 받아야 1만1천원이니, 젊은 세대에게는 적잖게 부담스러운 가격이다.이런 형편에 ‘스즈메의 문단속’이 순항하고 있는 게다. 영화는 이른바 ‘로드무비’ 형식을 취하면서 재난 드라마와 사랑 이야기까지 동반
‘명저 읽기와 토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의 몸과 마음은 그대들의 것인가?!” 학생들 얼굴이 뜨악하다.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몸과 마음은 모두 나의 것이란 자명한 사실을 왜 물어보느냐, 그런 눈짓이다. 문제는 이것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과연 우리 몸과 마음이 우리 것인지, 하는 문제가 단순명쾌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자명하지 않기 때문이다.내 몸이 내 소유라면 몸은 언제나 나의 희망과 요구에 따라야 한다. ‘멘사 클럽’에 들어갈 만큼 머리는 명민해야 하고, 걸출한 운동선수의
봄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명저 읽기와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대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발표하게 하고, 운이 좋다면 토론까지 시키는 수업이다. 요즘 학생들은 책과 담을 쌓고 지내기 일쑤다. 살인적인 입시 공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 어린 시절부터 엄마들이 강제한 지긋지긋한 독서, 널려있는 숱한 놀거리. 그것이 학생들에게 책과 거리를 두게 하는 요인이리라.이번 학기에 나는 세 권의 책을 학생들과 읽기로 한다.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2030 축의 전환’, ‘대중의 반역’이 순서에 따른 독서 목록이다. 신입생들이
봄이 오고 있다. 작년보다 월등히 추웠던 겨울이 지난주 금요일 오후를 기점으로 봄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갔다. 목요일 오전 영하 7℃, 금요일 오전 영하 5℃를 끝으로 청도는 앞으로 영하의 아침을 만나기 힘들어질 모양이다. 하지만 겨울의 여파는 곳곳에 남아있다. 작년 이맘때에는 홍매가 졌을 터인데, 올해는 아직도 봉오리 상태로 몸을 닫아걸고 있다. 봄의 첫 번째 전령인 영춘화(迎春化)가 이제야 노란 꽃송이를 선보이기 시작한다.대구 동촌 유원지 전봇대 아래 하얀 냉이꽃이 앙증맞게 피어났다. 도심의 소음과 매연과 인총(人叢)들의 무관심을
실업계 10대 여고생 소희의 자살을 조명한 영화 ‘다음, 소희’를 보면서 절망한다. 고교생 신분으로 콜센터에 현장 실습하러 간 소희가 마주한 현실은 은산철벽(銀山鐵壁) 같은 것이었다. 악의적인 고객들의 악담과 폭언, 희롱과 협박을 끝까지 참으면서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소희. 실적을 초과하는 성과를 내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팀장의 약속은 허언이 되는데, 그것은 학교가 회사와 실습생을 상대로 체결한 이중 계약서가 원인이다.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실업계 고교생들의 자살과 사고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20∼30대 청년들도 마주
오래전 일이다. 서관에서 강당을 거쳐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정한숙 선생이 서 있었다. 그런데 선생의 자세가 이상했다. 오른손을 눈썹 위에 갖다 붙이고 경영대 방향 동쪽 하늘을 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궁금증이 많은 나는 선생께 여쭈었다. “뭘 보십니까?!” “안 보이나?” “글쎄요?” 나도 선생을 따라 같은 자세를 취했으나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뭐, 특별한 건 안 보입니다.” “저기 멀리서 봄이 오고 있어.”‘뭐지?’ 하고 나는 혼잣말했다. 노교수의 눈에는 봄이 오는 것이 보였으나, 젊은 육신의 내게는 아무것도
지난 2월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번째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피고 대한민국의 명백한 불법행위가 인정된다면서 원고에게 3천만 원과 관련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재판부는 한국군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6월 12일 작전 중에 원고 가족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원고의 이모와 남동생, 언니가 현장에서 사망하고, 원고와 오빠
타로 카드로 나를 보니까 거꾸로 매달린 남자 ‘행맨’이 나온다. 인식대상을 거꾸로 보는 인간이 행맨이다. 사람들이 대상을 보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보는 행맨. 어쩌면 그것은 나도 알고 있던 속성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것을 온존·강화해온 것도 틀림없는 나였다.나는 남들처럼 보는 것도 행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싫었다. 나름의 고유하고 독특한 별세계를 구축하고 확장하고 싶었던 때문이다.나를 그렇게 키워온 배경에는 타고난 성정 말고도 집안 분위기와 사회·역사적인 환경이 자리한다.‘국민교육헌장’을 강제로 외워야 했던 어린
‘영국 방송협회(BBC)’ 동경 특파원 루퍼트 윙필드-헤이즈 기자가 일본 생활 10년을 돌아보며 쓴 기사가 흥미롭다. 이 기사의 일본어 번역을 읽은 일본인이 100만을 넘고, 공감을 표시한 사람도 1만5천명이 넘었다 한다. 루퍼트 기자가 들여다본 일본과 일본인의 명암에 관한 내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1980년대 일본인은 미국인보다 잘 살았지만, 지금은 영국인보다 넉넉하지 못하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세계 3위 경제 대국이고, 기대수명도 가장 길며, 범죄도 적고 정치적인 갈등 역시 거의 없는 나라다. 그런 일본이 장기 침체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의 끝에 독자에게 다섯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것은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로 나뉜다. 이것은 하나의 기사를 두고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예를 들어보자. 2023년 대학입시에서 정시 지원자가 하나도 없는 학과가 26개에 이르렀는데, 이들 학과의 공통점은 지방대라는 것이다.지방대 위기가 날로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해법은 단순·명료하다. 지방대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교육부가 가지고 있던 대학재정 지원 권한을 2025년까지 모두 지방자치단
연초에 엇갈리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발표한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에서 한국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주간지에 따르면, 한국은 1960년대 이후 꾸준히 성장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 가운데 하나가 됐고, 세계 최대 규모의 저축량과 외국인 투자액을 기록한 국가다.‘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해마다 세계 85개국 1만7천명을 대상으로 정치, 경제, 군사력을 포함한 국가 영향력을 설문 조사해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순위에 있는 국가를 보면, 미국
길은 추상과 구체의 양면성을 가진 단어다. 우리가 걷거나 교통편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나 있는 가시적인 물상(物像)이 길이다. 인도나 보도, 자전거 전용도로나 국도나 고속국도 혹은 철도를 본보기로 들 수 있다. 물과 바다, 하늘에도 길은 있다. 일컬어 수로와 해로 그리고 항로라 한다. 둘 다 길인데 도(道)와 로(路)로 나누어 사용하는 데에는 분명 무슨 까닭이 있을 터.“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기막힌 명제를 남긴 공자에게 도는 필생의 목표였다.노자의 명저 ‘도덕경’에는 도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학자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했고,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알고 싶은 욕망, 지적 호기심(好奇心)이다. 한국동란이 한창이던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는 네팔의 산악인 텐징 노르가이의 도움을 받아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다. 그들보다 30년 앞서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했다가 정상 수백 m 앞에서 실종된 조지 멀로리(1886-1924)는 기막힌 명언을 남긴 사람이다.“산이 거기 있으니까.”에베레스트에 오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
늦게 시작한 겨울이 조금씩 겨울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겨울이 겨울답지 아니하여 온화하면 이듬해 농사와 어로(漁撈)에 애로가 생기기 마련이다. 차고 넘치는 벌레들의 향연과 은성(殷盛)한 축제도 그렇고 해양 생태계 역시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35세 청년 공자의 명언 ‘군군 신신 부부 자자’가 떠오른다. 제(齊) 경공(景公)이 정사(政事)에 관해 물었을 때 당대 최고 천재 중니(仲尼)의 답변이 그것이었다.일기 예보에 관한 일간지들의 협박성 보도를 보자. “일요일 ‘최강한파’ 닥친다…아침 체감기온 영하 21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