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다.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 공동체에서 발생한 폭력은 일반 사회에서 벌어진 폭력과 다르기는 하다. 가장 중요한 가닥은 아마도 가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가 많으므로,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까닭이 있겠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해도 피의자가 미성년인 경우에는 특별하게 다룬다. 학교에 교육이라는 명제가 있다지만, 사회에도 교정과 회복이라는 까닭이 있다. 학교폭력이라 하여 과도하게 다르게 바라보고 특별하게 다루어야 할 까닭이 그리 분명하지 않다.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공식적인 수사, 기소와 재판이
일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갓 스무살 축구선수들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나라 안 소식은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그들이 보내오는 소식에 가슴이 다 시원하다. 어른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아이들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국내뉴스로 국격이 내려가는데 해외뉴스가 나라체면을 붙들고 있다. 정치와 경제와 외교와 국방에 날마다 낙제점수가 쌓여가는데 스포츠 한 방에 백점 기분이 되어 하루가 즐겁다.이겨놓고도 태도가 놀랍다.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고 모두가 서로를 칭찬할 뿐이다. 천금같은 골을 넣고도 잘 올려준 코너킥
경제가 어렵고 외교가 복잡하다. 안보가 위태롭고 사회도 불안하다. 온 관심과 신경이 대통령실과 국회에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도외시되는 가닥이 있다. 그런 중에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가 ‘교육’이다. 생각을 놓고 있으면 퇴보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끊임없이 고심하고 지혜를 모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교육이다. 겉으로 중요해 보이는 사회적 관심분야들이 즐비하지만,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가닥이 교육이다.미국교육의 개혁을 이끌었던 다이앤래비치(Diane Ravitch), 위대한 미국교육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해 새
지역마다 축제가 있다. 하필 코로나19 탓에 몇 년 동안 숨을 죽였던 축제의 기운이 나라 안에 넘실거린다. 적지 않은 재원을 써가며 진행하는 축제는 무엇인가 거두어야 한다. 지역은 축제를 왜 하는가.포항은 4년 만에 포항국제불빛축제를 쏘아 올린다. 2004년에 자그마하게 시작했던 행사가 오늘만큼 성장한 일은 수많은 이들의 정성이 모아진 결과다.슬로건 “Light on 포항, 밤하늘을 비추다’에 맞추어 축제를 펼쳐 올린다. 다른 곳은 몰라도, 포항에는 이 축제에 분명한 까닭을 싣는다. 알려지기로 하룻저녁 불꽃놀이가 초점이라지만, 포항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만 생각해도 신비로운 한 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행복하기 위하여 산다’는 쉬운 답에도 개운치 않은 것은 인간에게 행복은 어떻게 찾아오는지 누구에게도 그리 명쾌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가장 위험한 태도가 유행따라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모든 유행은 틀려먹었다’고 하였다. 남들 따라 사는 일이 처음에는 제법 그럴듯해 보여도 나만의 무엇을 좀처럼 가지지 못하게 함으로 틀려먹었다는 게 아닌가. 부러운
정부가 3대 개혁을 내걸었다. 노동, 연금, 교육 분야를 혁명적으로 바꾸겠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지 세간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된다.마침, 교육부장관이 교육개혁을 위한 3대정책을 제시하고 연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하였다. 세 가닥 가운데 ‘대학개혁’이 솔깃하지만, 대학교육의 ‘내용’을 바꾸기 위한 고민과 철학이 담겼다기보다 대학교육지원을 위한 ‘돈’관리체계에 집중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대학교육과 관련하여 해묵은 과제들이 많지만 대학입시제도를 한번 생각해보자.수능,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은 그 이름으로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의 발전이 눈부시다. 정보를 모으고 가공하여 새로운 예측자료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향후 5년 안에 전세계 일자리 23%가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 한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많을 것도 사실이지만, 새롭게 만들어질 일거리도 무시할 수는 없다. 많은 일자리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지, 없어진다고만 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2차 세계대전을 실질적으로 마감하면서 연합국들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이다. 미국, 영국, 소련 등 48개국이 서명하고 1952년 4월 28일에 공표되었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대한민국과 북한은 어느 쪽이 한반도를 대표하는지 불분명하여 초대받지도 못하였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제2조 이 한 줄에 ‘독도’가 들어있지 않다 하여, 일본은 아직껏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이다. 독도가 일본 땅으로 ‘남은’ 증거라는
세상이 변했다. 물리적 한계와 함께 지역이 고립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극동의 변방이었으며, 포항은 나라 안에서도 시골구석이었다. 상대적 박탈감도 한 몫 거들어 나라와 지역은 세계를 향하는 글로벌을 외쳤다. 수출은 여전히 국가경제의 주축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노력은 멈출 수 없다. 인터넷과 온라인은 초연결성을 기반으로 지구를 통째로 묶어버렸다. 큰 나라들만 판을 치던 세계질서는 어느새 급변하여 대한민국을 날로 인정하는 모양이 아닌가. 중심과 변방이 따로 없으며 수도와 지역의 구분은 사라져간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만 알아주던
인류 소통의 역사에 혁명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오늘 경험하는 정보의 홍수는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컴퓨터의 보급이 일으킨 소통의 혁명이다. 세계사는 그보다 앞선 ‘구텐베르크(Gutenberg)의 인쇄술’을 소통혁명의 원조로 꼽는다. 교황으로 대표되는 교회나 왕실이 주도하는 상류사회에나 접근이 가능했던 성경을 비롯한 문건들이 밀물처럼 활자술로 인쇄되어 나오기 시작했으니, 가히 시민들을 위한 소통의 혁명이 시작된 셈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처음 인쇄된 1455년을 소통혁명의 기원으로 삼는 까닭이다. 보통사람들에게 비로소 눈이 열리고
나라가 좁다. 우리나라 면적은 세계 108위에 인구 숫자로는 세계 29위라서 인구밀도가 세상에서 네 번째로 높다. 좁은 땅에 복닥거리느라 늘 경쟁과 다툼이 화두다. 모든 게 좁은 문이고 일상이 긴장과 투쟁의 연속이다. 웬만한 시험은 몇십대 일 경쟁이 다반사가 아닌가. 기회가 없지는 않지만 늘 제한적이고 바늘구멍이다. 다음세대에게 우리는 어떤 내일과 비전을 가르칠 수 있을까. 사회는 늘 복잡하고 치열하며 힘든 싸움만 부추기는데, 청년들은 무엇에 희망을 걸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답답하지 않을까.호연지기(浩然之氣). 하늘과 땅 사이에
나라가 비어간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모든 정책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2017년에 5천136만명이었던 한국인구는 2047년에 4천771만명, 2067년에 3천689만명, 2117년에는 1천51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 한다. 백 년 후에는 나라인구의 70%가 사라진다는 셈이다.지역소멸이 문제라지만, 이쯤 되면 ‘국가소멸위기’라 불러야 하는게 아닐까. 인구가 국가성장동력의 한 축이라면 대한민국은 특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 10위를 넘나든다는 국위와 국격도 인구가 실제로 급격히 줄어든다면 그리 오래가지 못할 터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며 우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에 열광하였다. 폭력에 대한 징악과 보복을 탓할 수는 없다. 감정적으로 시원하고 최후 승리를 거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 방법으로 보복과 복수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학교, 교육청과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학교폭력이 사회적 담론의 이슈가 되는 경로가 있다. 미디어가 전하는 뉴스나 드라마를 통하여 학교폭력의 실상이 전달되면, 대중적 분노를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일시적으로 생성된 피해의식과 응보감정을 정책마련의 근거로 삼는다
학교폭력은 무섭다. 폭력은 범죄라는 상식이 있지만, 폭력이 학교에서 벌어지면 이를 어찌해야 하는지 누구에게나 어렵다. 피해당사자 본인은 물론 가족과 학교, 교육청과 정부 등 모두 이를 대처하는 방식에 혼돈스럽고 당혹해한다. 사건이 붉어지면 언론이 뜨겁게 보도하고 정치가 담론으로 삼기도 하지만, 오래 가지않아 불씨는 시들고 기억에서 다시 멀어진다. 그런가하면, 종교를 허울삼아 못된 짓들이 발생해도 우리는 마찬가지였다. 교회나 사찰 등지에서 성폭력이 간간이 발생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대처방식은 늘 같은 모습이었다. 정치와 언론이
‘벗꽃피는 순서로 죽는다’고 야단이다. 대학들, 특히 지방대학들이 남쪽으로부터 죽어나갈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줄어간단다. 그건 벌써 오래전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학은 게을렀을 뿐이다.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정부의 재정지원에만 기대며 살아온 게 수십 년이 아닌가. 대학을 잘못 운영하면 재정지원을 중단하는 게 나라의 규정이었으니, 사고만 치지 않으면 학교는 그럭저럭 굴러갈 판이었다. 온 나라가 혁신과 개혁을 외쳐도 대학은 그냥 그렇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힘들다는 거다. 학생숫
최근 방영됐던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100’에 등장한 출연자들은 출신, 성별, 국적, 직업에 상관없이 똑같은 조건에서 겨뤘다. 같은 무게 돌덩이를 들고 버텼으며 같은 밧줄에 매달려 견디었다.누가 봐도 차별없는 동일한 룰을 적용받으며 기량을 다투었다. 완전한 평등을 보장받으며 기량껏 겨루어 결과를 받아들였다. 진 사람은 불평없이 탈락했으며 이긴 사람은 힘차게 다음 승부에 도전했다.평등했으니 괜찮은 것일까.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똑같은 조건만 주어지면 세상은 좋아지는 것일까. 투명하고 평등했으므로 결과는 이제 공정했을까. 몸으로 겨루
배우려고 학교에 간다. 다양한 학습과 훈련을 통해 습득하고 경험하여 바람직한 인성으로 자라기 위해 학교교육을 받는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는 끊임없는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부모와 교사, 친구와 이웃이 성장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다. 배우고 자라는 길에서 주변으로부터 받는 신호와 목소리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긍정적인 부추김과 부정적인 두려움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들게 된다. 한때 부모나 교사가 무서워 억지로 구겨넣듯 배웠던 과목들이 있다. 느꼈던 공포는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무엇을 배웠는지는 생각도 하기 싫지 않은가. 학교폭력
폭풍전야. 대학교육은 폭풍을 앞에 두고도 변하지 않는다. 타성과 관성에 젖어 구태와 구습을 반복하면서 개혁과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 급격한 인구감소는 대학정원을 채우기에도 힘들 시간을 예고했지만, 대학들은 교육부의 지원에 기댄 채 아무런 변화를 불러내지 않는다. 유초중등 공교육이 기른 학생들을 받아 책임있는 고등교육을 이어가야 하는데, 대학은 정원의 위기와 재정의 어려움 앞에 내실있는 교육을 일으키지 못한다. 교육부장관이 제안하는 대학교육 개선방안에도 ‘교육’보다는 ‘재정’에 높은 우선순위가 놓여 있다. 대학설립과 운영을 위해 정해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에 학교폭력이 등장한다. 교육현장에서 사라져야 할 어두운 그림자가 인기드라마의 소재가 됐다. 만성적인 사회문제를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긍정할 수도 있겠지만, 부끄러운 실태는 숨길 바 없이 부정적이다. 미디어와 언론은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라 학교폭력의 현상에 관심을 둔다. 재발방지를 위하여 가해자처벌이 주목받는다.상대적으로 피해학생이나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나 어려움은 소외되기 일쑤다. 상상도 못했던 일을 당하여 일상이 흔들리고 마음이 위축되며 삶의 지평이 한꺼번에 무거워진다. 가족의 평화
소는 누가 키우나. 농가에 소가 소중했다, 나라에 소는 무엇일까. 집안에 소가 자식들이듯이 나라의 소는 ‘다음세대’가 아닌가. 정치권은 표나 얻으려 감언이설을 늘어놓을뿐 다음세대를 진정으로 돌아보지 않는다. 마음을 모아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걱정하고 그들이 만날 내일을 잘 준비해야 하겠거늘, 나라의 어른들은 오늘 싸움박질에 여념이 없다. 무엇을 가르쳐 나라와 다음세대의 미래를 탄탄하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백년대계(百年大計)라면서 누구도 교육을 말하지 않는다. 험한 세상을 건너가기 위해 반드시 길러야 하는 소양은 무엇인가.상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