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을 하는 나로서는 늘 고민거리가 한국 현대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나타날’ 수 있었으냐 하는 것이다.요즘은 정치라는 것에 대한 관심도 꽤나 시들해져서 시간을 내서 평소 관심을 갖던 접붙이기, 접목이라는 것에 대해 더 찾아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접붙이기에 한국 현대의 형성 과정의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한국 근대를 일본이 가져다주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은 주로 이식(transplantation)과 모방(im
세월이 흘러갈수록 대전에 오가는 횟수가 빈번해진다.어머니, 아버지 만나 뵙고 점심이나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해보자는 것이다. 1, 2주일에 한 번 이렇게라도 하고 나면 그 사이에 장남 된 마음이 한결 안정되는 느낌이다.그런데 이렇게 자주 대전에 가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사실, 대전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 마음은 벌써 고등학교 동창생 병수나 또 승진 같은 친구들한테 가 있기 일쑤다.-논산에서 서대전역까지 얼마나 걸려? 오늘 한 번 대전 나들이 할 수 있어?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에 나는 얼마 전에 논산으로 이사 간 승진을 호출한다.
어째서 선인장은 仙人掌, 신선의 손바닥이라 했나?멀리 라스베거스 가는 애리조나 사막 드넓은 황무지에서 그대를 만났었지. 고국에 돌아와 나는 선인장 그대를 사랑한다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다짐했노라. 사랑은 찾는 데서 싹트고 물을 주는 데서 자라나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애절해질 수밖에 없다.안성 가톨릭 신자들 숨어 살던 배티 성지 가던 길에 아름다운 선인장 하나를 사고, 또 대전 중앙시장 옆 대전천 천변 꽃집에서 선인장 하나를 또 샀지. 하나는 산호 선인장, 다른 하나는 철갑을 두른 듯 용맹하게 생긴 선인장이었다.두 선인장
광복절 광화문 집회 이후 서울은 온통 ‘코로나밭’이 된 것 같다. 마침 한동안 하루 확진자 수가 많이 줄어들어 마음도 많이 풀린 참이었다. 은평구에 확진자가 심심찮게 나오는 걸 알면서도 몇 사람이 모여 연서시장에서 저녁 먹고 무지개 호프라는 곳에서 2차까지 하기도 했다. 아무리 코로나 시절이라고, 어떻게 좋은 사람들도 안 만나고 사나?학교도 그런 생각이었다. 방학마다 같은 과 교수들끼리 가는 학사협의회라고, 1박 2일도 가고, 한나절도 가는 행사가 있었다. 학과 일 의논도 하고 친목도 다지자는 것이다. 한동안 코로나가 잠잠했으므로
아침에 한번씩 꼭 들르는 곳이 하나 생겼다. 이름하여 아인슈페너를 파는 커피 전문점. 그렇게도 아이스커피를 즐겼건만 몸이 다 식으니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만 마시게 되었는데. 이 뜨거운 커피 위에 흰 크림 듬뿍 얹은 아인슈페너 파는 곳을 알게 된 것이다.그런데 이 흰빛의 크림 맛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것이랄까. 점원께 물어보니 이곳만의 수제, 직접 만든 것이란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차가운 크림 온도는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한 냉장에서 온 것일 터. 뜨거운 커피 위에 차가운 크림의 날카로운 대조미가 입안의 감촉을 생생하게 만
1984년 여름 끝에 춘천 하고도 중도라는 섬으로 2학기 개강 앞두고 엠티를 갔다. 같은 과 1학년 학생들끼리 친목을 다져 보자고 선배도, 지도교수도 없는 모험을 감행한 것. 저녁에서 밤까지 재밌게들 놀았고 밤 깊어지자 좁은 농가 주택 둘에 각기 나누어 쪽잠들을 청했다. 그런데, 새벽 여섯 시도 안 된 참에 벼락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 밖에 나가보니 우리 한편이 자던 집 옆 마당이 물에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일은 그때부터. 밤새 비가 너무 내려 소양감댐 수문을 열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북한강 한가운데 있는 이 섬이 물에 잠기게
지지지난 정부 시대에 모두들 드디어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들 했다. 어느 시대였던가는 숫자를 따져봐 주기 바란다. 그러나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들 민주주의다, 독재다 말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는 얼마나, 어떻게, 어느 정도나 훌륭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대학 고학년 시절에 마르크시즘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변증법’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부르주아를 위한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다. 또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에 대
한 두어 주일 전부터 병이 또 도져 버렸다. 무슨 병이냐고? 물으신다면, 일명 검색병이라 해야겠다. 밤 늦게까지, 아니 새벽 가깝도록 휴대폰 속을 헤맨다. 다음, 네이버로는 성이 안 차 구글도 들어가고 줌도 들어간다. 목마름병, 타는 듯한 갈증, 갑갑증 같은 증세가, 소금물은 마셔봤자 더 목이 마르듯 숨통을 죄어온다. 아침에 눈뜨면 도로 또 검색이다. 왜 검색이냐? 하면 답답해서라고밖에 뭐라 말할 수도 없다. 아침부터 가슴에 뭐가 얹힌 듯 또 뭔가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사실,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는 유튜브를 들었다. 보았다기보다
드디어 트럼프가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 앞에 섰다고 한다. 마스크 쓰는 짓을 왜 하느냐는 듯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확 바뀌어 마스크 쓰는 게 애국이라고 했다나? 매일 코로나 감염자가 6,7만을 헤아리니 끔찍한 미국의 현실이건만 정작 트럼프를 움직인 것은 이 엄청난 감염 급증보다 지지율의 추락과 대통령 선거 패배 위기감일 것이다.일본에서도 코로나 감염자가 하루 6백 명을 넘어서고 있다. 오늘도 그렇고 이렇게 된지 벌써 며칠 되었다. 그동안 아베 마스크에, 재난 지원금 교부 문제에 무능력과 부패의 극치를 보이던 아베가 이번에는 밑도 끝도
김유정 문학촌에 터줏대감이신 전상국 작가를 만나러 간 적 있다. 그때 전상국 선생의 작품을 ‘문학의 오늘’에 싣고자 할 때였다. 참 섬세해 보이시는 전상국 선생께서 당신의 작가 수업 과정을 말씀하시는 중에 조선작이라는 작가가 당신 학창시절인가 사는 데서 만났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비로소 조선작을 문학사의 작가로서 인식하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이 작가의 대표작은 아직은 설익은 내 생각일 뿐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영자의 전성시대’일 것이라 생각한다. 1973년에 ‘세대’ 잡지에 실린 것을 1975년에 김호선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서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이다. 일본은 하루 확진자가 200명을 훌쩍 넘어가는데다 큐슈에 대홍수가 나 난리 중이다. 한국은 하루 확진자 50명을 오르내리니 다행이라면 천만 다행이다. 미국에서 통계는 존스 홉킨스 대학이 그대로 정확하게 내는 모양인데, 이 글을 쓰는 오늘로 무려 3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현재 전세계 코로나19 확산을 ‘주도하는’ 나라는 미국, 브라질, 인도 순으로 집계된다. 이들 나라는 3위 인도는 70만명을 넘어섰고, 2위를 달리는 브라질은 무려 171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통계는 한 가지 의문점, 코로
며칠 전 작가 조해일이 세상을 떠났다. 뉴스에는 났다지만 돌아볼 사람 별로 없는 조용한 타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조해일의 대표작 가운데 ‘겨울여자’라는 게 있어,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쯤 일이었을 텐데, 거기 나오는 음악 ‘노예들의 합창’ 때문에 두고두고 인상에 남았다.세대를 따져 보면 작가의 위치가 쉽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조해일은 1941년생, 그러니까 필자가 이른바 1940년 전후 출생자 그룹으로 분류하는 작가군의 한 사람이다. 이 그룹에 이청준, 이문구, 현기영, 김원일, 조정
국뽕, 국뽕 하기에 무슨 말인가 했다. 신조어 같은데, 뭘까? ‘나라 국(國)’ 자에 ‘뽕’은 필로폰의 일본식 발음 ‘히로뽕’의 ‘뽕’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니까 나라 사랑이 지나쳐 ‘뽕’을 맞은 것 같은 상태에 다다른 것을 가리켜 ‘국뽕’이라 하는가 보다.요즘 유튜브에 이른바 ‘국뽕’ 방송들이 넘쳐나는 추세다. 일본에 ‘혐한’이라 해서 ‘국뽕’의 왜곡된 형태가 판을 치고 있는데, 한국에도 반일, 염일 감정에 호소하는 방송이 한둘 아니다. 코로나19 유행에 ‘K방역’으로 성공을 거두다 보니 웬만한 선진국도 ‘우리’만 못하다는 인식도
코로나19 ‘재유행’은 학교 캠퍼스를 더욱 썰렁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어제는 그래도 ‘교수 발표회’라는 것을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 치른 날이었다.대학교에는 학기마다 늘 거쳐가는 행사가 있게 마련이다. 3월이 되면 내가 몸담은 곳에서는 첫째 주나 둘째 주에 학과 전체 교수회의를 한다. 비슷한 시기에 학부 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은 학과 설명을 겸한 신입생, 진입생 환영회, 개강 모임 등을 연이어 갖게 되며, 중간고사 끝날 때쯤 답사 여행을 가게 된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다들 지친 기색 역력하지만 한두 주만 기다리면 시험
사람은 역시 여러 유형의 기질을 타고 나는 것 같다. 프로이트가 말하기를, 장미꽃 만발한 화원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저 꽃도 곧 시들겠구나 하고 우울해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낙천가와 우울증 성향의 차이를 말해 주는 것이겠지만, 같은 현상을 대하고도 전혀 다른 해석에 기우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도 많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 부류의 사람들은 원인을 여러가지로 따져 이런 원인, 저런 원인, 하고 양적인 비율을 할당하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그 가운데 오로지 하나의 근본적인
윤미향 사태를 둘러싼 논란은 세상이 겉보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또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가진 것도 시간이 오래 가며 상하지 않기는 참 어렵다는 것도 다시 한 번 깨우친다. 비단 윤미향이나 정의연대만의 일이 아니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 모두가 되짚어 볼 일이요, 사람살이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그런데,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과 정의연대 문제를 제시하며 말한 것 가운데 인상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증오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서는, 일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우리의 아이
그냥 근처에나 돌아다니려던 것이 나도 모르게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습관은 무섭다. 하기는 뭘 쓰려 해도, 읽으려 해도 전철 타고 철커덩거리며 앉아 가는 맛이 나쁘지 않다.그런데, 참, 마스크가 없다. 없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약국으로 향한다. 오늘은 내 주민등록번호 끝자리 날은 아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급히 살 수도 있다고 했다.과연, 약국에서는 컴퓨터인가에 무슨 기록을 하고 마스크를 선뜻 내어준다. 사천오백 원, 세 장짜리 한 묶음이다. 다행이면서도 약간은 서운한 느낌, 왜냐하면 한 장, 한 장 따로 포장한 마스크 여는 맛
코로나19가 대유행을 하면서 ‘U 선생’들 가운데 한일 관계를 말하는 채널이 부쩍 늘었다.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방송들이다. 나라 사랑 열정에 불을 붙이는 데 일본 비판만큼 쉬운 방법이 없다. 누구라도 쉽게 ‘구독’과 ‘좋아요’에 손이 가 닿을 테다.덕분에 요즘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 이 U선생들이 마치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듯 한일 간의 코로나19 상황을 비교해 주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렇게 자주 일본 사정을 접하다보니 아베라는 일본 아저씨를 자꾸 만나게 됐고, 이윽고는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버렸다. 참
코로나19 ‘이후’는 우리로 하여금 삶에 대한, 정치와 경제에 대한 감각과 정서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세계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나는 한 마디로 말해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포스트콜로니얼’이란 ‘탈식민’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1945년 8·15 이후 겪어와야 했던 역사적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우리말을 회복해야 했고, 문화
5월 초까지 ‘비대면’수업을 하자던 방침은 이번 학기 내내 비대면을 유지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나라들 상황 보면서 모두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5월 첫 날은 메이데이다. 그래도 학교에 나가 뭔가 일을 해보려 한다. 점심 지나 학교 캠퍼스에 당도하니, 녹색 5513번 시내버스 몇 대가 외부 차량 출입을 막고 있다. 5월 5일까지는 외부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생활방역으로 옮겨가겠다 하던가?예년 같으면 3월부터 학생들로 붐볐어야 할 캠퍼스다. 그러나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