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가까이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을 찾는다. 조상들이 만든 섬세한 물건을 볼 때마다 그 놀라운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 방문객 역시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전시 작품을 뚫어지도록 쳐다보는 것도 그곳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사람마다 관심 분야가 다르듯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을 감상하는 시선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성덕대왕 신종 앞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안압지 출토 유물관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 전시된 모든 물건들이 백두산이나 독도처럼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그 중에서도 난 금관총에서 발견된 `금제대관` 앞에서 오래 머무르게 된다. 금관을 비롯하여 금띠, 금반지, 금팔찌, 금목걸이의 모습이 얼마나 정교
고1 아들이 학원에 새로 등록했다. 아무래도 영어과목이 좀 부진하다 싶어 보충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라 하고 보니 마치는 시간이 늦어 기다려주지 못했는데 하루는 작정하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새벽 1시를 넘겨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마칠 시간이 지났는데` 아들에게 전화해도 받질 않고, 이 시간에 학원으로 전화하기도 그렇고 졸리지만 애쓰며 참고 기다렸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이제 마쳤다며 들어온다.“다음부턴 좀 빨리 다녀라”한마디 하고 잠에 들었지만 편칠 않아 잠에 잘 들 수가 없었다. 다음날 하루가 다 멍멍하고 잠이 쏟아지고 무기력한 하루였는데 녀석은 어떨까. 이건 기형도의 `엄마걱정`을 바꾸어서 자식걱정이다.“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할리우드 영화중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제법 있다. 그중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하이스쿨 뮤지컬`이 있지만 대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피치 퍼펙트`이다. 이 영화는 아카펠라 그룹들끼리의 경연을 중심으로 서로의 대결과 사랑을 다루는 2012년에 나온 코메디 멜로영화이다. 물론 우리나라엔 올해 개봉되었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독특한 것은 리더에 대해 생각할 점들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최근 학교에서 `피치 퍼펙트`를 재료로 토론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영화를 본 뒤 다음 제목에 대해 글을 쓰면서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1. 영화를 보면서 리더가 갖추어야할 덕목들을 써보아라`, `2. 여성 아카펠라 그룹 벨라스의 리더 오브리가 가진 리더로서 장점과 단점을 적으라
선풍기가 멈추어 섰다. 바람이 뚝 그치고 그 특유의 날개소리도 자취를 감췄다. 수명을 다한 것이다. 한 20년쯤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오래전부터이지만 어제 저녁에 소음이 심하고 고개를 자꾸 숙이는 게 이거하나 바꿔야겠다며 낮에 새것을 하나 장만해뒀는데 바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수명을 다했다. `나의 목숨도 저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안쓰럽고 쓸쓸했지만 감정도 없고 생각도 없는 저 기계를 사랑할 일 없으니 그저 내다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마트에서 새 선풍기를 사면서 이미 구선풍기용 폐기물 딱지를 사두었던 것인데 곧바로 쓸 줄이야 생각하진 못했다. 최초의 선풍기는 부채를 닮았다. 1600년대 천장에 매달아 놓은 추의 무게를 이용하여 한 장으로 된 커다란 부채를 시계추 모양으로 흔들어
폭염이 떠날 줄 모르고 매미는 지칠 줄 모른다. 그러나 처서가 지났기에 한 밤 중 풀벌레 소리 듣는 호젓함 그 누가 앗아갈 수 없는 즐거움이다. 몇 년 전 백담사에 들러 여유로움을 누린 적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흐르는 개울에 쌓인 돌탑, 물장난 소리와 어머니와 함께 돌을 쌓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남았다. 경내에 들어서자 처마의 가지런한 모습처럼 댓돌에 놓인 하얀 고무신의 행렬이 인상적이었다. `묵언`이라는 글씨를 본 순간 한 낮의 열기보다 더 한 치열함으로 살아가는 침묵의 수행자들이 있다는 전율을 잊을 수 없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는 못 본 그 꽃” 고은 시인의 짧은 시를 읽으면서 내 중심의 활동에 빠져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이키게 했다. 컬린 터너는
`보름달 같은 수박 한 통/ 혼자서는 먹을 수 없지/ 다 함께 먹어야지 나눠서 먹어야지` 안도현 시인의 `수박 한 통`이라는 시다. 안 시인의 시에는 의외로 수박에 대한 표현이 많이 나온다. 아버지가 수박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리라. `축구공`이란 시에 보면 `아버지는 수박을 키웠고 나는 축구공을 뻥뻥 찼다 수박을 뻥뻥 찼다` 란 구절이 나온다. 아예 `수박`이란 제목을 단 동시도 있고 `중요한 곳`이란 시에는 `마음에 수박씨 박히듯`이란 아름다운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붉은 달`이란 시에서는 그 붉은 속을 빗대어 수박이 붉은 달로 불리기도 한다. 수박이 온통 시인의 삶에 오롯이 들어와서 넝쿨을 뻗어 이곳 저곳 열매를 맺어놓고 있다. 여름의 대표적인 과일 수박은 원산지가 남아프리카로 유럽을 거쳐
사람은 기존의 것을 뛰어 넘어 나아가려는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인간의 모습을 철학적 인간학에서는 자기 초월이라고 한다. 자기 초월은 수평적 초월과 수직적 초월이 있다. 수평적 초월은 단지 앞으로 미래로 나가는 시간과 공간의 지평으로 역사적 시선이다. 수직적 초월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무한자에게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가는 수평적 차원에서 인간은 자신이 만든 디지털의 시대를 살면서 미래를 다시 쓰고 있다. 에릭 슈미터와 제러드 코언은 `디지털 권능화(digital empowerment)`, 인류가 만들어 놓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로 무형의 지속적인 변화 상태를 경고하고 있다. 인터넷은 선과 악의 새로운 근원이 될 수도 있고 그것에 의한 영향력을 전 세
여름은 젊음의 계절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한창 혈기 왕성한 청년기요, 인생시계로 보면 이른 아침에 해당되는 시작의 시기다. 작열하는 태양의 에너지가 생명과 번식의 에너지로 바뀌는 계절이요, 대지의 뭇생명이 가장 왕성하고 풍요롭게 자라는 시기이다. 이 계절의 역사는 모두 밤에 이뤄진다. 한여름밤. 태양이 지고 어둠이 깔리면 신부의 옷자락처럼 육감적이고 신비로운 기운이 대기를 감싼다.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아주 기이하고 신비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셰익스피어는 희곡을 썼다. 그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의 배경이다. 마이클 호프만 감독의 이것을 바탕으로 더욱 몽환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 전에 멘델스존은 명랑한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고 친숙한 결혼행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독자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출판사에 `?` 만 쓴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상징적인 의미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모양을 한 기호를 출판사에 보낸 뜻은 아마 노골적으로 `내 작품 어때`라는 말을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출판사 관계자의 답장은 어땠을까? 당연히 기지를 발휘해서 `!`로 된 답장을 보냈다. `놀라서 뛸 정도로 반응이 좋다`는 뜻으로 보낸 편지였다. 그런데 우리는 `?`가 어떻게 `물음` 혹은 `의문`의 뜻을 가지게 되었으며 언제부터 그렇게 썼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한 번도 그런 물음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음표에 대해 물음을 가지지 못한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인터넷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다. 여름이 되니 점심 한 끼 해결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운 날씨에 식당을 찾는 것도 불편하고, 뭘 먹을까 음식을 선택하는 일도 작은 일거리라는 것이다. 점심뿐이겠는가 가정이든 직장이든 한 끼 식사를 준비하고 해결하는 일은 어찌 보면 즐겁고 행복하고 신성하기까지 한 일인데 바쁜 생활 핑계로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 말을 듣고 집으로 향하면서 고향에 들렀을 때를 떠올렸다. 지팡이를 잡고 움직여야 하는 부모님을 모시고 이른 점심을 먹으려 식당을 찾았더니 다른 식당으로 가라는 것이다. 예약이 꽉 찼기에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간 식당에서 난 낭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읽기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쓰기 능력`이다. 제 힘으로 글을 써보아야만 책이나 교과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글을 쓴 사람의 기분이나 심정을 상상한다거나 글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추측하는 것도 직접 글을 써본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글을 써보지 않으면 글을 읽을 수도 없다. 독해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지식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사고도 불가능하다. 단순히 과목으로서의 국어 실력이 아니라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수학도 사회도 물리도 그리고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능력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이해하는 힘도 모두 모국어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글 쓰는 습관을 익히고 그 시간을 좋아하게 되면 학업에
`악마같이 검고, 지옥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는 글귀로 프랑스 작가 타레랑은 커피를 표현했다. 믿거나 말거나 밥은 라면을 먹더라도 커피는 커피전문점에서 마신다는 한국에서 커피는 타레랑의 악마와 지옥, 천사와 황홀한 키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오후의 나른함을 날리는 마약`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우리나라의 커피는 1890년 전후 선교활동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공문서에 의하면 고종황제가 을미사변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피해있을 때 약 1년간 공사관에서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고,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커피 맛을 잊지 못해 계속 찾아 마셔서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즐긴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그 때는 커피가 `가비`라고 불렸다. 커피보다 가비가 더
진로상담을 `세 번의 인터뷰와 자욱한 먼지`라고 진로상담의 시조인 파슨즈(Parsons)가 말했다. 그만큼 상담결과를 얻기가 힘든다는 것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세 번의 인터뷰는 무엇을 뜻하느냐하면 먼저 자기에 대한 이해 정도를 알아보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직업세계에 대한 이해 정도이고 세 번째는 의사결정능력에 대한 인터뷰를 말한다. 그런데 `자욱한 먼지`라니 그것은 무슨 말일까. 진로탐색을 위해 검사도 해보고 정보도 찾아보고 고민도 해보고 상담가와 함께 노력을 하긴 했는데 명쾌한 결론은 나지 않고 아직도 계속 탐색해야하는 그런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작년 말 작은 아들이 중3이었다. 녀석의 친구들은 학원이나 자기주도학습 캠프를 신청해서 학업에 열을 올릴 때 그야말로 집안에 틀어박혀
올해는 3학년 친구들과 학급을 꾸렸다. 딱, 열 살. 아직 2학년 티를 벗지 못한 귀여운 아이들이다. 그간 고학년만 도맡아오다 오래간만에 어린 친구들을 만났더니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를테면, 교과서 23쪽을 펴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여기저기서 똘똘한 눈으로 묻는다. “선생님, 교과서 몇 쪽 펴요?” 신청서 제출하라고 얘기하는 도중에 “선생님, 신청서 언제 내요?”라고 코밑까지 다가와 묻는데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그렇다고 무조건 어리게만 봐서는 안 된다. 지난 3월부터 써온 글기지개를 봤더니 고학년보다 오히려 관찰이 날카롭고 생각이 깊다. 그중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 밤에 아빠가 나에게 재판을 내려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아빠의 이야
새해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새해를 맞아 세웠던 갖가지 계획이나 다짐들도 연례행사처럼 하나둘씩 없던 일이 되어가기 십상인 시기이다. 새로운 결심이 무너지거나 흔들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계획에 비해 의지가 너무 약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에 비해 계획이 너무 큰 것이다.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앞은 의지박약이고, 뒤는 의욕과잉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경우이다. 의지박약으로 인한 실패는 보통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의욕과잉의 폐해는 주위까지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로는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유용할 때가 있다. 이는 개인의 삶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 경영에서도 마찬가
참 가당찮은 일들이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 대통령을 만나보는 일은 꿈에도 못 꿔 볼일임이 틀림없었다. 문민정부 시절에도 대통령이 나타난 대형 운동장에서 경호원들이 관람객의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리고 반짝 연설 후에 안개 같이 경호원들도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대학시절 이데올로기 강의로 이름이 난 K교수의 이야기는 사실인지 잘 모르겠지만 용기 있는자가 뭐든지 다 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을 만났던 일화이다. 그것도 유신반대로 학생운동이 한창인 시절에 대학생으로서 대통령을 만난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을 텐데 그는 접견을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접근하였다가 생각대로 접견을 이루었다고 한다. 경호원이 제지하자 “나는 모 대학 정치외교학과 모 학년 모학생인데 대통령을 한
요즈음 골프가 일반인의 취미로 상당한 대중화가 이루어 지고 있는 듯 하다. 골프에 관한 인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현재 생존하고 있는 전설의 골퍼 3 인방을 꼽으라면 잭 니클라우스, 게리 플레리어, 아놀드 파머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중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인 게리 플레이어는 잭과 아놀드에 대하여 이렇게 평한 사실이 있다. “잭은 경기에서 패하였을 때가 더욱 위대해 보였다. 하지만 아놀드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잭을 상대로 승리한 사람은 패자인 잭으로 부터 진심어린 축하의 메세지를 받은 후에야 잭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아놀드는 자신이 승리 하였을 때 만 위대해 보였을 뿐 패한 경기에서는 그 누구도 경기장에서 아놀드를 찾을수 없었다”라고. 어차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