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간의 길고도 짧은 안동 시온 봉사 캠프. 처음 시온 캠프에 대해 들었을 때 당연히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기간이 너무 긴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앞으로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기에 참가하게 됐다. 물론 내가 봉사부서인 인터렉트 부장이라는 책임감이 더 컸던 것 같기도 하다. 7월15일, 여름방학과 동시에 안동 시온 캠프를 시작하였다. 일찍이 시온재단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알아봤지만, 실제로 겪게 된 시온재단은 더 크고, 편리해서 오히려 봉사보다는 휴양을 온 느낌이었다.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오면서 단잠을 자고 있어서 그런지 모두가 짜증이 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반갑게 맞아주시는 선생님들 때문인지 바로 웃으며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한 달에 한번 봉사활동을 가는 토요일, 나와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오랜만에 지각을 했다. 운동장 옆 공간에서 교장선생님께서 훈화를 하시고 계셔서 들어가 줄은 서지 못했지만 잠시나마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꿈을 가져라. 봉사활동을 통해 마음을 넓혀라.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티쉼터는 가까웠다. 두 번째 가는 거라 대충 어떻게,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았다. 선생님께서 이곳 장애인들에 대해 이야기 해 주시는데 새로웠고 궁금했다. `대체 어떻길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만나보고 싶었다. 청소분담을 하는데 전에 이곳에 온 친구들이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2층만은 가지마라. 힘들다. 무섭다.” 하지만 난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대체 어떻길래 저렇
구름이 잔뜩 끼고 간간히 비가 내리는 토요일 아침,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을 참배하고 봉사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가지고 국립 영천 호국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 곳 영천호국원은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국가 유공자, 6·25 참전군인, 월남 참전군인, 6·25 참전경찰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공적을 기리고, 호국정신 고취를 위한 추모와 안보의식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여 후손에게 호국정신의 귀감으로 승화시키고자 2001년 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먼저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현충탑에 올라 호국영령들을 참배 한 후 조를 나누어서 정성껏 성역 가꾸기 봉사활동을 하였다. 봉사활동을 마친 후 안보 전시관과 영화를 관람하였다. 이번 영천 호국원 방문으로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
어느덧 봄이 가고 여름을 알리는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햇살을 시원스레 적셔주는 단비였다. 커다란 두 개의 산이 앞뒤로 지켜주는 양동마을은 현대문명의 손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우리의 멋을 한껏 살린 마을이다. 양동마을은 초가집과 기와집의 단조로움이 어우러져 마을을 아늑하게 느껴지게 했다. 아름다운 이 마을이 오늘 우리가 봉사하게 될 장소이다. 사무장님께서 양동마을에 대한 깊은 역사를 말씀해 주셨다. 내가 고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무장님의 말씀은 나의 관심을 끌었다. 내가 양동마을의 매력 속으로 깊게 스며들어갈 때 쯤 어느덧 비는 그쳤다. 우리는 각 조마다 쓰레기 봉지를 들고 마을의 정화를 위해 양동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께서 이 마을에 처음 오시는 거
영일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첫 봉사활동에 체험학습을 가게 되어 아쉬웠다. 체험학습을 갔지만 마냥 다른 곳으로 봉사활동을 갔던 다른 반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드디어 4월, 내가 기대하고 바랬던 봉사활동에 가게 되어 매우 기뻤다. 봉사활동을 가기 전 운동장에 1학년 전교생이 모였고,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있으셨다. 봉사활동 가기 전 마냥 들떴던 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다시 한 번 내가 왜 봉사활동을 가는지에 대한 목적을 알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 중에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는 말씀이 가장 가슴이 와 닿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전승기념관에 도착하였을 때, 사뭇 나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생각해보았다. 전승기념관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왠지 평범한 기념관과는 다른 느낌이 들
벌써 세 번째 봉사활동이다. 이번 봉사활동 장소는 석병교회 안에 있는 하늘마음이었다. 하늘마음요양원은 정애원과 비슷한 곳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정애원에 가서 여러 번 봉사를 했는데 중·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정애원에 찾아가지 못해서 마음이 씁쓸했는데 이렇게 하늘마음요양원에 갈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나, 새름이, 효정이, 유라, 별이, 시은이는 2층에 배정받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니 제일 먼저 문 밖으로 반쯤 몸을 빼고 누워계신 할머니를 발견했다. 제일 먼저 뵌 할머니라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는데 나를 본척 만척 하고 소리만 꽥꽥 지르셨다. 무안해진 나는 얼른 걸레를 빨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화장실 시설이 굉장히 좋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시는 곳이니 따뜻한 물도 콸콸 나오
봉사활동을 가는 날이면 나는 들뜬 마음에 항상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오늘 만큼은 교복 아닌 편한 자유복을 입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괜찮은 날씨였다. 나와 은총이와 예솔이는 같이 햇빛마을로 향했다. 도착하니 담임선생님과 교생선생님 두 분 그리고 친구들이 거의 다 와있었다. 아이들과 한창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직원 봉사자께서 들어와서 구역 배치를 하시고 간단한 설명을 하셨다. 나는 햇빛마을이 네 번째 봉사활동이라 어르신을 부르는 법, 어르신을 대하는 태도, 식사를 도와주는 법 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직원 봉사자께서 설명을 하실 때 더 이해가 잘되었다. 우리는 정해진 구역인 2층 마리아동으로 갔다. 가자마자 할머니들께
햇빛은 파도 냄새가 한껏 풍기는 구룡포 바다를 덮었다. 클래식을 듣는 듯 잔잔한 파도소리가 동해의 정경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하늘마음 이라는 곳은 구룡포 바다를 배경으로 한 노인들의 안락한 쉼터이다. 그곳에는 나의 할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노인 분들이 생활하고 계신다. 고1 여름방학, 음성 꽃동네에 다녀온 이후로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봉사하러 가는 것은 즐거운 일 중 하나가 되었다. 하루 동안 단 몇 시간만이라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친 손녀가 되어드리는 것이 봉사라기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늘마음에 들어서자마자 조를 만들어 청소를 했다. 아직 사람들의 손이 닫지 못한 곳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시커먼 먼지들이 쌓여 있는 곳이 많았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쓰시는 이불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벌써 2개월이 지났다. 봉사활동도 3번이나 갔다 왔다. 처음 봉사활동은 봉사활동이 아닌 체험학습이었고, 두 번째 봉사활동도 사실 청소만 하다왔지 제대로 봉사를 한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로원에 간다고 하니, 왠지 제대로 봉사활동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때 까지 양로원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사실 약간 두려운 마음도 있었고 기대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어른들께 싹싹하고 어리광피우는 편이 아니라서 사실 할머니들과 말을 하게 되면 어색할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늘마음은 구룡포에 위치해 있었는데,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니 외딴 마을에 하늘마음이 있었다. 십자가도 있고 약간 교회같은 분위기가 들었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편안해 질
25일 토요일 아침, 두 번째 봉사활동을 가는 2학년 반들이 모두 입지관 앞에 모여 앉았다.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듣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자랑스러운 영일고등학교의 이름이 새겨진 봉사 유니폼을 입고 씩씩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한 소대의 정예부대를 보는 것 같아 왠지 웃기면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번에 우리 반은 정애원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이번이 정애원에 세 번째로 가는 것이라서 그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드디어 정애원이 위치한 산 아래 논길로 접어들었다. 늘 그랬듯이 논길이 너무 좁아서 불안했다. 금방이라도 버스가 논으로 빠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저 앞 쪽의 길목에 차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논일을 하다 점심을 드시며 쉬고
석병양로원은 내가 영일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세 번째 봉사활동을 하게 될 장소이다. 처음엔 양로원에서 봉사한다는 소릴 듣고 되게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면서 버스에 올라탔다. 도구와 구룡포를 지나 바다건너 산 건너 경치 좋은 곳에 다다랐다. 폐교가 되어버린 학교건물에 도착하였고 인상 좋으신 남자 선생님 한분이 우리 모두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몇몇이서 모둠을 짜서 활동하였다. 나와 내 친구들은 마른걸레와 젖은걸레를 들고 양로원의 모든 유리와 창문을 찾아 닦으러 다녔다. 우리가 온걸 알고 편찮으신데도 나와 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일일이 인사를 하였다. 인사를 할 때마다 몇몇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어디서 왔냐고 물으시기도 하셨다. 그럴 때 마다 “영일고등학교에서 왔어요.”하면서 대답해주었다. 그리
오늘은 영천호국원을 다녀왔다. 호국원은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신명을 바친 국가유공자와 참전유공자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공적을 기리는 곳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수천, 수만 개의 비석들이었다. 그 비석 모두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위패를 새긴 것이었다. 정말 장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광경에 잠시 말을 잊을 정도였다. 이런 곳이 몇 곳 더 있다는 말에 얼마나 많은 분이 전쟁으로 돌아가셨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 반은 먼저 관리인 아저씨를 따라 현충탑에서 참배를 했다. 높이 솟은 하얀 현충탑 앞에서 장엄하면서도 조용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리는 묵념을 하면서 국가를 위해 스러져간 분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단 우리는 수만 개의 비석들 주위를 깨끗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