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남편의 전화가 끼어들었다. 딸을 미뤄두고 남편의 전화부터 받았다. 그는 뚜렷한 용건도 없이 끊었다.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차에, 또 신호가 왔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딸에게 내 신분증을 보내라고 한다. 방금 전에 통화했다고 해도, 그는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빨리 보내라는 말만 두어 번 하고는 끊었다.신분증을 보내던 중에 또 남편의 전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정신이 없냐고 묻자 대답은 없고 신분증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한다. 왜 필요하냐고 하니 느닷없이 버럭 화를 냈다. 급하게 신분증사본을 보내자마자,
“햇살이 사라질 때 그 불빛은 거친 파도를 좀 더 밝은 은색으로 물들였고, 푸른색이 바다에서 밀려나가고 순수한 레몬색 불빛이 밀려들어 곡선을 그리면서 부풀어 오르다가 해안에서 부서질 때 그녀의 눈은 황홀에 빠졌고, 그녀의 마음 밑바닥에서도 순수한 기쁨의 파도가 출렁거렸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중에서바다를 바라보다 등대와 눈이 마주쳤다. 멀리 있으니 작고 앙증스러워 보이는 빨간 등대다. 어쩌면 파도 그리고 바다와 저렇게 잘 어울릴까. 그 주위를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갈매기 떼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지금 나는 구룡포 대보
눈빛들이 진지하다. 조금 전까지의 장난스런 웃음기는 사라지고 모두 두 손을 모으고 섰다. 통팥시루떡까지 수북이 쌓아올린 고사 상이 제법 구색을 갖췄다. 두어 시간 전에 급조한 축문을 회장인 金이 맛있게 읽는다. 막걸리를 잔에 붓고 절을 한다. 지갑을 열어 복전까지 내 놓는다. 뻗정다리가 된 남편까지 절을 하자 뭘 저렇게까지 할 게 있나 싶은데, 뒤이어 깁스를 한 鄭까지 목발을 옆에 세워두고 절을 한다. 퇴주잔에 막걸리를 붓고 다시 잔을 채우는 張까지 엄숙하다. 고사를 핑계로 모여 놀자는 취지는 온데간데없다.먼저 사건의 발단이 된 건
쇳대박물관을 둘러본다. 입구부터 진열되어 있는 자물쇠와 열쇠가 인상적이다. 나무 빗장, 비밀 자물쇠, 열쇠패 등 장식 기법과 열고 닫는 방법이 다양하다. 선사시대에도 자물쇠는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동굴을 지키기 위해 입구를 막아놓은 무거운 돌이 자물쇠의 시초다. 덩치 큰 바위가 작은 쇳덩이로 바뀐 셈이다.현관자물쇠는 힘이 세다. 몸집이 작지만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집을 지켜낸다. 그런데 사물인지라 고장 날 때가 있다.얼마 전, 우리 집 현관자물쇠도 고장이 났다. 집 가까이에 있는 자물쇠가게를 찾아갔다. 문이 잠겨 있어 간판에 적힌
“당신이 이 세상을 있게 한 것처럼 아이들이 나를 그처럼 있게 해주소서. 불러 있게 하지 마시고 내가 먼저 찾아가 아이들 앞에 겸허히 서게 해주소서.” -김시천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 중에서‘행복육아’란 주제로 공모전이 있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백 여 편이 넘는 에세이와 동영상이 그 정도의 숫자로 전달되었다. 나도 자식을 키웠는데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의 일부분은 교집합이었고 때론 개성이 있고 대부분의 내용은 유사했다. 단지 내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다 키운 사람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있다는 것이 다를
친구가 떡 봉지를 펼쳤다. 친정엄마 제사라며 떡을 주문하고, 전 부칠 재료들을 챙겨 큰오빠네 갔던 그녀다. 다음 제사에는 식판을 사가야겠다고 한다. 제사에 식판이라고? 그녀는 또 뜬금없이 효도는 셀프,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오빠 넷에 세 명의 언니를 둔 그녀가 친정제사 음식을 도맡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멀리서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조카들이 제삿날에 옥수수 알맹이 빠지듯이 한 것은 벌써 몇 해 전부터의 일이다. 큰오빠가 부모 제사는 자식의 몫이니 앞으로 아랫대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포한 것이 코로나
바람이 불어온다. 형산강 둔치를 걷다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강바람에 몸이 흔들리니 마음까지 출렁댄다.강변에 서 있으니 풀들이 초록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토끼풀이다. 여기저기에 모도록모도록 소담스럽게 모여 있다. 나는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눈으로, 손으로, 훑으면서 찾는다. 나폴레옹이 포병장교 시절에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갔다고 한다.그 뒤로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적적으로 총알을 피해 살아남아, 훗날
주말이면 농막에 간다. 산이 둘러쳐진 그곳에는 이제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 잎만 무성한 수국은 아직 꽃대를 밀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에는 대신 쥐똥나무 꽃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다. 나는 옮겨 심은 꽃들을 살피며 물을 준다. 그 꽃들은 그녀와 함께 남편의 친구인 K씨의 고향집에서 왔다.고향집 골목에 들어서자 빈집 냄새가 났다. 첫 집을 시작으로 옆집도 앞집도 비어있었다. 귀퉁이가 내려앉은 흙 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담쟁이가 눈치도 없이 새순을 틔웠다. 낡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문 옆에 먼지 앉은 유모차가 오지 못하는 주인을 기
우거진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 길옆으로는 보랏빛 향기가 뿜어져 나올 맥문동이 그득하다. 그 사이 만들어진 길에는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맨발로 길을 걷는다.얼마 전부터 만들어진 황톳길이다. 맨발로 걷다보면 황토의 붉은 기운이 힘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새소리며 다람쥐며 청솔모는 덤의 볼거리다. 처음에는 몇몇이 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많아진다.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인기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건강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을 자연스레 운동을 이끌어냈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맨발인 사람, 운동
지하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대단지 아파트로 이사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며칠 전에 주차 해둔 차를 찾지 못하고 있다. 차를 찾아 돌다보니 방향 감각마저 잃었다. 지하1층이 아니었나? 2층이었던가? 마지막으로 차를 세워둔 게 어디 갔다 왔을 때였지? 가끔 차를 몰고 나가는 나는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보았다.양손에 나눠 든 종이가방과 비닐봉지를 벽에 붙여 세웠다. 짐의 무게가 손바닥을 파고든다. 세워둔 비닐봉지가 맥없이 쓰러진다. 비닐봉지를 단단히 묶었다. 무게중심을 잡아 종이가방에 기대 놓고 주위를 살폈다. 줄이 난 손바닥을 부
연일도서관은 앞마당이 공원과 잇닿아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나는 연일도서관에 갈 때면 잔디밭 길섶에 심겨진 대추나무 앞을 매번 서성거린다. 초록 웃음을 머금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모습, 바람이 머물다간 자리가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모습을 내 마음에 담는다.그러다가 한여름이 되면 대추가 알알이 익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기도 한다.얼마 전, ‘여름방학 독서교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대추나무를 만나는 게 좋았다. 그런데 태풍 ‘카눈’의 북상 소식이 전해졌다. 배움도 소중하지만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연일도서관이 하루
전화기를 쥔 친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잠시 말이 없다. 숨을 고르더니, 딸이 사는 옆집에서 청년이 죽었다고 한다. 느닷없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혼자 멀리 떨어져 사는 딸이 걱정인 친구는 가끔 집 주인에게도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는 편이다. 주인아저씨는 옆집 청년의 일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내막을 술술 불었다.딸은 그 청년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을 자고, 샤워하고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 밤이면 또 그 집 앞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벽에 등을 대고 유튜브를 보
시작은 오천 원이었다. 시립도서관 앞에 서서 폰을 하고 있는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맞으시죠”, “네” 얘기는 짧고 물건을 본 그녀는 좋다며 돈을 나의 계좌로 입금시켰다. 물건은 내손을 벗어났다.집안 청소를 하다보면 먼지만 쌓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필요했지만 지나고 보면 처치 곤란한 물건들로 방이 빼곡히 차곤 한다. 언제 시간을 내서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마음먹은 날 이것저것을 들춘다. 내게 필요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겐 필요할 것 같은 물건부터 어쩌다 보니 잊어버리고 겹쳐 산 물건들이다. 말도 되지 않은 가격으
바다를 마주 대하면 마음은 쪽빛으로 물든다. 치열한 일상에서 만나는 내 감정은 뾰족한 선이 많아 마음이 무채색일 때가 잦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망중한을 즐기면 첨예한 선들이 마모되어 그 틈으로 유채색이 입혀지는 것을 체감한다.한흑구 수필집 복간 기념 릴레이 낭독회의 진행을 맡았던 탓일까. 행사를 마친 뒤, 한흑구 선생님께서 거의 매일 걸으셨던 송도 해변이 보고 싶었다. 그런 연유로 지금 이 순간, 윤슬이 리드미컬하게 출렁이는 해수면을 바라보며, 시간을 초월해 선생님의 발자취에 내 발자국을 얹어 본다는 심정으로 모래밭을 거닐고 있다.
검은 하늘이 내려앉는다. 곧 비가 내리꽂을 태세다. 퇴근을 망설이는데 사무실 문이 열린다. 얼굴이 파리한 여자가 엉거주춤하니 들어선다. 상가를 내 놓겠다느니, 상담을 좀 해 달라느니 말의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차근하게 얘기해 보라고 하자,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그 남자가 내 명의로 가게를 하거든요?”“무슨? 어떤 남자가요?”얼마 전까지 애인이었던 남자가 그녀의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이름만 사장인 그녀는 직원이 다섯 명이나 되는 가게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카드까지
“처지가 떳떳했으면 날이라도 좀 밝은 다음에 길을 나설 수 있었으련만, 그땐 어찌 그리 처지가 부끄럽고 저주스럽기만 했던지. 그래 할 수 없이 새벽눈길을 둘이서 나섰다. 시오리나 되는 장터차부까지 산길이 멀기는 또 얼마나 멀더라냐.”-이청준의 소설 ‘눈길’부분큰아들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마지막 집마저 남의 손에 넘어갔을 때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막내아들이 돌아오면 마지막으로 밥을 먹이고 살던 집에서 잠을 재우려고 어머니는 아들 오는 날까지 쓸고 닦았다. 모든 재산을 다 잃고도 아들의 가슴에 남겨둔 자신의 집 한 채를, 기억 속에 심
장 뜨기 좋은 날이다. 이른 아침, 복실이네 대문 앞에 차를 세우자 햇살바라기를 하던 강아지가 먼저 뛰어나온다. 그녀는 벌써 내 항아리의 장까지 뜨고 있다. 나는 서둘러 고무장갑을 끼고 소금물에 푹 절은 메주를 주물렀다. 같이 하게 좀 기다리지 왜 혼자 하느냐며 눈을 흘기자 날씨가 좋아서라 한다. 두 개의 항아리를 된장으로 채웠다. 언저리에 붙은 것을 찍어 입에 넣었다. 누런 된장이 봄 햇살을 품었다.항아리를 닦고 장독대를 정리하는 일이라도 그녀의 손이 덜 가게 서둘렀다. 수돗가까지 말갛게 치우고는 고무장갑을 벗어 빨래집게로 걸었다
달빛이 환한 밤이다. 철길숲을 산책하다가 우두커니 앉아 있는 무궁화호 객차를 찬찬히 바라본다. 내 시간의 퇴적층에 기적 소리가 아스라이 얹혀 지는 것 같다. 문득, 처음 기차를 탔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바람결에 풀썩거리며 뛰쳐나온다.그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동대구역에서 화본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나의 부모님은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하는 친할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한동안 나를 외가에 보내야만 했다. 혼자 외가에 남겨진다는 속상함 때문에 기차를 탔다는 설렘은 잠시였다.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며
42도의 자스민 탕에 몸을 담근다.처음에는 앗! 뜨거워하다가도 어느 사이 뜨거운 물은 심신을 가둔 빗장을 벗겨 자유롭게 몸을 덥힌다. 사지를 쭉 뻗고 머리를 탕의 턱 위에 대고 눈을 감는다. 전신으로 열기가 번져나가며 온몸이 나른하고 편안해진다.코로나로 인해 자주 목욕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목욕은 어쩌다 가게 되는 드문 일이 되었다. 더러 쥐가 났고 목덜미가 뻐근할 때가 많았다. 무리한 날은 온몸이 아팠다. 지인이 사정을 알고 “목욕하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그것은 빛처럼 환하게 답이 되었다.평소 냉한 편인 내겐 한겨울
모처럼만에 들린 당숙 댁이다.골목에 들어서자 지붕 밑에 빨간 불빛이 깜빡거린다. 마당에도 낯선 불빛이 여기저기서 노려보고 있다.두 노인네가 사는 시골 농가주택에 CCTV를? 요즘은 멀리 있는 자식들이 부모의 상황을 살피려 설치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 댁에 아직은 그런 게 필요할 리가 없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과상 앞에 앉았던 당숙과 집안 시동생들이 반색을 한다. 종조모의 제사를 핑계로 모였다.늦게 도착한 나는 싱크대 앞으로 먼저 갔다. 반백이신 당숙모가 제사 준비 다 됐으니 그냥 앉아서 떡이라도 먹으라며 등을 민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