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부터 유엔개발협력기구의 두만강유역개발계획, 중국의 북·중·러 국경협력을 통한 동북낙후지역개발 등 환동해권 개발을 위해 추진된 정책들이 다수 있었으나 성과는 기대만큼 크지 못했다. 하지만 근래 환동해권에 대한 관심들이 다시 커지고 있는 듯 하다. 중국은`창지투`를 개발개방선도구로 하여 이 지역을 동북아경제기술협력의 플랫폼으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하얼빈에서 훈춘까지 고속철사업을 마무리하고 훈춘에 조성된 대규모 물류단지의 컨테이너 화물들을 북한 나진항을 통해 세계로 수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2013년 3월 국무회의에서 러시아 동부지역의 발전이 국가 경제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한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음을 선언한 바 있다. 러시아는 경제특구, 특히 광범위한 특혜가
수십 년이 지나도 미국 도심이나 교외 커뮤니티들은 별로 변함이 없어 보인다. 건물들을 허물고 대규모로 새로 짓기 보다는 원래의 건물들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기에 우리 눈에는 변함이 없는 듯 보일 수 있다.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의 도시들과 많이 다르다. 한국의 경우에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생활양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과거에 제대로 지어진 것들이 없으니 그렇다고들 이야기하며, 필자도 동감하는 부분이 많다. 미국의 도시들, 특히 오래된 교외 커뮤니티들을 방문하다 보면 부러운 점들이 많다. 글렌데일 교외 `몬트로스 야외쇼핑몰`은 한적한 듯 하면서도 인근 주민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다. 필자도 어제 오랜만에 식구들과 이곳 커피숍에 들렀다. 옆에는 은행, 보석가게, 보험회사, 피트니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한국인들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만, 요즈음은 콘도 내지 아파트 건설 붐이 이는 것 같다. 한국인들이 더 많아진 탓도 있겠지만 요즈음 학군에 신경 쓸 필요 없는 젊은 세대와 은퇴를 앞둔 장년세대가 멀리 위치한 교외주택지를 마다하고 한국스타일의 서비스가 있는 한국타운으로 몰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부터 코리아타운은 갓 이민 온 한국인들의 첫 출발지가 되었다. 하지만 코리아타운은 쇠퇴한 도심을 재활성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요즈음은 한류 전파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고 본다. 미국경제는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 몇 년전부터 불안한 가운데 그런대로 호황의 기조를 이어가고 있고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 졸업생들의 일자리 구하기는 쉽지는 않다. 물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다양한 도시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에 매료된다. 하지만 또한 느끼게 되는 것이 내가 이들과 다른 문화를 지닌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보다 선진적인 시설과 문화를 지닌 나라에서는 부러움이 크지만, 그래도 우리 한국이 이제는 잘 살고 있고 과학기술이 발달된 나라임에 자부심도 느껴진다. 우리의 자동차며 스마트폰이 세계를 누비고 있다. 이제 한국의 경제산업발전을 아는 이도 많아졌지만, 한국의 음식이며 음악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서 좀 자주 듣는 거북한 주제는 북한에 관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전제주의적 공산국가인 북한이 이들에게 때로는 위협적으로 때로는 경이롭게 느껴지리라. 북한지도자들의 행태며 시민들의 삶이 외국인들에게는 현실적이 아
작년에는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침울함에 세월을 보냈는데, 올해도 6월로 들어서며 메르스 파동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올 들어 가뭄이 너무 심해서 많은 수의 저수지와 하천들이 바닥을 드러내었다. 논에 못자리도 해야 하고 여름야채들을 가꾸어야 할 것인데, 반년 이상 지속된 가뭄의 여파에 온 국민이 야채와 과일파동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걱정은 국내경기가 불황의 늪에 빠져가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불황기조와는 달리, 우리 한국경제는 좀 나은 지표를 보이고 있어 다행이었고, 부동산시장도 활기를 띄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메르스 파동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고, 우리 시민들도 여행은 물론이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듯 싶은 장소들을 피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경제위축을
일본을 방문할 때 비행기에서부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국에 즐비한 대단지 고층아파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울과 도쿄 비교해도 부산과 오사카, 포항과 고베 등을 비교해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에는 지진이 많기에 고층건물이 적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신공법이 발달되어 있기에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것이고, 분명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역사적 차이점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큰것, 새것, 그리고 내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일본인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한국인들의 어려웠던 근대역사가 좀더 과감히 옛것이나 전통을 버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한국인들이 좀 무리를 해서라도 새 아파트 장만에
울란바타르는 1900년대와 2000년대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한국의 뉴타운과 같은 고급아파트촌이 존재하는가 하면, 아직도 넓은 지역에 걸쳐 도시인프라가 크게 부족한 게르지역이 존재한다.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천차만별이다. 고급 명품족이 있는가하면 제대로 씻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집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몽골의 연평균 강수량은 100~200mm 정도이며, 인구가 집중된 울란바타르 지역도 250mm에 못 미친다. 이 도시의 용수공급 중 지표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이고 나머지는 지하 110m에서 퍼 올리는데, 이도 고갈될 처지에 있다. 울란바타르에서는 아파트단지에서도 2주일 정도씩 단수를 하는 경우가 많으며, 게르지역에서는 시정부에서 급수트럭으로 각 마을의 물탱크에 채워놓는 용수를 시민들이 하
우리가 탑승한 몽골행 비행기는 오후 2시 2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3시간여를 날아 울란바타르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6시 10분이었다. 6월 초인데도 초원은 겨우 새싹이 나고 있었다. 울란바타르는`울란 카타르`라고 불릴 정도로 중동의 산유국인 카타르 만큼 발전의 기대가 큰 나라였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국민소득도 4천불에서 몇 년 사이 6천~7천불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었었다. 그러나 몽골경제는 몇 년 사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었고 앞으로의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몽골의 주 수입원이던 지하자원의 국제가격이 하락하고, 외국인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주요 지하지원 투자자들이 몽골을 떠남으로 인해 관련 분야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1~2년 사이 몽골 화폐인 투그릭은 평가
단체여행을 할때, 현지 가이드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대개 현지 교포들로서 그 지역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 문화 등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분들이 많다. 필자의 경우 리무진 탑승 중 깨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가이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화제를 끄집어내기를 좋아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정세, 홋가이도의 아이누족 등에 대해서 질문하기도 하고, 유럽이라면 나폴레옹이나 근현대건축에 대해서 토론하기도 한다. 가이드들이 단순한 안내자의 수준을 넘어선 지식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아 내심 놀라기도 한다. 요즈음 프랑스를 여행하는 한국인이나 중국인들 대다수가 파리를 찾고 에펠탑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여행의 역사가 우리네보다 긴 일본인들은 지금까지 찾던 파리 보다
포항에 KTX가 개통되고 서울 나들이가 무척 편해졌다. 얼마 전 서울에 볼일이 있어 KTX 왕복표를 일주일전에 예약하려니 가고 오려는 시간대 좌석이 매진이라, 몇몇이 택시를 전세내 동대구역까지 가서 서울행을 타게 되었고 돌아올 때는 서울역-포항행을 구하기는 했으나 볼일을 보고 한참을 기다린 밤 9시 50분 출발하는 마지막 KTX를 탈수 있었고 포항역에 내리니 새벽 1시에 가까웠다. 지난 몇 달동안 KTX 이용객이 예상치의 150%에 달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오후 시간대에는 열차가 3시간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이용객들의 불편이 크다. 게다가 몇몇 시간대는 수주 전에 만석이 되고 있다. 포항은 인구 50여만의 도시이지만 동해안의 중심도시로서 광역도시 규모의 기능을 지니고 있을 뿐더러 차별화된
오랜만에 칠포해변에 들렀다. 이 해변은 포항도심에서 북쪽으로 13km 거리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백사장 길이 2km에 폭 70m로, 하루에 10만명의 관광객들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주변으로는 송림 우거진 해변 드라이브 코스가 있고, 갯바위에서 바다낚시도 가능하다. 20년전 포항에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직장에서 멀지 않은 칠포해변을 자주 찾았었다. 동해의 파도를 보러, 호텔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러, 아름다운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위해 등의 이유로 이곳을 많이 방문했었다. 하지만 칠포 인근에 산업단지 공사가 시작되고 도로가 바뀌면서 그리 자주 방문하지 못한 것 같다. 아직 여름이 아니라서 지금은 한가하나 여름이면 칠포는 많은 이들로 북적인다. 이 호텔도 본관만이 아니라 부속건물이 대형으로 지어졌
형산강은 포항과 경주를 관통해 흐르는 강으로 고대로부터 이 두 지역에 식수 및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교통운수기능을 제공하고, 물고기 등 식량을 제공하고, 좋은 경관을 제공하고, 기후에 영향을 주었다. 현재 형산강은 포항과 경주에 걸쳐 존재하므로, 이 두 도시가 협력해서 이를 보전하고 개발하면서 두 도시간의 동질성과 네트워크를 개발해갈 필요가 크다. 이 두 도시는 현재 산업기능이 상이하다고 할 수 있지만, 경북도에서 유일하게 근접하여 네트워크도시 내지 쌍둥이도시(Twin City)로 발전될 소지를 지니고 있다. 이 두 도시들은 수질오염과 수량미비 등으로 인해 큰 강이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활용한다 해도 잘못하면 오염을 증가시킬 수 있기에, 이를 어떻게 개발하
네팔에 지진이 난 지 몇 주가 흘렀다. 그 참상을 미디어를 통해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필자의 경우 10명의 학생들과 네팔 카트만두로 5박 6일의 연구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지진이 나서 스케줄을 가을로 연기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막상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20년만을 돌아보더라도 세계각지에 진도 7 넘는 강진이 수없이 발생했다. 1995년 일본 간사이 지진은 진도 7~8인데, 진원지가 지표에서 가까운 데다 지반이 수직으로 흔들리는 직하형 지진이었기에 피해지역이 상당한 수준의 방진시설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5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번 네팔의 지진의 강도는 7.8로서 이에 따른 사망자가 8천명 이상이고
토요일 아침, 포항시 양덕동을 떠나 기계면을 거쳐 31번 국도를 통해 산등성이 길을 가파르게 오르니 청송군이다. 예전에도 몇 차례 지나가 본 곳이지만 해변과 멀지 않은 곳에 고산준령이 자리하고 있음이 이색적이다. 동해안에는 이러한 지형이 흔하다. 예천에 볼일이 있어 나들이 겸해서 떠난 길인데 포항에서는 2시간 30분이 걸리는 비교적 먼길이다. 청송은 예로부터 많은 산과 물을 품고 있는 지역으로 이름나 있다. 주왕산 국립공원의 서쪽 끝자락이기도 하다. 국도변 널찍한 논과 밭 뒤로 단아한 한옥들이 놓여있는데 이는 덕천마을이다. 조선 영조 시절 세워진 송소고택(松韶古宅)을 중심으로 여러 고택들이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은 좁고 꾸불대지만 주변 골짜기며 작은 분지에 자리 잡은 마을들은 평화롭기 그
우리나라가 30~40년의 짧은 기간 내에 `아파트공화국`으로 불리게 된 것은 우리 국민들의 소득이 빠르게 향상되었고, 주거의 질 향상에 대한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지어진 집들의 품질이 낮은 편이라서 국민들이 현대적인 시설과 스타일을 갖춘 아파트 주거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도심재개발이며 도시개발사업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한 고층아파트 건설이었다. 도시경관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가난한 이들이 다른 곳으로 쫓겨 가야했고, 도심의 역사성과 장소성이 파괴되는 등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도심 상업지구에 있어서도 시민들의 편의시설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지자체 차원에서도 도시의 경제발전과 브랜드화를 위해 사업성 및 물리적 개발에 중점을 둔 사업들을 추진해오
영덕군은 포항시에서 차로 30~40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영덕읍, 강구면, 축산면, 영해면 등 여러 소도시들을 포함하고 있다. 포항시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운전해 가면 칠포, 월포, 화진을 거쳐 영덕군으로 접어든다. 바람이 제법 차가웠건만 항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오십천은 은어와 연어가 회귀한다는 1급수 하천으로 그 어귀에 위치한 강구항은 물이 맑고 갈매기들이 날고 자맥질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꽤 많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봄에 3박4일의 영덕대게축제가 열린다. 영덕대게는 고려 태조 왕건의 수라상에 오를 만큼 그 맛과 향이 오래전부터 전국에 잘 알려져 있다. 대게는 수심 200~400m에 서식하는 한해성 심해산으로 다리가 대나무 같이 긴 게로서 12월부터
플로리다(Florida)는 창조적인 사람들이 도시 및 지역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창조적인 계층은 관용적인 분위기가 충만한 도시에 매력을 느끼며, 그러한 곳에 거주하게 된다고 했다. 요즈음 포항시가 `창조도시 포항`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방향과 프로그램들을 제시하고 있다. 창조도시로서 포항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플로리다의 개념을 도입해 개략적으로 평가해보았다. 1) 창조적인 계층이 존재하는가? 포항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높은 비율의 창조적인 계층, 엄밀히는 그 후보자들인 우수한 대학과 대학원의 젊은 학생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졸업 후 지역을 떠나므로, 포항에는 창조계층이 존재하지만 제대로 설 곳이 마련되어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2)
도농통합시인 포항시의 한 교외도시이자 자체적으로도 오랜 역사와 지명도를 지닌 구룡포는 동해안 최대의 어항으로서 1942년 읍으로 승격되었고 인구도 3만8천명을 웃돌았으나 지금은 1만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구룡포는 수많은 어선들이 출회항하는 어업전진기지로서 그 기능은 줄지 않았다고 보아진다. 구룡포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집단 어업이민지이기도 했다. 100여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일본식가옥들이 남아있고, 그 일부가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지정되어 있다. 20년전 포항으로 이사 오고 한동안은 인근지역 이곳저곳 탐방을 즐겼는데, 구룡포는 자주 와 본 곳에 속한다. 호미반도 바닷가로 난 구도로를 꼬불꼬불 운전해가며 바라보는 파란 동해바다와 해국 피어나는 바닷가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뉴욕, 런던, 헬싱키, 텔아비브 등 세계의 여러 도시들이 스타트업 허브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방에 위치한 중간 크기의 도시이지만 철강산업도시이자 교육연구도시인 포항도 스타트업 허브 내지 혁신클러스터로 발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올초에 개원한 민간자율형 창조경제혁신센터인 `포스코 포항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그 이전부터 있어 왔던 `포항테크노파크`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스타트업 허브 내지 혁신클러스터는 지난 20년 이상 많은 도시들이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하며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정책목표이다. 우리가 틈나면 강조하고 있듯이 포항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다른 국내 도시들에 비해 차별화된 여건들을 가지고 있다.이는 포스코와 그 계열회사들, 포스텍과 산하의 첨단연구실, 국제법률대학원을 지닌 한동대
한동안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더니 이제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다니는데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날씨가 풀렸다. 계절의 바뀜은 당연히 반복되는 자연의 이치라지만 추운 겨울 끝에 느껴지는 따뜻한 봄의 전령에 설레임 내지 들뜬 마음 없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필자가 일하는 캠퍼스에도 서서히 봄이 짙어지고 있다. 추위 속에 매실이 꽃을 피우더니 이제는 벚꽃도 봉오리를 맺고 있다. 일년 열두달 거의 시계추 같은 리듬의 내 생활에도 이른 봄 즈음에는 약간의 센티멘탈리즘이 파고듬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 같다. 포항 도심 약간 외곽 신도시에 자리 잡은 내 아파트 발코니에도 진작부터 봄이 오고 있었다. 필자는 아파트 발코니에 수십개의 화분을 가지고 있는데 대개 직접 싹 틔운 소품들이다. 하지만 물주며 성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