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경상북도 쪽으로, 영양과 안동 쪽으로 나들이를 갔다. 학생들과 함께 학술답사 여행을 한 것이다. 세상이 모두 아름답지만 이때만큼은 우리나라도 어느 곳 못지 않게 아름다우려니 생각한다. 금수강산이라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말함 아니었겠는지. 지금은 콘크리트, 아스팔트가 너무 많아졌지만 이것 없었을 그 옛날 우리네 향토의 봄을 생각하면 그 녹빛 아름다움에 몸서리가 쳐질 것만 같다. 첫날은 비가 내렸다. 그러나 비가 내리면 또 어떠랴. 사월 느지막이 맞이하는 봄비는 보슬비라는 말처럼 부드럽고 다사롭지 않던가. 나는 비를 맞는 것이 좋았다. 영양쯤에 가서 비는 좀더 많아져서 학생들도 나도 우산을 둘러쓰기도 했지만 어느 들길에선가 나는 우산조차 벗다시피 하고 들에 내리는 빗소리를
며칠동안 이효석에 묻혀 살았다. 이효석이 세상을 떠난 것은 1942년 5월25일이다. 얼마 안 있으면 이효석의 기일이 돌아온다. 꼭 이때가 되어 이효석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아니지만`풀잎`이나`일요일`같은 소설과 함께 며칠 지내다 보니 그의 삶과 죽음이 아주 새삼스러워진 것이다, 그가 남긴 소설로는`메밀꽃 필 무렵`이 아주 잘 알려져 있지만`풀잎`이나 `일요일`이야말로 문제작 중의 문제작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들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씌어졌다. 1941년 11월30일과 1941년 12월8일이 이 작품들의 탈고일이다. 그런데 이 1941년 12월7일 또는 8일은 일본이 진주만 공습과 함께 미국에 선전포고를 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때다. 이로부터 1942년 2월15일에는 싱가포르가
하와이에 갔었습니다. 먼 곳이지요. 비행기로 갈 때는 여덟 시간, 올 때는 아홉시간에서 열시간. 가면서 날짜변경선을 지나가게 되는지, 수요일에 떠나도 여전히 수요일. 오면서는 토요일에 떠났는데 일요일이 되어 버리는 곳. 오아후 섬에 머물렀습니다. 호놀룰루 시가 있는 곳이지요. 하와이대학이 있구요. 화산이 있는 빅 아일랜드 같은 곳은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첫 날은 낮에는 한국학 센터에 들러 자료를 보고 저녁에는 하와이 대학 학생회관의 볼룸에서 열린 무라카미 하루키 낭독회에 참석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낮에는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열람해 보고 저녁이 되니 이곳에 교수로 와 있다는 선생님들을 만났던 거지요. 이상협이라는 경제학과 교수와 백태웅이라는 법과 대학 교수였습니다. 셋째 날에는 다
이번 선거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느냐는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를 것이다. 나는 쉬운 양비론적 태도를 표명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더 옳고 누군가는 더 틀렸을 수도 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선거 기간 내내 사람들은 서로 여러 패로 나뉘어 치열한 논전을 벌이고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싸웠다. 이 결과가 앞으로 몇 년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선거 기간 동안 나는 어떤 정치인 한 사람 때문에 무척 마음을 썼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젊은이 때부터 나라와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사심 없이 일해 온 것처럼 보였는데도, 현실은 그를 위해 움직여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야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고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와 지금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아마도 나는 그에게 선거를 며칠
옛날에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는 메토이코스(metoikos), 또는 메토이코이(metoikoi)라고 부르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거류외인 또는 재류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용어 말고도 이방인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지만, 이 말에는 종교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라는 뜻이 더 첨가되어 있어 조금 구별해서 쓸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유대사회의 이방인이라고 말하면 자연스럽지만 유대사회의 거류외인이라는 말은 어딘가 부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스는 종교적인 맥락에서 다신교 사회였기 때문에 이 거류외인들은 상업이나 학문 등의 목적에서 외부로부터 들어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럼 그들의 신분적 지위는 어떠했던가? 그들은 그리스 도시국가라는 시민적 공동체의 일원은
선거 때가 되면 북한 문제가 단골 메뉴가 되곤 한다. 정부나 여당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나 천안함 사태를 이슈화해서 이득을 보려 하고 야당은 이런 이슈에 휘말려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런 양상은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북한 문제는 항상 여권에게는 득의의 영역이었고 야권에게는 잘해야 본전인 문제였다. 그럼 북한 정권은 어떤 심산일까? 북한은 1980년대에 남한 민주화 운운했고, 지금은 현 정부를 반민족적인 정부라 선전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이런 북한 논리는 남쪽의 야당 세력을 지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북한 정권의 선전에는 함정이 있다. 과연 그들은 지금의 야당이 집권하기를 원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햇볕정책이나 각종 교류정책의
필자는 오늘 아침 진보통합당의 이정희 의원 측에서 범야권 연대를 위한 여론조사 경선을 치르면서 부정한 일을 벌였다는 뉴스를 들었다. 모 신문에 아는 여성 기자분이 있어 전화를 걸어보았다. 이분이 문화부로 오시기 전에 정치 분야에서 취재를 했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김근태 의원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대뜸 통합진보당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짐짓 무관심한 것처럼 경선을 다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래 필자가 재경선 갖고는 어림도 없다고 했더니 무슨 얘기냐고 되묻는다. 무조건 사퇴하는 수밖에 답이 없다고 했더니 그때서야 자기 본심을 드러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는 보수 집단은 원칙도 없고 오로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진보 쪽에는 그래도 원칙이나
지난 주에도 썼지만 서울은 총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하다. 다들 선거 때문에 어떤 이슈든 선거로 연결시키고 결과적으로 선거가 모든 이슈를 집어먹다시피 하는 `시즌`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필자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지난 달 9일 오후 8시34분경에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전원공급이 12분이나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보호계전기라는 시설을 시험하는 중에 외부 전원 공급이 중단되고 비상용 디젤 발전기조차 작동되지 않는 상태가 12분간이나 지속되었다고 했다. 이런 전원 공급 정지 상태가 어떤 파멸적인 결과로 연결되는가를 우리는 바로 이웃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핵연료봉이 계속 열을 내는 가운데 이를 식혀줄 냉각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게 되면, 원자로
총선이 바싹 다가왔다. 서울 정치계는 공천 문제로 꽤나 시끄러운 것 같다. 필자는 정치를 할 생각이 전연 없으니, 혹시 이 글이 선거법 위반이 되더라도 양찰해 주시기 바란다. 필자는 이 문제를 요즘 486세대의 문제로 생각하게 되었다. 486세대는 처음에 등장할 때는 386세대였으니, 그 뜻은 다 알고 계시듯 30대이고, 80년대에 대학교에 다녔으며, 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시사평론계에 처음 등장할 무렵 필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 말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486이 되었다. 왜냐? 말할 것도 없이 처음 등장할 때 30대이던 사람들이 40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10년 성상이 흘러 명칭마저 바꾸지 않고는 아니 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이 486세대가 처음 정
나이가 들면 돈 씀씀이가 헤퍼진다. 오늘도 아들이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할 일이 있어 상담을 하고 검사를 했더니 비용이 정말 만만찮게 들었다. 이렇게 돈을 버는 일은 어렵고 쓰는 것은 헤프니 돈이 문제는 문제다. 나는 옛날부터 룸펜 기질이 넘쳐 돈 쓰는 건 많고 버는 일은 별로 하지 않아 생활에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나이가 어렸을 때는 빚도 적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 잘 사는 것 같은데 빚은 훨씬 더 많아졌다. 이런 식으로라면 직장이 다 떨어질 때까지 빚을 다 갚지 못하겠다는 공포감까지 생긴다. 그러나 이런 말은 다 엄살이다. 대학 선생이 돈을 못 번다고 하면 누가 돈을 번다고 하겠는가. 세상에는 월급이 작은 사람이 참 많아서, 내 친구 하나는 그 작은 돈으로 어떻게 식구들이 살아가나 하는 걱
겨울이면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생태국 생각이 난다. 옛날에는 내가 태어난 충청도 예산에는 아마 생태를 구경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생태국 솜씨는 그 연조가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닐 텐데도 생태 몇 토막에 김장 김치를 말갛게 썰어 넣은 생태국은 그 시원스러운 맛이 일품이다. 생태국 생각을 하면 다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외할머니께선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넷째딸 집인 우리 집에 와서 겨울을 나셨다. 그때 아버지가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서 생태를 사오셨고 그러면 어머니가 이 생태를 국으로 끓여 외할머니께 드렸다. 그 덕분에 나도 생태국 맛을 들였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부모님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외할머니를 어머니처럼 가깝게 여기셨던 것 같
대마도는 가깝고도 먼 곳이다. 왜 그런가 하니 가는데 시간이 참 많이 걸린다. 새벽 다섯 시 반에 KTX를 타고 서울역을 떠나 부산에서 다시 배를 탔다. 전날 밤 한 숨도 못잔 까닭에 기차 안에서도, 배안에서도 내내 잠이 쏟아졌다. 그런 중에도 배 뒤쪽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때도 있었다. 바다는 검고 윤이 나고 바람 때문에 자못 물결이 높았다. 이 바다를 건너 윤심덕도, 이광수도, 임화도 일본으로 갔다. 이상은 이 바다를 건너 도쿄로 갔다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바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바다는 꼭 살아 있는 거대한 물고기 같았다. 이 물고기는 크고 비늘은 파도 제가 성난 비늘을 어쩌지 못해 저는 잠들어 있을 때도
최근 몇 달 일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부를 어떻게 나눠야 하느냐는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고민들을 하는 것 같다. 뭣보다 촉발 지점은 무상급식 문제였다. 아이들한테 가진 사람 안 가진 사람 가리지 않고 다 밥을 먹여준다. 이거 빨갱이 선전 아니냐? 하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고, 서울 시민들 의견이 이리저리 나뉜 듯했다. 오세훈 전 시장의 문제제기가 사람들한테 어느 정도 먹혀드는 것 같은 어떤 시점에 갑자기 안철수 교수가 등장했다. 그는 지금 문제를 만든 사람들이 다시 서울시 행정을 책임지는 것은 문제라고 하면서 서울시장 출마를 시사했다. 결과는 우리들이 다 알고 있듯이 박원순 변호사가 시장이 되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시장이나 배경이 같은 분들은 아니고 살아온 경
만주는 넓고 푸르렀다. 4박5일 일정. 중국 대련으로 들어가 단동으로 갔다, 통화를 거쳐 유하로 갔다, 심양을 거쳐 다시 대련으로 해서 돌아오는 코스였다. 이 여행 목적은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 그는 구한말에서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만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친 선각자였다. 때문에 여행은 그가 갇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여순 감옥과 신흥무관학교가 있던 곳들을 살펴보는 2100km의 장거리 여행이 되었다. 힘들었다. 그러나 배운 것이 많았다. 여순 감옥은 안중근 의사와 신채호 선생이 투옥되어 있던 곳, 감옥은 파놉티콘의 원형 감시 구조를 살려 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볼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처음으로 신채호 선생의 면영을 가까운 곳에서 접할 수 있었다
북아프리카에 재스민 혁명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혁명 물결에 재스민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꽃이 튀니지의 국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이 혁명의 물결은 이집트로 번져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리비아로 번져 지금 그곳에서는 트리폴리 공방전이 한창이라고 한다. 이 혁명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 민주주의 물결에 기대를 품고 있지만 필자가 볼 때 향후 정국이 밝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북아프리카는 드디어 민주혁명을 향한 커다란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튀니지에서는 시민의 힘이 압도적이었고 이집트에서는 집권세력을 능가할 만했으며 리비아에서도 독재정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 변화의 방향을
어디서 감을 얻어왔다. 그냥 먹으면 떫고, 며칠 우려 뒀다 단단했던 게 물러지면 먹어야 하는 감이었다. 감을 얻은 집에서 그랬듯이, 나 역시 이 감들을 현관 앞에 하나씩 가지런히 두고는 잠깐 존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후, 집을 나서는 내 눈에 무심결에 들어온 주황빛 감들! 아름답다 못해 탐스러웠다. 이 탐스러운 감을 보고 생각한 게 있다. 그렇구나. 비록 가지에서 떨어져 나왔어도 아직 생명이 가득 들어 있는 까닭에 이 감들은 이렇듯 탐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구나. 그래서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냈다. 생명은 탐스럽다. 생명은 너무 아름다워서 탐스럽다. 연말이다. 이제 2010년도 남은 날이 얼마 없다. 며칠만 지나면 우리는 2011년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게 된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에서 원정 16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귀국했다. 이 즐거운 일을 하루하루 지켜보면서 필자가 생각한 것은 젊은이들은 이미 변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월드컵 경기는 이 사실을 극명하게 웅변해 주었다. 우리 한국팀이 예선에서 만난 상대는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등 세 나라. 예선 통과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리스는 2004년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팀이고, 아르헨티나는 `신의 손` 마라도나가 이끄는 전통적인 강팀, 나이지리아 역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신흥 축구 강국이었던 까닭이다. 예선 리그의 고비는 아르헨티나와의 일전이었다. 그때 우리 한국팀은 그리스를 2대0으로 가볍게 누른 기세에도 불구하고, 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