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생물들이 마지막으로 가야 하는 곳으로, 모든 생물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 죽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식, 절망, 불가피한 것으로 여긴다. 이것은 문이 꽉 닫힌 콘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숨이 막히고 희망이라는 것은 휴지에 써서 창밖으로 버리는 단어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또 그 이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두 두렵게 생각한다. 어쩌면 종교도 고난으로 가득한 인생 문제에 대한 괴로움과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 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망을 보통은 끝, 절망, 또는 문제해결로 보며, 삶의 마지막에 있는 단단히 묶인 야무진 매듭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문제)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를 죽인다든지(자살) 다른 사람을 죽게 하는(타살) 방법의 선택을 드물게는 보기
죽음에 대한 생리학적 정의는 `노화란 생리적인 기능이 회복 불가능하게 퇴행 현상으로 접어드는 것이고, 그 끝은 기능이 정지되는 죽음`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이유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고, 죽음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천당, 지옥, 윤회, 영과 육의 부활, 연옥 유무, 등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주 먼 옛날에는 어려서 죽거나 원한이 사무쳐서 죽는 것 이외에는 죽음을 건넛마을로 가는 것 정도로 별로 두렵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죽음을 공포 속에 찌든 것이라기보다 문지방을 넘어서는 통과 의례로 보았고, 죽음을 계기로 해서 다른 삶이 펼쳐지는 마디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죽음이 굉장히 두려워질 즈음에 많은 종교가 탄생하였다. 기독교
노년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그것은 60~70세대의 노인이 80~90세대의 부모를 모시는 것이다. 그들도 정년 후의 인생에서 보람 있는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부모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야 한다. 노인들은 자식과의 동거는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부양이라는 무거운 부담을 꺼려하는 자녀에게 맡겨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애정이 부족한 자녀에게 의존하는 것보다도 돈으로 살 수 있는 부양을 선호한다. 그래서 노인홈, 요양원, 요양병원 등으로 가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보는 눈은 예전과 동일하지만 사회에서 제일 작은 단위인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관계`는 점차 `계약관계`로 바뀌어 가고 있다. 오히려 집에서 키우는 개가 가족이며
노인에게서 퇴직 이후 20~30년의 기간을 여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당당한 신 노년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각오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강해지는 노년의 힘(Ageing power)을 사회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영국의 민간 싱크탱크(think tank)인 미래재단은 2060년에는 은퇴연령이 80세가 되고, 60세는 새 직장을 위해 재교육을 받는 시기라고 하였다. 그리고 노인을 분류할 때 65~74세를 YO(Young Old), 75세 이상을 OO(Old Old)라고 하였고, 어떤 학자는 55~75세를 YO(젊은 고령자), 75~85세를 O(Old), 85세 이후를 OO(Old Old)라고 했다. 이것은 YO세대를 더 이상노인이 아니라 건강하고 의욕이
이 시대 사회흐름의 주도권은 젊은이의 열정과 역동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에는 과거와는 반대로 개인주의적 인간관과 가치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현실의 다양한 문화적 가치는 젊음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인의 자아 정체감의 유지가 매우 어렵다. 현대사회에서 담론 중에 노년을 말할 때는, 삶에 관한 여러 지침이 갑자기 증발해 버리고, 노년의 삶을 조망하는 데 참조할 만한 준거가 자꾸 사라져 간다. 노년이라는 생애과정은 이제 아무런 꿈도 제시하지 못하며, 이제까지 노년의 삶에 나름의 좌표를 제시해 주던 과거의 문화적 청사진들은 급속히 빛이 바래지고 있다. 심지어 바로 앞 세대의 경험과 삶의 궤적마저 문화적 기준 역할을 못하고 있다. 또한 젊은이는
예로부터 사람들은 장수에 대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온 천하에서 불로초를 구하던 진시황도 50세에 죽었고, 조선시대의 왕들도 평균 47세를 살았다. 노인이 되면 정신 기능의 둔화, 불면증, 체중감소, 관절통 등에 시달리면서 성격도 변하고 직업도 없어진다. 가정에서는 역할을 상실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주름 투성의 얼굴로 빈 둥지를 지키는 노인이 된다. 그러나 일본은 노년의 삶을 완성해 나가는 원숙기 단계라고 하여 `숙년(熟年)`이라 한다. 노화를 잘 하려면 질병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 운동을 하고, 좋지않는 생활 습관과 식사 습관이 있으면 바꾸어야한다. 그리고 정기 검진이 필요하다. 장년이후에는
인간의 마음은 강물과 같아서 계속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개개인에 따라 흐르는 방향은 제각각이다. 사람의 마음은 정서적 안정 정도, 외향성 여부와 우호성 그리고 성실성의 과부족,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느 정도로 개방적이냐에 따라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지게 된다. 다양한 인생 경험을 가졌지만 노년기라는 인생의 새로운 문턱으로 들어가는 것은 환절기에 독감 걸릴 때와 같이 매우 힘들다. 점차로 젊음은 사라져 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숙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가정이나 사회에서 권위가 약해지고 질병을 갖으며 생활 범위도 가정이나 친족으로 좁아지면서, 책임과 역할 등을 중년시대에 넘겨준다. 이때 권위를 주장하면 추종자나 측근이 없어지고 세대 간의 연결은 무너진다. 그들이 일
근래에 이 사회에는 모든 면에서 과학발달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특히 의약 부문의 발전과 사람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짐에 따라 시민의 건강 수준이 향상됨으로써, 노년층의 인구 증가로 노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1900년 유럽은 의료기술로 45세가 평균수명이었으나, 그 당시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남자 23세, 여자 24세로 30세도 넘기지 못하였다. 노인을 우리나라와 UN에서는 65세, 노동부에서는 55세, 연금법에서는 60세로 그 기준이 다르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노인성 만성 질환을 갖고 있으며 그중에서는 움직임 제한(mobility), 대소변 이상(micturition), 치매와 같은 정신 질환(mentation) 등을 앓고 있는 분이 많다. 사람들은 노인 시기란 문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인 풍경을 연상케 하는 겨울이 깊어가는 계절입니다. 이 계절은 가을의 모든 결실을 수확한 연후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시기라는 의미겠지요. 이러한 계절에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을 기념하는 것이지요. 성탄절은 세상 사람들이 공자님, 부처님, 마호메트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분인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매년 이 성탄절을 기념하면서 세상에 탄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강생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리고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매년 현재 진행형으로 탄생을 기념합니다. 다시 말해 이천년 전 태어나셨던 예수님이 아니라 올 해에도 태어나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