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들어 가는 연기 위로 검은 쇳가루 비가 내린다 새들은 진폐증에 걸려 헐거운 가속으로 땅에 곤두박질친다 4월의 사막과 4월의 묘지로 어지럽게 오가는 바그다드의 구름 들 `질 나쁜 연예`(2004) 끊임없이 일어나는 아프가니스탄의 분쟁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은 우려와 안타까움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종족간의 충돌, 혹은 종교 간의 분쟁, 아니 문명의 충돌이라 보는 편이 나을 지 모른다. 황폐한 사막에서 어지럽게 오가는 바그다드의 구름이 그렇거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슬아슬 살아가는 민중들의 핍진한 삶은 어떻겠는가. 암담하고 걱정스러움이 쉬 걷히지 않는다.
시
등록일 2011.02.16
게재일 2011-02-17
댓글 0
-
헬스장 목욕탕에서 반신욕(半身浴)이 만병통치라며 내 몸을 잡아끌던 선배가 갑작스런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죽음은 하나를 둘로 나누어 놓는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하늘의 명(命)인가 땅속 깊이 고개 숙이며 문상 마치고 탕 안으로 들어가려니 그의 반쪽이 나를 잡아끄는 듯하다 내 몸을 반으로 나누어 놓고도 물은 한 몸이 되어 따스하게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를 둘로 갈라놓는 죽음은 하늘이 내린 명(命)인지 모른다. 천년을 살아가는 학(鶴)이나, 영원의 시간을 건너가는 우주 속의 자연을 보면서 백년도 살지 못하는 유한 인생의 한계를 다시 느끼게 한다. 선배의 죽음을 통해 찰나요 순간인 우리의 허무한 한 생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깊디
시
등록일 2011.02.15
게재일 2011-02-16
댓글 0
-
홍보석!눈에 넣기도 아깝고목에 걸기도 아깝다고손가락에 끼기는 더 아깝다더냐몇 날 며칠가을을 온몸으로기름시름 앓더니만새콤달콤 차올리는 저 맛!담 너머 온석류한 알 남몰래 따서치마 속에 감추는 해거름분명, 보았지요미당의 시 `국화 옆에서`처럼 봄과 여름의 시련의 시간을 견딘 뒤 소담스럽고 고운 꽃을 피워내는 국화처럼 가을 하늘 아래 알알이 붉고 새콤달콤한 알갱이를 담뿍 품은 석류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경이로움으로 반짝이고 있다. 해거름 담 너머 온 석류 한 알을 남몰래 따서 치마 속에 감추고 싶은 것은 홍보석 한 말을 가슴에 담고 싶은 마음이리라.
시
등록일 2011.02.14
게재일 2011-02-15
댓글 0
-
흰 보시기 안에 짓찧어진 봉숭아 꽃잎 백반 넣어 질척하게 찧어진 봉숭아 꽃잎 조금치도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서 손톱의 딱딱한 심장부에 스미는 붉은 사랑 게릴라같이 한 걸음에 달려가는 그 흔쾌한 자신을 짓찧고, 조금도 자신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고운 빛깔로 다시 태어나는 봉숭아꽃잎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없을까. 아무 조건 없이, 소리 없이 사랑하는 이의 손톱 위에서 곱게 물들며 그의 가슴에 스며 쉬 지워지지 않는 사랑으로 스미는 그런 사랑이 정말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까.
시
등록일 2011.02.13
게재일 2011-02-14
댓글 0
-
젊은 봄날에 우리는 먼 외국에 도착했다 구식이 된 거리의 실내악 집 잃은 사람은 구라파로 가고 목련이 구름처럼 피어 기가 질리던 그 계시의 영상을 믿기로 했다 이사 온 나라는 달기만 해서 목련의 색깔은 더 엷어지고 시계 초침 소리는 더 빨라지고 나는 몸을 감추기 시작했다 단번에 칼처럼 매워지고 싶었지만 정신 나간 목련은 계속 피면서 지고 여름이 되기 전에 맨발이 되었다 나는 가벼운 물에 떠돌기 시작했다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이 시의 화자는 오랜 이민의 시간을 투시하려하고 있다. 생의 긴 시간을 목련의 피고 지고 여름으로 건너가는 것으로 표상하고 있다. 흔히 목련은 지고지순한 이미지로 상징되고있지만 이 시에서는
시
등록일 2011.02.09
게재일 2011-02-10
댓글 0
-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닷밑이 갈리는 해 다 진 어스름에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빛은 또 그리 멀어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별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실제 박재삼 시인은 남강 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시인이었다. 그의 많은 시들에 남강이 나타나는데 이 시 역시 그 중에 중요한 체험의 시가 아닐 수 없다. 필시 아버지 부재의 상태에서 가족의 생계를
시
등록일 2011.01.30
게재일 2011-01-31
댓글 0
-
그리움은 틈새에 있습니다 그대를 기다리는 틈새로 어느 날 문득, 꽃은 피어나고 나와 꽃 사이에 틈이 있습니다 꽃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리움의 틈새가 있습니다 그 속에 그대가 있습니다 즐거운 그대가 있습니다 나는 산허리에 피어나는 붉은 꽃들을 바라봅니다 그 속에 푸른 그대가 있습니다 그리운 그대가 있습니다 `거기 서 있는 사람 누구요`(2001) 시인은 개화의 순간에 그의 그리움을 투사하고 있다. 하여 그의 그리움을 더욱 깊고 절실하게 만들고 있다. 그의 시집에는 그리움의 시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의 그리움은 고요하면서도 어떤 예감으로 늘 일렁이는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그리움의 정서가 아닐 수 없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
시
등록일 2011.01.27
게재일 2011-01-28
댓글 0
-
새벽녘, 안개에 점령당한 들녘 휘감아 흘러드는 영일만 동북 끝 길 나룻배 뿌리내린 물 속의 집 뒤집어 보이지 않아도 늙은 바람 헛기침하듯 외두루미들 물결 위로 앉는다 검은 쇳바람에 쓸려 다니던 물고기 떼 갈대들이 멀리 보냈는가 형산강 하구엔 푸른 숭어 거슬러 신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그 옛날 형산강은 물류의 물길이 내륙 깊숙이 열려있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지금은 하구에서 배가 올라가지 못하지만 `부조나루`는 유명한 물류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 푸르고 줄기차게 도도한 흐름을 이어가는 형산의 강물. 철새들도 날아들고 사철 갈대들이 손을 흔드는 길을 따라 신라의 땅으로 가는 시인의 눈이 정겹다. 눈길 닿는 이 것 저 것에 시인은 따스한
시
등록일 2011.01.26
게재일 2011-01-27
댓글 0
-
이윽고 음악이 흐르면 향기를 따라 옛날로 가네 아파서 쪼그려 앉은 담장 아래 몸을 덥혀주던 햇살 종착역들을 다 헤아리며 서 있던 역사의 육중함 강가에 앉아 눈물을 씻어버리고 일어났던 발걸음 음악이 흐르면 어느 곳 어느 시간에나 흘러가보는 마음 촉촉 봄 이슬에 젖네 슬픔도 위로도 아닌 추억도 아닌 사랑의 확인 그때 그랬었지 음악이 흐르면 물줄기를 따라 건너가네 문득 객석에서 깨어나면 저편으로 사라지는 옷깃 홀로 남아 그때 그랬었지 음음음 마음속에 새로 열린 물길을 따라 돌아오네 음음음 슬픔도 모두 가고 사랑은 남아 새로이 음악이 시작되고 옛날은 오늘이 되고 음음음 음악의 선율은 사람을 추억 속으로 되돌려놓기도 하고 막막하게 닫혀있
시
등록일 2011.01.20
게재일 2011-01-21
댓글 0
-
한 겹 무게를 매단 봄바람에 마당 한켠 꽃들이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깨끗하게 저, 졌어요 내가 느낀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꽃나무가 느낀 바람은 뜨거웠는가 나는 아직 마음을 열지 못하고 동천(冬天)에서 헤매고 있어야 하는지 촛불 같은 장엄한 지혜는 아니라도 나 하나 태우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의 밥이라도 더 먹어야 하는지 어둠이 내리면 백기를 거두며 바람을 탓하는 건 아닌지 마음의 눈으로 살펴보고 싶은 이 환장한 봄밤 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면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체들이 기지개를 편다. 서서히 데워지는 대지 위에서 꽃나무가 느끼는 봄바람은 뜨거운 것이리라. 어디 꽃나무에 국한되랴. 봄바람은 만물의 회생을 재촉하는 생명의 바람이다. 그
시
등록일 2011.01.18
게재일 2011-01-19
댓글 0
-
오랜만의 나들이에 어머니는 밤내 가슴을 뒤척였다 몇 년 동안 옷장에 걸려 있던 투피스를 입기 위해 스타킹을 신는데 문득 어머니의 종아리에 마른 길이 생겼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조심해서 신어야겠다고 살살 잡아 올리지만 그새 스타킹엔 다시 새 줄이 늘어났다 스타킹에 자꾸만 길을 내는 어머니를 위해 나는 어머니의 발에 풋크림을 발라준다 풋크림을 바르고 맛사지를 해준다 그때마다 손바닥에 걸리는 어머니의 발바닥 어머니의 굳은 발바닥에 길을 내는 동안 어머니의 종아리살은 어느새 더욱더 마른 길이 되고 내 손도 그 길을 따라 마른 길이 되고 있었다 몇 켤레의 스타킹을 더 버리고서야 비로소 길 위의 길이 된 어머니의 발 그 샛길 위로 둥
시
등록일 2011.01.16
게재일 2011-01-17
댓글 0
-
세월이 이처럼 흘렀으니 그대를 잊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채석강 가에 나와 돌 하나 던집니다 강은 온몸으로 경련을 일으킵니다 상처가 너무 깊은 까닭입니다 상처가 너무 큰 까닭입니다 돌 하나가 떠서 물 위에 꽃 한 송이 그립니다 인제는 향기도 빛깔도 냄새도 없는 그것을 물꽃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채석강 가에 나와 돌 하나 던집니다 `파천무`(2001)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맺는 수많은 인연들과의 관계에서 기쁨과 행복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아픔과 상처를 남기고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인간은 미망과 번뇌에 묶여 정말 많은 죄업을 쌓으며 한 생을 건너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물꽃`은 상처가 피워내는 꽃이다. 그러나 그
시
등록일 2011.01.12
게재일 2011-01-13
댓글 0
-
굽은 등이 퉁기는 힘이다 수레를 밀며 나아가려는 건 먼저 웅크려야 하는 등의 힘이다 봄날, 거동 못하는 할멈 태우고 읍내 오일장 갔다오며 얼씨구나, 보따리에 꼬리를 내밀며 날아다니는 명태들 삐걱삐걱 구르는 바퀴소리에 도랑물 흘러가는 소리 더욱 넓어진다 등짝 근육같이 튀어나온 길을 박차며 끙! 하고 힘주자, 파득이는 잎새들 속엔 싹을 틔우며 새들 솟구치게 하는 것이다 뻐꾹새 울음소리가 내리막길 할아버지의 발뒤꿈치를 잡아 당겨 주었다 녹슬은 수레바퀴 축을 향해, 차르르르 봄 햇살이 착 감겨드는 生의 굴곡을 휘감아 도는, 등을 밀며 잘도 굴러가는 둥근 낮달 봄은 가만히 혹은 소리를 내면서 다가온다. 연두색 밝고 환
시
등록일 2011.01.11
게재일 2011-01-12
댓글 0
-
세상의 그 어느 것인들 두꺼운 자궁 속에 담겨 있던 씨알맹이 아니었으랴 그 아름답고 슬픈 벗어나기 뱀이 허물을 벗듯이 자유는 스스로와 우주를 파괴하는 자이면서도 지금보다 더 드높이 날 수 있는 날개 아닌가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1999) 세상 모든 근원이 자유에서가 아니라 구속에 있다라는 시인의 인식이 흥미롭다. 시인은 인간의 태어남 자체가 자유에서 구속이 아니라 그 역(逆)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이란 그 근원적 묶임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지금보다 드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벗어나기와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파괴라는 폭력적 과정을 그쳐야한다는 점에서 이 시의 제목이 `모순` 인 것이다.
시
등록일 2011.01.10
게재일 2011-01-11
댓글 0
-
탱자나무 흰 꽃, 투명한 햇살 속 마실 나온 금사리 할매 몇 분 하나같이 유모차를 밀고간다 누추와 남루조차 찬란했던 한 시절 깨금발로도 비호처럼 날았던 길을 펭귄 걸음으로 간다 잉걸불에 단련된 뼈조차 다음 생애 나비되고 싶다며 구멍 숭숭 뚫어 저리 다 내려놓고 항적을 그으며 유모차를 밀고 간다 펭귄 걸음으로 뒤뚱뒤뚱 걸어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 생의 끝자락에서 뒤돌아보면 시인의 말처럼 깨금발로도 비호처럼 날았던 건강하고 고왔던 청춘의 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누추와 남루마저 부끄럽지 않고 자신감과 자존으로 건너온 평생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노정의 길 위에 서 있다. 저들 늙고 병들어 삐걱거리는 육신으로 유
시
등록일 2011.01.09
게재일 2011-01-10
댓글 0
-
갯바람의 무리는 산죽(山竹)들이 언 살을 비벼내는 소리로 사각대었고 황혼은 황사처럼 잘게 부서져 곱게 쌓였다 양곡을 나와서 슬프다던 그대 숭숭 뚫린 그물 같은 함지에 와서야 편안한가 탁류에 떠밀리는 철새들 이제 곧 젖은 깃털을 털고 돌아갈 것이다 어쩌면 새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고 땅과 계절과 사람들만이 밀물에 떠밀릴진대 산을 이고 온 그대 여처럼 물속에 잠기고 싶은 충동 일지 않는가 --------(하략)-------- `옛날 녹천으로 갔다`(1999) 간신히 이 땅에 목숨 붙이고 살아가는 곤비한 사람들의 목숨을 바라보는 시안이 깊다. 죽음이 던져주는 빛에 이끌려 더욱 확연히 드러나는 삶의 정황이 아름답지도 그리 평화롭
시
등록일 2011.01.06
게재일 2011-01-07
댓글 0
-
차의 재료가 구지뽕이란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뽕나무란다 당뇨 든 형을 위해 한 곽 샀다 어릴 적 누에방에 누워 듣던 뽕잎 갉아먹던 소리 우수수, 어머니 한숨에 실려오던 그리운 빗소리 같은 더러는 옷에 붙어 학교까지 따라오곤 했던 누에 당뇨에 특효가 있다니 착착 비단 실꾸리 풀어 외풍 없는 집 한 채 지어라 고단한 우리 형 몸에 밀양에서 고등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고증식 시인의 시는 그냥 스쳐지나버리는 우리 삶의 자잔한 것들에 섬세한 시선으로 다가서곤 한다. 오래 잊혀졌던 것들이지만 아직도 가만히 살아 숨 쉬는 것들이나 사람들의 관심에 멀어진 것들에 말을 거는 섬세함을 가진 시인이다. 시인의 귀 속에는 어린
시
등록일 2011.01.05
게재일 2011-01-06
댓글 0
-
부산 처가에서 암 투병하던 아내가 숨졌다는 소식을 사내가 들었을 때, 외딴 섬 주변은 이미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김 양식장을 덮친 높은 파도, 작은 흑일도를 흔들고 뱃길마저 끊었다. 늘 눈앞에 보이던 완도가 눈물에 가려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드럼통만한 스티로폼을 뗏목으로 엮어 띄웠다. 제주 바다를 끼고 살았던 쉰 중반의 안간힘은 물살에 밀렸고 바람은 뗏목을 사정없이 먼 바다로 밀어냈다. 더 이상 동행할 수 없는 길이라오. 이제 그만 따라 오구려, 아내가 한 말을 울먹이며 토한 건 사내를 해경이 구조했을 때였다. 사랑은 채 머물지 못하고 사라지는 안개인 듯. 맞다. 이 시의 마지막 행처럼 사랑은 채 머물지 못하고 사라지는 안개인지도 모른다. 암으로 투병하는 아내가 숨졌다는 기막힌 부고를 받
시
등록일 2011.01.04
게재일 2011-01-05
댓글 0
-
지난 밤 무슨 생각을 굴리고 굴려 아침 풀잎 위에 이렇듯 영롱한 한 방울의 은유로 태어날까 고뇌였을까, 별빛 같은 슬픔의 살이며 뼈인 생명 한 알 누가 이리도 둥근 것을 낳았을까 고통은 원래 부드럽고 차가운 것은 아닐까 사랑은 짧은 절정, 숨소리 하나 스미지 못하는 순간의 보석 밤새 홀로 걸어와 무슨 말을 전하려고 아침 풀잎 위에 이렇듯 맑고 위태한 시간을 머금고 있는가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 한 방울에서 슬픔과 고통과 사랑을 읽어내는 시인의 눈이 맑고 밝다. 이슬이 그토록 깨끗하고 투명한 물방울 맺히기까지는 숱한 고뇌와 아픔의 과정이 필요하듯이 인간의 삶도 그런 시련과 아픔의 순간이 있어야 아름다운 성장과 결실이 따르지 않을까.
시
등록일 2011.01.02
게재일 2011-01-03
댓글 0
-
산은 안장을 얹은 말 나지막해도 있을 건 다 있지 펑퍼짐한 둔덕이며 봉긋한 장등 된비알 너머 마루금 이어지고 안부(鞍部)를 지나면 늘 새로 낯설어지더군 새치름한 허벅지께 쯤에서 훌쩍 길이 사라졌다고? 새로 난 도로가 강을 뛰어넘는 바람에 산허리 톡 끊어져 칡이며 까치수염 산딸줄기 보글보글 넘친 모양이네 굴참나무며 싸리 가는 가지 휘어 꺾으며 헤집어 보게 작년 가을 저문 길 나섰던 밤송이들이 오소리 발자국 같은 길을 괴춤에서 꺼내놓을 거야 묵은 길 을러메고 산등성에 올라서면 저만치 조붓한 팥배나무 그늘 아래 꾀꼬리버섯 몇 채 노란 울음을 웃고 그제야 하늘구멍 비리집고 오락 달겨드는 바다, 산은 고삐 풀려도 마구
시
등록일 2010.12.29
게재일 2010-12-3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