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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 마리가 뚫고 오르는 가을 하늘에서 갈잎 밟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고 길 밖으로 훨훨 떠나가겠네 바람아 붙잡지 마라! 구름아 따라오지 마라! 깨끗하고 투명한 가을 하늘로 새 한 마리 솟아오르고 있다. 청정무궁의 시공 속으로 날아가는 가을 새를 바라보면서 시인은 분탕스러운 현실을 들여다본다. 아니, 온갖 스트레스와 고민과 생각으로 꽉 찬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번뇌의 세상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려고 눈감고 귀 막고 길 밖으로 내려서서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저 자유로운 영혼의 새들처럼.
시
등록일 2014.11.10
게재일 201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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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을 스치면 진달래꽃이 되고 후박나무잎을 만나면 후박나무잎이 된다 사막 언덕을 넘을 때면 거대한 모래산이 되고 드넓은 바다를 건널 때면 거친 파도가 된다 보이지 않아도 가장 먼저 자신을 알리고 허공을 날 때면 없는 듯 있다 검고 긴 머리칼을 만나면 여인이 되고 단단한 이마를 스치면 남자가 된다 무엇을 만나면 그 무엇이 되고 그 어디를 스치면 그 어디가 되는 바람 바람은 내 안에 스미어 또 다른 나를 만든다 꽃을 만나면 꽃이 되고 나뭇잎을 만나면 나뭇잎이 되고 모래산이 되고 거친 파도가 되는 바람은 우주만물과 가장 잘 동화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이 시에 깔려있다. 바람이 그러하듯 우리네 인생들도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살아가길 소망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다.
시
등록일 2014.11.09
게재일 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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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깨어 가을이 살살 깃드는 소리와 겹겹이 옻칠 같은 어둠 속 산사 떨리는 종소리와 우주의 고귀한 생명들 살아 숨 쉬는 소리 하나로 듣고 있을까 시인은 어느 가을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 산사의 종소리를 듣고 있다. 그 신선한 공기를 뚫고 번져가는 종소리가 시인의 몸 속으로 들어와 세포 하나하나에 스미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종소리 뿐 아니라 자연, 우주의 만물들이 서로 소통하며 깨끗하고 경건한 생명감을 나누고 함께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리라.
시
등록일 2014.11.06
게재일 201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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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점을 찾아야 해 달려오는 봄의 속도에 맞춰 정확한 탄성을 내지를 때 꽃봉오리는 탁 피어오르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허공을 가르는 배트의 원심력 생의 딱 한 번 있을 법한 주어진 운과 만들어야 할 노동이 행복하게 만나는 점 그 어떤 떨림도 없이 손맛을 찾을 때 타구는 달콤함을 느끼며, 하염없이 센터를 향해 날아갈 예정이다 `스위트 스폿`이란 말은 달콤한 지점이라는 뜻인데 시인은 예를 들어 야구에서 공과 배트가 만나는 히트의 순간이 달콤한 지점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러한 접점의 순간은 그리 흔치 않고 잘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도 이러한 스위트 스폿은 우연과 필연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느날 우연히 찾아오는 것 아닐까. 시인은 간절히 그 달콤한 지점에 닿고자 소망하고 있다.
시
등록일 2014.11.05
게재일 20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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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작 않고 죽은 체하는 한 마리의 고요를 본다 공기들을 일순 긴장시키며 물질이 된 놈의 태연 한낮의 정적과 바람 햇살을 상처로 덮은 채 놈은 격렬하게 떨고 있을 것이다 (마음이 있다면 금 갔을 것이다) 몸뚱이 온통 귀로 만든 저 번지는 선들의 소용돌이 무정부주의자처럼 흔드는 섬모들 …후략… 시인은 배추벌레가 죽은 척하고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고 거기에 고여 있는, 아니 격렬하게 움직이는 고요를 발라내고 음미하고 있다. `내 발 앞의 배추벌레`라는 부재를 가진 이 시는 고요한 풍경 속의 사물들이 가만히 죽어있거나 정체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섬세한 시인의 인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시
등록일 2014.11.04
게재일 201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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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진창진입니다 아니 진진입니다 선생님께서 이름이 시와 걸맞지않다고 가운데 `창` 자를 떼곤 두 자 이름으로 지어주셨습니다 진진, 군침이 도는, 약간 중국 냄새가 나는, 말랑말랑한 내 이름 속에는 말을 다듬어 말의 오두막을 짓고 심심하면 전설 속의 제주 미인 자청비를 불러 연애도 하는 선생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클레오파트라나 양귀비가 기웃대는가 하면, 어떤 날은 바가지를 긁어대는 뺑덕어멈이 있고 어떤 날은 털북숭이 사내가 몰래 들어와 수작을 부리고 자신의 이름에 얽힌 조그만 이야기와 시인의 느낌을 적은 이 시는 이름이 갖는 기호성과 그 속에 담긴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시를 적은 진진이라는 시인은 여자다. 성격이 거칠고 고집 센 남자같은 느낌도 드는 진창진이라는 원래의 이름보다는
시
등록일 2014.11.03
게재일 201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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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벽 무너지고 덩쿨풀 우거진 폐가 사람살이 떠나 풍화에 몸 맡긴 집 그 세월의 무게 못 견뎌 문짝 하나가 떨어져도, 제 팔 하나 뚝 떼어 던져주고 홀로 뒹구는 장독대의 빈 항아리, 마치 소신공양하듯 껴안고 등신불이 되는 풀들, 그렇게 풀들의 집으로 고요히 돌아가고 있는 폐가 그 폐가 앞에 서면 마치 풀들이, 설산 고행을 하듯 모든 길 잃은 것들 데리고 귀향하는 것 같을 때 있다 풀의 집은 풀이듯 데려와, 제 살의 흰죽 떠먹이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잡풀들이 우거진 폐가를 지나며 시인은 선승의 묵언수행을 떠올리고 있다. 넝쿨풀은 폐가를 풀의 집으로 데려다주는 부처다. 침묵의 극점에서 남아있는 것들 하나하나 다 사라지고 사람의 기척마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설산에서 고행하는 부처처럼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 가만
시
등록일 2014.11.02
게재일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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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길을 누가 제일 잘 달리는가 중심 밖으로 기울어진 여섯 개의 트랙 선두주자의 속도를 방해하는 바람을 막기 위해 그는 앞에서 달린다 어디로 파고들 것인가 모든 기회는 그의 등 뒤에 있다 골인지점을 향해 속도를 내야하는 마지막 한 바퀴 허벅지의 근육들 팽팽해지는 찰나 그는 재빨리 트랙 밖으로 사라진다 수없이 달렸지만 그에겐 기록이 없다 빗발치는 야유마저도 그의 것이 아니다 자전거는 삼백 개의 부품으로 달리고 사람은 단 하나의 외로움으로 달린다 시인은 기울어진 길을 가장 달 달리는 바람막이인 `경륜 선두유도원`을 바라보면서 승리를 향해 파고들 모든 기회를 박탈당하고 마지막 남은 한 바퀴를 남겨두고 트랙 밖으로 사라져버리는, 그 절망적 현실을 받아들이는 운명적인 외로움이랄까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시
등록일 2014.10.30
게재일 20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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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갈라진 자리마다 푸른 물줄기가 새어 나온다 물줄기는 분수처럼 솟구쳐 포물선을 그리지만 땅바닥에 뚝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쉬지 않고 흔들려도 떨어지지는 않는다 포물선의 궤적을 따라 출렁거리는 푸른 물이 빳빳하게 날을 세운다 약한 바람에도 눕고 강한 바람에도 일어난다 포물선은 길고 넓게 자라난다 풀줄기가 굵어지는 그만큼 콘크리트는 더 벌어진다 연하고 가느다란 풀뿌리들이 콘크리트 속에 빨대처럼 박히자 커다란 돌덩어리가 쭉쭉 콜라처럼 빨려 들어간다 시인은 연약한 힘이지만 끝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풀을 인용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약한 바람에도 눕고 강한 바람에도 일어나는 풀의 이 절묘한 힘을 우리는 이 땅의 민초들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하고 가느다란 풀뿌리가 커다란 돌덩어
시
등록일 2014.10.29
게재일 20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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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송 잔가지들은 햇빛 받으러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 넘치는 햇살만 줄기 타고 번져온다 벌겋게 까진 산길엔 통나무집 한 채 손가락으로 머리 빗는 할머니 장성한 자식들 도시에 나가 있고 소리 없이 일어나는 개 한 마리 허스키, 눈썰매에 디프테리아 항혈청 싣고 혹한 속 멀고 먼 설원을 달려 놈 아이들을 구해낸 시베리안 허스키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으니 부드럽게 목을 들어올린다 털 속의 털 보얗게 드러날 때 푸른 눈빛에 스쳐가는 눈보라 눈보라 속을 헤쳐 나와 할머니 옆에 기대앉는 허스키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미소로 허스키의 뭉친 털을 벗겨주고 있다 낯선 러시아 땅에서 느낀 금강송과 통나무집이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거기에 스며있는 할머니의 동작과 미소에서 느끼는 생의 따스함을 정갈한 언어로 풀어내고
시
등록일 2014.10.27
게재일 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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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차에 헌 자전거가 한 대 실려간다 끈을 문 트렁크 뚜껑이 질겅질겅 자전거를 씹는 형국이다 불가사리다, 자전거에 감긴 길 길이 길 잡아먹는 것 본다 경부고속도로 나는 조수석에 기대앉아 지그시 되새김질에 빠진 하마다. 청춘…. 제멋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아, 잘 씹지도 않고 삼킨 길이 지금 막힌 길이 저 아가리에 깜깜 오래 질기다 재미난 장면 하나를 소개하면서 시인은 청춘의 시간들 그 아득히 지나가버린 시간들에 대해 추억하고 있다. 제멋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그 뜨거웠던 젊음의 시간들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다. 목표도 없이 무작정 내달린 길, 맹목적인 열정으로 달려갔던 청춘의 길, 한번도 뻥 뚫린 적이 없는 감감하게 막힌 길에 대한 서운하고 아쉬웠던 시간들에 대해 뒤돌아보고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길들이 있었다.
시
등록일 2014.10.26
게재일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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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머니를 파먹고 있다 고향집 뒤란 그녀의 간장 독 속에는 알금알금한 망사주머니인지 삼베주머니인지 어머니의 기술이 숨겨져 있는 것인데 그것이 맑은 장을 뜨기 위한 필터인지 간을 조절하는 장치인지 모를 일이나 그녀에게는 중요한 덫이고 간을 재는 계기판 같은 것이리라 허연 매를 걷어내면 꼴삭하게 묵은 간장이 깊은데 거기 어머니의 길이 끝도 없이 무너져 내려 짭쪼롬하게 웅크린 그녀의 통로가 있다 싱거운 세상의 길 그녀를 파먹으며 이만큼 왔다 고향집 뒤란에 아직도 어머니가 거느리는 독이 몇 있다. 간장과 된장, 맛깔스런 빠알간 고추장이 꼴삭하게 담겨져 있는 장독대에서 화자가 느끼는 어머니의 한 생과 사랑과 정성을 그려내는 시다. 오랫동안 장을 담아놓고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간장독에는 어머니의 인고의
시
등록일 2014.10.23
게재일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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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늘 꿈을 꾸는 천상의 여인이었지, 이슬비 젖은 음계 연주하는 꽃이었어, 발목 흰 아이들을 품으며 수채화도 그렸지 물안개 고운 날은 꽃잎 속에 눈을 뜨고, 난해한 신의 지문 마흔 아홉을 인화하면, 물보다 진한 그리움이 연꽃으로 피었어 천상의 여인이면서 이슬비 같은 음계를 연주하는 여인, 지상의 꽃이기도 한 여인이 시인이 말하는 항아다. 실존적 인간이면서 그녀는 우주요 자연이다. 아름다운 여성성을 간직한 여인이다. 시인의 다른 시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이 항아라는 여인은 참으로 신성하고 아름다운 미의 표상이며 존재의 실상이다. 저만치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운 눈빛의 항아가 있다. 그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4.10.22
게재일 20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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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풍경을 흔들어 댑니다 풍경 소리는 하늘 아래 퍼져 나갑니다 그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속마음의 그윽한 적막을 알 리 없습니다 바람은 끊임없이 나를 흔듭니다 흔들릴수록 자꾸만 어두워져 버립니다 어둡고 아플수록 풍경은 맑고 밝은 소리를 길어 나릅니다 비워도 비워 내도 채워지는 나는 아픔과 어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두워질수록 명징하게 울리는 풍경은 아마도 모든 걸 다 비워 내서 그런가 봅니다 풍경소리를 들으며 시인은 깊은 사색에 든다. 풍경은 바람에 흔들릴 때 그윽하고 맑은 소리를 내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은 왜 맑아지기보다 어두워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이런 의문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의식하고 반성하는 겸허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깨
시
등록일 2014.10.21
게재일 201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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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똥 뒤섞이는 봄 동쪽 사막 기차역이 그림자 수건을 펄럭인다 어린 손녀와 주전부리 좌판을 잡고 선 뭉흐바트르 검은 두루마기 까마귀떼는 철둑길 모랫길 휘도는데 그대 무얼 껴입은 세월이었나 1950년 평양에서 기차로 흘러든 삼백 아이 더러 돌아가고 떠돌다 묻히고 어느새 꾀꼬리눈썹이 웃자란 채 그대 말도 이름도 모르는 설렁거스 오늘은 무슨 인사로 내게 거품진 슬픔 한 병을 그저 건네는가 몽골땅에서 시인은 우리의 아픈 현대사와 대면하고 있다. 1950년 아픈 반도의 역사를 등지고 흘러든 조선 사람들의 아픔과 비애가 시 전반에 깔려있다. 식민체험과 전쟁과 독재로 얼룩진 현대사가 곳곳에 유이민을 낳았지만 아무도 그들의 그 불행한 삶에 대해 책임지거나 그들이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시인의 가슴 아픈 현실인식이
시
등록일 2014.10.20
게재일 20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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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김해평야에서 잘 자란 모 한 판 집 옥상에 옮겨 심어놓고 욕심이 과했던가 보다 아침마다 물 대고 쓰다듬고 말을 붙이는데 벼는 가을이 오기도 전에 비실비실 말라가고 있었다 그 가녀린 벼에 무슨 힘이 있다고 제 몸 하나 버티기도 힘든 놈 모가지에 매달려 나는 마구 무엇인가를 애원하고 있었던가 보다 어서어서 커서 쑥쑥 밥이 되어 걸어나가라고 늦은 봄에서 여름까지 줄기차게 물 대고 말 시킨 죄 날마다 쇳덩어리 하나씩 가슴에 안긴 꼴이었을까 도시의 찌든 어둠과 불빛을 비료로 받아먹고 벼는 가을이 오기도 전에 하얗게 머리가 세고 있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화자의 오랜 가슴앓이는 생명의 본질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도시문명의 피로, 도시의 흉년임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 시의 흥미로운 부분은 다양한 삶의 모
시
등록일 2014.10.19
게재일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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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매화꽃이 올 적에 그걸 맞느라 밤새 조마조마하다 나는 한 말을 내어놓는다 이제 오느냐, 아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나는 또 한 말을 내어놓는다 이제 오느냐 말할수록 맨발 바람으로 멀리 나아가는 말 얼금얼금 엮었으나 울어 깊은 구럭 같은 말 뜨거운 송아지를 여남은 마리쯤 받아낸 내 아버지에게 배냇적부터 배운 토속적인 시인의 언어들에는 그 시어들이 가지는 푸근하고 여유로운 맛스러움 외에 강한 시인의 시정신이 숨어있다. 봄을 기다리는 늦겨울 어느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매화의 개화를 기다리며 시인이 툭 던지는 말 한 마디, `이제 오느냐` 이 말 속에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반가움과 함께 새로운 한 시간들이 열림에 대한 경이로움이 나타나있다. 모든 인간의 일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
시
등록일 2014.10.16
게재일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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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이 며칠 새 허리까지 깎여나가자, 무연분묘 한 쌍 허공에 덩그렇게 떠올랐다. 제상에 나란히 오른 고봉밥 같기도 했고, 오래전 떠난 애인의 젖무덤이거나, 사막 가운데 우뚝 선 낙타 등 같았다. 저 아슬아슬한 허공 무덤은 생이 한바탕 부유(浮游)라는 걸 보여준다. 저 무덤 객잔은 원래 거기 있던 거였지만, 모래먼지처럼 떠올라 공중 사원(寺院)이 되었다 `생이 한바탕 부유`라는 부분에서 이 시의 중심을 본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바탕을 이루는 이 시는 변화무쌍한 우리의 삶이 어느 순간도 멈춰있지 못하고 흐르고 있으며, 그 수많은 고통의 순간들을 껴안은 채 공중무덤에 들어 가버리는 것이 우리네 한 생이 아닌가 하는 시인의 통찰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4.10.15
게재일 201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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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 마음의 마당 끝에는 꽃밭이 있다 내가 산맥을 먼저 보고 꽃밭을 보았다면 꽃밭은 작고 시시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꽃밭을 보고 앵두나무와 두타산을 보았기 때문에 산 너머 하늘이 푸르고 싱싱하게 보였다 꽃밭을 보고 살구꽃 향기를 알게 되고 연분홍 그 향기를 따라가다 강물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유장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시인은 늘 삶의 뜨거운 현장에서 비켜서 있지 않았다. 그의 시 `담쟁이`, `흔들리면서 피는 꽃`에 그러한 시인의 치열한 현실인식이 잘 나타나있다. `향기를 따라가다 강물을 만났기 때문에`에서 읽을 수 있듯이 부조화와 모순, 불구의 세상에 대해 조급하지 않고 목소리를 필요 이상으로 서둘러 높이지 않으면서 유장한 강물 같은 정신을 견지하면서 시를 써온 시인의 시대정신을 엿
시
등록일 2014.10.14
게재일 201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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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하기를 거친 밥에 맹물 마시고 팔을 굽혀서 그것을 베개로 삼더라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으니 의롭지 않은 부귀는 내게 뜬구름 같도다 흑석동68-15번지에서 번영14길 8로 바뀌는 순간 나는 노숙자가 되었다 자본주의적 일상에서 무색한 말장난이 된 `경전의 언어`와 그 경전의 언어에 흡사한 상황을 거론함으로써 시인은 이 시대가 경전이 존재할 수 없는 불구의 시대임을 비난하고 있다. 말장난이 돼버린 경전, 옳고 그름, 정의, 연대 등 한 사회의 윤리적 가치관이 총체적으로 흔들려 버린 것에 대한 시인의 비애가 바탕에 깔려있는 시다.
시
등록일 2014.10.13
게재일 20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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