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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지금 보름달을 순산 중이다 물 위로 길게 뻗은 금빛 항로가 눈부시다 낮 동안의 부끄러운 것들은 숨어들었다 물소리 베고 누워 눈만 껌뻑이는, 시간의 끈을 놓아버린 폐선 한 척이 결빙된 자신의 꿈보다 흘려보내지 못한 말들을 아파하며 몸 뒤척이는 곳에서 나는 바다로 인해 끝없는 패배를 배운다 달빛이 바다를 삼키는 생명의 대서사시 앞에서 물결 위로 금빛 길을 열어주는 보름달. 분탕스러웠던 한낮의 시간들 그 부끄러웠던 것들이 그 길 위에 스미고 폐선 한 척이 가슴 가득 품은 아픈 시간의 흔적들로 뒤척이는 송라바다에서 시인은 이만큼 세상을 뜨겁게 건넌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다. 그 성찰을 통해 겸허하게, 끝없이 패배
시
등록일 2014.12.16
게재일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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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神舞)에 취한 저 여자, 사뿐사뿐 날아오르더니 어느새 천하를 호령하여 발아래 들어앉히네 산 자들의 한과 망자들이 혼, 천지사방 신기(神氣), 모두 불러들여 젖빛 버선발로 자분자분 내통하네 장군칼 양손에 쥐고 가슴 쪽 울화 쓸어올리며 솟구칠 땐 오, 저 여자의 허리, 저승의 곡선으로 팽팽히 휘어지네. 작두를 타는 무녀의 신무를 보고 쓴 시다. 작두 위에 올라선다는 것은 두려움을 잊은 것이리라. 신무에 취한 여자는 아무리 작두의 칼날 위를 걸어다녀도 베이지 않는다. 그 칼날은 이미 칼날이 아니고 떠나지 않은 자의 길이, 오르지 않은 자의 날개, 취기에 젖지 않은 자의 술, 직선을 잊은 자의 곡선이다. 구도란 길을 떠나는 것이고 하늘을 오르는 것이고, 취하는 것이고, 직선을 기억하는 일이다.
시
등록일 2014.12.15
게재일 201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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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나무 심는 날 아침, 전봇대 맨 위 전깃줄에서 목청 좋게 노래하던 새, 내 발자국 낌새 알고 옆집 전봇대로 휘익 날아간다. 아침마다 찾아와 노래를 불러대는 저 손님은 누굴까? 이튿날 아침에도 살포시 문 열고 노래를 엿듣는데 어찌 알고는 도망간다. 대체 누굴까? 며칠 인터넷을 뒤진다. 한국의 새, 멀리서 봐 놓으니 생긴 건 분명치 않아, 새소리 텃새 소리 듣다듣다 비슷한 걸 찾아내었다. 휘-익, 휘파람새. 아내한테 자랑을 했더니, 미숙이가 휘파람새라 그러대요, 나무 심는 날 다녀간 후배가. 어떻게 알았대? 그냥 들어보니 휘파람을 불더래요. 휘파람 소리를 내며 생의 사소한 현장 혹은 풍경 속에 날아오고 울고 날아가버리는 새의 이름을 궁금해 했다. 그러나 그 새가 한국의 새인지, 멀리서 봐 놓으니 생김새도
시
등록일 2014.12.14
게재일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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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자기 앞의 생을 가위질했던 아버지 극약처방이 필요했던 그리고 끈으로 다시 묶어 봉합해버린,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비밀을 어깨에 높이 떠메고 나무들이 점차 어둠의 모래 구덩이 속으로 꺼져 들어간다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 독한 몸을 지우고 남은 형해, 앙상한 뼈가 사라져가는 빛 속에 다가오는 어둠 속에 검게 인화되어 드러난다 삶의 격랑과 격정을 뜨거운 것이라 명하면서 그의 시는 온전히 그 뜨거움에게로 향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빛과 어둠, 소멸과 현현이 교차하는 이 시는 뜨거운 것의 차가운 존재라는 역설을 품고 있다, 곱씹어 보고 깊이 생각해보면 깊은 의미의 삶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
등록일 2014.12.11
게재일 201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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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지나가려 하니 쓸쓸하지 가을 하늘아? 난 예 논두렁에서 너처럼 저물 순 없겠다 순이 고무신 속 들국화를 보겠구나 꽃 주위 붕붕거리는 멍청이 꿀벌과 저 방죽 위 억새꽃으로 난 어딜 좀 다녀와야겠다 가을의 쓸쓸함과 가을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계절의 길목은 늘 쓸쓸한 정서를 거느리고 있다. 그 스산함이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게도 한다. 들국화 피어 고운 길 늦은 꿀벌들의 잉잉거림과 하얗게 길 떠나는 뚝방 위의 억새꽃잎들…. 어딜 좀 휘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은 비단 시인에게 뿐만은 아닐 것이다.
시
등록일 2014.12.10
게재일 201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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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로 시작되는 문장을 쓰지 않기 위해 새벽마다 달력의 날짜를 지웠다 길은 온몸을 꼬며 하늘로 기어가고 벌판을 지우는 눈보라 빈집의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 뿌리에 창을 감추지 않고 어떻게 잠들 수 있겠는가 시인은 그의 불행에 반전은 없을거라고 믿고 있다. 그가 어느날 문득 그러나로 문장을 시작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의 근기가 약해진 까닭일 것이다. 그가 세상을 내다보는 진정한 창은 하늘을 향한 잎사귀나 꽃에 있지 않고 흑암을 향해 뻗어내리는 뿌리에 있을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내용 없는 희망은 불행을 대신할 수 없다라는 시인의 확신을 읽을 수 있는 시이다.
시
등록일 2014.12.09
게재일 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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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 집을 떠나면서 문에다 박은 커다란 못이 자라나 집 주위의 나무들을 못 박고 하늘의 별에다 못질을 하고 내 살던 옛집을 생각할 때마다 그 집과 나는 서로 허물어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죽음 쪽으로 허물어지고 나는 사랑 쪽으로 무너져 나오고 시인에게 집은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은 곳이자 불행했던 유년기를 환기시켜주는 매체이지만 집이라는 끈끈한 기억에 이끌리고 있는 이 시는 추억을 회상하는 힘에 의해 한껏 아름다워져 있다. 추억이란 마음이 가난해질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보화다. 시인은 이러한 보화를 살짝 꺼내보고 있다.
시
등록일 2014.12.08
게재일 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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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득이는 날것들에 핀을 댄다 금세 새몸으로 몸 바꾸어 날아오르는 날것들의 퍼득임 도무지 저 퍼득이는 날것들의 퍼득임을 온전히 날것으로 표본할 수 없다 뒤 바뀌는 꿈처럼 밤새 표본되는 저 퍼득이는 날것들이 앵글에 찍힌 퍼득임 표본상자에 빼곡이 들어차는 표본들 표본실을 채우는 탈피의 흔적들 일찍이 체 안에서 퍼득이는 저 수만 마리 날것들의 퍼득임을 온전히 날것으로 표본한 위대한 표본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시인은 그 어떤 표본책도 날것들의 퍼득임을 온전히 표본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날것들의 퍼득임, 그 자체는 동태적인 것이지 결코 정태적으로 묶어두거나 가두지 못한다는 인식이 이 시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제 안에서 퍼득이는 저 수만 마리 날것들의 퍼득임을 온전한 물질성으로 표본할 수 있는 위대한 표
시
등록일 2014.12.07
게재일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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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면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 간절히 원하는 것은 반대로 또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생각만을 줄곧 해왔다 지금의 것은 두고 아주 오래된 별에게 말을 걸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들만 기억하고 서술하기로 한다 번민을 내려놓고 신생아처럼 먹고 자고 눈 마주치면 까르르 웃는다 웃다가 싱거우면 우는 게 일이었다 뜻없는 옹알이뿐 분간이나 분별도 생각이 나눠지지 않았으므로 몸은 가벼워지는가 깡충 뛰면 미루나무에 뭉게구름으로 나는 걸린다 생의 본질이 어쩌면 상처와 고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이 시는 시작한다. 우리네 삶이 고통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 상처와 고통에서 이기고 벗어나기 위해 아주 오래된 별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고통의 실체에 대한 철저한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가
시
등록일 2014.12.04
게재일 20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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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다 밤새 산비알을 쓸던 바람은 날이 밝자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바람은 덧없다 들어앉을 몸을 얻으려고 산죽을 바닥까지 휘어놓고도 들어앉는 삶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깊은 잠 속의 흐느낌처럼 소리로만 육체를 드러낸다 당신은 시김새 없이도 한 생을 이루었다 저 바람처럼 어쩌면 몸 없이 회오리치는 것이 생일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소리로 인해 일어서고 드높아진 영마루 같다 바람이 누웠다 소리로 와서 소리 없이 사라질 줄 아는 높새바람이었다 들어앉을 몸을 얻으려고 산죽을 바닥까지 휘어놓고도, 들어앉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바람, 오로지 소리로만 육체를 드러내는 바람, 시김새 없이도 한 생을 이루는 바람, 소리로 와서 소리없이 사라지는 높새바람, 그런 바람 같은 존재를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깊은
시
등록일 2014.12.03
게재일 201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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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아무개가 무슨 문학상을 탔다는 기사를 보고 괜시리 해묵은 내 시집을 꺼내 읽어 보다가 담배를 피우러 베란다로 나갔다 어둠 속에 자동차들이 불빛들이 휘황하다 저 불빛들처럼 세상을 탐하는 벌레들이 내 안의 구석을 열 지어 기어가고 있을 것이다 용속(庸俗)한 마음으로 노래한 것들은 지금껏 어느 책갈피에서 불편한 잠을 자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두렵다 시(詩)와 함께한 세월만으로 한세상 버티겠다던 그 마음 그 어디쯤 혹시 선이 있다면 위선이다 단풍은 제 아름다움에 취해 속고 나는 나에 묻혀 속을 뿐이다 동료 시인의 수상 소식에 자신의 시에 대한, 문학에 대한 자세를 돌아보는 시인의 자기성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욕심을 버리고 오직 시에 대한 열정으로 시 창작에 몰두해온 자신의 글쓰기가 혹여 그 순수성이 더럽혀
시
등록일 2014.12.02
게재일 201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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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 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으로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어느 늦은 가을날 시인의 하루를 쓰고 있다. 생활의 깊숙이 파고드는 가을의 부분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결코 그냥 스치지 않는 섬세한 시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가을 꽃이며 가을 벌레며, 듬성하게 열매를 달고 선 감나무며, 추녀 끝으로 날아가는 안행(雁行)이며, 혼자 먹는 차가운 가을 밥이며… 이런 것들에 하
시
등록일 2014.12.01
게재일 201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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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숲엔 몇 십 년 묵은 아름드리 상수리나무가 모여 산다 하나같이 허리께에 커다란 웅덩이 같은 상처가 있다 그 옛날 마을 사람들 떡메를 지고 와서 나무둥치를 쳐 올려 상수리를 땄기 때문이다 나무를 쳐댈 때마다 나무는 굵은 눈물 같은 상수리를 한 소쿠리씩 쏟아 냈을 것이다 벗겨진 제 상처를 안으로 오그리며 나무는 하늘로 더 멀리 가지를 뻗었을 것인데 그 가지 끝에 새들이 둥지를 틀었다 썩어가는 둥치 속으론 버섯이 자라고 청개구리가 기어들고 또 풍뎅이가 알을 깐다 내가 다가갈 때마다 나무는 무슨 이야기 같은 것 혹은 노래 같은 것을 이것들의 입으로 날갯짓으로 들려주곤 하는데 내 살아갈 길을 넌지시 들려주는 것도 같은데 한 계절도 아니고 한 해로도 끝나지 않아서 아예 이 숲에 살림을 차려서 모시고도 싶다 마
시
등록일 2014.11.30
게재일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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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이 마음을 비우고 있다 나도 산으로 간다 산 어디쯤 앉으니 으악새가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바스락 바스락 나도 으악새를 바라본다 겨울 한 가운데 옷을 벗고 지나간다 찬 바람이 내 아랫도리를 휙, 지나간다 산이 휙, 지나간다 생(生)이 휙. 겨울산에서 으악새를 보고있는 시인은 으악새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추위 속에 옷을 벗고 선 겨울산도, 나무들도, 추위에 떨면서 그들을 보고 있는 시인 자신도 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겨울바람처럼 휙휙 지나가버리는 순간적인 존재들이다. 더더욱 그런 순간에 얹혀가는 우리네 인생은 더더욱 허망하기 짝이없는 존재들이다 삶에 대한 성찰이 깊은 시이다.
시
등록일 2014.11.27
게재일 201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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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쭉 뻗어 검지를 하늘 가운데 세웠더니 잠자리가 앉았습니다 내 손가락이 잠자리 쉼터가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었습니다 내가 나뭇가지가 되었습니다 한 때 필자와 같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 시인은 지금은 경남 산청에 있는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초가을 하늘은 한 점 구름도 없는 맑고 붉게 물든 서쪽 하늘가에 고추잠자리 떼가 날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손가락을 내밀어 나뭇가지처럼 그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시인의 모습은 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 동화돼가는 시인의 마음이 그려져 있는 풍경 하나를 본다.
시
등록일 2014.11.26
게재일 201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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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샅길을 따라 돌아가는 물동이가 있다 철 지난 유행가 가락에 맞춰 찰랑찰랑 넘칠 듯 풋내 나는 순정을 담고 지는 벚꽃 잎으로 온몸을 가리우고 오는 옆집 강아지의 그림자에 속치마 잘근잘근 끌다가 흙담에 기대어 휴우, 눈 흘기는 볼이 발그레한 그 여인을 보러 오늘도 나는 머리를 깎으러 왔다 순박한 사람의 정이 넘치는 곳. 아득한 시간 속의 고향 이발소를 떠올리며 시인의 어린 시절의 순정한 장소인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오래된 기억 속의 순수한 풍경이 우리들 가슴 가슴마다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점점 퇴색되어가는 시간의 풍경들을 들추고 깨끗한 그리움으로 꺼내보는 흑백사진 같은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순수했던 시간 속의 서사 혹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오래오래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4.11.24
게재일 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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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 긴 길 내려서는 하프 멘 올페처럼 어둔 하늘 길을 내어 걸어가는 반달처럼 사랑에 맨몸 부딪는 언 호수의 쇄빙선(碎氷船) 알몸인 영혼을 스스로 당겨 안고 햇빛도 보이기 전 스러지는 유리디케 한 계단 남은 절망도 마다않고 잡는 손 시인이 바라고 그려보는 참다운 시인의 모습은 사랑에 대한 남다른 생각과 실천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온몸으로 사랑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하고 남은 절망도 마다않고 잡는 손을 가진 것이 시인이어야한다는 것이다. 절망도 끝에 가서는 친구로 연인으로 신앙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것이 사랑이고, 그 사랑을 간직한 것이 시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4.11.23
게재일 201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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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한테 맞을 때는 빨리달아나는 것이 효도란다 나는 왜 그 열 살에서 서른다섯이 넘도록 마당 한가운데 이렇게 맞고만 서 있는가 어린 시절 부모님한테 꾸중을 듣고 매를 맞을 때 보면 안다. 어떤 아이는 매 맞기도 전에 도망해서 그 자리를 모면하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끝까지 순종하며 매를 맞고 서 있는 아이가 있다. 어리석게도 그냥 매를 맞으며 그 매를 다 감당하고 서 있는 것은 시인의 말처럼 효도가 아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어느 쯤에서 달아나서 매를 멈추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시인은 다른 측면에서 감동을 주고 있다. 시인은 서른 다섯이 넘도록 다소곳이 부모님의 질책과 타이름에 순종하며 살아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 아름다운 순종이고 효도가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4.11.20
게재일 201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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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징검돌을 폴짝폴짝 건너가듯 잘 있거라 손 흔들며 떠나가던 너의 모습 내 그냥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다 놓쳤다 정지해 있는 듯한 수면 위로 납작한 돌멩이를 수면과 평행지게 던지면 미끄러지듯 나아가며 자잔히 물을 튀기며 아득히 멀어져가는 물수제비. 징검돌을 폴짝이며 건너가 버린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하며 아련히 수면을 응시하는 시인의 마음 가까이 가본다. 저만치 미끄러져가서는 종작없이 사라져버린 돌멩이처럼 잘 있거라 손 흔들며 멀어져가버린 사람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아린 마음이 함께 느껴지는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4.11.19
게재일 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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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비에 젖는 비석처럼 냉정하게 세계를 바라보는 눈 비 다녀간 강물처럼 불어난 생의 슬픔을 글썽대는 눈 풍경 담은 호수처럼 깊어지는 눈 사금파리로 창 긁는 소리 연신 뱉어내는 연인의 눈빛 앞에서 바람 만난 촛불로 일렁대는 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고 숯불처럼 맹렬하게 적의로 불타는 눈 냉정함과 글썽임의 공존, 일렁임과 적의로 불타는 시선의 깊이가 시인으로 하여금 세계와 생의 슬픔과 풍경과 연인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해주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시선을 통해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글썽이는 따스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게 지금까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인의 안목이고 시정신인 것이다.
시
등록일 2014.11.18
게재일 20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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