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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평생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며 시를 쓰신 시인의 치열한 시대정신이 잘 나타난 시다. 오지 말라고 막아도 오는 것이 자연의 순환이듯이 오랜 억압과 굴레에 갇힌 민중들에게 기어이 자유와 해방의 민주주의는 오고만다는 신념이
시
등록일 2015.04.06
게재일 201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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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네들만 모여 앉은 오후 세시의 탑골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악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마시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머리를 매만져주며 그 영감탱이 꼬리를 치잖아? 징그러바서 높은 음표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징 그 러 바 서거죽이 해진 분첩을 열어 코티분을 꼭꼭 찍어바른다 봄날 오후 세시 탑골공원이 꽃잎을 찍어놓은 젖유리창에 어룽어룽 젊은 나도 백여시처럼 클클 웃는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오래도록 듣는다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싶다과감하고 실감나게 여성성을 표현해온 시인이 그려낸 탑골공원의 어느 봄날 오후의 풍경이 참 정겹고 재밌게 읽혀진다. 늙은 할마시라고 표현되는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노인네의 행동과 심리를 활기차고 익살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시
등록일 2015.04.05
게재일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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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안의 사과나무에 꽃이 피었다 알알이 열매 매달린 가을이건만 하얗게 사과꽃이 새로 일어난다 어머니와 고모님이 나란히 서서 길조다, 흉조다 하며 수선을 피운다 사과나무에 꽃이 펴도 걱정인가 내 얼굴은 왜 쳐다보는가 가을에 난데없이 사과꽃이 피었다. 이러한 괴이한 일을 두고 가족들은 길조니 흉조니 말이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시인의 얼굴을 쳐다보며 뭔가 불길한 일들을 읽었는지 모른다. 시골 김포에 처박혀 돈도 안되는 시를 쓴다는 그를 쳐다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그리 밝은 것 만은 아닐 것이다. 박철은 그렇게 쓸쓸함과 고통 속에서 시를 써오고 있다.
시
등록일 2015.04.02
게재일 201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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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툭 떨어지는 빗방울 떡잎 휘청휘청케 하고 하얀 발목에 흙탕물 뒤집어씌운다 세상 그리 호락호락치 않다는 걸 미리 일러주듯 나직나직 내려도 봄비 무겁다 툭 투둑 빗방울 유모차에 쌓인 골판지로 두리번거리며 종이상자 찾는 늙은 허리로 내려서 적신다 세상 골목 오늘도 젖고 있다 봄비 가벼우나 누구에게나 무겁다 바싹 마른 오랜 겨울의 대지 위로 내리는 비는 너무도 기다리고 소망했던 봄비고,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가벼운 축복의 비인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에게 인식되는 비는 무겁기 짝이 없다. 종이상자와 골판지를 가득 싣고 가는 노인의 유모차를 적시는 비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시인이 말한 그 노인 뿐만 아니지 않겠는가. 내리는 빗물이 힘겹고
시
등록일 2015.04.01
게재일 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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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나사의 터진 밑구멍 속으로 한 입씩 옴찔옴찔 무는 탱탱한 질 속으로 빈틈없이 삽입해 들어간 수나사의 성난 살 한 토막 폐품이 된 이앙기에서 쏟아져 나온 나사 한 쌍 외설한 체위 들킨 채 날흙 속에서 그대로 하고 있다 둘레에는 정액 쏟듯 흘린 제비꽃 몇 방울 봄날이 가져다주는 재생의 이미지들이 에로티시즘을 입고 재미난 시로 펼쳐져 있다. 겨우내 폐품이 된 이양기, 나사 한 쌍. 같은 무생명의 갑갑함 속에서 생명력과 열정을 되살려 놓으려는 시인의 의도가 전혀 외설스럽지 않고 재밌게 펼쳐지고 있음을 본다. 폐허라는 퇴락한 시간들 속에서 건져 올리는 신선하고 생생한 생명의 끈을 팽팽한 긴장감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
등록일 2015.03.31
게재일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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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제 뿌리라며 봄을 따라 떠나려던 꽃 꺾어다 꽂았지만 화병은 뿌리가 되지 못했네 꽃들의 갈증 물에 잠겨서도 시드는데 끼니마다 꽃밭이면 식탁에도 뿌리가 있었네 나의 뿌리인 식탁에도 뿌리가 있다는 거네 봄꽃을 꺾어와 화병에 꽂아도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시들어 버리는 것을 보고 시인은 뿌리에 대한 깊은 성찰에 빠져들고 있다. 봄꽃의 뿌리는 봄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뿌리는 어디이며 무엇이란 말인가. 시인은 식탁이라고 말하지만 시인이 말하는 식탁은 사물로서의 식탁이 아니다. 사랑과 정성과 행복의 터전인 가정이고 가족 공동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든든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시
등록일 2015.03.30
게재일 201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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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맨살을 만진다 만질수록 부드러워진다 호미도 버리고 장갑도 벗어던지고 손바닥으로 손가락으로 비빈다 여인의 속살이 이보다 부드러울까 숨이 가쁘고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가볍게 혹은 깊게 씨를 넣는다 이 어린 것들 흙 속에서 아랫도리 탱글탱글 불끈불끈 일어서는 무성한 여름날을 꿈꾸리라 에로티시즘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서정시다. 흙은 생명의 보고이자 터전이다. 가장 원초적인 생산의 출발점이자 끝이기도 하다. 여인의 속살보다 부드러워서 숨이 가쁘고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이라는 성적 몰입의 순간을 설정한 시인은 비로소 씨를 뿌린다, 그리고 무성한 여름날과 열매 풍성한 가을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서정의 텃밭이 넉넉하고 풍성하다.
시
등록일 2015.03.29
게재일 201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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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의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온몸으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시인 김남주. 불구의 자본주의를 향해 머뭇거림없이 온몸을 던진 민중시인의 빛나는 정신이 오롯이 읽혀지는 작품이다. 겨울을 이기고 봄이 오듯이, 기다리고 천년을 두고 기다리면 끝내는 사랑이 찾아와 꽃피듯이 모순의 세상에서 정의롭고 올바른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목숨을 놓아버린 시인의 애틋한 시정신이 가슴을 파고든다.
시
등록일 2015.03.26
게재일 201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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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노랑멧부리새를 좋아하나요 그냥요 왜 오래된 사랑을 나비처럼 놓아주나요 그냥요 왜 어제 본 영화를 다시 보나요 그냥요 건널목에 언덕길에 무덤가에 잎눈, 잎눈, 잎눈 돋는다 사는 데에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되는 그냥, 봄 봄은 모든 방향으로 활짝 열린다. 웅크렸던 우리의 가슴도 열리고 어둡고 답답했던 마음도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예감으로 활짝 열린다. 그냥 무언가가 찾아들고 무언가가 가득 쏟아져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건널목에도 언덕길에 무덤가에도 연두빛 새순들이 뾰롱뾰롱 입술을 쏘옥 내밀고 희망의 말을 건네고 있다. 사는 데 이유를 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리라.
시
등록일 2015.03.25
게재일 201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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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아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노랗게 봄 언덕에 피어오르는 애기똥풀. 그 꽃 이름을 모르고 서른 다섯 해를 살았다고 반성하는 시인의 마음이 해맑은 봄볕같이 따스하다. 어여쁜 꽃 이름 하나 모르고 살았다고 이렇듯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은 그만큼 시인의 심성이 착하고 곱기 때문이리라. 이 봄에는 이런 착하고 이쁜 꽃들도 지천으로 피어나고, 시인 같은 착하고 따스한 사람들이 봄 언덕을 거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다.
시
등록일 2015.03.24
게재일 201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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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 먹다 남은 쌀 두 말을 보내마, 막내야 고춧가루, 멸치젓을 비닐봉지에 담으시며 어머니의 가슴엔 물이 베인다 아이들아, 평생을 이와 같은 내 가난한 경제를 용서하여라 어머니의 수전증으로 떨리는 손길을 따라 나의 명치끝은 타오르고 쉰 밥을 물에 씻어 말아먹는 점심시간 어머니의 울먹이는 경제는 피로 가득 찼구나 멸치 젓을 봉지에 담을 때 스며나오는 국물이 적시는 보자기는 그냥 멸치 젓갈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과 희생이 스민 이 땅 어머니들의 가슴이 아닐까. 오래 전에 발표된 시로서 지금의 분위기와 많이 다르긴 해도, 그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의 마음은 초시간적으로 초공간적으로 이어져왔고 이어져 갈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거룩
시
등록일 2015.03.23
게재일 201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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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는 데 힘들었습니다. 되돌아보니 열 몇 살이 아득히 먼 바다 같습니다. 어릴 때 기차 타고 내려와 살다 섬에 왔습니다. 꽃이 서른 번은 더 피었다졌습니다. 이제 바다 물소리 가까이 들려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즐거웠습니다. 나뭇잎 몇 번 흔들릴지 알 수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힘겹게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는 시인의 가슴이 젖어있다. 결코 후회하거나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먼 바다 같은 격랑의 시간들도 있었고 홀로 항해해간 외롭고 지친 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 힘겨운 시간들도 정겨운 물소리로 들리는 극복과 적응의 시간들로 승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힘겨운 시간들이었지만 즐거웠고 고마운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하는 시인의 성숙한 성찰에 거수경례를 하고 싶은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5.03.22
게재일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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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푸르거니 겨우내 엎드렸던 볏집 풀어놓고 언 잠 자던 지붕 밑 손 따숩게 들춰보아라 거기 꽃 소식 벌써 듣는데 아직 설레는 가슴 남았거든 이 바람 끝으로 옷섶 안 켠 열어두는 것 잊지 않으마 내 살아 잃어버린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빛나는 너 연두빛으로 번져오는 봄날, 시인은 그립고 아쉬운 사랑을 가만히 불러보고 있다. 겨우내 엎드렸던 볏집에 풀어놓고 언 잠 자던 지붕 밑으로 따순 봄꽃들이 벙글어지는데 지난 날 아쉬움으로 여미고 떠났던 안타까운 사랑에 대한 설레임이 일어나는 시인의 마음 한 자락을 본다. 사는 날 동안 가장 오래도록 빛나는 사랑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우리에게도 있었을까.
시
등록일 2015.03.19
게재일 201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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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는 노란 채색으로 담장 밖 경치를 칠하고 종달새는 하늘이 짧도록 긴 목청을 돋울 때 먼 들판 위에서는 만정(萬情)을 다 쏟으며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그 아지랑이의 움직임 따라 만리(萬里)같이 그리운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 개나리 환하게 피어나고 노고지리 높이 떠 울어대는 봄날의 들판에서 만리 같은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은 것은 시인의 마음 뿐이겠는가. 티없이 맑고 순수한 시심을 읽을 수 있는 이 시에서 우리는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인간 본연의 성정이다. 생래적인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결이다.
시
등록일 2015.03.18
게재일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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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섰듯이 알맞은 시기에 그대를 떠나라 한다 그대가 있어서 소리 없는 기쁨이 어둠속 촛불들처럼 수십 개의 눈을 뜨고 손 흔드는데 차디찬 겨울 감옥 마룻장 같은 세상에 오랫동안 그곳을 지켜온 한 장의 얇은 모포 같은 그대가 있어서 아직도 그대에게 쓰는 편지 멈추지 않는데 희망은 거창한 것에만 걸려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인은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하는 사소한 마음의 흐름 같은데서 더 진지하고 견고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둠 속 소리없이 빛나는 촛불들이, 차가운 겨울 산자락에서 봄을 기다려온 작은 나무
시
등록일 2015.03.17
게재일 201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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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 무늬라고 봄 바다가 펼쳐놓은 화판 위로 황사 바람 며칠째 객토를 싣고 들이닥치는데 이 욕설 어디다 부릴까, 육지 쪽으로 거품 물고 몰려가는 파랑 좇아 나 또한 버릴 생(生)이 있다는 듯 멀건 낮달로나 간다, 봄은, 추억의 하역에만 몇 개 섬들이 생겨나리라 저 수위 휘젓다 못해 구차한 흙덩이 황해 온통 이녕으로 끓이는데, 착시 탓인지 갈매기 몇마리 경적높이에서 사라진다. 또 봄! 출렁거리는 멀미 진흙에 섞으면 어떤 무늬 수평 저쪽까지 너울대며 번져갈까 황사가 덮쳐오는 봄바다에서 시인은 어둡고 우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봄바다는 훈풍을 실어오기도 하고 희망찬 새물결이 밀려오는 곳이다. 움츠리고 웅크린 겨울바다의
시
등록일 2015.03.16
게재일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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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는 데 힘들었습니다. 되돌아보니 열 몇 살이 아득히 먼 바다 같습니다. 어릴 때 기차 타고 내려와 살다 섬에 왔습니다. 꽃이 서른 번은 더 피었다졌습니다. 이제 바다 물소리 가까이 들려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즐거웠습니다. 나뭇잎 몇 번 흔들릴지 알 수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힘겹게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는 시인의 가슴이 젖어있다. 결코 후회하거나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먼 바다 같은 격랑의 시간들도 있었고 홀로 항해해간 외롭고 지친 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 힘겨운 시간들도 정겨운 물소리로 들리는 극복과 적응의 시간들로 승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힘겨운 시간들이었지만 즐거웠고 고마운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하는 시인의 성숙한 성찰에 거수경례를 하고 싶은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5.03.15
게재일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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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하게 비탈에 붙어서서 푸른 꼭지 마늘 칩을 꽂고 있다 그녀들 막막한 땅의 바다에 매운 배를 띄워 보내고 있다 그들은 캄캄하게 환하게 반짝이는 대양으로 흘러갈 것이다 겨울의 압축이 풀리며 가만히 부풀어 올라 어룽대는 물 틈새 이제 목장성 넘어온 따스한 전류가 흐를 것이고 바다는 다시 푸르게 배를 밀며 돌아올 것이다 눌태리는 구룡포읍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따스한 봄빛이 비치는 점심나절 여인네들이 비탈에 엎드려 언땅을 헤치고 마늘을 심고 있었다. 차가운 2월이 지나고 날이 풀리면 비탈밭에는 푸르른 생명의 물결이 넘실댈 것을 기대하면서 말없이 그녀들은 일을 하고 있었다. 차갑고 거친 세파를 헤치고 온 그녀들이 다시 막막한 땅의 바다에 희망의 작은 배를 띄워보내고 있
시
등록일 2015.03.12
게재일 201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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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산 화엄사에 오른다 산수유꽃 피고 진 자리 새의 혀 돋고 있다 계곡물 밖의 산기슭에는 얼레지꽃들이 한창이다 마음속 수줍은 쪽 찐 처녀가 길 내고 있다 그 길은 우화루로 이어진다 오래전 꿈속에서 보았던 극락전 나비처럼 하늘에 걸쳐 있다 암벽이 끝나는 곳에서 나는 불명(佛明)으로 든다 새의 혀 같은 새순과 얼레지꽃들이 한창인 산기슭 화암사에 오르는 시인이 느끼는 봄은 오래전 꿈속에서 본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불교에서의 밝은 깨달음이라는 의미의 불명(佛明)으로 든다는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산과 꽃들이 절집의 풍광과 함께 이뤄내는 아름다운 자연의 진상에 깊이 빠져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운 봄날이다.
시
등록일 2015.03.11
게재일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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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지 두 달이 넘어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무거워지는데 길바닥에 찍어놓은 행인들의 발자국 짓이겨진 몰골에 비껴가는 시선들 오그라 드는 몸 이리 저리 떠돌다 수갑채인 죄인처럼 꼼짝 못하고 사진관 앞 창틀에 걸린 눈빛들 오늘이 둘째놈 돌인데 창틀 안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시퍼런 비수로 가슴에 아 꽂힌다 세상 분노와 슬픔의 힘을 끌어모아 잘못 세워진 거리의 집들 결단코 부숴나가야지 팔다리의 근육살 부풀리며 다짐하며 이 시의 중심에는 잘못 세워진 거리의 집이라는 말이 자리잡고 있다. 시의 내용은 우리가 읽으며 느낄 수 있는 비극적인 서사 그대로다. 가슴 아픈 이런 경우가 비단 여기 뿐이겠는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
등록일 2015.03.10
게재일 201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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