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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세상 서럽게 울고 있을 때 다섯 살짜리 딸이 다가와 엄마 품을 파고들며 함께 울어 줄 때 엄마와 아이의 배꼽엔 다시 탯줄이 자랍니다 열 달 동안 들었던 해변의 물소리와 따뜻한 감촉 부드럽고 다정한 엄마의 목소리가 탯줄 속에서 발굴 됩니다 배꼽의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봄입니다 꽃입니다 어디가 표지판인지 아시겠지요? 바로 여기가 오랫동안 잊힌 유적지 울음의 홀입니다 엄마의 엄마가 발굴되는 세계입니다 생명과 생명의 연결고리. 바로 탯줄이 아닐까. 열달 동안 엄마는 그 탯줄을 통해 태아에게 생명을 준다. 그 엄마 또한 그이의 엄마에게서 그 생명의 고리를 통해 생을 부여받았다. 세상살이 서러워 우는 엄마를 달래며 함께 울어주는 다섯 살 아이를 상상해보자. 거룩한 본능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는가. 그들은
시
등록일 2012.06.17
게재일 201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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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덜 깬 놈들 흔들어 깨우며 난로 위에 가만히 얹어 놓는다 어디서 온 걸까 동굴동글 굴러서 온 걸까 저희들끼리 옹기종기 소곤댄다 일으켜 세우면 저리 구르고 다시 일으켜 세우면 이리 구르고 돌아서 가는 놈을 잡아다 놓으면 다시 그 자리를 떠나려 한다 뭣 하러 왔노 오지를 말지 내일을 꿈꾸고 있었다 너희들만 생이냐고 피식거리며 감자는 타고 있는 것이다 각양으로 생긴 감자를 구우며 시인은 생의 진지한 반성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감자는 비록 굽히면서도 내일을 꿈꾸고 있다라는 말에서 시인의 강한 삶의 의욕을 느낄 수 있다. 옹송동송 모여 한 생을 이루어 가는 우리는, 우리를 이 땅에 보내준 절대자의 뜻을 가늠하고 최선을 다해 목숨의 값을 하고 가야 하지는 않을까.
시
등록일 2012.06.14
게재일 201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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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불꽃을 뚝뚝 꺾는다 손바닥이 타들어간다 물 대신 캄캄한 어둠이 출렁거리는 불꽃 항아리, 불의 밑 대궁은 얼마나 뜨거운 지 뿌리째 어둠이 들끓고 있다 섣불리 다가갔다가 데인 마음에 잡힌 삼도 화상의 물집, 부풀어 올라 쓰라리다 이미 숯이 되어버린 꽃과 아직 불이 되지 않은 어둠, 사이를 잇는 줄 하나가 끊어진다 이른 저녁 별똥별 하나가 보이지 않게 떨어졌음인가 여름 하늘을 다 태우고 모자라 붉은 혀를 널름거리는 서쪽은 핏빛이다여름 한낮에 붉게 피어난 칸나, 타오르는 불꽃같은 짙붉은 그 빛깔에서 시인은 강렬한 생의 의욕과 욕망을 본다. 그러나 아무리 강렬한 의욕과 욕망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저물녘과 밤은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다. 그 의욕과 욕망이 강할수록 칸나. 그 짙붉은 꽃이 핏빛으로 스러지
시
등록일 2012.06.13
게재일 201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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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치자 저녁이다 내 가고자 하는 곳 있는데 못 가는 게 아닌데 안 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 저녁엔 종일 일어서던 마음을 어떻게든 앉혀야 할 게다 뜨물에 쌀을 안치듯 빗물로라도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리라, 하고 앉아서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저녁이다 종일 빗속을 생각의 나비들,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 젖어가는 날개 가진 것들의 젖어가는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겠다 저녁이 되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늙어가는 어떤 마음에 다름아닌 것을…. 뽀얗게 우러나는 마음의 뜨물 같은 것을…. 비가 그 무슨 말씀인가를 전해주었나 보다 날이 저문다는 것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시간의 끝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저녁을 느끼기 전에 사실은 저녁이 하마 와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하루의 끝으로서의 저녁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시
등록일 2012.06.12
게재일 201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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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돌아 나오는 것들은 모두가 시초에 닿아 있듯이 내 아비의 그 아비의 아비의 먼 핏줄을 접어 올라가면 홀연 목메이듯 막막한 눈발이 되는 사랑 그리고 그리움 누가 기다리고 있는가 세상의 길들은 왼편으로 기울어 상류는 캄캄한 안개, 시린 하늘에 별 하나 걸어두고 밤새워 누가 나를 부르고 있는가 어쩔 수 없이 처해지는 삶의 조건들 혹은 이미 정해진 처연한 인간학적 운명에 몸부림치는 시적 자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이다. 이 시에서의 `공기'란 지상적인 것의 초월이자 절대성과 맞닿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시인은 이러한 공기를 통해 운명적이거나 거대한 어떤 조건들을 초극하려는 강한 의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2.06.11
게재일 201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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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이 지나도 그 냄새 구수하다 노가다 새참 먹고 잠시 앉은 옆자리 참말로 생각난다 돈 없어 며칠 못 피운 담배 고마 끊어뿌자 뿌사뿌자 참아보다 이만큼 지났다 장하다 대단하다 남들 말하지만 학원도 못 보내는 아비가 남들 구수하게 뿜어놓을 때 손가락 걸머쥐고 뒷짐이라도 져봐야지 아직 한번도 보지 못한 이면우 시인은 꿈에 크게 취해 보았다고? ..................... 나는 꿈도 끊어뿌자 한 생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역설적인 작품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를 상실할 때가 있다. 그 중에서 노동력의 상실, 혹은 재화의 상실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꿈의 상실은 더없이 절망적인 것이다. 시인은 결연히 꿈을 끊어버리자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단단하고 야무진 꿈을 가지겠다는 포부가 비치는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2.06.10
게재일 201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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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열된 다리미를 밀고 나가자 우지직 찍 우지직 찍 섬유나무 넘어지는 소리 나무들은 톱날 앞에 무참히 쓰러지던 그때의 비명소리를 더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주머니에 둥지 틀고 살던 이름 모를 새들을 부르고 있는 것일까 우지직 찍 우지직 찍 얼마나 많이 소리치고 싶었던가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저 아우성! 세탁물 한 점을 한 그루의 나무로 표현한 이 시는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시인은 옷감을 다림질하면서 엉성하게 구겨진 옷감을 누르는 것을 나무들이 쓰러지는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어쩌면 자신의 모양 없는 삶의 모습을 형편없이 구겨진 세탁물에 비유하면서 또 다른 의미를 거기에 실어 표현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름 모를 새들을 부르고 싶었던 것처럼 현재 자신의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염원하며 다림질을 하
시
등록일 2012.06.07
게재일 201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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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맺힌 세월 통일의 침묵 놓으며 애타게 이날 기다렸습니다 철조망으로 남북을 갈라놓았다 해도 휴전선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새들도 자유로이 한반도를 오가련만 피붙이 만나는 게 뭐가 문제입니까 통일로 가는 역사의 현장 도라산역에서 혈육의 통표 들고 파람이 손 흔듭니다동해의 시인인 이애리의 시에는 강원영동지역의 정서가 곧잘 묻어나곤 한다. 실향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탓도 있으려니와 분단의 현장을 품고있는 지역이어서 그의 시에는 민족의 한스러운 아픔들이 스며있다. 분단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도라산역에서 시인은 불구가 된 민족적 삶의 아픔과 고통을 역설하고 있다. 이 시를 읽노라면 너무 오랫동안 고착화되고 왜곡되어온 분단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2.06.06
게재일 201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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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가 몇 번 눈을 뜨는 동안 무궁화 꽃은 절반이나 떨어졌다 떨어진 꽃 속에 저녁 어스름이 떨어졌다 술래가 뒤란을 돌아나갈 때 검은 산 위에 달이 머뭇거렸다 달그림자 밟으며 술래는무궁화 꽃에 떨어진 달을 찾는다 꽃송이만큼 많은 달이 저만치 가까스로 떨어지는 것을 본다 밤새가 깃을 찾아드는 동안 무궁화 꽃도 기어이 달을 찾아간다 어릴 적 놀이 중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라고 외면서 술래가 눈을 가리고 있는 동안 동무들은 그 짧은 시간동안 그들의 움직임을 훔치곤 하는 재밌는 놀이가 있다. 수없이 무궁화가 피었다 지고 그 꽃잎따라 달이 떠오르면 달그림자를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는 동안에 그들은 성장해가고 어른이 되어간다. 수많은 꽃잎과 달이 피었다 지는 동안에 말이다.
시
등록일 2012.06.04
게재일 201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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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더니 낮달 떴다 허공에 물어뜯겼는지 반나마 더 깎인 저기 저 달 아니 아직은 주량을 못다 채웠겠지 앞의 사내가 주인을 불러 다시 소주를 청한다 하필이면 남편이 운전해 가던 차에 곁에 앉은 아내만 즉사했나 아무리 채워도 텅텅 비는지 자꾸 달의 이면을 들춰보자고 우기는 사내 벌써 소주가 세 병째다 풍랑이 이는가 시야를 거두며 배들 돌아 돌아들 간다 섬의 뒤쪽으로 거기 포구가 있다는 게지 끝내 게워놓지 못할 환하거나 어두운 생의 허기 뜯겨버린 달의 반쪽 같은 것! 달은 우리네 삶의 환희와 질곡을 다 내려다보는 존재이다. 이 시에 제시되는 참담한 슬픔 같은 것들을 들여다보는 존재이다. 달의 뒤쪽에 포구라는 안식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생의 모든 것을 그에게 보여주고 그에
시
등록일 2012.06.03
게재일 201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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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또 누가 있나요? 누가 아직도 거기 남았나요? 저 후춧가루 같은 황사의 뒤에 녹내 나는 햇살 뒤에 어느 거인의 오줌줄기 같은 소나기의 뒤에 저 오랜 탯줄의 끝에 현실의 여러 제한과 아픔 속에서도 누군가는 푸르게 깨어 있어 그 시대를, 현실을, 역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뛰어들어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의 길은 적어도 한 시대가 흘러가는 역사적 시간으로서의 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후춧가루 같은 황사 같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거인의 오줌줄기 같은 소나기, 폭력과 왜곡이 난무한 현실 속에서도 누군가는 잠들지 않고 그 현실을 목도하고 뜨겁게 대응하며 살아가고 있으리라는 확신을 시인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시
등록일 2012.05.31
게재일 201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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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한 살에 통일운동하고 결혼했던 숫총각 이영기는 간암으로 죽고(사실은 미필적 고의타살 아닌가?) 마흔 한 살에 법무부에서 달아준 4성 장군 전상봉은 국가보안법철폐를 외치며 국토순례대장정을 하고 마흔 한 살에 나는 사지가 굳은 아이 등에 업고 중복의 고개턱 막 넘는다불혹의 나이를 넘긴 시인이 자신의 현실 대응의 자세를 반성하며 아파하고 있다. 누구는 민족적인 화두를 풀기 위해 투쟁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현실적 삶은 무엇인가 스스로 조소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뜨거운 정신으로 살아가면서 현실에 적극적인 반응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리라. 시인은 투철한 정신을 가슴에 쟁여넣고 짊어진 질기디 질긴 업보가 있기에 그 또한 한 생애를 글쓰기에 쏟아넣으면서 의미있게 살다가는 것 아닐까
시
등록일 2012.05.30
게재일 201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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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봉하는 데 석 달은 걸렸겠다 귀퉁이를 죽 - 찢어 개봉할 수는 없는 봉투 펼치는 데 또 한 달은 박새가 울다 갔다 겹겹 곱게 접은 편지 입술자국이나 찍어 보내지 체온이라도 한 웅큼 담아 보내든지 어쩌자고 여린 실핏줄 같은 지문만 숨결처럼 묻어 있다 너를 부르자면 첫 발음에 목이 메어서 온 생이 떨린다 그 한 줄 읽는 데만도 또 백년의 세월이 필요하겠다목련. 새봄에 불을 켜는 순백의 꽃등. 시인은 온 겨울을 견디고 아직은 차가운 하늘에 꽃을 피워 올리는 목련을 바라보며 우주의 아름다운 질서를 말하고 있다. 석 달을 견디다 꽃맹아리가 맺히고도 한 달이 지나야 우유빛 꽃잎을 피우는 목련. 그 말의 첫 발음을 하면서 목이 메이고 온 생이 떨린다고 고백하면서 곱고 애처로운 개화, 그 생명의 첫걸음에 대한
시
등록일 2012.05.29
게재일 201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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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지나간 자리에 긴 분비물의 길이 나 있다 얇아서 아슬아슬한 갑각 아래 느리고 미끌미끌하고 부드러운 길 슬픔이 흘러나온 자국처럼 격렬한 욕정이 지나간 자국처럼 길은 곧 지워지고 희미한 흔적이 남는다 물렁물렁한 힘이 조금씩 제 몸을 녹이며 건조한 곳들을 적셔 길을 냈던 자리 , 얼룩 한때 축축했던 기억으로 바싹 마른자리를 견디고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지나온 길을 돌아보자. 어떤 분비물이 흔적으로 남아있는지. 달팽이처럼 격렬한 욕정이나 깊디 깊은 슬픔의 길을 걸어왔을지 모르는 우리 한 생의 뒤를 돌아보자. 그리고 얼룩, 한 때 축축했던 기억이 남아있는지 가만히 우리를 들여다 볼일이다. 이 아침.
시
등록일 2012.05.28
게재일 201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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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애비 평생 쓰시던 화로 제 몸을 살라 온 집안을 따스하게 환한 빛으로 덥히는 체온 대숯이 제 몸을 사르는 울림 속으로 할애비 산 세월 다홍빛으로 되살아난다 사람살이를 지키던 대창에서 당신이 풀어놓은 식솔들을 환하게 데우는 밝고 고운 빛 이글거리나 매섭지 않고 제 아무렇게 던져져 있으나 가지런한 할애비 당신의 가르침이 이토록 황홀한 빛으로 살아나 바람 찬 겨울을 지낸다할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화로를 통해 할아버지의 기막힌 한 생애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인의 가슴이 젖어있다. 당신을 태워 식솔들을 뎁히고, 먹여 살린 그 사랑과 헌신의 삶을 대숯이 타는 것에 비유하면서 시인은 오늘 자신의 삶을 챙겨보고 있다. 세상의 바람 찬 겨울을 견디며 이겨나가려는 시인의 각오가 단단하게 읽혀지는 시이다
시
등록일 2012.05.23
게재일 201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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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없고 끝도 없네 넓고 넓은 그곳에는 눈부신 고요의 기러기 가족들 첫 은유의 날개로 미완의 후렴구를 가물가물 남기네 수천만 년 숨은 이야기를 푸른 문장으로 쏟아내는 멀고 먼 그곳에는 세상에 없는 사랑이 있네 세상이 모르는 질서가 있네안행(雁行), 기러기들이 날아가는 모양을 시인은 미완의 후렴구라고 말했지만 기러기들의 비행에는 완성되고 엄격한 질서와 규율과 따스한 배려가 숨겨져 있다. 멀고 먼 하늘 길을 날아가고 날아오는 그들의 길에는 세상에는 없는 사랑도 세상이 모르는 질서도 있는 것이어서 시인의 말처럼 그들은 푸른 문장을 하늘에 적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2.05.22
게재일 201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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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님 한 분 석가와 같은 날로 입적 잡아놓고 그날 아침저녁 공양 잘 하시고 절마당도 두어 번 말끔하게 쓸어놓으시고 서산 해 넘어가자 문턱 하나 넘어 이승에서 저승으로 자리를 옮기신다 고무줄 하나 당기고 있다가 탁 놓아버리듯 훌쩍 떨어져 내린 못난 땡감 하나 뭇 새들이 그냥 지나가도록 그 땡감 떫고 떫어 참 다행이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헛물만 켜고 간 배고픈 새들에게 참 미안한 일이었다고 땡감은 생각하고 노스님을 떨구어낸 감나무 이제 좀 홀가분해 팔기지개를 켜기 시작하고 통도사 노스님의 열반을 못난 땡감 하나 떨어지는 상황에 비유한 매우 해학적인 작품이다. 평생을 구도자의 험난한 길을 걷다 돌아가신 노스님의 입적을 바라보는 시인의 애도와 경외심이 녹아있는 시이다. 한 편으로는 재미있으면서도 숭엄한 느낌을
시
등록일 2012.05.21
게재일 201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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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 한동안 다소곳했던 하늘이 다시 객기를 부린다 얼결에 애를 낳은 깻잎머리, 깡뚱치마, 아슬아슬 배꼽티 걸친 계집아이들이 홍홍 선홍빛 피멍울을 점점이 뱉어내며 풀쩍이고 있다 지나가는 갈마바람이 흔들어 보다가 어이쿠, 무서워 도망간다봄비 내린 뒤 선홍빛 영산홍이 피었다. 짙붉은 피멍울을 뱉어내듯이 붉게 피어오른 영산홍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강한 생명감에 가 닿아있다. 그 강렬한 봄의 생명력이 뻗친 봄 천지를 지나는 갈마바람조차도 무서워서 도망을 갈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한 기운이 넘쳐 남을 느낄 수 있다. 엄동을 건너 우리네 가슴에도 짙붉은 영산홍 그 핏빛 꽃송이 몇 피어났으면 좋겠다.
시
등록일 2012.05.20
게재일 201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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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마다 묻어나는 오래 된 숲 속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구름의 자유로움 나무는 죽어서 책이 되었다 부활한 나무의 씨앗들 활자, 활자, 활자 살자, 살자, 살자! 상큼한 잉크냄새 나무의 피 냄새 나무는 죽어서 책이 되었다 나는 죽어서 무엇이 되나?삶에 대한 성찰이 깊은 작품이다. 나무는 죽어서 결국은 종이가 되고 그것들 묶고 엮어 책이 됐으나 우리는 죽어서 무엇이 될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봄직한 철학적 물음이다. 한 줌 부토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인생이거늘 시인은 죽어서 무엇이 되는가에 대한 물음보다는 목숨 있는 동안 우리는 무엇일 수 있으며 어떻게 의미 있게 살다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묻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2.05.17
게재일 201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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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통화중 신호음을 들었다 나는 한번 시도한 일은 멈출 줄 몰랐다 나는 한번 들러선 길은 돌아갈 줄 몰랐다 뚜, 뚜, 뚜 듣지 못한 응답이 나에게로 돌아와 꽂혔다 차창 밖으로 발개진 꽃잎들의 통화가 소란스러워졌다 세상은 모두 통화중이었다 나는 나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안에 통화중 신호음이 가득 차올랐다 귓바퀴가 수백 다발의 코일을 빨아들였다 나는 나의 고백을 듣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디 간 거야, 나는 나의 응답을 찾지 않았다 나는 고독해졌다 나는 팽창했다 귓속에서 입이 찢어졌다 백년은 늙은 내 입 속에서 푸르른 말들이 나를 겨냥했다전화는 소통의 매체이다. 그런데 전화를 걸었을 때 통화중 신호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올 때 우리는 어떤 캄캄하고 높은, 막막한 벽
시
등록일 2012.05.15
게재일 201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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