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첼리노….오월을 어떻게 지내고 있나. 삼월인가 했더니 눈 깜짝할 새 사월이 가고, 오월도 하순에 접어들고 있다. 연녹색 나무가 순식간에 신록으로 변해 눈앞에 넘실댄다. 자연은 예나 다름없이 묵묵히 제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나의 오월은 어디를 걷고 있는지 헷갈린다.가만히 올봄을 되돌아본다. 내 봄은 별과의 만남으로 시작되었지 싶다. 춘분이 한 달가량 남은 날이었지. 가로수 보호대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사뿐히 내려앉는 별을 보듬고 세상을 비추는 새 생명을 만난 거야. 대낮 땅바닥에서 하얀 별빛을 온 누리에 비추는 앙증스러운 존
마늘을 얻었다. 김장철도 지났고 햇마늘이 날 때도 아닌지라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다. 한손으로 들어도 빈 바구니 같았다. 푸석푸석 먼지가 나는 마늘 한 접을 집으로 가져와 베란다에다 두고 며칠 밤을 지냈다. 빨래를 널고 청소를 하면서 눈에 띌 때마다 근심덩어리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갈무리를 해 두어야만 될 것 같았다. 미루어두면 버려야 할 형편이 될 일은 뻔했다. 친정어머니가 생각났다.어머니는 김장철이 되면 집에서 가꾼 마늘을 틈이 날 때마다 햇살이 잘 드는 마루에 앉아 장만하셨다. 깐 마늘을 수북하게 모아 두었다가 김장양념장을
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나고 예수가 부활한 성령의 달이라 해도 코로나에 묶여버렸던 ‘잔인한 달 4월’은 지나갔다. 시인 엘리엇은 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는 4월’을 잔인하다 했을까? 봄비에 깨어난 뿌리의 힘으로 라일락 꽃향기 퍼드러진 앞뜰에는 계절의 여왕 오월이 화려한 옷을 입고 왔는데….나뭇잎은 어린아이의 손과 같이 부드럽고 하늘은 가끔 빗줄기를 뿌려 대지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형산강변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고 초하의 들머리에는 농부가 밭을 갈고 씨 뿌리는 계절, 여름을 준비하라는 입하가 있고 보리 이삭이 누렇게 익어
마스크를 쓰고 철길 숲 산보에 나섰다. 봄을 타는지 몸이 나른해서다. 늘 가던 코스 따라 초등학교를 가로지르려 열린 문을 들어섰다. 교사(校舍) 앞 화단에 선 매실나무는 열매가 토실토실 도토리만큼이나 컸다. 옆의 능금나무에는 하얀 꽃잎이 자태를 뽐내며 일부 꽃은 지고 있다. 어느새 봄이 매우 짙어졌다.저만치 떨어진 주차장에 승용차 한 대만 외롭다. 사람이라곤 그 앞으로 쓰레기 정리하는 분 한 명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휴일이면 제법 많은 이들이 운동장을 걷거나, 녹지의 쉴 곳에서 삼삼오오 이야기꽃이 피어나곤 했었다. 이 교
홀로 봄을 즐기는 나날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연일 ‘코로나19’라는 얄궂은 바이러스 확산으로 일터에도 나가지 못하고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아파트 승강기 안에도 손소독제가 놓여졌고 손이 자주 닿는 부분은 항균비닐로 덮였다. 수일 전에는 국가에서 정해주는 날 약국 앞에 줄 서서 기다리다가 마스크도 샀다.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도시 같다. 이럴 때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다. 그 가운데 독서만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적당한 게으름을 부리며 찻잔을 들고 서재에 든다. 그동안 손길을 기다리던 책을 펼치면
춘삼월도 지나고 목련 꽃이 아름답게 피는 4월, 완연한 봄이다. 벌써 일찍 만개한 창포동 뒷산의 진달래는 꽃잎을 접어가고, 효자 영일대, 환호공원 등 시내 곳곳의 벚꽃길에는 꽃비가 내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지나는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한 폐렴-코로나19의 검은 구름이 몰려온 탓이다. 그야말로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의 가운데에 있는 느낌이다. 국내 확진자가 1만 명을 넘고 감염예방수칙도 강화됐다.늘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이 딸꾹거릴 때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알림이 온다. 감염예방을 위해 저녁 시간 밀폐된
가로수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나무보호대 구멍을 비집고 올라오고 있는 덩굴풀 앞이다. 땅에 내려앉아 사는 별을 휴대폰 사진으로 담고 싶어서다.아직 춘분이 한 달은 남은 날, 늦은 오후. 봄이라기엔 이른 겨울 끝자락이다. 하긴 쑥, 클로버, 장미 같은 식물들이 월동도 하니, 봄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마음속 어떤 힘이, 지나려던 나를 나를 앉히고 만 것이다.고개 드는 덩굴풀이 쪼그만 꽃들을 피워냈다. 꽃잎 한 개가 깨알만 할 정도로 작은 하얀 꽃이다. 사람들은 왜, 몸을 바짝 낮추고 아주 작게 피운 이 꽃을 ‘별꽃’으로 불렀
그놈만 아니었더라면, 오늘같이 무더운 날은 집에서 찬 수박이라도 나누며 티브이 보는 게 제격이다. 한데 사는 게 무엇인지 아내도, 나도 의기투합이라도 한 듯 주섬주섬 도구들을 챙긴다. 지난 주말, 텃밭에서 만난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려 현관을 나설 수밖에 없다.차를 굴다리 밑에 세우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텃밭으로 간다. 많이 궁금했던 고구마 이랑으로 먼저 가 본다. 지난번 왔을 때, 멧돼지가 다 파 해쳐 잎은 마르고 샅샅이 젖혀진 뿌리에는 새알 고구마 하나도 달린 게 없었다. 사람이 팠던 땅을 어찌 아는지, 고구마 줄기나 파
휘-이유! 휘-이유!이랑사이로 가쁜 휘파람소리가 들려온다. 콩밭 매는 할머니가 굽은 허릴 펴면서 내는 소리다. 이랑 사이로 묻혔다 다시 일어서길 반복하는 모습이 꼭 자맥질하는 해녀 같다. 둥글면서 깊고 애절하면서 먼 소리는 맞은 편 산봉우리에 닿았다 메아리로 되돌아오곤 했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때쯤 김매기는 끝났다. 나는 준비해간 호야를 앞세우고 할머니와 함께 어둑해진 들길을 걸어 돌아왔다.할머니는 꽃다운 열다섯 나이에 할아버지와 혼례를 치렀다. 원삼족두리 차려입고 초례청 너머로 훔쳐본 신랑이 어찌나 준수하던지 내심 가슴이 콩닥
어머님 생신이라 모든 가족들이 모인 몇 해 전 8월이었다. 얼마나 굶었는지 눈도 뜨지 못하고 여간해선 사람 손에 잡히지 않는 날쌘 고양이가 겨우 기어서 시댁 문 안에 들어왔다.허약해서 어미 고양이가 버린 새끼였다. 남편의 손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밥알을 몇 개 앞에 놓아주니 얼른 먹어치웠다. 생선살도 주워 먹더니 작은 먹이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피곤함을 잊은 듯 장식장 밑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조그만 몸으로 온 가족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서도 귀여움을 내뿜고 있다.마음이 동한 남편이 며칠만 키
잿빛 구름에 물방울이 송송 숨었다. 물방울들이 언제 구름을 모아 땅에 장맛비로 내릴지 알 수 없다. 비는 논밭을 일깨우고, 산을 더듬고, 강도 만지고, 바다를 간질일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오염된 공기와 집, 도로와 공원을 씻어 내리리라. 사람들은 비 안 맞을 준비를 하고 나들이를 한다.자전거 뒤에 우산을 싣고 출퇴근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장마철이어서 그렇다. 오늘 출근길도 자전거 페달이 가볍다.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매일 두던 곳에 세우고, 우산을 내려 사무실에 가지고 올라갔다. 점심때가 가까워져 창가로 가 하늘
비는 물의 다른 이름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리를 바꾸며, 이동할 때마다 독특한 소리를 낸다는 것이 같은 족속임을 증명한다. 그 소리로 사람들을 부르는 것도 물이나 비나 매 한가지이다.여름에 들면서 장마가 시작되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발걸음을 횡계서원으로 이끌었다. 서원은 옛 모습을 지키고 섰으나 마당의 쑥부쟁이의 큰 키로 보아 사람이 지나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성큼 댓돌을 딛고 마루에 앉았다. 그사이 비는 더욱 거세어졌다. 거친 소리를 만들며 비는 물로 모습을 바꾸었다.영천 횡계서원은 숙종 때 정규양이 지은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엿장수가위소리와 함께 각설이가 빙 둘러선 인파속에서 몸을 흔들고 있다. 발가락이 삐져나온 양말에 빨갛게 볼연지 바른 여장남자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만물장수, 포목전, 옹기전이 저마다의 보따리를 풀고 전을 펼쳐놓았다. 솥뚜껑을 뒤집어놓고 파전을 부치는 아주머니, 말린 고사리와 취나물, 각종 채소며 과일들을 좌판에 놓고 쪼그려 앉은 아낙들로 장터는 시끌벅적하다. 그 사이로 흥정하는 사람들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차량들이 뒤섞여 그야
회색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살이 나무와 풀들을 스캔하고 있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만든 녹지(綠地)다. 따가울 여름 햇볕을 향해 풀, 나무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그 중에도 가장 열렬히 환호하는 주인공은, 하얀 꽃을 내민 클로버다. 해님에게 잘 보이려 함인가. 한 톨의 햇빛이라도 더 받으려는 몸부림일까.장마철인데도 클로버는 올해 들어 두 번째 꽃피우기를 하고 있다. 아니, 사실을 말하면 벌써 네댓 번째인지도 모른다. 지난 겨울 소나무 아래서 월동한 클로버들은, 이월부터 한두 송이씩 줄곧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지난
다시마를 씻고 멸치를 다듬는다. 부추나물무침, 애호박볶음, 계란지단, 오이채, 김치, 이렇게 다섯 가지로 고명을 정했다. 맛있게 차려내야지 다짐을 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이다. 에어컨을 켜놓은 부엌이 한증막처럼 더워 연신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친다. 혼자서 허둥대다보니 벌써 오전 새참시간이 코앞이다.장마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부랴부랴 감자수확을 하게 되었다. 과수(果樹) 사이 노는 땅에 심은 감자는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막상 급하게 수확을 하려들다 보니 손이 모자랐다. 겨우 세 명 정도 일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귀농한 우린 둘 다 농
이윽고 노란색이다. 베란다로 나가니 아침 햇살이 수국의 뺨을 어루만진다. 꽃은 평생 동안 한 색깔을 고집하는데, 필 때부터 지기까지 수국은 햇살과 숱한 밀어를 주고받으며 색깔을 바꾸었다.삼촌은 수국을 즐겨 그렸다. 거실 벽은 늘 삼촌의 화랑이었고 요즘에는 수국이 한가득 피어 있다. 내가 감탄하자 삼촌은 일 년 전에 그렸지만, 아쉽게도 실패한 작품이라고 했다. 아니 화사하게 벙싯거리는 수국이 화면 가득 피어있어서 보는 내가 다 환해지는데 왜 실패작이냐고 물었다. 말 수가 많지 않은 삼촌은 작품의 제목은 ‘변심’이라며 그동안 그림 속에
“응.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잠자리에서 비몽사몽간에 아내에게 대답한 말이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미안하다. ‘일찍 일어나 함께 아침을 먹고, 현관에서 잘 다녀오라고 손짓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오늘부터 한 주에 두세 번 아침에 혼밥을 해야 된다는 것이 싫은 마음도 인다. 아내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경쾌하다.지난달, 웬일인지 아내가 처음으로 시니어클럽에 아침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신청자가 많아 선발될지 모르겠다고 걱정도 했다. 다행히, 걸어서 반시간 정도 걸리는 초
대낮인데도 다람쥐쳇바퀴 돌듯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매번 딸네 집을 찾을 때마다 길눈도장 확실히 찍어둬야지 하지만 생각은 그때 뿐, 또 이 모양새다. 홑눈의 길치가 가진 치명적 약점이다.잠자리는 겹눈에 육각형처럼 생긴 수만 개의 낱눈이 붙어 있다. 이 낱눈들이 렌즈 역할을 하여 360도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 어릴 적, 울타리 끝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려고 숨죽이며 다가갔지만 매번 놓치고 만 것도 그 때문이다. 나비의 겹눈은 넓은 범위를 보기 때문에 예쁜 꽃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색깔구분이 가능한 겹눈은 어떤 사안을
남편은 길치다. 포항 토박이면서 육거리에서 5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한일냉면도 못 찾는다. 갈 때마다 헷갈려한다. 그 골목이 그 골목 같다며 내게 되묻는다. 그런 사람이 술에 만취한 상태로 집을 찾아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길치들이 한 번 갔던 길을 기억하는 방식이 따로 있단다. 골목을 가다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이면 모퉁이를 돌고 또 한참 가다가 쓰레기통이 보이면 좌회전한다, 이런 식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을 보면 되지 하겠지만 길치들은 보고도 해독을 못 해 길을 잘 못 접어들기 일쑤다.반면에 나는 길을 잘
오매!*죄송해요. 오매 하늘나라 가신 지가 올해로 두 번째 강산이 변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습니다. 어쩌다 오매 생각이 나면 내년이거니 하며 지냈는데, 어떤 일로 조문록을 보다가 올 오월 열 이튿날이 스무 번째 오매 기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얼마나 무심히 살았으면 열 주기는 물론, 스무 주기도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쳤을까요. 매년 기제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도리 다했다고 여겼지요. 뒤돌아보니 결혼 후 오매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신 뒤에도 제 살기에 매몰되어서 ‘오매!’라고 이름 한번 정답게 불러드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