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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출근 준비를 한다 소리는 소리를 불러 가방을 챙긴다 소리가 소리에게 잠시 안녕, 한다 소리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잠시 얼굴을 찡그린다 소리는 층단추를 누른다 소리는 소리를 빌려 차 문을 딴다 소리는 부웅, 하는 소리 귀에 잠시 귀를 댄다 소리는 부드러운 소리에 안전벨트를 맨다 소리가 천천히 소리를 죽인다 소리는 소리를 톡, 끈다 소리는 조용히 사무실로 향하는 층계를 밟는다 이 시에서 소리는 시적 자아, 곧 시인 자신이다. 모든 움직임에는 크든 작든 소리를 동반하는 법이다. 그 소리 때문에 활기차기도 하고 그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 소리를 관장하고 소리를 생산하는 것 또한 자신이다. 이런 단조롭고 기계적인 관계들이 바로 우리 현대인들이라는 비아냥이 시 전체에 깔려있다.
시
등록일 2015.08.02
게재일 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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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가 날마다 기워 놓은 그물에밤마다 밤마다누가 달아 놓았을까아름다운 이 아침에다닥다닥 이 많은 구슬을거미가 날마다 기워 놓은 그물에 밤새워 밤새워누가 달아 놓았을까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심에 가 닿는 시인의 언어가 곱고 아침 이슬방울처럼 싱그럽다. 평생을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며 동시를 써온 시인의 눈에는 하찮은 거미줄 하나를 보고도 누군가가 밤새 촘촘한 거물망을 기워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거기다가 누군가가 영롱한 구슬들을 수없이 달아놓았다고 노래하면서 깨끗한 아이들의 정서에 다가서고 있다.
시
등록일 2015.07.30
게재일 201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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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가 모래 감탕 휘날리며 바그다드쪽으로 날아가고 다 삭은 트럭 뒤칸 세간 곁에 쪼그리고 앉은 까치머리 크루드족 난민 소년이 풀 한 포기 돋지 않는 사막을 보고 있다 그렁그렁 우물 담은 큰 눈 연신 동쪽으로 고개 갸우뚱거리며 정처도 없이 가고 있는 종교 갈등이든 이념 대립이든 모든 전쟁은 잔혹하고 엄청난 아픔을 수반한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테러와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 전쟁이든지 가장 상처를 입는 것은 여자와 아이들이다. 시인의 정처도 없이 트럭 뒷간에 실려가는 난민 소년의 쪼그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권리를 빼앗긴 채 생존의 길을 정처없이 떠나는 아이의 눈빛에 선하게 떠올라 가슴 아픈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5.07.29
게재일 201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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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에서 말똥구리가 기어나왔다. 소똥구리였던가? 어쨌든 나는 외출 중이었으니까. 그 틈에 머리 속을 치운 모양이야. 똥으로 보였는지 전부 굴리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녀석을 얼핏 보았지만 난 잠자코 머리 속으로 들어왔다. 멀끔했다. 무엇이 있었더라? 컴컴해질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시인의 상상력이 그의 인식의 세계를 재밌게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는 관계없는 것들도 가득찬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비워지고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현대인들의 혼란하고 흔들리는 의식의 세계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비유를 통해서 표출되는 난해한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5.07.28
게재일 201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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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는 동안 이 물줄기 거슬러 산란을 마친 버들치 그 투명한 속에 이를 수 있다면 노을에 잦아지는 상고(上古)의 저녁 연기를 보리 별들이 뜨기를 기다려 가고 오지 않는 것들의 그 오롯한 슬픔 사이에 놓이리 은적암 발치를 적시며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줄기 그 투명한 물속에 산란을 마친 버들치처럼 최선을 다해 깨끗한 물을 찾아올라와 산란을 하고 끝내 지워져버릴 자연 속의 미물을 보며 시인은 가만히 자신의 한 생을 관조하고 있다. 상고의 저녁 연기를 보겠다는 시인의 마음은 순수하고 무욕의 삶을 살다 가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리라. 노을지는 은적암 물가에 가 닿아 가만히 서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시
등록일 2015.07.27
게재일 201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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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최승자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시적 태도는 거의가 비극적이고 절망적 상황이나 인식에 가 닿아 있음을 본다. 이러한 절망과 비극적 태도는 자칫 미화되어 시를 깊이 읽는 독자들을 오도해갈 위험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시의 마지막처럼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기다린다고 말한 시인의 의도는 절망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희망과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희망적인 자세에로의 전환의지가 아닌가 느껴진다.
시
등록일 2015.07.26
게재일 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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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중에 잠을 설친다 어둠은 일방적으로 두텁게 가로막혀 있다 다만 심장 뛰는 소리 붉다붉은 수탉이 온다 붉은 수탉은, 비탈의 아래쪽을 높이 걸으며 붉은 수탉은, 허물어진 담장 위에도 불쑥 온다 붉은 수탉은, 깃발 뿜어 올리듯 활 활 홰를 치면서 타오르는 불 같다 붉은 수탉은, 모가지 길게 뽑아들고 붉은 수탉, 붉은 수탉은 …. 붉은 수탉은 무엇일까, 어둠을 걷어내면서 다가오는, 반드시 다가오고마는 새벽의 태양이리라. 깃발 뿜어 올리듯 힘차게 홰를 치면서 와 닿는 것이다. 아무리 혼탁하고 짙은 어둠이 점령하고 있더라도 새벽이 오고 태양은 떠오른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덮여있어서 앞길이 희망이 없고 절망의 짙은 어둠이 덮쳐오더라도 새벽은 오고 해가 떠오르듯이 희망은 있고 절망을 이겨낼 수
시
등록일 2015.07.23
게재일 201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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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그냥 5월이어서 어떤 꽃들이 피더군요 참, 무료하게 꽃들의 낯을 쓰다듬기도 합니다 손톱 끝에 이런저런 향내가 묻어 떨어지질 않습니다 우리 문디, 잘 있거라 마지막 말이 늘 가슴을 깹니다 그곳에도 꽃들이 피는가요 오월, 푸르른 신록과 함께 피어나는 짙붉은 장미꽃과 카네이션이 떠오른다. 진한 생명의 계절이 열리면서 우리에게 어린이, 어버이, 부부, 청년을 생각케 한다. 시인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낸 오월 속으로 가만히 걸어가면서 아버지를 불러보고 있다. 사랑과 정성으로 늘 나를 일깨워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지켜봐 주시던 아버지, 너무도 그립고 아쉬워 가슴 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리라.
시
등록일 2015.07.22
게재일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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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앙다물고 있는 것들아 조용히 눈감고 고개 흔들고 있는 것들아 여린 가슴 잔뜩 안으로 감싸고 있는 것들아 그렇게 웅크려 떨고 있는 것들아 저희들끼리 모여 저희들 이름 부르고 있는 것들아 단단함으로 단단함 불러 제 단단함 다지고 있는 것들아 우기적거리며 아랫배에 힘 모으고 있는 것들아 그래도 속으로는 온통 세상 뒤흔들고 있는 것들아 오직 뼈다귀 하나로 울고 있는 것들아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것들아 아흐, 이 바윗덩어리들아 무정물이기도 하고 생명감이 느껴지지 않는 바위덩어리에서 생명의 기운을 읽어내는 시인의 역동적인 호흡을 만날 수 있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가만히 놓여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속으로 온통 세상을 뒤흔들기도 하고 단단함으로 단단함을 불러 더 단단해지는 힘 있는 존재
시
등록일 2015.07.21
게재일 201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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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날개를 포기하려는 것과 날개를 꿈꾸는 것이 있다 두 개의 갈등 사이로 오가다 사지가 찢어지기도 한다 제 영혼이 무거운 것들은 날기보다는 차라리 잽싸게 달아나는 다리를 원한다 날개를 포기한 겨드랑이 털을 쓰다듬을 때마다 생이 가렵다, 아프다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저 푸른 하늘이여 하늘을 날기를 포기하고 날기를 그쳐버린 현대인들의 아픈 인식이 이 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영혼이 가벼운 상태로 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어했던 시인들은 사라지고 없다, 영혼이 무거운 것들에 속해버린 존재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절망감으로 생이 가렵고 아프다는 고백을 하는 시인을 본다. 그리고 더 이상 꿈꿀 수
시
등록일 2015.07.20
게재일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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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뻑한 청바지 지퍼에 양초를 칠했더니 이제는 앉았다 일어서기만 해도 저절로 열리 때가 있다 잘 길들여졌다 지퍼가 나에게 내가 지퍼에게 잘 길들여진 삶이란 말 잘 듣는 관계란 언제나 잘 열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것부드럽게 열리는 시간이 나를 지배한 적도 있지만 익숙하게 열리고 닫히는 지퍼처럼 누군가에게 가깝게 다가가 내 마음을 열어준 적이 있지만 그래도 닫히기 위해 지퍼는 존재한다는 것을 톱니와 톱니의 맞물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내 마음이 닫히기까지는 일상 속의 지퍼를 모티브로 삼은 재밌고, 곱씹어 봄직한 의미를 내재한 작품이다. 청바지의 지퍼가 길이 잘 들어 나중에는 저절로 열리는 일도 있듯이 사람 관계도 그래서 그것이 오히려 나를 지배하고 관계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익숙하고 편한 것이 반
시
등록일 2015.07.19
게재일 201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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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었나, 그것이 꿈이었으리 저 푸른 바다 속 고기 한 마리 등이 푸르른 고기들 틈에 목이 마르던 고기 한 마리 바다에 살면서도 목은 타올라 한 그루 나무가 되어버린 고기! 참이었나, 그것이 참이었으리 저 깊은 산골짜기 나무 한 그루 좁은 잎 넓은 잎 나무들 틈에 키 크고 키 작은 나무들 틈에 불타는 노을이 되어버린 나무 홀로 수평선이 되어버린 나무! 시인은 꿈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강렬한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푸른 바다 속의 고기 한 마리가 종내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그 나무는 끝내 불타는 노을이 되었다가 홀로 수평선이 되어버린 나무에 이르기 까지 시인의 상상력은 뻗어나가고 있다, 이것은 시인 자신이 생명과 빛과 고독을 품은 존재로 화하려는 욕망의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시
등록일 2015.07.16
게재일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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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을 만드는 가운데서 이 나라를 만들고 모든 사랑을 품으면서도 큰 산을 품고 술에 취해도 이 세상으로 있어서 아무개가 아무렇게나 와서 놀다가 아무데나 가버려도 골짜기 하나 내어 길을 놓아주면서 기슭에 밟힌 풀꽃들 살려내고 그 품성을 남몰래 뫼굽이에 묻어두고 넉넉하고 술이 깨면 하늘 우러러 삼남에서 관북까지 산줄기 꿈틀대며 봉우리 우뚝우뚝 솟아올리는 사람들 그러나 서로 다른 서러움 한굽이씩 서로 부딪치면 홱 굽이치는 우리나라 사람들 이 땅 어느 산자락 강가에 이렇게 착하고 선한, 지혜롭고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 없겠는가. 어디 그 뿐인가. 기슭에 밟힌 풀꽃을 살려내는 사랑과 정성, 남의 힘겨움과 아픔을 헤아려 함께하는 너그럽고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어딘들 없겠는가. 삼남에서 관북까지
시
등록일 2015.07.15
게재일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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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마음처럼 밤새가 울고 지분지분 송화가 졌다 자작 삼았던 낮술 한잔이 홧술로 변해 취하고 말았는데 비틀림으로 동구 밖 서성였다가 혼자 오는 발길 저 아래, 우리 사는 마을의 저녁 풍경은 몇 안 남은 집집의 불빛들이 눈가에 쓰라리고 빈집의 흉흉함들을 속깊게 구별지어 주었단다 (…) 서늘하게 술기 걷히며 어느 사이 컥컥 목이 마르면 삐걱이는 대문을 걸어두는 내 마음의 그리움 위로도 천근 무거운 빗장이 걸리는 소리 들려왔다 이 땅 어느 시골이든지 이러한 빈집이 있는 씁쓸한 풍경은 있다. 귀농이라는 역류현상이 더러 있긴해도 그래도 아직은 도회지로 가버린 주인을 기다리며 쓸쓸히 낡아가는 빈집이 많다. 밤이 오면 떠나간 옛주인네가 돌아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눌 것 같은 상상도 해보지만 여전히 어둡고
시
등록일 2015.07.14
게재일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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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도 너를 찾고 싶어 하늘 한가운데로 손거울 비춰본다 멀리 있기에 돋움발 다시 세워도 너의 얼굴 지워지고 그림자마저 더욱 어두워져 해 저문 강물에 끓는 마음 띄우는데 실안개 속살 벗기는 꽃바람을 다시 그린다 인간의 원형질에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인자가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해 저문 강변에 서면 그 그리움은 극에 달하는 것이다. 하늘 한가운데로 손거울을 비추면서 돋움발을 세우면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을 깊게 하는 시인의 가슴은 아득히 떠가는 강물 위에 서러움의 노을빛으로 떠 흘러가고 있는 것이리라.
시
등록일 2015.07.13
게재일 20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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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오고 싶었다 내가 떠났던 잊지 못할 지구 안개 속에서 너희들의 창이 열린다 어제 같은 오늘을 향해 오늘 같은 내일을 향해 지구의 새벽이 차례로 잠을 턴다 우주에서 바라볼 때 지구는 아주 예쁜 초록빛의 별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구를 초록별이라고도 한다. 안개 속에서 삶을 위한 하루의 창과 문이 열리는 시간들을 아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시 정신으로 쓴 짧은 작품이다. 무언가 안개같이 불확실하고 분명하지 않는 것이 놓여있는 삶이지만 비전을 가지고 잠을 터는 인간들의 역동적인 몸과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시
등록일 2015.07.12
게재일 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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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나무와 나무 사이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 숲을 보고 느낄 수 있는 통상의 인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인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나무 가지들이 서로 밀접하게 붙어있고 엎치락뒤치락 섞여 있을 거라는 일반적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숲에 들어서보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져 있는 나무들의 간격이 그들 생존의 간격이고 사랑의 거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숲은 제 안에 품은 간격을 한껏 넓혀가고 있다는 것
시
등록일 2015.07.09
게재일 201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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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뒤틀린 기억을 껴안은 돌각담에 아스란히 새어드는 주먹만한 정적의 흐름을 읽고 있습니다. 뒤안길 외발로 걸어나온 때늦은 오후 힐끗힐끗 하늘 우르며 대숲으로 밀어내버렸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파문이 잠복하고 있습니다. 대숲에 머문 두터운 어둠, 속이 탈 난 굴뚝새의 자멱질, 댓잎을 떨게 합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뒤를 돌아보는 바람이 따스히 그들의 적소로 등을 돌리는, 이 아스라한 적요 늘 소란스러운 소리들을 생산해내면서도 깊은 적요에 빠져있는 대숲은 엄청난 서사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시인은 정적의 흐름을 좇아 시선과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니 깊은 마음의 귀를 세우고 비밀에 쌓인 그 서사에 다가서고 있다. 굴뚝새의 자멱질에도 때로는 더센 바람의 흔듦 속에서도 가만히 그 소리들을 잠재우며
시
등록일 2015.07.08
게재일 201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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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밑에 도시가 숨었나? (…) 밤, 비가 오면 승강장에 서 있던 나는 발밑에 누워있는 나를 본다 아스팔트 밑으로 스며들고 있는 도시를 본다 빗물에 녹아난 어둠도 본다 안경을 고쳐 쓴다 고쳐 쓴 안경을 호주머니에 넣고 아스팔트 밑에 숨은 도시로 걸어 들어간다 밤, 비가 내리는 도시의 서정을 특유한 발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현대인, 도시 사람들이 겪는 슬픔 혹은 한계들을 보여주고 있다. 단절되고 은폐되거나 무관심과 폐쇄되어버린 문명 혹은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위기의식 같은 것이 시 정신으로 숨겨져 있다. 기껏해야 안경을 고쳐 쓰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도시인의 한계에 깊이 공감되는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5.07.07
게재일 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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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간 앞 나무백일홍과 우산도 없이 심검당 섬돌을 내려서는 여남은 명의 비구니들과 언제 끝날꼬 중창불사 기왓장들과 거기 쓰인 희끗한 이름들과 석재들과 그 틈에 돋아나는 이끼들과 삐죽삐죽 이마빡을 내미는 잡풀꽃들과 목숨들과 목숨도 아닌 것들과 함께 젖는다는 공통의 정황 속에 자연도 중창불사 기왓장도 비구니들도 잡풀들도 사람도 다 들어있다. 모두 비에 젖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찰 경내의 많은 요소들이 서로 기대며 도우며 함께 젖는 것은 아름다운 상생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무 조건 없이 똑 같이 비에 젖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5.07.05
게재일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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