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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캐는 밭 벼논을 향해 집개가 짖는다 팔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아는 체한다는 곁의 어머니 말씀 그 고요와 사랑이 만들어내는 소란의 맨얼굴을 나보담도, 줄기를 끌어당길 때마다 숨겨진 얼굴들 속속 딸려 나오는 걸 솔깃해 하는 나보담도 멍청하게 먼 곳만 쳐다보는 듯한 네가 더 잘 알고 있다니 늙은 개가 짖어댄다 고요와 사랑이 소복하게 담겨있는 동화 같이 재밌는 시다. 개짖는 소리가 요란한데 어찌 시제목을 고요 이야기라고 했을까. 씨 뿌린 논밭에 비 내리고 햇빛을 받아 식물들이 쑥쑥 자라 소담스런 결실에 이르는 시간은 요란하지 않다는데 착상한 시인은 식물 이야기를 하면서 요란하게 성장하고 요란하게 살다가 요란하게 죽는 인간의 한 생에 대한 것을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5.12.29
게재일 201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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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도 등뼈가 있었구나 길의 등뼈 인도 한가운데 우둘투둘 뼈마다 샛노랗게 뻗어 있다 등뼈를 밟고 저기 저 사람 더듬더듬 걸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생고무 혓바닥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남김없이 일일이 다 핥아야 한다 비칠,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 핥아야할 뼈마다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우리는 끝없이 걷는다. 시인은 걷는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길의 등뼈라는 표현은 길이라는 실존을 인정하면서 장애인의 걷기와 자신의 삶의 길 걷기를 연민의 눈으로 풀어내고 있다. 온 힘과 마음을 기울여 걷는 장애인들의 길 걷기에서 수월하게 대충대충 걸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길 걷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이 시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아닐
시
등록일 2015.12.28
게재일 20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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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금호강에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등에 업혀 새록새록 잠들다가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져간 개밥바라기 하얗게 얼어붙은 강 어귀에서 모닥불 지펴놓고 그를 기다렸다 한참 뒤, 폭설 내려와 강의 제단에 바쳐지는 눈발 부둥켜안고 모래톱 돌며 제를 올렸다 눈 그친 서녘 하늘에 걸린 초롱불 하나 어린 아이의 죽음에 대한 가슴 아픈 심정을 풀어내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오게 하는 시다. 그를 위하여 제를 올리며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져간 어린 영혼은 소멸이 아니라 서녘 하늘에 떠오르는 초롱불 하나로 부활한 것이라 믿으며 엄청난 슬픔을 극복하는 시인의 따스한 마음이 매우 감동적이다.
시
등록일 2015.12.27
게재일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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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빈집에는 빈 것들이 가득 고여있다. 그의 의식이 갇혀있던 빈집에는 잃어버린 사랑도 눈물도 열망으로 들떴던 가슴도, 그리움을 물고 창밖에 떠돌던 겨울 안개들도 이제는 모두 떠나버린 공허한 메아리만 남아있는 허허로운 공간이다. 시인은 그것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빈집에 갇혀 그 열망의 시간들을 쓸쓸히 바라보며 가만히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5.12.23
게재일 201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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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저 혼자 등 돌려 놀던 적막이 문을 열면 쪼르르 치마폭에 감긴다 한마디 투정도 없는 이 하루가 기특하다 힘겨운 하루 일을 마치고 무거운 어깨로 문을 열면 가만히, 가득 고여있는 적막이 반겨주는 쓸쓸한 시인의 퇴근 즈음을 본다. 한마디 투정도 없이 하루를 혼자서 견디고 견딘 시간들을 가슴에 담아내고 있음을 본다. 우리네 한 생의 많은 순간들이 이런 쓸쓸한 퇴근 같은 시간들은 아닐까. 쓸쓸한 늦가을 숲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지독한 쓸쓸함 같은 것을 가슴으로 담아내는 우리의 한 생은 어쩌면 시인이 가만히 펴 놓는 이 짤막한 몇 줄의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느낌 같은 것은 아닐까.
시
등록일 2015.12.22
게재일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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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웃을 때 헤아려 보니 흰 이빨이 열두 개 보인다 잇몸이 드러나고 그 중 한 개가 덧니구나 네가 웃을 때 네 큰 입보다 쌍꺼풀 낀 네 눈이 더 슬프다 네 큰 입술 사이로 보이는 열한 개의 사랑의 시와 단 한 개의 절망열두 개의 이빨 중에서 빗나간 모양의 덧니를 절망으로 보고 나머니 열한 개를 사랑의 시라고 표현한 인식에서 시인의 세계관을 엿본다. 시인은 정상적인 이빨에서 희망과 사랑을 느낀 시인은 삐뚜룸히 박힌 한 개의 이빨에서 절망을 읽는다. 워낙 불구의 사고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정도를 추구하는 반듯한 시인의 세계관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5.12.21
게재일 20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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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다 추령재 넘다가 우연히 들른 백년찻집에서 마시는 대추차 한 잔 내 사랑도 이랬으면 좋겠다 비바람, 소나기, 천둥번개 주는 대로 받아먹고 붉어진 대추 몇 알이 우려낸 이 진한 맛 경주 보문관광단지에서 감포로 넘어가는 길에 추령고개가 있다. 일명 관해동고개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터널이 생겨 쉬 넘어갈 수 있지만 굽이진 옛길 그 고개마루에 백년찻집이 있다. 봄꽃과 가을 단풍이 고운 거기서 시인은 대추차 같은 은근하고 진한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시련에도 단단히 매달려 붉고 맛스러움을 가득 품은 붉은 대추를 우려낸 차 한 잔에서 시인은 그런 깊고 그윽한 사랑을 염원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5.12.20
게재일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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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졸인 그는 우동배달과 도배공 그리고 막노동판의 삽자루처럼 굴러다녔다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월사금 미납으로 교실에서 쫓겨나 운동장 한귀퉁이에서 나무꼬챙이로 땅그림을 그리며 울던 아프고도 아련한 기억은 이제 더 이상 추억이 아니다 그는 그린다 조각도로 파고 먹으로 찍고 붓으로 칠하기도 하면서 밤을 새운다 거친 손과 강철 같은 근육질의 정서로 노동자계급의 영혼을 한 화가의 암울했던 어린 시절과 그 힘겨웠던 시간들을 극복하고 이제는 어엿한 화가로 우뚝 선 인간승리의 서사를 잔잔한 감동과 함께 읽는다. 시인이 살아가는 시대는 가진 것 없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엔 그리 녹록지 않은 자본의 시대다. 시인은 정하수라는 한 화가의 인생역정을 소개하면서 시인이 줄기차게 추구하고 염원해오는 사람다움이 물결처럼
시
등록일 2015.12.17
게재일 201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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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올 때도 캄캄한 길을 혼자 왔다 아흔의 냇물을 건너자 홀몸으로 바람에 굴러간 누님 이 세상 업고 떠도는 고행이었다 어머니처럼 지글 지글 타는 사막 한 가운데서 길 없는 길을 찾아 헤매는 순례자였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외로움 하나 시방 쌍계사 불이문을 막 넘어서고 있다 망망한 대해 혼자 가는 길 바람만 어지럽게 불고 거친 세파와 맞서며 살아온 노시인이 생을 관조하는 깊은 시심이 녹아있는 시다. 생이 온통 고행 투성이고 캄캄한 길이며 그 길을 건너는 우리네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순례자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많이 가졌더라도 결국은 훌훌히 다 벗어던지고 혼자가는 외로운 길이 인생길이라는 시인의 말이 잔잔하게 가슴에 스며드는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5.12.16
게재일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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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옷들이 수북하다 늘어지고 색 바랜 헐렁해진 이력들이 한 짐이다 삶이 짐 투성이었는지 짐이 삶의 중력이었는지 한풀 꺾인 열기가 감나무 잎사귀로 숨어드는 가을, 비울 일로 가득한 아침 식탁처럼 별 그럴 만한 것도 없이 수고로운 날들 무얼 어쩌겠다고 이 많은 허물 껴입었는지 …… 나는 또 갈팔질팡이다 무언가 내려놓는 일이 아직 수월치 않다 …… 부려야 할 짐과 다시 지고 갈 짐 사이에서 시인은 가지의 열매들도 이파리들도 모두 떨어져 자기를 비우는 가을나무들을 보면서 깊은 사색에 빠져든다. 색 바랜 헌 옷가지들이며 살면서 닥지닥지 붙인 헐렁한 삶의 이력들을 내려놓고 부질없는 욕망의 삶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시인의 인식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도 살아
시
등록일 2015.12.15
게재일 201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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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을 딴다 높은 사다리 타고 올라가 긴장 속에 붉은 태양을 딴다 툭! 툭!내 몸에서 소리가 난다 맑고 깨끗한 가을의 노크 소리발아래 문득 뱀 한 마리가 지나간다 섬짓하다 높은 사다리 타고 감을 따는 맑은 오후 나는 긴장 속이지만감을 따는 순간은 은밀하고 향그롭다 감은 오늘의 행복이다 가을의 저 타는 입술 혼자 탐닉한다아주 평화로운 그림 한 장을 본다. 높은 가지 끝에 매달린 감을 따면서 시인은 향그러운 가을의 향기를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시린 봄날의 맵찬 바람을 견디고 폭풍우 몰아치던 거친 밤을 지나고, 불볕 쏟아지던 한여름의 대낮을 견디고 발갛고 탐스럽게 익은 감처럼 한 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시인은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인고의 시간들을 지나 성숙한 결실에 이
시
등록일 2015.12.14
게재일 20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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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저 달을 싸리울에 묶어본다 허름한 말뚝에 매어본다 그러면 달은 짖는다 짖어 푸른 밤이 된다 나는 푸른 밤 속으로 들어간다 들어가 묶어둔 달을 풀어준다 (….) 이내 나는 허우적거릴 것 같아 허우적거리다가 지붕과 함께 잠겨버릴 것 같아 익사 직전의 구조 요청을 누군가에게 하게 되고 달, 저 달은 날 가둔다. 바다 한가운데 가두고 고백하라. 반성하라 고문을 해온다 푸근하고 아름다운 달밤의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 달을 싸리울에 묶어 보기도 하고 말뚝에 매어 보기도 한다는 표현이 재밌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연을 즐기고 있음을 본다. 달을 포박한다는 부분에서 그 재미는 더해진다. 새로운 시각에서 자연의 감흥을 찾아가는 시인의
시
등록일 2015.12.13
게재일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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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가에 새초롬이 떠 있는 초생달 손에 잡힐 듯 걸어둔 내 딸의 눈 밑 애교살이 청자 쟁반에 아로새긴 듯 선명하다 안부를 전하듯 가끔 짧은 밤을 흔들고 가는 바람 딸의 미소가 허공에 분분하다 서쪽 하늘가에 새초롬히 떠 있는 초생달은 슬하의 고명딸 같이 애처럽고 예쁘다. 엄마의 마음은 그렇다, 늘상 보는 딸아이지만 안부가 궁금하고 그 사랑스러움이 이렇듯 절절하다. 청자 쟁반에 새겨진 무늬처럼 딸아이의 고운 모습이 선하고 그리운 것이다. 이게 이 땅 어미들의 마음이다. 잠잠한 감동을 거느린 고운 시가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5.12.10
게재일 201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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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적인 겹침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너는 잘 견뎌내었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는 때로 심정적으로 가까운 거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달은 지구의 주위를 빙빙 돌며 지켜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위해 고투하는 그들의 모습이 약간은 아름다웠다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운명적 거리를 지구와 태양의 거리와 일식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달의 시선으로 지구와 태양을 바라본 느낌을 그리고 있다. 온전히 만날 수도 영원히 헤어져 있을 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픈 사랑에 대해, 우리네 한 생이 그렇게 점철되어간다는 것을, 그 한스러운 운명적 사랑에 대해 담담하게 다가서고 있다.
시
등록일 2015.12.09
게재일 201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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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을에서 살고 싶었다 집도 없고 절도 없던 그대, 아내를 만나 벽체를 이루고 지붕이 되어 비바람을 막듯이 낙숫물을 받듯이 체온을 나누며 미움도 쌓으며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었겠지 돈이 있어야 했다 돌아버리지 않으려면 아옹다옹 다투며 아득바득 부대끼며 체온을 나누며 음식을 나누며 살고 싶었으나 가족이여 우리(柵) 허물어진 가축들이여 그대 지금 미칠 도리밖에 없는…. 삼국유사에 조신의 설화가 있다. 승려였던 조신은 꿈 속에서 인간적으로 꿈꾸던 욕망의 삶을 살다가 잠에서 깨어나 그 모든 것이 허망하고 허무한 것임을 깨닫고 구도에 정진했다는 설화다. 시인은 그 조신설화를 바탕으로 시를 전개하고 있다. 맞다, 돈 없으면 가축과 같은 삶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음이 현재의 문명
시
등록일 2015.12.08
게재일 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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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들은 술집에 가시면 주로 폭탄주를 드신다고 들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곁에는 육방 찰방에 목탁 서넛에 춘향 모녀까지 증인삼아 앉히고 폭탄주를 돌린다고 들었다 충분히 이해하고 남을 말이다 하시는 일 마음대로 안되고 속이 오죽 폭폭하시면 자폭을 기도할까 경배하고 싶다 그리고 기다린다 부디 한 소식 슬프건 기쁘건 또는 우습건 불구의 시대를 향한 야유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재밌는 작품이다. 나리들로 불려지는 높은 분들의 술 문화를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비웃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원한 한 소식을 듣고 싶어 하고 있다. 의무만 강요 당하고 권리를 찾지 못하는 민초들의 삶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고, 시원하게 해줄 희망의 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
시
등록일 2015.12.07
게재일 201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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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앓는 저 몽돌 움튼 자리는 민박집에 흐드러지던 큰 왕벚꽃나무 내 삶도 그러려나 목젖이 쓰리어 지난 봄 풀어진 꽃잎 쓸어 대창에 엮어 바닷가 햇볕 속에 널었던 것인데 어느새 그 꽃들 저렇게 말라 날 밝도록 오징어떼마냥 퍼덕이고 있다 마흔토록 삭지 않는 내 가슴 몽돌도 내년 봄쯤 저렇게 출렁일 텐가 파도 속에 하얗게 파묻혔다가도 못 잊는 이야기되어 다시 필 텐가 민박집에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왕벚꽃이 시들고 말라버린 흔적을 보고 시인은 세월을 느끼고 있다. 잘브락잘브락 물결에 밀리는 몽돌도 세월을 견디며 조금씩 몸을 줄이고 있을 것이고 마흔이 넘도록 가슴에 담아온 그리움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허망하게 혹은 뒤돌아보지 않고 쏜살 같이 가버
시
등록일 2015.12.06
게재일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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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저녁 안개 속 비가 내린다 내 어머니 낮은 어깨 위 날 기다려 골목 끝 처마 밑 날 기다려 하염없이 비 바라보시던 내 어린 날 젊은 어머니 어깨 위 석류화 붉게 핀 공동변소 골목 끝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날 부르시던 소리 석류화 환한 저녁 유년시절 가난이 닥지닥지 붙은 골목길 끝에 나와 나를 기다리시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심정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석류꽃 환한 저녁이었을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생생하게 놓여있는 골목끝에서 나를 기다리던 젊은 어머니의 환영과 다정다감하게 나를 불러주시던 그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된 것이다. 석류꽃 환하게 핀 저녁에 시인은 절절하게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시
등록일 2015.12.03
게재일 2015-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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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雪)은 기다림을 잊어버린 이에게 기다림을 깨닫게 해주었다 생애의 굳은 상처 위로 눈물샘을 흔들며 내려앉는 소복(素服)의 손님 이승을 그리워하는 하얀 그림자 그 보얀 속살을 밟으니 뽀드득 아, 살아있다는 소스침 내린 눈의 신선함을 바라보는 시인의 설레임을 엿볼 수 있다. 사십이라는 나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의 중반을 향한 무게와 힘겨움이 내포되어 있으리라. 굳은 상처로 얼룩진 세월을 걸어왔듯이 이제는 저 순백의 눈길을 또 다른 희망과 결의로 건너가겠다는 다짐이 가만히 묻어나는 시다.
시
등록일 2015.12.02
게재일 201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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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쓰러지는 생은 최초의 불을 지필 때의 반대 방향으 로 진행한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껴안을 때만 그렇게 최대한 가까이 있을 때만 소멸의 손 맞잡고 불씨로 가거나 연기로 가거나 혹은 추운 생들을 덥히러 가거나 하 겠다 장작불이 타오르는 동안 뜨겁게 잡았던 자신과의 악수를 놓고 돌아서 가는 한 사내의 걸음 앞에 떨 어지는 초겨울, 오후의 햇살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의 몸을 놓지 않는 장작불 앞에서 쉽게 사라지는 것들이 오랫동안 타오를 것들의 아래를 받치고 있음을 본다 장작불이 뜨겁게 타오른 것을 보고 시인은 최선을 다해 시 창작 작업에 몰두 할 것과 그의 생을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음을 본다. 불을 통해 이 세상과 뜨겁게 소통하며 열정적으로 시를 쓰겠다
시
등록일 2015.12.01
게재일 201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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