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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텅 빈 모퉁이에서 꽃을 피워 올리는 손들이 있다 삶은 늘 소용돌이라서 자주 허리가 휘고 손마디가 꺾이곤 하지만 곡괭이로 쇠스랑으로 긁어댄 자리마다 뽀지직뽀지직 땅이 열리고 독백처럼 낮은 소리로 흔들리며 아픈 열탕 같은 세상 속으로 오는 발길이 있다 어둑한 걸음으로 어두운 기슭으로 오는 것들의 궁금한 발길들 구부러진 길에는 푸른 꽃들이 피고 파닥거리는 작은 잎들이 환한 잠을 깨우고 있다 네가 보낼 어두운 밤들은 잊는 게 좋겠다 상처를 붙들고 우는 시간을 지우는 게 좋겠다 먹먹해진 귀에 침침하게 내리는 비 침침하던 시간이 천천히 열리는 여기 흙을 미행하는 발들이 네게로 여행을 온 것이다 겨우내 움츠리고 닫아두었던 대지에 봄이 스미고 있다. 생명의 불꽃으로 피어오르기도 하고 뾰롱뾰롱 미세한 소리로 찾
시
등록일 2016.02.03
게재일 201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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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추운 별이어서 고래는 제 아기들을 먼 데서 낳아 돌 아오고 멀리 있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 가끔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멈춘 걸음을 끌고 가는 스스로의 발등을 내려다보게 한다 지구는 추운 별이어서 돌아보면 그 자리에 아직도 네가 서 있는 걸 믿고 싶어지는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지구는 초록색의 아주 아름다운 행성, 고운 별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지구는 차가운 별이다. 가난과 질병과 테러와 전쟁, 불평등과 사고가 넘쳐나는 차갑고 아픈 행성이다. 그러나 마지막 행에서처럼 시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그래도 돌아보면 그 자리에 사랑하는 네가 서 있는 걸 믿고 싶어지는 회복과 구원의 강한 믿음과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시
등록일 2016.02.02
게재일 201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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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을 만나러 가는 길에 주막에 들렀네 환히 길 밝히는 꽃들이 이 강산 축복인양 자리 털고 일어서고 주막에 들러 퍼마신 술 두만강 저녁노을 같은 얼굴로 비틀비틀 걸어가는 삼수갑산 꽃삼천리길…이제 더 늙기 전에 그와 만나 배 띄워 강을 건너리라는 생각 정강이뼈에 저려올 때 아, 피었던 꽃들은 지고 뿌리 내린 달빛 위로 늘어나는 무덤뿐 소월이 신고 간 신발자국은 보이지 않네 우리 현대시단의 대표적 서정시인 김소월의 세계에 가 닿아보겠다는 열망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눈물과 한스러움의 전통적인 우리 정서를 7.5조 3음보의 우리 가락에 실어 주옥같은 감동을 거느린 서정시를 남기고 간 김소월의 그 서정의 맥을 이어가겠다는 시인 정신이 그의 여섯번째 시집인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에 오롯이 담겨져 있음을 본다
시
등록일 2016.02.01
게재일 201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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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 나무만 보면 설레고 좋아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어대니 새, 다람쥐, 여치, 매미가 와서 살고 꽃은 나비와 벌을 데리고 줄지어 찾 아와 저절로 한 세상이 열렸다 나무나라 지키려 하루에 땀 한 말 쏟 으니 평화는 서 말로 오고 사랑은 다섯 말 로 솟아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름다움뿐이다 나무와 풀이 나를 어머니 어머니 부 르며 제 몸에 벌레를 잡아달라 하고 웃자란 머리칼을 예쁘게 깎아달라 한다 나무와 풀은 저희들을 돌보느라 애면글면 일하는 내가 안쓰러워 어머니 드세요 하며 싱싱한 열매와 잎을 듬뿍 내밀고 나에게 우주의 비밀이 담긴 편지를 쓴다 전원에서의 소박한 삶의 모습이 생명감 넘치는 한 장 그림으로 다가오는 시다.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으며 땀 흘려 일하는 생활에서
시
등록일 2016.01.31
게재일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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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는 타나 호수로 돌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타나 호수. 내 침침한 흉강 한쪽에 넘칠 듯 펼쳐져있다. 거기에 이르려면 슬픔이 꾸역꾸역 치미는 횡경막을 건너야 한다. 고통의 임계 지점, 수평선 넘어가면 젖가슴처럼 봉긋한 두 개의 섬에 봉쇄수도원이 있다. 우리는 오래전 거기서 죽었다. 신병으로 극한의 궁지까지 몰렸던 시적 자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타나 호수를 지향하고 있다. 삶의 광포함을 경험한 시적 자아는 그 어둡고 긴 터널에서 한 가닥 빛을 바라보며 왔다. 인간 고통의 임계 지점에서 시적 자아는 그 너머에 있는 잔잔한 평화와 충만한 생명이 머무는 아름다운 타나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도 우리들만의 타나 호수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시
등록일 2016.01.28
게재일 201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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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으로 강해지는 것이 어찌 갈대뿐이랴 날 센 바람에 맞설 수 있는 건 좀 더 큰 흔들림뿐 흔들림이 스스로를 또 다른 바람으로 만들어 가듯이 휘어짐으로 강해지는 것이 어찌 갈대뿐이랴 바람에 쉬 흔들리는 갈대라는 연약한 존재에서 생명의 법칙과 인생사의 진리를 발견하고 있는 작품이다. 거센 바람을 견디며 흔들리며 서 있는 갈대처럼 인간도 시련과 고난의 거친 바람앞에 서서 견디며 이겨내는 것이리라. 날 센 바람에 맞서는 갈대처럼 어떤 문명적 시련이 닥치더라도 당당히 맞서겠다는 대결의지가 나타나 있다.
시
등록일 2016.01.27
게재일 201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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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탈진 끝에 청심환을 삼킨다. 혀끝의 아련한 감촉이 논두렁 밭두렁 길로 미끄러지듯 따라가면 비틀대는 기억의 어린 집 한 채, 열네 살 옛길이 내려와 잠시 머물면, 내삼계리를 돌아 사리암 북대암, 아홉 암자를 제집처럼 열심히 오르내린다. 먹장삼 속으로 수없이 번지던 고행의 씨앗들, 그 어린 비구니 다시 세상 밖으로 흘러 흘러갔을 테지만, 서른한 번째 동안거에 드는 여울목, 그 배꼽 아래쯤에서 입 악다무는 깨달음. 수행은 아주 멀리 떠나는 것만 아니었구나. 멈춰선 이 자리가 도량임을, 눈물처럼 꽃뱀처럼 또아리 트는 몸 안팎으로도 여전히 긴긴 흐름이 있다. 아득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인은 기억의 어린 집과 힘겨웠던 비구니의 수행, 다시 동안거에 드는 구도자의 시간을 추적하고 있다. 시인은 청춘의 시간들
시
등록일 2016.01.26
게재일 201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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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삼학년 딸 아이 아파 서울대 병원 가던 날 병원 가로수로 우람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를 보고 엄마, 이 나무 몇 살이야 글쎄 몇 백년은 자라야 이정도 굵지 나보다 오래 살았네 부럽다, 나무들은 오래 살아 좋겠다발걸음을 옮기다가 또 한 아름 넘어 보이는 튼튼한 느티나무를 보더니 얘는 몇 살이야 못되어도 이백년은 되겠지 그럼 엄마보다 더 많이 살았네 나도 나무 할래 엄마도 나무 할래어린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면서 아이와 나눈 몇 마디 대화를 모티브로 한 시다. 유한한 인간의 삶이란 수백 년을 살아가는 나무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아이는 나무처럼 푸르게 오래 오래 살겠다는 말을 툭 던진다. 나무처럼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싶다는 표현이다. 생로병사의 인생사가 백년을 넘지 못하는 인간 생명의 유한성을 극
시
등록일 2016.01.25
게재일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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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길바닥이 밥자리다 별처럼 밥알들이 흩어져 있다 비둘기들 내려와 쫀다 어제도 여기서 먹었고 그제도 여기서 먹었다 밥 고봉은 높고 뜨겁고 희다 청국장 묽은 내음이 길바닥 낭자하게 물들이는데 열무김치와 김장김치 그릇 옆에 곤쟁이젓 반 종지 얇게 저민 더덕무침과 콩나물무침이 각각 한 접시씩 흙과 자갈 들 위에 놓여 빛나는 전화 주문에 제꺼 실어와선 길바닥에 부려 놓은 밥 쟁반 덮었던 신문지 걷어내 깔고 앉으면 여윈 몸 떨게 하던 추위조차 김 내며 그녀 에워싸고 노점 펴놓은 대지엔 봄꽃처럼 꽃핀 밥상이 또 한 상 가득 펼쳐지는 것이다 시인이 설정한 찬 길바닥은 우리가 살아가는 삭막하고 차가운 현실을 의미한다. 삶의 영위를 위해 차갑고 굳은 밥을 먹는 노점상 아낙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인은 문명의 냉정함을 드
시
등록일 2016.01.24
게재일 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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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쓰러지는 생은최초의 불을 지필 때의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껴안을 때만그렇게 최대한 가까이 있을 때만소멸의 손 맞잡고불씨로 가거나연기로 가거나혹은 추운 생들을 덥히러 가거나 하겠다장작불이 타오르는 동안뜨겁게 잡았던 자신과의 악수를 놓고돌아서 가는 한 사내의 걸음 앞에 떨어지는초겨울, 오후의 햇살들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의 몸을 놓지않는장작불 앞에서쉽게 사라지는 것들이오랫동안 타오를 것들의아래를 받치고 있음을 본다 장작불을 피우면서 시인은 자신의 문학적 열정에 대한 반성과 함께 타오른 불꽃처럼 혼신의 열의를 바쳐 시를 쓰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것은 자신의 문학적 자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불이 타오르는 것은 소멸에 이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다른 생성이요 시작인 것이다.
시
등록일 2016.01.21
게재일 201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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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말 앞산에서 숨 고르던 3월의 귀에 들린 것은 언덕 아래로 살금살금 굴러가는 바람 소리? 그러나 꽃 접던 4월이 본 것은 국도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는 죽은 고양이의 저 망가진 외출복! 소위 `로드킬`이라고 부르는 길 위에서의 짐승들의 죽음을 다룬 가슴 아픈 이야기다. 아무렇게나 해체되거나 방치된 처절한 고양이의 주검 위로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이 움트는 봄이 온 것이다. 시인은 문명의 무서운 속도감에 대한 우려와 함께 우리네 삶이 얼마나 각박하고 살벌한 것인지에 대해, 속도의 폭력성에 대해 로드킬을 보여주면서 우려하고 있다.
시
등록일 2016.01.20
게재일 201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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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워 마라 그대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생은 고통의 사막이니 보아라 풀잎 한 장에도 수많은 상처가 있다 외로워 마라 그대 괴로움과 슬픔은 어차피 홀로 건너야 할 강이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도 말며 몸의 일로 마음 상하지 마라 울지 마라 그대 기쁨도 슬픔도 영원한 것은 없다 상처가 많은 꽃이 아름답다 상처를 딛고서야 사랑도 뜨거워진다 사는 일도 그러하다 누구든 한번은 간다 정호승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는 시와 분위기나 시에 담긴 시인의 마음이 비슷하다. 맞다, 누구에게나 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괴로움도 슬픔도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고 운명이다. 기쁨도 슬픔도 잠시 잠깐의 일이지 영원하지 않다는 시인의 목소리에 깊이 동의한다. 힘겹고 어려운 삶의 구릉을
시
등록일 2016.01.19
게재일 201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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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둔 유행 지난 엑스란 내복 예닐곱 벌 무명 속바지 서너 벌 오래 낀 실금반지도 하나 남겨 주지 않고 어머니 세상 뜨실 때 내 앞에 툭, 선물처럼 던져준 빈 손바닥 같은 것 한 해 농사 끝물에 남은 누런 논바닥 같은 것 회갑을 맞으며 쓴 작품으로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나타나 있다. 어머니가 남기고 간 소품들, 엑스란 내복 예닐곱 벌이며 무명 속바지 서너 벌이며 실금반지도 선물이 아니었다고 고백하면서 결국은 가장 큰 선물은 빈 손바닥이었다고 회상하며 부질없는 욕심과 욕망으로 점철되는 우리네 삶의 자세에 회초리를 대는 이 시는 매우 감동적이다.
시
등록일 2016.01.18
게재일 20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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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은 사내의 얼굴이다 여한은 없으되 막잔으로 맛있는 술 한 모금 하고 술빚 다 못 갚은 동무들 이름 적어 보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몇 줄 안부도 적어 보다 오늘은 모래펄 넓은 귀퉁이 저녁 해의 당부를 받아 적었다 골고루 따스하게 너희 모두를 비추지 못해 미안하다며 나 가고 없더라도 춥고 어두운 밤 서로 데우고 밝히며 살아가라고 구불렁구불렁 써놓은 글씨 모래펄 한 페이지를 다 채웠다 다대포 갯벌은 치열한 삶의 현장을 지칭하는 듯하다. 평생을 노동으로 살아온 늙은 사내가 술에 취해 함께해 온 친구들에게 유서를 쓰는 형식을 빌려 서로 배려해 주고 도와주고 뜨겁게 함께하는 삶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피력하고 있다. 아무리 춥고 어두운 갯벌 같은 세상이라 할지라도 서로 비춰주고 서로 데우며
시
등록일 2016.01.17
게재일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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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한 꽃이라 어디에 피어도 사랑스럽다 호숫가에 피어도 마음에 피어도 거름 위에 피어도 가만히 비워두니 허공에도 무수한 꽃이 핀다숱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꼿꼿이 살아온 시인의 한 생이 비쳐져 있는 작품이다. 어떤 유혹에도 휩쓸리지 않고 불의에 마음 내놓지 않으면서 고통스런 삶을 올곧게 지켜오면서 마음을 비웠더니 비로소 평화롭고 고요한 가슴 속으로 고운 꽃들이 피어나고 사람 사이에 사랑스런 일들이 꽃들로 피어 다가옴을 느끼고 있다. 충만한 비워둠 때문이리라.
시
등록일 2016.01.14
게재일 201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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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눈은 아름답다 중년에 들었어도 맑은 눈은 더 아름답다 그 사내는 눈이 참 맑았다 눈이 너무나 맑은 그 중년의 사내 생각하다가 속내를 감춘 눈이 붉은 나는 또 뱀처럼 몸이 달았다 맑은 눈을 간절히 욕망하는 시인은 그 맑은 눈 속 깊이 서려있는 맑은 마음도 인격도 사람됨을 깊이 바라보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다. 풋풋한 생명의 내음과 빛깔이 고운 유소년 시절의 맑은 눈도 그러려니와 중년의 사내에게서 발견되는 맑은 눈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얼마나 아름답고 진실했는가를 읽을 수 있는 눈이 아니겠는가. 그리 흔치 않는 그런 눈을 시인은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것이리라.
시
등록일 2016.01.13
게재일 201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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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저수지를 보면 끈 바싹 조여 놓은 북 같다 야트막한 언덕이 이 악물고 물가죽 을 당기고 있어서 팽팽하다 간밤 물가죽에 내려앉은 소리들이 금방이라도 솟구쳐오를 것 같다 낮고 빠르게 다가온 검은 새 한 마리 둥 - 물가죽 북을 울리고 가는 동안 물가죽 북에 이는 파문은 무심결이다 물가죽 북이 울어 소리를 눌러두고 있던 반대편 하늘 가죽도 맞받아 운다 검은 새 한 마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그것들 번갈아가며 냉큼 받아 먹 는다 새벽 저수지의 수면을 시인은 물가죽 북이라고 일컫고 있다. 시인은 아주 평화스러운 수묵화 한 장을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 검은 새 한 마리가 수면에 내려앉아 물고기를 낚아채 오르고 수면은 둥- 북소리를 내고 있는 새벽 저수지에서
시
등록일 2016.01.12
게재일 201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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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창밖으로 내어놓아요 아이 있던 자리가 젖고 아이 그늘 있던 자리가 젖고 빈자리에 빗방울들이 알을 슬어요 하늘이 뿌리는 씨알 흙 알갱이들이 간질간질 재채기할 때마다 화분 여기저기 씨알들이 튀어 올라요하늘이 씨를 뿌려요 연못에 수련 씨를 텃밭에 장다리꽃씨를 길에는 빨노초 신호등 꽃씨를 뿌려요 내 안의 유리창에 알을 슬려고 빗방울들이 안달이에요 으깨진 채 수만 개 알들이 굴러 떨어져요 나는 하느님의 아이를 배지 않겠다구요상상력을 동원해 시를 읽어야 시인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다. 조물주가 내리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배려는 빛과 빗방울이라는 가정에서 이 시는 시작한다. 비를 맞고 화분의 화초도 텃밭의 장다리꽃도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 그러나 시인은 비를 맞지 않으려 유리창 안에 있다. 시인이 삶 속에서
시
등록일 2016.01.11
게재일 20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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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지상에 초록 등뼈를 세우고 물속에 수초들이 유리 성을 짓는 동안 그녀는 낮은 땅에 얼굴을 대고 떠나간 사람들이 땅속에서 보내오는 소리를 들으며 깊은 슬픔에 잠겼었다 어느 나이가 되면 결혼도 자식도 버리고 집을 떠나 마치 부처처럼 가벼운 몸을 만든다는 천산 고원의 사내들처럼 봄이 무르익을 즈음 그녀는 꽃도 의자도 버리고 노랗고 오묘한 미소를 호흡 속에 모으고 가벼이 일어섰다 이 시에서 민들레는 여성성을 간직한 존재다. 세상이 남성 위주의 세속적 욕망의 세계라고 규정하고 여기에 반하게 가장 낮게 엎드린 민들레는 가엾은 영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타인을 위한 배려와 사랑의 홀씨를 가만히 퍼뜨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구도마저도 남성의 몫이 된듯한 세상을 향해 던지는 부드러우면서
시
등록일 2016.01.10
게재일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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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 잠겼던 지친 별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른 새벽 마른기침 소리가 마루 밑에 웅크린 어둠을 몰아낸다 녹슨 청동빛 신간들을 지탱해주던 희망과 절망을 지고 드나들었던 낡은 대문으로 조각난 아스피린 같은 새벽 달빛이 하얗게 내려왔다 누에처럼 실을 뽑아내던 밤벌레 울음을 풀숲에 내려놓는 시간 젖은 꿈을 지게에 지고 새벽 들길 나서는 아버지, 실루엣 한 장 미명 속을 걸어간다 우리 시대 이 땅 아버지들은 밤늦도록 일하고 들어와 쉬는둥 마는둥 잠을 자고 다시 새벽을 향해 걸어간다. 숙명처럼 고난의 길을 간다. 수많은 난관과 마주치며 질곡의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간다.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시대의 아픔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새벽 들길에 나서는 것이다.
시
등록일 2016.01.07
게재일 2016-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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