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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번 국도 밀양강 가에는 벚꽃이 축포를 쏘아 올립니다. 갓 스물 처녀 총각들 까르르 웃으면 놀란 꽃잎이 화들짝 날리며 렌즈 속에서 반짝입니다. 어린 아이를 안고 나온 부부는 연신 셔트를 누릅니다. 차르르 착. 이라크 중부 나자프 지역 9번 고속도로 검문소, 밴 한 대가 달려오고 있음. 미군 보병 3사단 25mm 기관포탄이 불을 뿜음. 벌집이 된 차 안에는 피난 보따리를 든 어린이와 여성 15명이 피범벅. 콰르르 펑. 시인은 아름다운 봄밤 밀양강 가에 축포를 쏘아올리듯 활짝 피어오르는 벚꽃을 바라보며 마냥 흥겹고 즐겁지만은 않다. 시인은 잘못 인화된 봄을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가는 이라크 중부 나자프 지역에서 있었던 아픈 그림 한 장을 소개하고 있다. 적으로 오인되어 포탄에 희생된 어
시
등록일 2016.04.26
게재일 201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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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찍어 새를 그린 화가 이징을 생각하다가 한 곡 부를 때마다 모래 한 알 신발에 던져 신이 모래로 가득 차야 노래를 그쳤다는 명창 학산수를 생각하다가 일생 동안 먹을 갈아 구멍낸 벼루가 열 개도 넘었다는 명필 이삼만을 생각하다가 노래를 잘 듣기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른 악사 사광을 생각하는 봄밤 중견 시인의 문학에 대한 의지와 열정과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시이다. 이 시에 설정된 화가나 명창이나 명필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시인의 분신이다. 처절하게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절대의 명작이 나오듯이 시인도 평생 시 쓰기에 임해온 태도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비장하면서도 숙연할 정도로 자신을 몰아세우며 자신을 닦달하며 격려하는 치열한 시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
시
등록일 2016.04.25
게재일 201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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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밭머리에 나와 앉은 저 망구 할매 좀 보라지 벌써 한고랑 훑었는지 담배 한 대 빼물고 숨 고르는 갓 깬 애벌레같이 뽀얀 얼굴 아마도 겨울 초입에 묻어둔 마늘쪽들 때문일 것이야 한 겨울 언 땅을 뚫고 솟아오른 탱탱한 마늘 싹들이 겨우내 굳어있던 뼈마디 복사꽃으로 물오르게 했을 것이야 흙바닥을 향해 굽은 등이 세상 가득 봄빛을 끌어오는 동안 부끄러워라 짐짓 찔러보는 꽃샘추위에도 금세 샐쭉 돌아앉고 마는 저 꽃나무들의 엄살 밀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시인의 눈에 포착된 이른 봄 새벽의 풍경이 정겹기 짝이 없다. 언 땅을 헤집고 오르는 마늘 순에서 되살아나는 우주의 시간을 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언땅에 호미를 대는 할머니는 천수를 다해가는 늙은이다. 제목처럼 노인네는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시
등록일 2016.04.24
게재일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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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가 부서진 화분 밖으로 기어 나오고 오래된 골목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고층 아파트가 전기 끊긴 집에 달빛마저 끊는다고, 붉은 욕창처럼 문드러진 비닐장판에 누운 잠 다시는 깨지않기를 바라는 서러운 잠이라고, 재개발 때문에 떠나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조간신문 두 면에 가득하다. 아니나 다를까, 창구멍 숨구멍도 없이 반지하방 쪼들리는 햇빛에 겨우 키가 크는 애들이 활개치고 놀던 골목에서 한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햇빛은 멀고 얼마나 걸어 나가야 이 골목을 빠져 나갈 수 있느냐고, 기어 나오다 기어 나오다 어느 날 멈춰 버린 키 작은 채송화처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따스한 배려와 공감, 어떤 동정심마저도 가 닿지 못하는 안타까운 풍경을 본다. 재개발을 앞둔 이 땅
시
등록일 2016.04.21
게재일 201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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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열무의 현실적 효용은 꽃이 아니라 뿌리와 줄기다. 그런데 시인의 텃밭 열무농사는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나 뿌리와 줄기를 놓치고 그만 꽃을 얻은 것이다. 게을러서 그랬을까 아니면, 가까스로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채소를 기르는 솜씨가 없어서 그랬을까. 채소밭을 꽃밭으로 만들었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었지만 시인에게는 그리 중요치 않은 것 같다. 나비가, 나비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시
등록일 2016.04.20
게재일 201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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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가랑비가 내렸고 투망도 없이 오늘 곡강에 고기가 떠올랐다 어느 시절 이 강가 새들이 악보도 없이 노래 부르더니 떼서리로 몰려들던 눈 먼 고기들 몇몇은 만(灣) 저편 쇠굽는 불빛을 쫓다가 산재 병원으로 가고 더러는 오도를 지나 방어리를 거쳐 북양산 명태가 되었다 만으로 열려져 있는 하구 언덕 해무 속 흑구선생의 묘소가 아물거리고 낮술에 취한 술패랭이 흐드러져 있다 흥해읍의 가장자리를 스쳐가는 곡강은 그 이름처럼 유려하게 휘어져 있는 작은 강이다. 신광면의 호리못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창창한 동해바다로 가져가는 아름다운 강이다. 그 강변에는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부락을 이루고 살면서 더러는 철강공단으로, 더러는 어부가 되어 북양으로 떠났지만 여전히 곡강은 가만히 흐르며 분답게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건너
시
등록일 2016.04.19
게재일 20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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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가 날아와 딱딱딱 나를 쪼며 노래할 때 아프기도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내 이파리들 기뻐 우우 노래로 화답 했네 딱딱딱 딱따구리가 내 마음에 둥지를 틀 때 부드럽고 따뜻하여 내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노래로 흔들렸네 딱따구리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세계가 실려오고 나도 딱딱딱 세계를 쪼아 집을 짓는 딱따구리가 되었네 딱딱딱 딱따구리는 나 딱딱딱 나는 딱따구리 우주는 나 나는 우주 무언가 때문에 흔들리고 불안한 나에게 딱따구리가 날아와 나를 쪼으며 내 마음에 둥지를 틀고 부드럽고 따스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고 고백하는 시인은 자신과 자연, 우주가 하나로 합일되는 느낌을 받는다. 바쁜 문명의
시
등록일 2016.04.18
게재일 201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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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산이 구름 위에서 내려와 내 발바닥에 밟힌다 그로부터 강이 안개 저 너머에서 흘러와 내 몸을 적신다 그로부터 사람이 사람 아닌 것에서 돌아와 내게 말을 건낸다 그로부터 먹물이 대갈통 속 미로에서 벗어나 조선의 산하를 화폭에 거둔다 한국화라고 불리는 많은 그림들 중에는 화가의 혼이 배어 있지 않은 그림이 많다. 그럴듯하지만 상상 속의 풍경이고 인위가 지배하는 그림이다. 그런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는 살아있는 겸재의 혼을 느낄 수 있고 아름다운 조선의 산수가 생생하게 먹을 물고 몇 백년 동안 그 멋진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겸재의 진경산수 속에 풍덩 빠져들고 싶은 마음 간절한 아침이다. 겸재 정선이 우리 지역의 청하 현감을 맡았을 때 내연산 계곡에서 그린 몇 몇 그림에서 우리는 이러한
시
등록일 2016.04.17
게재일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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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나라에는 아니오가 없다 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허물고 쌓고 허물고 쌓는 것들은 모두 무덤 무덤들 위에 새로 피우고 돋우는 꽃들도 무덤 풀들도 무덤 무덤이 된 꽃들이 슬프다 풀들이 슬프다 아니오가 없으면 아니오가 없는 나라도 무덤 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무덤 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슬프다 아니오가 없는 나라가 슬프다 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아프다 우리는 어쩌면 긍정의 가치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없는 세태를 경계하고 심히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아니오가 사라진 지 오래된 듯하다. 쉽게 따라가버리고 동의해버리는데 익숙해져 있다. 시인은 이러한 맹목과 순응의 시대를 죽음이라고 지칭하면서 아닌 것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 양심을 열망하고 있는 것
시
등록일 2016.04.14
게재일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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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허브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멸치, 전쟁이, 고등어, 꽁치, 가시나비고기가 오기도 많이 왔지만 대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 무장한 경비정이 소문을 듣고 빵 빵 빵 총소리를 냅니다. AIS로 주민등록원부 열어보니 마른하늘에 날벼락 쳤다고 합니다. 조밀한 냉기의 오아시오에 들자 많은 도둑이 도착했다 전해집니다. 10도, 11도, 12도 겹겹으로 쳐진 철조망 가로지르는 그들에게 신호등 언제나 빨간불입니다. 비표 없이 갈 수 없는 그곳을 씩씩하게 갑니다. 자동차를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한 잔 소주를 위하여 박명이 되면 곤죽이 된 채, EEZ LINE 넘어 공해로 돌아옵니다. 만선하거나 빈부랄 소리 요령처럼 흔들며 혹은 거시기 빠지게 원양어선 선장이기도 한 이윤길 시인의 시에는 역설이 많이 쓰이고 있다
시
등록일 2016.04.13
게재일 201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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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래산 북사면을 오른다 숨은 턱턱 산은 물고기처럼 가파른 등지느러미를 흔들어 제 등에 업힌 나를 내팽개치려고 안달인데 노루귀 너는 내 엄지발톱이 자지러지거나 말거나 저만치 앞에서 하얀 귀를 쫑긋거려 널 만나기 위해 죽자하고 발작을 내딛는 활공(滑空) 하늘 가득 붐비는 부레, 혹은 지느러미 삼월, 아직은 산모룽지에는 잔설이 쌓여있고 얼음새꽃이 피어나고 버들강아지 솜털 같은 새순들이 피어오른 생명 태동의 시간들이 이어진다. 어떤 예감들로 자연은 부풀어오르고 꼼지락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래산 북사면 가파른 능선을 오르며 시인은 이런 생명의 시간들에 예민한 눈길과 고운 마음길을 얹어놓는다. 하늘 가득 붐비는 부레 혹은 지느러미. 희망 크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04.12
게재일 201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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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와 수학여행단은 원자력 전시관 앞에서 기웃거리지 않아도 대환영과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그들의 품에 안겨주는 원자력 발전소 홍보용 책자와 방문 기념품들은 그들이 두려워하던 핵폭탄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가로막기에 충분하다 원자력 발전소만 잘 돌려주면 깨끗한 에너지 원자력과 함께 평생을 안심하고 살 수 있으리라는 땃땃한 기대와 희망을 가득 싣고 씽 씽 돌아들 간다 여기선 침묵이 최선의 방호다 에어록은 슬그머니 열리고 잡업 조원들을 맞이하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방사 분해된 쉰 공기들 한 때 울진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면서 우리 지역의 시인들과 교류한 적이 있는 채상근 시인의 시다. 우리는 원자력 시대에 살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에너지에도 불구
시
등록일 2016.04.11
게재일 201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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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니는 숲 속 작은 섬 하나 와 닿지 않고 열어 보지 못한 섬 푸른 숲을 단단히 물고 있다 외롭지 않느냐고 마을로 가고 싶지 않느냐고 행복을 꿈꾸고 싶지 않느냐고 대답이 없다 단단한 가슴이 빛나는 숲 언저리에 소리 없이 서 있는 섬 하나 숲 속에 외로이 서 있는 작은 섬 하나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시인이 지향하는 정결하고 높고 거룩한 어떤 가치가 아닐까. 어떤 풍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섬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견디고 당당히 맞서며, 맑고 깨끗한 한 생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강단진 시인정신의 거처를 본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
등록일 2016.04.10
게재일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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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석이던 갈대 잎은 바람에 쏠렸는데요 산벚꽃 웃음에 춘백(春栢)의 눈매는 헛헛히 무너졌는데요 그렇게 웃자란 꽃핌은 온통 상처라 당신 곁 무릎쯤만 내어주고 싶었는데요 몸끝 어쩌지 못하고 물오르는 풀인지 향기인지 모란 잎새 그늘 불현 듯 꿈틀대던 꽃대도 그 꽃대 끝에서 떨던 소란한 저녁 물비늘도 몸안을 일렁이던 햇살도 죄다 한통속들이었는데요 그렇게 한백년 비껴 서 있던 당신 겨드랑이와 내 겨드랑이가 이제야 키 낮은 망대를 만들다니 바라보는 일만도 망설임이었거늘 가슴에 서로를 묻는 일이야 만장처럼 당신 쪽으로 누운 풀자국에 내내 가난할 것입니다. 모란 냄새 선명한 하마 흔하디흔한 한 봄밤으로 나 내내 따뜻할 겁니다 정갈하고 맛깔스런 필치로 남도의 봄을 그려내고 있다. 산벚꽃과 춘백, 모란 잎새까지 고운 강진의
시
등록일 2016.04.07
게재일 201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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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 비탈에 환하게 피어있는 산철쭉 한 무더기 이리 와서 이 철쭉 굵은 꽃술 좀 봐 팽팽한 철사줄 공기를 당겨 올리는 낚시바늘 같아 그러면, 이 붉은 꽃바늘로 나비날개를 당겨 연애나 해볼까 등성 너머 구욱 국 울어대는 산비둘기 울음을 산복도로 아래 처박힌 자동차 바퀴를 비탈밭 들쑤시고 다니는 멧돼지 꼬리나 당겨봐? 낚시바늘 입에 꽉, 물고 살아가는 산비탈 언청이 꽃마을 다부룩 산철쭉 동네 산행길에서 마주친 산철쭉 한 무더기에서 시인은 아름다운 우주를 본다. 고운 꽃술을 보란 듯이 뽐내는 산철쭉을 팽팽한 철사줄 공기를 당겨 올리는 낚시바늘로 표현한 것은 봄이 와서 곱고 싱싱한 생명천지로 변한 자연에 대해 느끼는 활짝 열린 시인의 마음의 한 자락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리라.
시
등록일 2016.04.06
게재일 201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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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 구들장은 쩔쩔 끓고 순천 석수 정씨는 종일 잠만 잔다 신월동 바닷가 겨울 저녁 광주로 공부 나간 둘째는 끼니나 제대로 찾아먹는가 몸만 상하고 돈은 마음같이 모이질 않고 간조가 아직도 닷새나 남았는데 땡겨먹은 외상값은 쌓여만 간다 바다는 촐랑촐랑 무언가를 졸라대고 개들은 바람을 좇아 컹컹컹 짖고 잠이 깬 정씨가 바다 쪽으로 부스스 괴타리를 푼다 힘없이 오줌이 옆으로 날린다 노동자의 곤고한 삶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하는 민중시다. 굳이 여수라는 특정된 공간의 노동자가 아니어도 좋다. 여수의 노동자인 석수 정씨의 일상을 소개하면서 이 땅 도처에 아직도 수많은 정씨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노동자들의 힘겨운 생활을 소개하면서 시인은 핍진한 민중시의 가능성
시
등록일 2016.04.05
게재일 201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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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피는 꽃들은 바다를 향해 핀다 한결같이 바다 쪽을 향해 여리고 긴 목을 빼놓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하늘을 가리는 장맛비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본다 삶이 어떤 모습일 지라도 마음을 잡고 있는 뿌리가 있다면 바다 끝을 향해서도 두렵지 않음을 섬 꽃이 알려 준다 섬에서 피는 꽃은 먼 데를 바라보며 핀다는 말로 바꾸어 시작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시 전반에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가 소복 담겨져 있다. 어디 섬에서 피는 꽃 뿐이겠는가. 먼 곳을 바라보며 뭔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것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런 목마름에 젖어있는 것이다. 자연물도 그렇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끝없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을 가슴에 품고 먼
시
등록일 2016.04.04
게재일 201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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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할 것 같은 비구니절 그 정갈하다는 절집살림이 궁금했을까 새벽 빗질자국 남아있는 질박한 사선을 따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홀린 듯 찾은 공양간은 저녁밥 짓는 시간이었나 보다 새파란 행자승과 눈이 마주쳤는데 서둘러 외면하기까지 잠시지만 어쩌다 남의 길 엿보게 된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없다 산문이라 들고나기가 조심스럽고 무소의 뿔을 당간처럼 내세우지만 뿔도 깃발도 사부대중과 함께 가나니 너무 외롭다 마시게 그날 인연이었던 초짜스님 지금은 진짜 중 되었겠네 시인은 정갈하게 한 풍경을 이루는 절집으로 든다. 아득한 시간이 흐르는 곳이며, 철저하게 자기를 꺾고, 갖가지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봉쇄하고, 비우고 또 비우는 수행의 공간인 산사에서 시인은 아직 불계를 받지못한 행자승을 만난다
시
등록일 2016.04.03
게재일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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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집을 비워 산그늘도 적막 한 채 하늘빛도 무거운 나뭇가지 어깨를 바람이 떠받드는 집 낮달 신발 벗는 소리로 복사꽃은 지고 어깨 좁은 들길로 쑥부쟁이 하늘 길로 마구 자라나 담을 넘는 한나절 이 봄날 외로움이 비칠거리네 넓은 마당가에는 귀 닫은 지 몇 십 년이 된 산그늘 한 채 사립 대문으로 걸어 나오고 나뭇가지 흔들거리는 하늘 길은 뒤뜰 담자락마다 나뭇가지로 흔들리는 가슴이네 먼 길 떠난 주인의 그리운 가슴이네 들길이 사립 대문을 혼자 열고 있네 빈집에는 온기가 없다. 따숩게 사람의 온기를 나누며 알콩달콩 살았던 사람들이 떠나고 텅 빈집에는 무거운 산그늘이 들기도 하고 무심히 떨어지는 햇살도, 지나는 바람도 잠시 머무는 황폐한 공간이다. 언제 다시 사람의 온기가 퍼지는 생명의 공간이 될 지는 모른
시
등록일 2016.03.31
게재일 201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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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엔 라일락이 피고 뒷산에선 뻐꾸기가 울었다 볕이 좋아 아내는 이불 빨래를 널었다 병든 아버지를 위해 나는 수돗가에서 닭을 잡았다 더 마르기 전에 모습을 남겨두어야 한다며 아버지는 대문간 옆에 양복 상의만 갖취 입고 마당으로 걸어나왔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아버지는 웃고 백숙은 솥에서 저 혼자 끓고 하지만 백숙은 살이 녹을 때까지 더 오래 끓이는 것 나는 아버지의 얼굴 속에 5월의 라일락과 뻐꾸기 소리, 우아하게 지붕 위로 날아오르는 구름을 담고자 찰칵찰칵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모여 백숙을 먹었다 참으로 따스한 풍경 한 컷을 본다. 볕이 좋고 라일락 꽃 향기가 퍼지고 뻐꾸기 소리 들려오는 어느 봄날, 삶의 시간을 얼마 남겨놓지 못한 아버지와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기 위해 시인은 닭을 잡고 사진
시
등록일 2016.03.30
게재일 201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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