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5일 오후 1시30분부터 5시까지 국회에서는 국립 근대문학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벌어졌다. `국립 근대문학관 조성을 위한 토론회`는 도종환 의원과 한국작가회의가 공동으로 주최하였고 평론가 임헌영 선생이 기조발제를 맡았고, 인천에서 근대문학관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이현식씨,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 오창은씨, 소설가 김형수씨 등이 발제를 했다고 한다. 주된 논의 내용은 필자가 직접 가보지 않아서 자세히 알 수 없다. 며칠 사이로`문학의 오늘` 편집장인 홍성식 씨에게 자료집을 얻어 보기로 했다. 필자가 시간이 맞지 않아 홍 편집장에게 꼭 가 보아 달라고 요청해 놓았었기 때문이다. 홍성식 편집장의 전언에 따르면, 이 자리에는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이 참석했다. 또 유진룡 문화체육관광
규장각에서 `자전적 소설의 제 문제와 이광수 장편소설 세조대왕`이라는 발표를 한 날이다. 또 늦었군, 하는 한탄을 하며 롯데호텔 37층까지 택시 안에서도 뛰듯이 달려갔다. 고려대학교에서 이번 여름을 끝으로 정년퇴직을 하시는 선생님께 제자들이 기념문집을 만들어드리는 날이다. 이 책은 여러 시인들, 비평가들이 자신의 시를 싣거나, 그 선생님의 시에 관한 글을 싣거나 한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반구대 향유고래의 사랑노래`라는 시에 관해 썼다. 이런 행사를 정년퇴임 기념행사라고 하고, 제자들이 돈을 모아 치르게 되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국문학계에서는 급속도로 사라져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이런 행사를 무척 부담스러워 한다. 제자들이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짊어지는 게 싫을 뿐만 아니라, 이것
바야흐로 힐링 시대다. 치유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몸도, 마음도 치유해 줘야 한다는 말이 홍수를 이룬다. 힐링을 위한 수련원이나 휴양지가 각광을 받고 이런 힐링 저런 힐링이 조수가 바뀌듯 밀려들고 밀려들고 한다. 어떤 기자분이 내게 물었다. 힐링 열풍의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힐링은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힐링 열풍의 배후에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관심과 참여에 대한 실망감이 가로놓여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들은 사회를 공동체로 바꾸려는 노력을 펼쳐왔다. 민주주의, 복지, 노동 조건 개선, 생활협동조합, 새로운 교육, 시민단체, 여성 인권, 귀농…. 이런 쟁점들이 우리 사회에 물결처럼 밀려와서 밀려갔고 또 그런가 하면 밀려가지도 않고 머물러 있기도 하다.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필자의 경우에는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애국가를 배우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국기에 대하여 맹세를 하면서부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몬트리올 올림픽에 나간 양정모 선수가 우리나라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도 한국인으로서의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를 대단히 좋아해서 박스컵이나 월드컵 예선 경기가 있는 날은 전부들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 있었다. 그땐 왜 그렇게 골을 넣기가 힘들었는지 모른다. 열렬히 응원을 해도 열에 여덟은 진땀을 흘리고 괴로워해야 하는 결말들이 많았다. 그래 전부들 열렬한 애국자였다. 나이가 들어 대학교에 들어가 현실을 비판하는 법을 배웠다. `창작과 비평`이나
백석이 일제 말기에 러디어드 키플링의 단편소설을 번역한 의미를 논의하는 발표를 한 후 동서울터미널로 갔다. 서둘러 갔는데도 영주행 고속버스는 가까운 시간대 것은 좌석표가 매진이고, 여덟시 넘어서 떠나는 것만 자리가 있었다. 영주는 서울에서 두 시간 반은 걸리는 거리다. 막내 동생이 군대 갈 때 영주 근방에 한 번 가본 적이 있고, 대학 선배인 송명호 선생이 영주 근처에 산장을 마련해서 한 번 가본 적이 있으니 이번이 세번째라고나 할까. 이번 영주길은 문학잡지`문학의 오늘`을 펴내는 은행나무 출판사의 단체 여행에 편집위원들도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다. 무척 피로했던 탓에 까무룩 잠들었다 깨어나니 버스는 벌써 영주로 빠지는 톨게이트를 지난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줄지어 서 있는 택시를 타고 무섬으로 가자고
하동은 서울에서 버스로 네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지난 금요일 하동에서 김동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역마 문학제`가 있었다. 나는 김동리 선생 탄생 100주년 사업추진단에서 개최한 이 행사에서 김동리 문학에 대한 발표를 하기로 돼있었다. 버스는 압구정역 현대백화점 앞에서 예정된 8시30분에 맞추어 떠났지만 그날이 바로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더디게 달렸다. 일곱 시간이 넘게 걸려 가게 되니 행사는 예정보다 두 시간 이상 늦어졌다. 김동리의 단편소설`역마`가 화개장터를 배경으로 씌어졌다 해서 하동에는 역마공원도 꾸며져 있고, 몇 년 만에 보는 화개 장터는 놀랄 만큼 변모, 그야말로 번화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 돼있었다. 나는 그곳에서`김동리
여수는 여수를 불러일으킨다. 막상 그 머나먼 남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자 맘이 편치 않았다. 이상문학의 삶과 죽음이라는 걸 쓰고, 곧바로 일제말기 김동리 문학의 의미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고도 백석과 러디어드 키플링의 관계를 다루는 일이 남아 있다. 3월, 4월부터 내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논문을 쓰는 일은 일종의 진입공포증을 불러일으킨다. 논문 쓰는 일은 일종의 노동이다. 정신적, 육체적 노역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쓰고 있지 않을 때도 늘 심리적 부담을 머리 위에 이고 다니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여수까지 훌쩍 떠날 수 있을까? 그러나 가야 했다. 여수에서 나는 소설`담징`을 주제로 한 북콘서트에 참석해야 했다. 나는 이 책에 임권택 감독과 함께 표사를 썼는데, 그 덕분에 이 책을
우리는 같이 북쪽으로 갔다. 서울의 북쪽. 양주 광릉 봉선사를 거쳐, 포천으로. 거기서 일박하고 양평의 소나기 문학촌으로, 그리고 다시 철원으로, 고석정으로. 학생들과 함께 답사 다니는 것은 실로 유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들과 어울려서 뭐 그리 좋은가. 이렇게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글쎄, 무엇보다 생각이 가벼워져서 좋다. 나는 답사를 2박3일을 가면서도 가방안에 컴퓨터며, 책이며, 밤에 입고 다음날 갈아입을 옷가지들을 쑤셔 넣어 도르레 달린 캐리어 말고도 배낭 하나를 더 가져가야 했다. 학생들은 다들 가뿐했다. 꼭 짐 얘기가 아니란 걸 다들 아실 것 같다. 이네들은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고 투명하다. 그렇다고 생각이 얕다는 게 아니고 순수하다는
1일은 메이 데이다. 쉬는 날이다. 하지만 쉬지 않는 사람들, 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답사여행을 떠난다. 늘 먼 곳으로 떠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가까운 곳으로 간다. 경기도 양주 봉선사와 광릉을 비롯해서 경기도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닌다. 아름다운 봄이다. 봄도 지금이 제일 아름다운 때다. 서울은 지금 벚꽃이 이제 막 한창이고, 나무도 가장 싱싱한 초록빛을 띠고 있다. 여기서 더하면 짙어질 것이요, 그러면 봄은 쇠어지고 늙어지게 된다. 이 아름다운 때에 나는 가장 좋은 여행을 떠난다. 내 가방 속에는 김윤식 선생의 이상 연구가 들어 있고, 노트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이라는 희유한 단편소설의 초고가 담겼으며, 너무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어 방향 모르는 현재 속에 꿈을
부산 옆에 기장군에 문학 강연을 하게 되어 아침 일찍 떠났다. 전날 회식이 있어 열두시 넘어서까지 무리를 했지만 일은 해야 했다. 새벽 다섯 시에 서울 역으로 나가 다섯 시 삼십 분 KTX를 탔다. 어디를 가도 가볍게 다니지 못하는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이번에도 트렁크에 책을 잔뜩 구겨넣고 떠났다. 오가면서 책이라도 읽고 글이라도 쓰겠다는 욕심을 부린 것이다. 하지만 전날 무리한 때문인지 눈이 감겨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대전까지 그냥 잠만 자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 강연 때 쓸 원고를 정리하려고 스마트폰을 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분명 이메일로 발표 원고를 부쳐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메일 받은메일함에는 한 페이지 남짓한 분량밖에 없는 미완성 원고가 첨부돼있다. A4 용지 4~5페이지 분량을
봄이 왔다. 지난 한 주 춘한이 심하더니 드디어 봄은 한기를 밀어냈다. 월요일까지만 해도 어떻게 흐를지 불분명해 보이던 일기가 이제 완연히 따뜻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늘 학교에 오르다 진달래꽃이 교정에 피어난 것을 보았다. 남쪽에서는 꽃이 벌써 피어 흐드러졌겠지만 이제서야 활짝 피어난 꽃이 반가웠다. 점심을 먹으러 함바집으로 혼자 걸어갔다. 이런 날은 호젓한 기분으로 30년 전에도 있던 허름한 간이식당에 가 밥을 먹는 게 좋다. 올라가며 보니 또 진달래꽃이 피어 있다. 응달에 자리잡은 진달래꽃은 꽃이 전부 햇빛 받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식당으로 가면서 내가 생각해 낸 이야기 하나를 오랜만에 새로 떠올렸다. 내가 자주가는 출판사 마당에 아름다운
요즘 나는 소설 쓰는 일에 미쳐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이걸 안 쓰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나서 어느 날 문득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취미로 쓰는 게 아니고서야 제대로 쓰는 것도, 계속해서 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함부로 시작할 수 없는 게 소설이다. 남의 웃음거리 되기 쉽고, 스스로도 염치없어 은근슬쩍 그만두게 된다. 두고두고 미루던 일을 갑자기 시작하게 된 건 한 달쯤 전이다. 지하철을 타고서 갑자기 문자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문자로 써서 자기한테 부쳐놓는 것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데, 신촌에서 서울대입구역까지 40분 걸린다. 다른 때는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 메모장에 이것저것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해 두곤 했는데, 이것이
요즘에는 김동인의 소설을 읽고 있다. 동인문학상의 주인공인 그 김동인이다. 김동인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여자 알기를 우습게 여겼다. 요즘 같으면 글 쓰는 사람 행세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김일엽이나 김명순 같은 초창기 여성작가들을 글에 써 놓은 걸 보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산문에 써놓은 것과 소설에 써놓은 건 다르다. `눈을 겨우 뜰 때`에 나오는 보패 같은 여자, `대탕지 아줌마`에 나오는 다부꼬라는 여급에 대한 묘사, `감자`에 나오는 복녀 같은 여자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보다 보면 김동인은 여성들의 삶을 냉정하게 측정하고 평가하면서도 그이들의 삶의 불행을 깊이 동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나는 김동인 문학에 눈을 새로 뜨는 연습을 하고 있다. 보면 볼
필자가 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춘원연구학회라는 학술단체 일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다. 이 학회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춘원 이광수와 그의 문학을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본래 대학교에서 정년 퇴직을 한 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셔서 결성했고, 지금은 윤흥로 선생님께서 회장을 맡고 계시며, 이광수의 장녀인 이정화 교수도 힘을 보태고 있다. 춘원연구학회에서는 학술지도 내지만 뉴스레터라고, 소식지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틀이 완전히 잡히지 못해서 여러 가지 보완할 것이 많다. 몇 분들이 모여 뉴스레터를 어떻게 활성화 할 것이냐 하는 고민을 하다가 생각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 학회에 관련된 분들을 인터뷰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 첫 대상으로 거론된 분이 서강대학교를 정년퇴
바로 며칠 전 김연아 선수가 2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피겨 세계선수권 대회가 열리던 날, 나는 기차를 타야 했다. 중계시간은 점심이 가까울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 서울역의 텔레비전 앞에 있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가 연기를 하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다른 외국 선수들이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나는 여유 있게 선수들이 연기를 펼치는 장면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왠지 갈증이 났다. 선수들의 연기가 하나같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왜일까? 아마도 김연아 선수의 존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연기를 맛본 사람은 그보다 못한 연기에서 감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 그 서양 선수들은 얼마나 멋있었던가? 어렸을 적 흑백 텔레비전 시대가 생각난다. 부친은 고등학
이광수 장편소설`무정`이 한국에서 근대문학의 중요한 버팀목이 됐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소설을 새롭게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국문학 연구자로서 내가 가진 가장 큰 불만은 도대체가 이 소설의 새로운 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 소설에는 잘 알려진 대목이 하나 있다. 이 소설 남자 주인공은 `형식`이라는 경성학교 영어 선생인데, 자기가 가정교사로 있던 김장로 집 딸 `선형`이를 데리고 유학길에 오른다. 그런데 이 기차에는 어렸을 적 `형식`의 정혼녀였던 `영채`가 병욱이라는 여성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 배학감에게 정조를 유린당할 뻔한 죄책감에 `형식`의 곁을 떠나 평양으로 죽으러 갔다 이 여성에게 설득되어 새로운 공
평소에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 사람 안색이 별로 편치 않았다. 당연히 왜 그런지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 사람 말이, 학교에서 늘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인사를 해도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더니, 일이 없지는 않았더라고 한다. 사람을 새로 들이는 일이며, 학사 일정이나 업무 처리에 관해서 상의하는 중에 의견 충돌이 꽤 자주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끼리 만나서 인사도 하지 않게 됐냐고 했더니, 그게 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인사도 하고 말도 붙여 보고 해도 영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건물 복도에서 서로 마주쳤는데, 안녕하세요? 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건만 아예 쳐다도 안
소설이라는 말은 그 쓰임이 아주 오래되었다. 옛날 중국에서부터 쓴 말이다. 그때 소설이라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역사적인 서술 가운데 믿을만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말한다. 제왕이나 영웅들의 이야기는 정사 속에 들어가는데 반해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긴요치 못한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써놓은 것이 소설이다. 다른 하나는 사상 가운데 중요치 못한 것들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중국은 풍요로운 사상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유가니, 도가니, 법가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런 사상의 계보 가운데 소설가라는 게 있다. 이것은 말하자면 어엿하지 못한 사상이다. 그럴 듯한 체계도 없고 힘써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 사상가가 바로 소설가다. 그러니까
며칠 전에 나는 선배와 함께 어떤 회의를 하기 위해 대전에 갔다. 대전은 내 고향이지만, 그 날은 이 선배가 대전에 있는 대학에 재직하고 있기에 그곳에서 회의를 하기 위해 간 것이었다. 그날 회의 시간이 바뀐 이유도 있지만 밤새 회의 준비를 해 놓은 것을 깜박 잊고 나오는 바람에 집으로 되돌아갔다가 서울역으로 가느라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늦었다. 이 시간이 내게는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선배가 늦은 나를 보고 크게 꾸짖을 것 같지 않은 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선배는 나와 어떤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고, 그 후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은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데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시간이 결코 짧지 않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신정을 멀리하고 음력설을 지키는 나다. 그래서인지 설이 되면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때이기 때문이다. 설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느낌이 난다. 어렸을 때 공주 봉황동 산동네에서 갖가지 명절놀이를 즐기던 기쁨은 사라졌다. 하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 인생의 곡절이 많아질수록 설은 가슴에 와 닿는 세시풍습이 된다. 집에 가면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다. 옛날에는 집에 가도 부모님 아랑곳하지 않고 고등학교 동창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놀았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가면 친구들과 점심이나 하고, 차나 한 잔 하고 들어와 일을 돕거나 부모님 옆에 앉아 있게 된다. 올해는 아버지가 좀처럼 입에 올리시지 않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 인생 중엔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