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조선을 건국할 당시의 건국이념인 유학은 긴 세월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탄탄한 논리로 기틀을 이룰 바탕을 갖추고 있었다. 그 논리의 핵심이 바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움’이다. 무슨 대단하고 고매한 이론이 아니라 사람 하나하나가 본인이 처한 위치에서 주어진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륜의 논리가 국가나 가정을 지탱할 수 있는 원초가 될 수 있으며 사회질서 또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향리에 사창(社倉)을 열어 빈민을 구제하고, 향약을 실시하였던 조선 후기 학자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 속에 규장각직제학 정지검이 국왕의 언행을 법에 따라 기록해 후일 반성의 자료로 삼자고 건의함으로써 기록된 책인 일득록(日得錄)이 있다. 이 ‘일득록6’에 ‘백성이 굶주리면 나도 배고프고 백성이 배부르면 나도 배부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정조의 애민(愛民)사상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정조는 숙빈 최씨(영조의 어머니)의 묘소가 있는 소령원 부근 논에서 추수한 벼를 대궐 뜰에 가져다가 말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벼를 말리다가 낟알이 자리밖에 떨어져 있으면 내시를 꾸짖으며
사람은 소규모 집단인 가족과 친족만으로 형성된 자연적 공동체에서 다수 언어와 다수 인종으로 구성된 대규모 집단의 사회나 국가를 이루고 다양하게 살아간다. 이러한 삶의 유형 속에서 개인이 속한 사회나 국가에 빚이 없는 사람은 없다. 빚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남에게 빌린 물질적인 빚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로 신세지고 도움 받으며 사는 마음의 빚이다. 성현은 도의 가르침을 세상에 세우는 것이 빚이고 학자는 옛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문을 잇는 것
세밑(歲─) 또는 세모(歲暮)는 한 해가 거의 다 가서 얼마 남지 않아 곧 한 해가 다가는 무렵을 가리킨다. 올 한해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기승으로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운 처참히 무너진 일상으로 우울하게 저물어 간다. 우리가 부르는 세모는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일본식 한자라 하여 세밑으로 순화해 쓰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이 단어는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초간본)에 “세모에 음양이 짧은 해를 재촉하니, 하늘가의 상설이 찬 하늘이 개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율곡이 지은 연시조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의 제9곡 문산(文山)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문제 중에서 당연히 인간으로써 지켜야 하는 도리나 원리를 우리는 윤리라고 일컫는다. 윤(倫)은 무리, 질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리(理)는 이치, 도리 등을 의미한다. 그 중에 윤의 어원은 사람(人)과 무리(侖)라는 의미를 가진 합성어이다. 그래서 윤리는 무리의 관계로부터 지켜나가야 하는 도리를 의미한다. 우리사회에 지켜야 할 수많은 규범들이 존재하는 것은 윤리라는 두 글자에서 파생된 사회제도이다. 또한 윤리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평가와 잘못된 것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자신과
전후 일본사회는 논어의 가치관과 상당히 겹치는 조직을 꾸렸다. 1990년대 이후 일본식 경영시스템이라 부르는 이 풍토는 일본 대기업의 스캔들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그 원인 속에는 관대한 정치, 즉 덕치의 문제가 노출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사회문제의 해답을 중국 고대사 속에서 찾는다면 논어의 대립 명제로 한비자를 찾을 수 있으며, 현대의 성과주의로 대변된다고 하겠다. 공자의 인간관에는 상황에 관계없이 교육받지 못한 사람과 나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악해진다는 논리가 있는 반면, 한비자의 인간관에는 교육에 관계없이 이기적이 될
우리의 생각은 대개 흑 아니면 백, 보수 아니면 진보라는 이분법으로 결정짓는데 익숙하다. 나 아니면 남,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 그래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사람을 회색분자라고 하며 낙인을 찍는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란 대부분 흑과 백을 넘어선 데에 더 나은 길이 있는 법이다. 율곡 선생의 ‘율곡전서(栗谷全書), 증유응서몽학치군설’에 ‘학문이 부족하면서 바삐 벼슬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학문이 충분하면서 벼슬하지 않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라는 글이 실려 있다.500여 년 전 시대 역시 선비들은 대부분 두 부류로 나누어져
2009년 10월 MBC ‘PD수첩’은 ‘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이라는 제목으로 해군 납품 비리 의혹을 고발했다. 계급이 소령인 한 현역 해군장교가 방송에 모자이크 처리 없이 출연해 육해공군 통합기지인 계룡대 근무지원단 간부들이 최소 9억이 넘는 돈을 빼돌린 정황을 군 수사기관에 신고했으나 ‘혐의 없음’이라는 답변만 들었고 관련자들을 징계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방송 이후 재수사로 해군 간부 등 현역과 군무원 등 31명이 사법처리 된 방산비리 사건이다. 이 소령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한직을 전전하고 음해로 인해 뇌물공여죄로 고소를
조선후기 실학자 최한기 선생의 이론서인 ‘인정, 측인문(人政,測人門)’에 ‘행사상(行事相)’이라는 관상에 대한 기록이 있다. 관상은 상을 살피는 것으로 그 방법이 다양하며 얼굴의 구성을 살피는 면상(面相), 뒷모습이나 골격을 살피는 배상(背相), 또는 골상(骨相), 마음을 살피는 심상(心相)이 있다.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심상, 즉 마음의 상으로 최종적으로는 마음의 씀씀이가 어떠냐에 따라 길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관상이 별로였던 사람이 많은 선행을 베푼 뒤에는 좋은 인상으로 바뀌어 있더라는 이야기를 우리 주변
부모자식 관계는 농부와 곡식으로 비유된다. 농부가 곡식을 잘못 가꾸면 결국 굶주림의 환난을 겪게 되고,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 필경에는 위험한 화란(禍亂)을 초래한다. 곡식을 잘 가꾸고 자식을 잘 가르치는 법을 어찌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조선 초기 대학자였던 사숙재 강희맹은 아들의 교육을 위해 훈자오설(訓子五說)을 짓는다. 아비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기에 사숙재가 지은 이 글은 오늘날 독자에게 교훈을 전달하는 교술 갈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훈자오설 중 성질이 음탕하고 싸우기를 좋아한다는 꿩에 비유한 ‘삼치설
노자는 백색의 맑음을 알아야 흙색의 혼탁함을 지키며, 맑음을 지키면서 혼탁함을 조화시키는 것이 온전한 도리라고 했다. 이 흰색의 앎이 귀한 이유는 장차 그 앎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백색은 채색의 바탕이기에 백색이 아니면 채색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백색은 채색을 수용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채색이 끝난 다음에도 백색이 아니면 다시 담박하고 꾸밈이 없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문장이나 일을 꾸밀 때 ‘희게 하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색깔로 보면 채색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으나 채색은 반드시 흰색을
괴물은 인간의 내면에 드리운 욕망과 상상력의 산물이다.고대 로마의 문인이며 정치가였던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나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유니콘, 그리핀 같은 괴물 이야기를 모은 책들이다.눈이 먼 현자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보르헤스(1899~1986)의 ‘상상 동물 이야기’는 서양 괴물 이야기의 집대성을 이루며 그리스 신화의 괴물에서 카프카의 소설 속 크루자에 이르기까지 약 140여 종이 등장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속의 기묘한 이 허구의 존재들은 어쩌면 실제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하게 해 주는 열
사냥꾼은 좋은 사냥개를 얻으려 하고 말 타는 사람은 좋은 말만 얻으려 하지 그것이 어떤 새끼를 낳을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있어서도 위정자의 인물 됨됨이가 중요한 것이지 문벌은 그리 중요치 않다. 공자가 위나라 영공의 무도함을 힐난하자 강자가 물었다. ‘그러한데 그 나라는 어찌 망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공자가 답했다. ‘중숙어가 외교를 맡고, 축타가 종묘를 다스리고, 왕손가가 군사를 맡아 다스리니 어찌 망하리오!’ 이렇듯 비록 왕의 됨됨이가 비루하더라도 훌륭한 신하들이 그 임금을 보좌해 백성을 위해 국정을 돌
한국은 제1공화국이었던 이승만 정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크게 네 번의 민주항쟁을 겪는다. 첫 번째가 1960년 4·19혁명이다. 그 해 이승만정권의 3·15부정선거로 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국민까지 확대된 반독재투쟁으로 민주주의 혁명의 뿌리였다. 두 번째로 1979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독재에 저항해 10월 16일부터 5일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이다. 셋째가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이다. 전두환과 육사출신 하나회의 신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하여 이들이 정치실권자로 떠오르자 광주지역 대학생들
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의 사상을 집대성한 철학소설이 바로 ‘의산문답(醫山問答)’이다. 이 책은 중국 동북지방의 명산 의무려산(巫閭山)을 배경으로 벌이는 문답 형식의 글이다. 이 책 내용에 지구 자전설을 흥미롭게 풀어쓴 책의 뒷부분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무릇 지구는 우주 가운데 살아있는 것이다. 흙은 그 피부와 살이고, 물은 그 정액과 피다. …. 초목은 지구의 머리카락이고 사람과 짐승은 지구의 벼룩(蚤)과 이(蝨)다’. 벼룩이나 이는 사람과 짐승의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고 사는 기생충이다. 자연 속에서 생성되고 움
진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거짓말이라 한다. 영국의 정치가며 작가였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의 종류를 그럴듯한 거짓말과 빌어먹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정리했다. 거짓말은 그 정도가 심해지면 허언증이라는 정신병에 이르며, 사실을 왜곡해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이 진실이라고 믿는 심리적 장애를 ‘공상허언증’이라 한다. 이 증세는 주로 타인에게 주목받기를 좋아하며 지나치게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 이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뇌가 스스로 기억을 조작하면서 거짓말의 범위가 확대되고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문인사대부가 권력의 중추를 이루었다. 학자가 천하를 다스렸기에 관료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유가경전을 읽어야 했다.그러나 천하를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문관만 있어도 안 되기에 나라를 지키는 군인인 무관을 뽑기 위한 무과제도가 중간에 등장했던 이유다. 무인 선발을 위한 무거(武擧)제도를 만든 사람은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다. 그의 치세로 인해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했기에 시호에 무(武)가 들어간 배경이다.송나라에 와서 무술뿐만 아니라 무경(武經)에 관한 시험이 덧붙여져 이른바 역대
전국시대 맹자는 유가학파의 분류상 사맹학파로 공자 문하의 적통을 대표하며, 철두철미하게 백성을 근본으로 생각했던 민본주의 사상가이다.전국7웅이 다투는 혼란의 와중에서도 꿋꿋하게 백성을 중심에 놓는 민본주의를 꿈꾸며 임금은 백성과 함께 즐겨야 한다며 민권(民權)을 더없이 높였고 민본사상을 최대로 고취시켰다. 반대로 패도정치는 악덕하므로 오래가지도 못하고 천하를 통일해도 참다운 패자(覇者)가 될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당시 맹자는 이상 사회를 꿈꾼 것이 아니라 그 실현 가능성에도 털끝만큼 의심하지 않았다. 부국강병의 패도주의가
조선 후기 학자이면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이의숙 선생은 그의 저서 ‘이재집, 잡설(頤齋集, 雜說)에서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을 이루기 위하여 일생을 허비하고, 뜬구름을 잡으려고 헛된 꿈을 꾸다가 삶을 송두리째 망치는 경우를 예를 들어 기록하고 있다. 그 첫째가 한 동자가 돌을 쌓아 시냇물을 막으려했으나 무너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마을로 달려가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여 아이들과 풀과 넝쿨을 베어 쌓고 그 위에 흙과 모래로 둑을 쌓아 반나절 정도 되어서 겨우 시냇물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토착왜구(土着倭寇)는 자생적인 친일 부역자를 뜻하는 사어(死語)였다가 최근 들어 여당 정치인들에 의해 다시 활성화된 표현이다. 구한말의 유학자로 일제 강점기에 남원지역에서 항일 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이태현 선생의 산문집인 ‘정암사고’에 토착왜구는 ‘토왜’라는 말로 친일부역자란 뜻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이태현은 이 말의 창안자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서 자주 쓰다 보니 지식인의 문집에 등재된 것으로 추정된다.이 토착왜구라는 표현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은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토왜천지라는 글이 실려서 토왜를 얼굴은 한국인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