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에 도착했을 때 가이드는 여강에서 놓쳐서는 안 될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가 옥룡설산, 둘째 여강고성, 셋째가 인상여강이란다. 우리 일행은 고성의 동북쪽 상산(象山) 밑 `흑룡담`을 여강고성 관광의 출발지로 삼았다. 그곳에서 물이 흘러가는 고성 방향으로 돌길을 밟으며 느긋하게 걸었다. 길 곁 수로를 따라 풍부한 수량의 물이 끊임없이 흐른다. `세계문화유산 여강고성 강택민`이란 글씨가 있는 물레방아 앞에 멈췄다. 여강고성의 역사적 배경은 송나라 말기, 원나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적한 산골 마을이나 진배없는 여강고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96년 대지진 때였다. 목조 건축물이 많은 고성의 특성상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파손된 부분을 재건축하였다. 장쩌민(姜澤民)이 격려차 방문하여
우리가 찾은 장족 민가는 그들의 전통가옥을 제대로 보여주는 집이었다. 대문에 들어서자 나무와 흙으로 지은 3층 집이 보인다. 1층은 소, 돼지, 닭 등의 동물들이 사는 우리다. 2층이 살림하는 주거 공간이다. 집 짓는데 꽤나 정성을 들인 것 같다. 1층 동물 우리를 들여다보니 아무 것도 없다. 분명 짐승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천장에 굵은 나무들이 2층을 받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길 주변에서 만난 돼지와 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 뜨면 밖에 나가 풀을 뜯고, 제 스스로 활동하다 밤이 되면 우리로 기어들어오는 것이 이곳의 동물이다. 동물과 인간이 남이 아니라 서로 같은 공간에서 삶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서니 마루와 안채가 구별된다. 처마 밑 나무엔 단청도 되어 있
상그릴라에 있는 라마교 사원 송찬림사로 향했다. 송찬림사는 티벳 라싸의 포탈라궁을 닮아 작은 포탈라궁이라 부른다. 상그릴라 도시 북쪽의 낮은 산 하나를 넘으면 송찬림사를 볼 수 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우린 잠시 기다렸다. 주차장 북동쪽 산비탈에 상그릴라란 글씨가 눈에 띈다. 꽤 멀리 있는데 눈에 띌 정도니 엄청 크게 써 놓은 글씨다. 입장권을 끊은 다음 사찰 주차장까지 이동하는 전용 전동 버스로 옮겨탔다. 버스는 돌로 포장된 도로를 더덜더덜 달린다. 고개에 올라서자 정면으로 금동기와의 송찬림사 세 동 건물이 웅장한 성처럼 차창을
호도협을 빠져나와 버스에 몸을 싣고 얼마나 잤을까? 잠깐 잔 것 같기도 하고 오랜 시간 잔 것 같기도 하고…. 개운하다. 살며시 눈을 뜨자 버스는 가파른 산길을 지그재그로 힘겹게 오르고 있다. 짧은 거리가 아니다. 유리에 성에가 낀다. 창 밖 날씨가 추운 것 같다. 눈도 내린다. 길 양 옆으로 눈이 쌓였다. 비탈길을 올랐다 싶어 창 밖을 내려보면 아련한 풍경이 눈발 저쪽으로 사라진다. 세속 도시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험난한 산길이다. 길바닥은 눈, 눈, 눈이다. 버스 기사가 긴장을 한다. 얼마쯤 달렸을까. 차는 힘들게 고도를 높이며 오르고 또 오른다. 해발 3천m는 넘었을 것 같다. 거친 고개를 올랐을 때였다. 설원이 펼쳐진다. 긴장을 풀 겸 잠시 쉬자고 했다.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의 소재가 된 곳 `상그릴라`. 하재영 시인의 중국 운남 기행문 `상그릴라를 찾아서`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상향의 도시를 찾은 시인의 발길 앞에 진정 평화와 아름다움이 존재하는지. 삶의 한 길목에서 낯선 곳을 찾는다는 일은 용기며 축복이다. 반복되는 시간의 한 폭을 가로 세로로 길게 찢고 그 구멍으로 떠난 여행. 2011년 2월 하순 어느 날 난 넓은 중국 땅 운남성에 있었다. 우리에게 보이차로 널리 알려진 운남. 구름의 남쪽 운남(雲南). 난 운남의 중심 도시 곤명(昆明)에서도 한참 북동쪽 상그릴라로 향하고 있었다. 해발 3천459m의 도시 상그릴라는 티벳어로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 정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