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4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세칭 ‘돈 많고 시간 넉넉한’ 팔자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해 몰락한 조부와 세상에 대한 불평과 분노를 가슴에 안고 일찍 죽은 선친을 가진 가난한 노동자지만, 끽해야(?) 4만km가 조금 넘는 둘레를 가진 ‘내가 태어난 별’ 지구를 한 바퀴쯤은 돌아보고 싶었다.서른 즈음부터 1년이면 1~2번, 많게는 3번까지 다른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나 배에 올랐다. 짧게는 3~4일에서 길게는 10개월의 기간. 그런 장단기 여행자의 삶이 20년 가까이 이어졌다.2020년은 특별하고
21세기 벽두. 빈자와 부자는 같은 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화려한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세칭 ‘명품 가방’의 가격이 곧 오를 예정이라는 뉴스가 나오자 아침부터 값이 오르기 전 그 가방을 사려는 사람들이 명품매장 앞에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그 일이 있기 불과 얼마 전. 생존의 위기에 몰린 수천 명의 소상공인들은 명품 가방 1~2개 가격에 해당하는 대출금을 신청하기 위해 은행과 관공서 앞에서 밤샘을 했다. 대부분 조그만 술집과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었다.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가난은 부끄럽지 않은 것”이지만 매우 자
중년은 40~50대를 지칭하는 단어다. 묘한 시기다.20대들 앞에선 “나도 아직 젊어”라고 하기에 부끄럽고, 노인들을 향해 “함께 늙어가는 처지”라고 말했다간 핀잔을 먹게 되는 나이.모험과 도전에 방점을 찍고 무모하게 훌쩍 먼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젊은이도 아니고, 골방에 틀어박혀 시린 무릎을 스스로 주무르며 옛날이나 추억하는 늙은이도 아닌 중년. 용기는 사라지고, 지혜는 아직 모자란 어중간한 시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김광규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
오래된 서적(書籍)기형도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텅 빈 희망 속에서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다른 사람들은 분주히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서표를 꽂기도 한다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죽음은 생각도 못했다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
불과 몇 개월 전. 이전엔 들어본 적 없는 생경한 이름의 바이러스 하나가 세상에 존재를 드러냈다. ‘코로나19’라고 했다. 이후의 상황은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을듯하다.우리가 온전하고 완벽하며 변함없을 것이라 믿어왔던 ‘일상’이 파탄을 맞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만 바이러스 하나가 ‘지구의 지배자’라 스스로를 추켜세웠던 인간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 공주가 죽었고, 영국 총리 보리슨 존슨은 중환자실까지 실려 갔다가 한참 후에야 초췌한 모습으로 TV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탈리아는 국가 전체가 비상등
혹자는 “그린란드(Greenland·대서양과 북극해 사이에 위치한 섬)보다 큰 건 섬이 아니라 대륙이라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또 다른 어떤 이들은 “어쨌거나 크기와는 관계없이 바다 위에 떠 있으니 섬이지 뭐…”라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둘러싼 재밌는 설전이다.지구 위에서 6번째로 큰 국가지만 인구는 한국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오스트레일리아. 두어 해 전 캥거루와 거대한 붉은 사막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1주일쯤 머물렀다.경험한 바에 의하면 오스트레일리아는 땅덩어리만이 아닌 대부분의 것들이 컸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라면 1
학생들의 일상 자체가 마비된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방학 동안 얼굴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만나 반가운 인사 나눌 때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려왔지만, 4월이 왔음에도 온전한 개학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아직은 혼자서 모든 걸 해내는 게 서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둔 맞벌이 부모들은 마음 놓고 자식을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이다.조금 컸지만 중학생과 고등학생도 형편은 비슷하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 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아들, 딸과 신경전을 벌인다는 부모가 적지 않다.학원을 보내려고 해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어쩐
중국과 이란이 위기로 휘청거리더니, 이젠 미국과 이탈리아, 독일과 프랑스, 영국과 스페인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로 인해 국가가 통째로 멈춰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거대도시 뉴욕과 런던 거리에선 오가는 차량을 볼 수 없고, 이탈리아 외곽 지역 노인들은 의료진을 찾다가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여름에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던 올림픽은 전례 없이 연기가 진지하게 논의됐다.프랑스 대통령과 영국 총리는 연일 TV에 나와 “사람들 간의 접촉을 줄이고 집에 있어 달라”고 목소리 높여 호소한다. 미국과 유럽만이 아닌 중동도 형편이
저무는 태양이 소멸과 우울함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면, 솟아오는 붉은 해가 연출하는 일출은 희망과 새로움의 은유다.그래서다. 많은 사람들은 새해가 오면 바닷가로 몰려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꿈과 소망이 이뤄지기를 빌곤 한다.2020년이 시작된 지 70일 넘었지만 올해는 ‘희망’과 ‘다시 시작함’의 메타포인 일출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는 기분이 든다. 기자만이 아닌 적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코로나19로 인한 비극적 사태’가 아직 안정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는 차츰 줄
이처럼 참담하고 막막한 봄이 또 있었던가? 오십이면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나이다. 그 50년 세월 동안 2020년 봄 같은 건 겪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개인의 문제가 아닌 느닷없이 이 땅, 아니 인간이 사는 지구 전체에 밀어닥친 ‘코로나19’라는 병원균 탓이다. 초대받지 않은 공포스럽고 몰인정한 바이러스.거리엔 우울한 눈빛 아래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멀찌감치 서로를 피해 다니고, 평소 점심과 저녁을 먹던 식당엔 손님이 없다.가게 주인들은 “전기세도 못 낼 지경”이라고 한다. 택시기사들 역시 “이대로라면 병으로 죽는 게 아
젊은 시절. 적지 않은 숫자의 무신론자 청년들을 매혹시킨 이야기를 들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1928~1967)의 에피소드다.쿠바 혁명이 성공적으로 완수된 후 아프리카 콩고 등을 떠돌던 게바라는 죽기 몇 해 전부터 볼리비아에서 소수의 농민들과 함께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러나, 남아메리카 전체를 해방시키려던 ‘이상주의자’ 게바라의 꿈은 동료의 밀고로 인해 비극적으로 끝나버린다.볼리비아 정부군에 체포된 게바라를 미국 CIA에서 파견된 심문관이 조사한다. 둘 사이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
중년 이상의 한국인들이 ‘러시아’라고 발음하면 연이어 떠오르는 몇 가지 이미지들이 있다. 대부분 정치적인 것들이다.1917년 영국 망명에서 돌아와 볼셰비키 앞에서 열변을 토하던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 ‘당의 무오류성’을 설파한 스탈린,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 연이은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보리스 옐친의 보드카 폭음, 그리고 최근 ‘21세기의 차르(제정시대의 황제)’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권력욕까지.1980~90년대 한국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이들은 러시아 혁명 역사와 그 나라 정치 지형의 변화를 원하건, 원치 않건 듣고 보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다. 나라 인구의 1/3이 그 도시에 산다. 20세기 초반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소비에트 연방은 국경을 맞댄 몽골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 지배까지 면밀하게 계획했다.소련에서 생산된 석탄이 울란바토르로 대량 유입됐고, 몽골은 아직까지 그때 만들어진 난방 시스템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1~2월 울란바토르의 기온은 영하 20℃를 밑돈다. 숨을 들이쉬면 코로 들어가는 공기 중 습기가 얼어붙어 콧속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의 추위다. 직접 느껴보면? 끔찍하고도 재밌다.독한 술 보드카와 달군 돌에
혼자서, 또는 졸업을 앞둔 학생 때 단체여행으로, 혹은 지난 시절 연인과 함께 제주도를 가곤 했다. 이래저래 따져보니 ‘제주 여행’이 10여 차례가 넘는다.어느 곳을 가도 지척에 짙푸른 바다의 낭만이 있고, 싱싱한 해산물과 흑돼지 고기가 맛있는 섬.봄과 여름에 즐기는 제주도 여행은 물론 좋다. 그러나 ‘겨울 제주’의 매력도 만만찮다. 성산포나 우도에서 차갑게 출렁이는 푸른 물결을 보며 제주의 근현대사를 떠올려보는 건 쓸쓸하고 아프지만 분명 의미 있는 일일 터.몇 해 전이다. 제주에서 몇 년을 살다가 서울로 돌아간 소설가 A에게 이런
인간에게 ‘고향’이란 어떤 의미일까?자신이 첫울음을 터뜨린 잊을 수 없는 땅, 단순히 말과 글만으로는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 이상향, 끝끝내 돌아가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곳….나이를 먹을수록 그렇다. 입술을 오므려 “고향”이라고 조용히 발음해 볼 때면 쓸쓸하게 웃는 엄마의 얼굴, 밥 짓는 냄새 풍겨오던 어두운 부엌, 벌거숭이 어린 친구들과 달려가던 흙길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림자 같은 궁핍보다는 빛나는 햇살의 기억으로.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한국 사람이나 외국인이나 유사한 듯하다. 다음 주면 바로 그 고향을 찾아가는 행렬이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사실에 근거한 빤한 이야기다. 그러나, 바다 곁에 산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낭만적인 일. 그래서다. 이 땅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이라면 ‘바다’와 관련된 추억 하나쯤 없을 수가 없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10대 후반엔 남쪽 바닷가에서 서툰 연애를 하기 바빴다. 거제와 남해, 해운대 해수욕장과 광안리 해수욕장을 시간이 날 때마다 갔었고, 또래 여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쳐준다는 핑계를 대며 해변에서 아주 멀리 튜브를 밀어버리곤 했다. 겁을 먹은 걔들이 안겨오기를
누군가 “장시간의 비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그 답변으로 ‘책’ 외에 다른 게 잘 떠오르지 않는다.이륙 후 안정된 고도에 진입만 하면 비행기는 버스에 비해 흔들림이 덜하다. 마흔다섯 살이 넘어서면서는 이른 노안(老眼)이 온 탓에 덜컹거리는 버스나 기차에서의 독서가 힘들어졌다. 어지럽기 때문이다.기자의 경우 최장 거리의 비행은 ‘인천-프랑스 파리’ 노선이었다. 대략 12시간 30분 남짓.그 이전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하지만 그땐 우크라이나의 수도
꼭 모든 것이 풍족해서 아무 것도 모자라지 않는 부자가 아니어도 좋다. 최소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 노인과 장애인들, 정치·종교적 박해와 절대적 가난 탓에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들도 배를 곯지는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이건 비단 기자만의 희망사항은 아닐 것이다. 이성과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믿고 싶다.그러나, 지구는 그처럼 아름답지도 공평하지도 못한 별이다. 이 명제 또한 상식과 이성을 갖춘 인간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삶에서 체득한 경험으로 이
통영(統營) 2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자미의 생선이 좋고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처녀들은 모두 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갸웃하는 처녀는 은(銀)이라는 이 같고난(蘭)이라는
유럽과 지척인 이스탄불을 출발한 기차가 쉼 없이 20시간을 넘게 달렸을 즈음이다. 2층 침대가 마련된 특실에서 꼬박 하루를 먹고, 쉬고, 마시고, 자고를 반복하던 기자의 눈앞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황량한 평원 위에 모습을 드러낸 기묘한 형상의 수많은 바위들. 지구의 풍경 같지 않았다.가보지 못했지만 화성이나 목성의 지표면이 저러할까? 그래.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은 SF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하다”는 이야기. 외계인과 우주에서 온 괴물 에일리언(Alien)이 등장하는 몇몇 영화가 떠올랐다. 함께 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