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고전 열풍을 타고 인문학 붐이 대한민국을 들썩였다. 책방에는 관련 서적이 넘쳐났고 나 역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고전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고전을 처음 손에 잡기 시작한 이유는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솔깃한 구절을 본 다음이었다. 대표적 인물로 조선 시대 권율 장군은 고전을 파고든 뒤, 마흔이 되어 벼슬자리에 나갔다고 한다. 늦은 관직 진출이었지만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자 문신이 아니던가? 100세 시대인 요즘, 나 또한 늦지 않았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똑똑해지고 싶었고, 말도 잘하고 싶었다. 난처한 상황에
단칸방에 살던 신혼부부가 신축 아파트로 입주할 때 큰 행복감에 젖는다. 하지만 곧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편리함은 당연해지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넓고 편리한 새 아파트를 원하기 마련이다. 물질이 주는 행복은 주기적으로 채워 주고 더 좋고 크고 넓은 것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망을 충족해야 만족감을 느낀다. 끝을 모르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갖고 싶은 물건을 구매하는 순간 느끼는 행복은 곧 사라지고 말지만 여행을 통한 좋은
미국의 작은 교차로에는 어디든 붉은색 STOP 표지판이 있다. 잠시 차를 멈추고 1, 2, 3을 세고 오가는 차가 없으면 출발해도 무방하다는 안내판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익숙한 한국인들은 간혹 이 표지판 앞에서 경찰에게 딱지를 많이 끊긴다고 한다. 주변에 접근하는 차가 없으니 잠깐 속도를 줄였다가 서행하면 괜찮겠지, 방심했다가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 적발당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STOP 표지판을 만났다. 일상을 멈추고 우리는 하나둘 셋 숫자를 센다. 자기 몸에 별문제가 없어 보여도 서로를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한다. 생각해 보
내 인생에서 큰 축복 하나를 꼽으라면 평생 동지로 함께 하는 세 친구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총사는 같은 교회를 다니며 학창시절부터 오십 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친자매 이상의 정을 나누며 삶을 함께하고 있다. 부모님도 모두 같은 교회를 다니고 넷 모두 청년부에서 연애하고 짝을 맞춰 가정을 이루었다. 이런 공통점을 기반으로 우리는 결혼 이후 더욱 끈끈한 연대를 지속하고 있다.매년 만개한 꽃들이 새봄 축하 팡파르를 울리는 이맘때 우리 사총사는 특별 행사를 계획한다.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소풍이다. 이 특별한 소풍은 10여 년 전부터 시
“아! 이거 참…. 강사는 뭐 하는 거야!”도로주행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신호가 짧은 교차로 탓에 바짝 붙어 출발하다 화들짝 놀라 급정지를 했다. 짜증이 일었지만 도로주행 시험을 보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겸손 모드로 돌아간다.1999년 가을,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고 기어 변속 후 차를 출발시켰다. 식은땀이 흘렀다. 첫 신호등에 도착하자 긴장이 거의 풀렸다. 운전석 창문에 팔꿈치 걸치고 한 손으로 운전할 수도 있을 듯했다. 코스를 순조롭게 돌고 결승점에 도착해 시동을 껐다. 무사히 마쳤다. 90점은 가뿐하리라. 천만의 말씀
셋째 형은 중학생 시절 권투를 했다. 프로 복서였던 아버지는 못 이룬 챔피언에 대한 꿈 때문에 권투를 시켰지만 형은 권투에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를 거역하면 혼날까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 훈련도 대충, 눈치껏 운동했고 성과도 없었다. 의심을 품은 아버지는 새벽 훈련을 몰래 뒤따라간 일이 있다. 선수 모두가 체육공원을 달리는 훈련이었다. 모두 열심히 뛰는데 형은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 갔고 30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화장실로 찾아가 재래식 화장실에서 쪼그린 채 잠들어 있는 형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분노했고 형
희망이란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뜻한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하고 싶은 ‘생각’이 선행해야 하고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생각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마음이다. 그러므로 희망은 머리와 가슴 사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반복하는 3대 국민 결심은 금연, 다이어트, 영어공부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새롭게 결심하지만 쉽게 이루지 못한다.희망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무언가를 결심하고 야심 차게 시작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성과에 실망하고 좌절한다. 결국 이런저런 합리적 핑계를
이른 아침, 비 내리는 수목원을 걸었다. 궂은 날씨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19 사태로 힘겨운 대구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이 누리는 작은 위안이다. 틀어박혀 살아야만 하는 요즘, 산책 한 번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는다.얼마 만에 돌아온 주부의 삶인지 모르겠다. 남편 출근시키고, 설거지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 후 모닝 요가로 긴장을 푼다. 시계가 아침 아홉 시를 가리키면 수목원, 화원동산, 수변공원을 요일마다 번갈아 가며 산책한다. 이렇게 바뀐 일상은 낯설지만, 짙은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에서 일상의 자그마
매주 ‘논어’를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학이(學而)편 4장 증자의 ‘세 가지 성찰’에 대해 나눈 적이 있다.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뜻은 이렇다.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세 가지 측면에서 나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며 충실하지 못한 부분은 없는가? 친구와 교제하며 미덥지 못한 점은 없는가? 지식을 전수하면서 스스로 익히지 못한 부분은 없는가?”어느 날 퇴근 후, 증자의 세
작년 말, 본 지면에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필자의 졸고가 실렸다. 강의해 달라는 분도 있었고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격려도 쏟아졌다. 좋은 경험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 글에 관심을 보이셨던 분들 가운데 과연 통장 나누기를 실천에 옮긴 사람은 몇이나 될까?수렁이 깊지 않아 빠르게 방향을 잡은 독자도 있었을 것이다. 굳어버린 소비 패턴에 젖어 수습하기 쉽지 않은 독자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매달 입꼬리가 오르는 순간과 한숨이 푹푹 나오는 순간을 반복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경제 활동
어느 토요일 아침, 북 콘서트에 참여했다. 저자의 강연과 참여자들이 주어진 질문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평소 자신에 대해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간단한 질문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만났다.질문은 이랬다. ‘좋아하는 계절은?’ ‘좋아하는 색깔은?’ ‘좋아하는 숫자는?’ ‘나를 닮은 동물은?’ ‘나를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이 쉬운 질문들 앞에서 나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잠이 덜 깬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갑자기 무색무취의 존재처럼 느껴졌다.‘좋아하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 좋아 보이는데, 왜 좋은지가 떠오르지
얼마 전 일본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일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는 저녁 시간이라 남는 시간을 활용해 교토에 있는 금각사를 방문했다. 예전에 읽은 소설 ‘금각사’에 나오는 실제 금각사의 모습과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금각사는 1950년에 한 견습 승려가 지른 불 때문에 누각이 불타고 말았다. 소설 ‘금각사’는 그 견습 승려의 성장 배경을 그리며, 그가 왜 불을 질렀는지 이유를 다룬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 금각사가 아름답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하지만 직접 수도자로 경험한 금각사는 상상만큼 아름답지도 않았고, 금각
며칠 전, 포항에서 대구로 향하던 중 서포항 나들목 근처를 지나다가 저절로 눈길이 머무는 경험을 했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법. 내 눈에는 제일 먼저 산(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지역은 소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임지(林地)다. 운전 중 눈길이 머문 이유가 있다. 벌겋게 죽은 소나무가 보였기 때문이다. 병든 소나무를 보는 순간 가시에 찔린 듯 마음이 따끔했다. 소나무숲이 주는 푸르름은 간데없고 벌겋게 변한 소나무들이 눈에 밟힌다.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이미 많은 소나무가 벌겋게 변했다. 산이 일터인 필자는 이런 장면을
TV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상대를 짓밟고 생존하는 정글을 보는 느낌이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거북하다. 이들의 꿈을 지원한다는 미명 하에 가해지는 잔인함은 시청하는 내 인간성마저 파괴하는 기분이다.입시와 취업 등,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미 매일 서바이벌 게임처럼 살고 있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순으로 자리를 지정하는 순간, 친구는 경쟁 상대로 변했다. 더 높은 곳에 오르겠다며 끙끙거리다가 대상을 알지도 못하는 분노로 마음이 가득 차기도 했다. 결국 능력 부족, 근성 부족, 체력부족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체념하고 말았지만.오디션
요즘 ‘다꾸’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예쁜 신상 ‘마테’랑 스티커 사느라 두부 20모쯤 되는 돈을 쏟아 부었나 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이 대부분 아닐까 짐작한다. ‘다꾸’는 다이어리 꾸미기를 뜻하고 ‘마테’는 알록달록하게 디자인한 예쁜 마스킹 테이프를 줄인 말이다. ‘다꾸’에 열성을 보이는 10대 청소년이나 20대 여대생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다.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쓰는 언어에 익숙해진다. 왠지 이런 표현을 쓰면 마음까지 살짝 젊어지는 기분이다. 나만의 착각
청소년 캠프에 대학생 봉사자로 참여해 진행했던 활동이 있다. 납작한 접시에 깨끗한 물을 담는다. 깨끗한 마음을 상징한다. 그 물에 후춧가루를 뿌린다. 더럽고 어두워진 마음을 의미한다. 다음 단계로 손가락에 세제 한 방울을 바른다. 어둠을 밀어내는 빛의 역할이다. 세제를 바른 손가락을 더러운 물 한 가운데 넣자 순식간에 후춧가루가 바깥으로 밀려난다.캠프에서 이 활동을 한 이유는 그날 주제였던 , 곧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모습을 경험적 자극을 통해 각인하려는 의도였다. 나를 비롯해 많은
연초에 빠뜨리지 않는 활동 한 가지가 있다. 지난해 바인더에 꼬박 작성한 플래너를 보며, 머물렀던 시간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일이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한 해 계획을 짠다. 당시에는 상황에 함몰되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부분을 이때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순간을 잘 이겨냈구나. 포기했으면 후회할 뻔했지?’ 이런 아찔함을 느끼기는 일도 있다. 무언가 쉽게 포기하면서 얻는 안락함보다 고비를 넘겨 쟁취한 승리의 달콤함이 수십, 수백 배 더 가치 있음을 알아간다.한때 자기계발서를 부지런히 읽으며 목표를
예년과 다른 새해를 맞이하려는 의욕이 충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가 불 보듯 뻔한 탓에 새해 각오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도 그저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지난 2018년 말, 실로 오랜만에 ‘새해 결심’이라는 것을 써 보았다. 리스트에는 일회성도 있고 꾸준히 습관을 만들어 삶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중대 결심도 있었다. 이대로 실천하면 삶은 충만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려대로 연초 다짐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일상의 반복만 거듭하며 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그때 작성한 새해 결심을 펴보지도 않다가 1년이 끝나
가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뜨거운 햇볕은 얼굴과 몸을 태우는 듯하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다. 온몸은 땀 범벅이고 젖은 옷이 묵직하다. 힘들다. 청소년 시절 내 모습이다. 고된 훈련을 하는 이유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었다.88서울올림픽을 TV로 보면서 꿈이 생겼다. 복싱 문성길 선수가 시상대 제일 높은 곳에 올랐다. 그의 목에 금메달이 걸리는 순간 감전된 듯한 전율을 느꼈다. 멋있었다. 나도 저 시상대 제일 높은 곳에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그 순간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내 가슴에 새겼다. 심장은 뛰었
나는 역사책 읽기를 좋아한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결과가 늘 궁금하기 때문이다. 왜 문명 발전이 늦었던 서양이 20세기에는 동양 대부분을 지배했을까? 왜 문명사에서 가장 앞선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아랍 지역은 이후 한 번도 문명의 주인공 노릇을 못 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터지는 중동 지역의 일상생활은 어떨까? 생활 전반이 불편해 보이는 히말라야 자락의 부탄이라는 최빈국의 행복지수가 왜 세계에서 가장 높을까? 그들이 행복하다면 왜 행복한가? 이런 것들이 늘 궁금하다.역사, 책을 보면 인류는 자연환경을 지혜를 모아